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09
809회.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위지휘사들과 정천호들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도지휘사 구시우의 얼굴이야말로 살아 있는 증거였다.
체면을 중시하는 무관들에게 도지휘사가 당한 일은 팔다리가 잘린 것보다 더한 치욕이었다.
무관들의 눈빛에 구시우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모른 척 말을 이어 갔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무림 고수를 상대하는 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상대의 내력이 바닥날 때까지, 압도적인 화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화포 백 문과 궁병 천오백의 연환 공격이면 놈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류이근 위지휘사의 화룡대가 별궁의 위치와 거리를 계산해 놓았으니, 다른 위(衛)는 화룡대를 중심으로 연환 공격을 준비하도록 해라. 각 위의 궁병들은 화포가 발포를 준비할 때 공격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끼어들어야 한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구시우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핵심을 정리했다.
“요약하자면 주력은 화포고, 궁병은 보조다. 원거리에서 화포와 활로 놈의 내력이 바닥날 때까지 조져라! 그런 후에 제장들이 전격적으로 개입하여 놈을 죽인다. 알겠느냐!”
“예!”
위지휘사들과 정천호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그들 모두 실전으로 다져진 내외공의 고수들인지라 눈빛이 이글거렸다.
남천 연적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녹림의 도적에서 무당파 제자가 되기까지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은 군문에서도 유명했다.
그를 죽이면 무명(武名)을 얻는 것은 물론 출세가도를 달리게 될 것이다.
속으로 결의를 다지는 무관들에게 구시우가 한마디 덧붙였다.
“이번 청성산의 전쟁은 금의위를 통해 황상께 직접 보고되고 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잘 알리라 생각한다.”
순간 무관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건 상관에게 공을 가로채이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다.
공적에 메말라 있던 무관들이 내뿜는 투기로 막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
십일월 말.
마침내 사위(四衛)의 군사 이만 이천여 명이 청성산을 에워쌌다.
계절은 어느새 초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특히나 청성산의 날씨는 이미 한겨울을 방불케 했다.
이른 아침.
세 명의 도사들이 청성파 산문(山門)에 모습을 드러냈다.
청성산 초입에 있는 등운정의 관리자 자운산인과 삼대제자들이다.
주위를 살피던 무학 도사가 말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도 조용히 넘어가려나 봅니다.”
그러나 자운산인은 그만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일이면 벌써 십이월.
도지휘사에게 싸울 마음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쳐들어와야 했다.
별궁에서 생활하는 연적하 내외와 달리 위소 군사들은 야영을 하고 있었다.
십이월에 접어들어 기온이 더 떨어지면 군사들의 사기가 바닥을 칠 터였다.
자운산인은 묵묵히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제 사위의 군사가 집결했으니 오늘내일 중으로 변화가 있을 터였다.
그때 산 위에서 아침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뎅-.
무학 도사와 정학 도사는 슬쩍 시선을 교환했다.
그만 돌아가 따뜻한 한 끼를 먹었으면 좋겠는데 자운산인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무학 도사가 정학 도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너도 한마디 하라’는 무언의 재촉이다.
마지못해 정학 도사가 말하려고 숨을 짧게 들이마실 때다.
산 아래서 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려왔다.
척척척척-.
세 사람은 산문 뒤로 숨었다.
이윽고 장창을 든 군사들이 산문 앞에 나타났다.
어찌나 그 숫자가 많았던지 셀 수도 없을 지경이다. 장창병들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세 도사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막 산문을 벗어나려던 자운산인이 귀를 쫑긋 세웠다.
멀리서 은은하게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포?’
그것은 분명 바퀴 구르는 소리였다.
이렇게 묵직한 바퀴 소리는 화포밖에 없다.
장창병의 숲에 막혀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그는 화포라 믿었다.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화포를 앞세우려는 모양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자운산인은 무학과 정학 도사들에게 짧게 말했다.
“돌아간다.”
산 위로 달려 올라가는 세 사람의 표정은 어두웠다.
군사들이 너무 많아서다.
산문 앞에 도열해 있는 장창병만 밀고 올라와도 연적하가 기진맥진할 것 같았다.
자운산인은 삼대제자들을 장문인에게 보내고, 자신은 별궁으로 향했다.
***
청성파.
별궁.
종소리를 듣고 방을 나온 연적하는 마루 위에서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마당에서 그를 기다리던 심통이 물었다.
“공자님? 무슨 일 있습니까?”
“도지휘사가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아.”
“왜요?”
“또 산문 앞에 몰려왔어. 저 화상을 어떻게 해야 하지? 때려죽일 수도 없고.”
상대가 마두였으면 진즉에 죽였다.
나라와 황실에 대한 충성으로 저러는 사람을 어떻게 죽인단 말인가.
“그래도 본때를 보여 줘야 다시 덤빌 생각을 못 할 겁니다.”
“얼굴을 묵사발 냈으면 됐지 뭘 더 보여 줘?”
“도지휘사라는 놈이 공을 탐해서 그러는 건데 너무 봐주는 거 아닙니까? 아닌 말로 공자님이 약했으면 포탄에 맞아 죽었을 겁니다.”
“그러네?”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심통의 말처럼 자신이 약했다면 죽어도 열두 번은 더 죽었을 것이다.
마치 한소양이 불에 타 죽은 것처럼.
강호에서 자신의 목숨을 노린 자는 용서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도지휘사나 무관들에게는 살수 쓰기가 꺼려지는지 모르겠다.
비참하게 죽은 한소양을 떠올리자 아랫배에서 투기가 스멀스멀 끓어올랐다.
연적하가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있을 때 자운산인이 뛰어 들어왔다.
“연 대협! 산문 앞에 대군이 몰려 왔습니다!”
“몇이나 돼 보여요?”
“장창병만 보았는데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장창병을 봤다고요?”
“후위의 화포를 보호하기 위해 종종 장창병이나 검방병을 앞세운다고 들었습니다. 화포 끄는 소리도 들었으나 장창병이 많아 확인은 하지 못했습니다.”
심통이 불쑥 끼어들었다.
“아니! 그놈들은 지난번에 실패하고도 또 그 짓을 하겠다는 거야? 미련한 놈들. 꼭 똥인지 된장인지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 봐야 아나?”
그러자 자운산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족했다고 여겨 그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흔히들 한 손바닥이 열 손바닥을 당해 내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말이 가장 잘 통하는 데가 군문이니까요.”
“쯧쯧! 우리 공자님의 검공을 보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갈 텐데. 공자님! 공자님의 천산검영이 얼마나 무서운지 도지휘사에게 보여 주시죠?”
연적하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천산검영을 보여 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결과가 문제다.
하늘의 별처럼 많은 ‘검의 화신’ 아래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게다.
그때 멀리서 ‘쿵!’ 하고 화포 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쐐애액!’ 하는 파공음이 들리더니 별궁 지붕 한쪽이 푹 꺼졌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푹 꺼졌던 지붕이 강한 폭발음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퍼엉-!
지금까지의 포탄과 다른 위력에 연적하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저거 뭐야!”
입을 쩍 벌리고 있던 자운산인이 급히 답했다.
“저것은 진천뢰(震天雷)라 불리는 포탄입니다. 포탄 안에 화약을 넣어 폭발하게 만든 것으로, 포탄 자체의 위력보다 파편이 더 무서운 기물이지요.”
“진천뢰?”
“그렇습니다. 빈도(貧道)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기는 처음입니다.”
“…….”
예기치 못한 상황에 연적하는 한순간 멍했다.
진천뢰는 언제 터질지 모르니 허공섭물로 끌고 다닐 수도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운산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진천뢰와 첫 포탄의 정확성을 보니 준비를 많이 한 모양입니다. 남궁 부인과 아기를 상청궁으로 대피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연적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군문의 싸움 방식은 무림인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가하게 누굴 봐주고 말고 생각하다가 석경장 사람들이 죽게 될 판이다.
그는 급히 심통에게 말했다.
“심 노인. 도사님 말대로 별궁 사람들을 상청궁으로 대피 시켜.”
이윽고 연적하는 운종술로 날아올랐다.
처음 포탄은 시험 삼아 쏜 것이었던지 더 이상 화포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렀다.
진천뢰는 자신이 생각한 포탄과 너무 달라 대책을 세우기 어려웠다.
청성산 중턱까지 내려갔을까?
기어코 산 아래에서 천지가 진동하는 폭발음이 쉬지 않고 들려왔다.
쿵! 쿵! 쿵! 쿵! 쿠웅-!
얼추 스무 번 정도 들린 것 같았다.
연적하는 즉시 영기를 몸 밖으로 발출해 천라지망을 펼쳤다.
투투투툭-.
스무 개의 포탄이-마치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자세히 보니 진천뢰는 크기부터가 이전의 포탄과 달랐다.
그때의 포탄보다 무려 반 뼘이나 더 컸다.
그가 잠시 진천뢰의 처리를 고민할 때다.
꽈과과광-!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폭발음과 진천뢰가 폭발했다.
비록 호신강기가 쇠붙이 조각을 막았지만 연적하의 몸은 뒤로 날아갔다.
폭발의 여파에 운종술도 깨졌다.
속절없이 지면으로 추락하던 연적하는 급히 운종술의 주법을 암송했다.
떨어지던 몸이 다시 둥실 떠올랐다.
귀에서 ‘삐이-’ 소리가 들려오자 연적하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도 귀에서 들려오는 이명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쿵! 쿵! 쿵! 쿵! 쿠웅-!
미처 동서남북을 인지하기도 전에 다시 한번 화포 소리가 들려왔다.
묵직한 폭발음이 진천뢰다.
부지불식간에 한숨을 내쉬던 연적하는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이번에는 허공에서 천둔검을 꺼내 종횡으로 휘둘렀다.
쓰아아아- 쓰아아-.
진검강이 진천뢰를 반으로 갈랐다.
대부분의 진천뢰가 맥없이 땅으로 떨어졌지만 그중 몇 개는 그러지 않았다.
꽝! 꽈광-!
이번에도 호신강기가 일어나 파편을 튕겨 냈다.
아까처럼 뒤로 날아가는 것은 면했지만 연적하의 표정은 어두웠다.
진천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서다. 또다시 멀리서 화포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나 진천뢰다.
그래도 세 번째라고 막막한 느낌은 덜했지만 여전히 찜찜한 느낌이다.
연적하는 진천뢰를 향해 마주 날아가며 진검강을 뿌렸다.
이번에도 진천뢰의 폭발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꽈광-!
같은 꼴을 세 번이나 당하자 속에서 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평범한 포탄과 달리 진천뢰의 살상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런 공격을 세 번이나 받으니 무관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연민이 사라졌다.
“우우우우우우-!”
연적하가 장소성을 터뜨리자 구름이 빛살처럼 산문으로 날아갔다.
그를 발견한 포수들이 다급하게 화포의 각을 세웠다.
포수가 화포를 조정하는 동안 사위(四衛)의 궁병들이 일제히 강철 화살을 쏘았다.
촤촤촤촤촤-.
지면에서 쏘아 올린 강철 화살에 맑던 하늘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연적하는 풍천소축(風天小畜)의 묘리로 강철 화살을 밀어냈다.
그리고 지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장창병 뒤로 궁병과 백여 문의 화포가 줄지어 서 있었다.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는 별궁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족과 위소(衛所)의 군사들 중에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생각할 것도 없다.
그가 천둔검을 세우자 천백억(千百億) 개나 되는 ‘검의 화신’이 하늘에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