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10
810회. 이제는 금군(禁軍)이 움직이겠지요?
산문 위로 연적하가 탄 구름이 보이자 화룡대 지휘관 임진관 천호는 기수(旗手)들에게 소리쳤다.
“청기(靑旗) 올려!”
화룡대의 기수들이 청기를 힘차게 들어 올렸다.
그러자 포탄병들은 즉시 흑색의 진천뢰를 군청색의 포탄으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폭발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인 무시진천뢰(無時震天雷)다.
도지휘사 구시우가 연적하를 죽이기 위해 은밀히 개량한 포탄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시진천뢰를 본 포수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폭발 시간이 짧은 무시진천뢰는 근접전에서 유용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무기였다.
드물지만 재수가 없을 경우 화포 안에서 폭발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청기는 ‘포탄을 무시진천뢰로 바꾸어 발사하라’는 명령이다.
사위(四衛) 중에서 처음 화포를 쏘았던 화룡대가 가장 빨랐다.
쿵! 쿵! 쿵! 쿵! 쿠웅-!
꽈앙-!
그런데 하필이면 처음부터 재수가 없는 일이 발생했다.
화포 한 문에서 무시진천뢰가 폭발하고 만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짧은 심지가 평소보다 빨리 타들어 갔던지, 격발의 충격으로 폭발한 것이리라.
“악!”
“으악!”
파편에 맞은 포수 다섯이 비명과 함께 나뒹굴었다.
하지만 열아홉 개의 무시진천뢰는 연적하를 향해 쾌속하게 날아갔다.
그중 다섯 개가 방향이 틀어졌는지 엉뚱한 데로 날아갔다.
남은 열네 개의 무시진천뢰를 보고 있던 이진관 천호는 싸한 느낌에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기우였던 듯 연적하 주변에서 무시진천뢰가 제대로 폭발했다.
꽈과과광-!
시뻘건 불길과 함께 무시진천뢰의 흉악한 파편이 연적하를 덮쳤다.
“그래!”
“와아!”
끝까지 지켜보던 이진관 천호와 화룡대 포수들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열띤 환호성은 이내 침묵으로 바뀌었다.
조각난 쇳덩어리들은 투명한 벽에 부딪치기라도 한 듯 맥없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이진관 천호는 실망하지 않았다.
호신강기는 예상했던 일인 까닭이다.
포수들을 독려하려고 고개를 돌리려던 그가 멈칫했다.
연적하만 신경 쓰고 있었는데 그 위쪽 하늘에 뭔가 이질적인 게 보였다.
‘뭐, 뭐지?’
포수들도 발견했는지 죄다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검?’
하늘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그것들은 검 같았다.
‘검이 맞나?’
보고 있으면서도 그는 믿지 못했다.
저렇게나 많은 검들이 어떻게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진관 천호는 화포 소리에 자신의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룡대뿐 아니라 어느새 창병과 궁병 들까지 하늘을 보고 있다?
‘저게 진짜 검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검들이 쏟아져 내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가공할 압력에 귀에서 ‘웅웅’ 하고 이명(耳鳴)이 울렸다.
비칠거리던 이진관은 풀썩 주저앉았다.
잠시 후 다시 일어선 그의 눈앞에 지옥도(地獄道)가 펼쳐져 있었다.
화룡대 군사들이 피웅덩이 속에서 꿈틀거렸다.
토막 난 시체들 틈에서 사지가 잘려 나간 군사들이 입을 뻥긋거렸다.
“…….”
눈에 보이는 모든 게 파괴됐다.
사람은 물론이고 쇳덩이로 만든 화포와 지면에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소름 끼치는 비명이 사방팔방에서 들려왔다.
“으아악!”
“살려 줘!”
피칠갑을 한 군사들의 절규에 이진관 천호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균형을 잃은 상체가 좌우로 요동쳤다.
‘왜 이러지?’
이진관은 갈지자[之]로 뒷걸음질 치는 자신을 납득할 수 없었다.
뒤늦게 좌측 어깨가 무엇에 쓸리기라도 한 것처럼 화끈거렸다.
무심코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피웅덩이 속에서 절규하던 군사들처럼 자신도 왼쪽 어깨가 없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상실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지혈을 하고 위지휘사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위지휘사 류이근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전장을 수습하다 뒤늦게 그를 발견한 류이근이 안타까운 얼굴로 다가왔다.
“이 천호. 팔이…….”
이진관이 핏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살아 있는 것만도 천운이지요. 다른 위소(衛所)의 지휘관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일단 도지휘사님은 무사하시네. 위지휘사 둘이 사망했고, 계속 피해를 집계 중이네.”
머뭇거리던 이진관이 물었다.
“……연적하는 어떻게 됐습니까?”
류이근이 씁쓸한 얼굴로 산 아래쪽을 가리켰다.
“금의위들을 앞세워 저쪽으로 내려갔네. 불에 탄 움막으로 가는 것 같더군.”
“한소양 때문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금의위를 앞세울 까닭이 없겠지.”
“저는 지금도 제가 본 게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검이었습니까?”
“검의 잔재가 없는 것으로 보아 심검(心劍)이 아닐까 생각하네.”
“허허허…….”
이진관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던 그 검들을 심검이라 하니 기가 막혔다.
하지만 위지휘사의 말처럼 결과만 놓고 보면 심검이라 할 만했다.
“이제는 금군(禁軍)이 움직이겠지요?”
사위(四衛)의 군사들이 청성산에서 피를 흘렸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상자가 나왔을 테니 누구라도 곱게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럴 걸세. 연적하가 선을 너무 넘었어. 사위의 군사가 이정도로 피해를 입으면……. 황실이 아무리 엉덩이가 무거워도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지.”
“금군이 연적하를 당해 낼 수 있을까요?”
“그러기를 바라야지.”
류이근은 천천히 주변을 쓸어 보았다.
살아남은 군사들이 시체와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있었다.
보고 있지만 믿어지지 않는 참상이다.
단 한 사람에게 사위의 장창병, 포병, 궁병이-말 그대로-풍비박산(風飛헬散) 났다.
연적하가 대역죄인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지만, 글쎄다.
금군이 그를 척살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소처럼 숲길을 따라 걷던 금의위들이 잿더미 앞에서 멈춰 섰다.
목소진 백호가 연적하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여기에 움막이 있었습니다.”
냉기 어린 눈으로 잿더미를 보던 연적하가 물었다.
“한 소저의 시체는?”
“그게, 아직 수습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소양이 황실의 사람이라면 모를까?
불에 탄 평범한 역적의 시체를 금의위가 따로 수습해 줄 이유는 없었다.
“움막을 지키던 사람이 누구야?”
“여수담이라는 위사입니다.”
“나와.”
연적하가 부르자 금의위들 속에서 여수담이 쭈뼛쭈뼛 걸어 나왔다.
그의 쥐 같은 눈을 본 순간 연적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척 봐도 진실을 말할 눈이 아니었다.
문득 광명진천의 광명안(光明眼)이 떠올랐다.
‘왕들의 하늘’에 있던 신들은 독심술을 힘들이지 않고 사용했다.
내심 부러웠지만 반신(半神)의 경지인 자신에게는 요원한 일이었다.
그래도 최소한 진실과 거짓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
“거짓말 잘하게 생긴 얼굴이네.”
여수담이 허리를 부러져라 꺾으며 외쳤다.
“아닙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사실만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름이?”
“여수담입니다.”
“여 씨. 잘 들어. 내가 녹림에 있을 때 여 씨 같은 사람 많이 봤거든. 그 사람들은 꼭 분근착골의 맛을 본 뒤에야 바른 소리를 하더라고. 흔히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잖아? 그거 맞는 말이야. 나 정도의 무위에 이르면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어. 사실인지 거짓인지. 무슨 말인지 알아?”
“…….”
잔뜩 긴장한 여수담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분근착골은 정해진 무공이 아니다.
고수가 쓸수록 그 고통의 정도가 심하다.
연적하의 무위라면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일 게 분명했다.
“‘이건 아니다’ 싶은 느낌이 오면 바로 분근착골을 쓰겠다는 소리야. 그렇다고 너무 겁먹지 마. 정황상 거짓말이 뻔한 경우에만 쓸 생각이니까. 예컨대 그 귀한 촛불이 넘어졌다거나, 천라지망 속에서 아무도 불이 난 줄도 몰랐다거나 하는 뻔한 소리들 말야. 그런 말로 나에게 분근착골을 사용할 기회를 주지는 말아 줘. 그럼 이제 답해 봐. 한 소저를 죽인 게 여 씨야?”
여수담은 깜짝 놀란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제가 왜 한 소저를 죽인단 말입니까?”
“흥! 내가 정황상 뻔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바로 거짓말을 하네. 왜 죽이냐고? 금의위에서 한 소저를 죽일 이유가 없다는 거야? 이 사람 안 되겠네.”
말과 함께 연적하가 여수담의 혈도를 푹푹 찔렀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행동에 금의위들은 흠칫 몸을 떨었다.
픽 쓰러진 여수담이 몸을 배배 꼬았다.
으드드득. 으득. 빠드드득-.
뼈와 뼈가 맞부닥쳐 갈리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왔다.
반각(약 7분)쯤 지났을까?
여수담의 아랫도리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금의위들은 핏기 없는 얼굴로 여수담을 지켜보았다.
그들도 대충 돌아가는 상황은 알고 있었다.
사천성에서 북진이 추포한 죄인의 생사여탈권을 쥔 사람은 장사경 북진무사다.
정말 한소양이 살해당했다면 장사경의 지시에 따른 것이리라.
문제는 본의 아니게 거기에 연루된 사람들이다.
연적하가 연관된 자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했으니 여럿이 죽어 나갈 게 분명했다.
조명화 소기는 연신 눈알을 굴렸다.
보아하니 수하인 여수담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누구라도 저런 꼴이 되면 있는 말 없는 말 다 토해 낼 터였다.
그때 펄떡거리던 여수담의 입에서 처음으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악!”
한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여수담에게 집중됐다.
그 틈에 슬금슬금 금의위 무리에서 빠져나가던 조명화는 이내 뭔가와 부딪쳤다.
급히 뒤를 돌아보던 그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헉!”
언제 왔는지 연적하가 서 있었다.
“어딜 가시게?”
“아, 잠시 소피를 보려고…….”
“누구 맘대로?”
“…….”
“내가 말했지. 정황상 뻔한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해 준다고?”
조명화가 막 변명을 하려 할 때다.
그보다 연적하가 한발 더 빨랐다.
혈도가 찍힌 조명화의 몸이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이윽고 빠드득 소리와 함께 그의 사지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비틀렸다.
피똥을 쌌는지 고약한 냄새와 함께 여수담의 하체가 붉게 물들었다.
인상을 찌푸리던 연적하가 여수담의 허리를 힘껏 발로 걷어찼다.
그제야 분근착골이 풀렸는지 여수담은 숨을 헐떡거렸다.
하지만 연적하는 그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여 씨가 한 소저를 죽였냐고?”
그러자 여수담이 자포자기한 얼굴로 답했다.
“헉! 헉! 대협, 저는……. 조 소기의 지시에……. 따랐을 뿐입니다. 조 소기가 북진무사의 명이라며 한소양을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연적하가 조명화에게 손을 뻗었다.
멀리서 꿈틀거리고 있던 조명화의 몸이 여수담 옆으로 날아와 툭 떨어졌다.
어느새 분근착골이 풀렸는지 조명화는 널브러진 채로 끙끙 앓았다.
연적하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봐. 당신이 여 씨에게 한 소저를 죽이라고 지시했다는데 사실이야?”
꾸물꾸물 상체를 일으켜 세운 조명화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아! 그렇소.”
여수담이 당한 일을 본 조명화는 선선히 시인했다.
금의위 동료들 앞에서 추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다.
“북진무사가 시킨 거야?”
“맞소. 연 대협을 대역죄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소양이 사라져야 한다고 하셨소.”
“또 누가 관계됐어?”
“내가 북진무사를 찾아봤을 때 받은 명이니, 나밖에 없소.”
“북진무사, 당신, 그리고 여 씨가 전부라고?”
“그렇소.”
“죄 없는 사람을 죽였으니 목숨으로 갚아.”
이윽고 ‘챙!’ 소리와 함께 목소진 백호의 허리춤에서 수춘도가 날아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의 목을 벤 수춘도는 다시 목소진에게 돌아갔다.
넋 나간 얼굴로 서 있는 목소진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북진무사에게 전해. 내가 곧 찾아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