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11
811회. 네 처를 북진에 넘겨라
사천성 성도.
금의위 사천성 지부.
팔문각.
늦은 밤.
목소진 백호가 침통한 얼굴로 장사경 북진무사에게 청성산의 일을 고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였으니 목숨으로 갚으라며 조명화와 여수담의 목을 베었습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장사경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으음!”
목소진은 잠시 말을 끊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목내이(木乃伊)처럼 머리를 하얀 천으로 칭칭 감은 북진무사가 눈에 들어왔다.
천으로 얼굴이 가려진 탓에 놀란 건지, 화가 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북진무사님께 자신이 곧 찾아가겠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실로 광오한 자로군. 사위(四衛)의 군사와 금의위들을 죽였으니 금군이 움직일 터인데, 달아날 생각은 하지 않고 도리어 북진무사를 겁박해?”
“남진을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남진에서 연적하의 구명을 위해 뛰어다닌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할 테지. 연적하가 대역죄인이 되면 그와 일해 온 남진에서 곡소리가 날 테니까. 이참에 불순세력들을 솎아 내는 것도 괜찮겠군.”
“아 낸다고요?”
“북진과 달리 남진은 유명교와 거리를 두고 있지 않느냐? 그게 다 이전에 연적하와 함께 일했던 자들 때문이다. 그들을 쳐내면 북진과 남진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던 목소진이 슬쩍 물었다.
“그런데 연적하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자는 자기가 한 말을 지키기로 유명해서…….”
“물론 그에 대한 대비는 해야겠지. 금군이 개입할 때까지 한두 달 은신할 생각이다. 어차피 완쾌되기 전까지 외부 활동을 할 수 없으니 이참에 치료나 해야지.”
“아! 계실 곳은 정하셨습니까?”
“이제부터 준비할 생각이다.”
“소관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고맙다. 나는 내일 아침에 상소를 올리고 팔문각을 떠날 생각이다. 북진 사람들에게 금군이 움직일 때까지만 참고 견디라고 전해라.”
“예.”
목소진이 맥빠진 음성으로 답했다. 천하의 금의위 북진무사가 무림인이 두려워 몇 달간 숨어 지내야 하다니…….
***
청성산에서 벌어진 연적하와 사위(四衛)의 전투는 사천성을 넘어 천하 각지로 알려졌다.
물론 소문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은 사위에 속한 무관들과 연적하의 충돌 정도로 여겼다.
온갖 억측이 떠돌았다.
“연적하가 역도를 보호하다가 도지휘사와 충돌했다.”
“사위(四衛)의 군사들이 크게 다쳤다.”
“금군이 움직이면 제아무리 연적하의 뒷배가 든든해도 끝이다.”
“녹림이 연적하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한다.”
“금군의 첫 번째 목표는 남궁세가다.”
“남궁세가와 거리를 두기 위해 남직례성의 문파들이 남맹에서 이탈하고 있다.”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사람들은 녹림과 남맹이 연적하와 거리를 둘 거라고 믿었다.
연적하가 아무리 뛰어나도 대역죄인이 된 그를 품을 곳은 없기 때문이다.
강호만 시끄러운 게 아니다.
금의위도 연적하의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었다.
특히나-연적하와 오랜 세월 합을 맞춰 온-하남성의 금의위는 내부 갈등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하남성.
개봉. 금의위 개봉 지부.
두 손에 두루마리 꾸러미를 안은 금의위 소기가 마당을 가로질렀다.
두루마리는 남진에서 작성한 ‘관인들의 동향 보고서’였다.
막 전각 모퉁이를 돌던 그는 마주 오던 사람과 가볍게 부딪쳤다.
그 충격으로 두루마리 하나가 툭 떨어졌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금의위 소기는 일단 사과부터 하고 두루마리를 줍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보다 상대가 더 빨랐다.
북진의 총기 천산갑이 제 발등에 떨어진 두루마리를 집어 들었다.
보통 때였으면 그냥 건네주고 가던 길을 갔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천산갑은 그러지 않았다.
“진우생?”
“예.”
진우생은 급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공손히 답했다.
소기에게 총기는 하늘과 같은지라 감히 자신의 사정을 앞세울 수 없었다.
“무슨 일이기에 그토록 서두르는 것이냐?”
“포 총기님께서 시킨 일을 하고 있던 중입니다.”
진우생은 에둘러 대답했다.
금의위의 일은 비밀을 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북진과 남진도 같은 금의위지만 상대에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남진에 속한 진우생은 북진의 총기에게 구체적인 일을 말할 수가 없었다.
북진의 소기가 남진의 총기를 만났어도 같았을 것이다.
그런 북진과 남진의 관례를 뻔히 알면서도 천산갑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
진우생은 침묵했다.
북진과 남진이 지금까지 지켜 온 규칙을 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천산갑은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매만졌다.
방금 주운 두루마리와 관계된 일임이 분명했다.
소기가 들고 다닐 두루마리에 대단한 비밀이 적혀 있을 리 없다.
“흥! 소기 따위가 총기의 말을 씹어?”
그는 보란 듯 두루마리를 펼쳤다.
역시나 최근 관인들 사이에 떠도는 시답지 않은 소문이 적혀 있었다.
천산갑은 두루마리를 둘둘 말아 쥐고 비릿한 시선으로 진우생을 보았다.
“연적하가 네 매형이라지?”
“……예.”
“그가 사천성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너는 아느냐?”
“자세한 것은 모르나 얼핏 듣기는 했습니다.”
“알려 주랴?”
“알려 주신다면 세이경청 하겠습니다.”
최근 연적하의 정보에 관해서는 남진보다 북진이 앞서 있었다.
모두가 유명교의 위상이 변해서 생긴 일이다.
남진은 유명교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연적하와 접촉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북진은 한소양을 두고 연적하와 싸우는 상황이라 정보가 흘러넘쳤다.
천산갑은 그간의 경과를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역적 하나를 보호하기 위해 사천성의 사위(四衛)와 교전을 벌인 셈이지. 그 전투로 사위에서 삼천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사천성의 북진무사가 황상께 상소를 올렸으니 곧 대대적인 토벌이 이루어질 게다. 네놈의 좋은 시절도 다 지났다는 뜻이지.”
“…….”
진우생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북진에서 연적하에게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우리도 금의위 내부에 연적하와 동조하는 자들이 많음을 알고 있다. 네놈도 그중에 하나일 테지?”
“동조라니요.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우리 남진은 황상을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천부당만부당? 지랄! 연적하가 참수당하면 그다음은 네놈 차례다. 연적하를 등에 업고 꿀 빨던 네놈 차례란 말이다!”
말과 함께 천산갑은 두루마리로 진우생의 머리를 후려쳤다.
퍽! 퍽! 퍽!
단정했던 진우생의 머리가 흐트러졌다.
통증과 수치심을 참느라 진우생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왜? 인정 못 하겠느냐?”
“…….”
진우생은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연적하를 매형으로 둔 덕분에 음으로 양으로 덕을 본 건 사실인 까닭이다.
남진의 금의위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에게 잘 대해 주었다.
그것이 매형 때문임을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다.
“살길을 알려 주랴?”
“…….”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인데. 조만간 금의위에 피바람이 불 것이다. 외부의 적을 치기 전에 내부의 적부터 정리하는 게 당연하니까.”
“…….”
“살고 싶으면 네 처를 북진에 넘겨라. 연적하가 대역죄인이 되면, 네 집안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너와 네 집안을 살리고 싶으면, 네 처를 넘겨야 할 것이다. 그것 말고는 네놈과 네놈 집안이 살아날 길은 없다.”
“총기 대인. 매형은 역적이 아닙니다. 그런 쪽으로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관심이 있든 없든 사위의 군사를 사상케 한 것으로 이미 역적이다. 너도 금의위에 몇 년 있었으니 이제 그 정도는 알 텐데?”
“…….”
진우생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천산갑을 보았다.
맞다.
그것만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사위의 군사와 싸워서는 안 됐다.
천산갑은 진우생에게 성큼 다가가 손에 쥐고 있던 두루마리를 건네며 속삭였다.
“처를 넘기면 공신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 북진에서 너를 공신으로 만들어 주마. 공신이 되면 삼 처 사 첩도 거느릴 수 있을 것이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진우생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가 볼까 합니다. 포화명 총기님께서 기다리고 계셔서요.”
“잘 생각해라. 시간은 네 편이 아니니 서둘러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
진우생은 그에게 묵례를 올린 뒤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갔다.
종종걸음으로 걷던 진우생은 ‘대공지정(大公至正, 아주 공변되고 지극히 올바름)’이라는 현판이 걸린 전각 앞에서 멈춰 섰다.
줄여서 대공각(大公閣)이라 불리는 이곳은 남진의 집무실이다.
진우생은 ‘대공지정’의 네 글자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요즘 같아서는 금의위를 때려치우고 심산유곡에 들어가 살고 싶다.
‘아니야. 이런 시기일수록 자리를 지켜야지.’
처와 함께 야반도주라도 하려면 금의위에서 내부 정보를 먼저 얻어야 한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잡념을 떨쳐 낸 그는 섬돌 위에 신발을 벗어 두고 전각으로 들어갔다.
***
북직례성.
황성.
보화전(保和殿)
미시 정(오후 2시).
보화전에서 상소문을 잃고 있는 황제에게 금위의 지휘사 모양이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사천성에 파견한 북진무사 장사경의 상소문을 가지고 왔나이다.”
“장사경이 아직도 북진무사의 일을 하고 있었소?”
황제가 고개를 갸웃했다.
크게 다쳤다기에 쉴 줄 알았는데 또 상소문을 올렸다니?
“이번 상소문을 끝으로 치료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알려 왔습니다.”
“충신이로군.”
애매한 얼굴로 중얼거리던 황제가 모양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제야 무릎걸음으로 나아간 모양은 두루마리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모양을 힐끔 보던 황제가 지나가듯 말했다.
“기분 좋은 일이 있나 보구려.”
“충신의 글은 심신을 맑게 해 주는 법이지요.”
황제가 두루마리를 들어 보였다.
표정이 ‘이것 때문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모양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에 무릎걸음으로 물러났다.
황제는 두루마리를 펼쳐서 장문의 상소문을 읽어 나갔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황제가 물었다.
“이것이 사실인가?”
“황공하오나 모두가 사실이옵니다.”
“삼천이백이나 되는 군사가 죽거나 다쳤다니…… 실로 큰 일이로군.”
“그러하옵니다. 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일이 일어났사옵니다.”
말과는 달리 황제와 모양의 표정은 담담했다.
아니 담담하려 애쓰는 눈치였다.
“장사경은 위소(衛所)의 군사로 어려우니 금군을 보내라 하는데.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아뢰기 송구하오나 남진은 금군으로도 힘들다고 했사옵니다.”
“남진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그런 것이겠지. 상황이 이러할진대 할 수 있겠는가?”
“신이 목숨을 걸고 성사시키겠사옵니다.”
모양을 바라보던 황제가 서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에 올렸다.
무릎걸음으로 다가간 모양이 두 손으로 봉투를 들어 품 안에 넣고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