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13
813회. 세상의 이치를 몰라서 그러는 게지
마을로 내려갔던 심통은 한 시진(2시간)이 지나기 전에 돌아왔다.
“공자님, 산문 바로 앞 서촉관(西蜀館)이라는 객점의 별관을 얻었습니다.”
“산문 앞인데 별관에 손님이 없었어?”
“이게 또 무슨 인연인지 별관을 쓰던 사람이 도지휘사 구시우랍니다. 얼마 전에 군사를 십 리 뒤로 빼면서 자연히 비게 되었다네요.”
“그래? 그 사람하고 인연이 깊었네? 그런 줄 알았으면 좀 잘해 줄 걸.”
“그 이상 어떻게 더 잘해 주려고요? 쳐 죽이지 않은 것만도 대단하신 겁니다.”
심통이 돌아오자 산후조리를 돕던 모녀는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월아와 금아까지 나서서 짐 싸는 걸 도왔다.
딱히 개인 짐이 없던 연적하와 심통, 당운망은 마루에 나와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당운망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이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날씨가 우중충한 게 눈이라도 오려나 보네.”
그러자 심통이 가볍게 쏘아붙였다.
“눈이 뭐 대수라고 한숨을 그렇게 쉬느냐?”
“하필 청승맞게 청성파에서 쫓겨나는 날 눈이 올 것 같아 그런다.”
“이 늙은이야.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 가모님의 마음이 대해(大海) 같으셔서 나가 주겠다는 거지, 천하에 우리 공자님 내외를 쫓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딱히 틀린 말도 아닌지라 당운망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이 심란한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비위를 맞춰 주던 청성파의 태도가 변한 것은 금군 때문이다.
청성파 도사들은 당장 내일이라도 금군이 쳐들어올 것처럼 부산을 떨었다.
‘금군이 문젠데…….’
당운망은 슬쩍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정말 금군이 움직이면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는데 의외로 그는 태연했다.
“장주님. 청성파가 안면을 몰수하고 저렇게 나오는 것은 금군 때문이 아닙니까. 물론 금군에 대한 대책은 따로 있으신 거겠지요?”
“왜? 걱정돼?”
연적하가 당운망을 빤히 보았다.
당운망이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어차피 저야 살 만큼 살았는데 걱정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꽃도 피워 보지 못한 월아와 금아를 보니 안타까워서 해 본 소립니다.”
연적하가 피식 웃었다.
“에이, 걱정된다는 소리네. 우리 사이에 왜 말을 빙빙 돌리고 그래?”
연적하가 물고 늘어지자 당운망은 더 부인하지 못했다.
“예에, 맞습니다. 걱정됩니다. 황제가 눈이 확 돌아가서 금군을 보내면 어쩌실 겁니까?”
아직 연적하의 실체를 모르는 당운망은 그게 걱정이었다.
물론 연적하가 사위(四衛)의 군사를 물리쳤지만 금군은 위소(衛所)와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위소가 지방의 무관이라면 금군은 칠파일문과도 같았다.
그러니 청성파에서 쫓겨나듯 떠나는 그의 마음은 꽤나 무거웠다.
옆에서 듣고 있던 심통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당가야. 그렇게 겁이 나면 야반도주라도 하지 그러느냐? 네가 도망가도 공자님은 다 이해해 주실 게다.”
“심가야. 지금 농담할 분위기가 아니니 까불지 마라. 아침저녁으로 피똥을 싸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만.”
“흐흐. 네놈이 예전 생각해서 그러는 모양인데 아서라. 그러다가 진짜 골로 가는 수가 있다.”
심통과 당운망의 기 싸움이 시작되자 연적하가 나섰다.
“두 늙은이 모두 적당히 해. 묫자리 보러 다녀야 할 나이에 뭐하는 짓이야? 자기들이 아직도 혈기 왕성한 십 대인 줄 아나 봐?”
나이까지 들먹이며 비난하자 심통과 당운망은 찍소리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미리 말해 두는데 금군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누구라도 석경장을 건드리면 내가 용서 안 해.”
연적하는 금군이 군소 방파라도 되는 것처럼 쉽게 말했다.
당운망은 노파심에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실실 웃고 있는 심통을 보고 참았다.
심통도 여유를 부리는데 자신이 너무 안달복달하는 것 같아서다.
심통과 당운망이 서로를 소 닭 보듯 하고 있을 때 연적하가 탄성을 터뜨렸다.
“눈이다!”
잿빛 하늘이 기어코 눈을 쏟아 냈다.
연적하, 심통, 당운망은 감회 어린 눈으로 마당에 흩날리는 눈을 보았다.
마당에 눈이 쌓이는 걸 응시하던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구주에서는 정신없이 뛰어다녔는데. 강호에서는 한가하니 좋네.”
자경단과 함께 야수와 마물을 퇴치하던 게 어제의 일처럼 생생했다.
구주에 비하면 강호는 천국이라 할 만큼 평화로웠다.
심통이 말을 받았다.
“그러게요. 공자님은 자경단을 하셨으니 바쁘셨겠습니다. 저는 천뢰종에서 잘 지냈습니다만.”
연적하가 적막 속에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말했다.
“참 좋은 세상이야. 그렇지?”
구주 같았으면 지금쯤 사방에서 위기를 알리는 타종 소리가 들려왔을 게다.
“강호를 두고 하는 말씀이시죠?”
“당연하지. 구주 같았으면 지금쯤 난리가 났을 거야. 야수들 막는다고.”
고개를 끄덕이던 심통이 문득 생각난 듯 운을 뗐다.
“그런데 저는 지금도 이해가 안 됩니다.”
“뭐가?”
“공자님도 강호가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당연하지. 이곳에서는 사람이 가장 위에 있잖아. 물론 먹고사는 건 양쪽 세상이 다 쉽지 않지만.”
“범천 욕계가 강호보다 한참 위에 있는 세계 아닙니까?”
“위에 있지. 강호를 하계(下界)라고 불렀으니까.”
“예, 무공의 경지만 봐도 강호보다 구주가 훨씬 윗길인 것 같더라고요. 당장 공자님의 영기만 해도 강호의 내력보다 월등하게 뛰어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뭐가 이해가 안 된다는 거야?”
“하계인 강호가 왜 상계(上界)인 구주보다 좋으냐는 거죠.”
“쯧쯧!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
심통은 멀뚱멀뚱 연적하를 보았다.
머리를 쓰는 일이라면 자신이 연적하보다 나은데 뭘 모르고 넘어간 것일까?
“아래를 내려다보면 강호에서의 삶이 훨씬 낫지. 적어도 야수나 마물에게 잡아 먹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위를 보라고. 위를.”
“위요?”
“강호에서는 아무리 올라가도 한계가 있잖아. 심 노인도 조금 전에 말했잖아. 무공의 경지만 봐도 구주가 훨씬 윗길이라고. 구주에서는 종문의 제자가 되면 신좌(神坐)까지도 넘볼 수 있어. 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하지만 강호에서 칠파일문의 제자가 된다고 신이 되는 건 아니잖아.”
“그렇기는 하네요.”
심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인간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가?’로 보면 확실히 구주가 강호보다 나았다.
밑바닥 인생들이야 강호보다 더 참혹했지만 말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당운망이 슬쩍 끼어들었다.
“장주님. 그 구주에서는 정말 사람도 신이 될 수 있습니까?”
“어.”
연적하는 부인하지 않았다.
물론 진신(眞神)에는 못 미치겠지만 강호의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신이라 할 만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신이 맞는 거죠? 절이나 도관에 가면 있는 그 신.”
“그렇다니까.”
“혹시 만나 본 적도 있으십니까?”
그러자 심통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당가야. 우리 공자님이 만나기만 한 줄 아느냐? 공자님 손에 죽은 신도 많으니라.”
“허! 공자님이 신을 죽였다고?”
“고리타분한 청성파 도사들이 공자님 앞에서 설설 기는 것도 그걸 보았기 때문이다.”
“아!”
그제야 당운망은 도사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가모가 아기를 낳던 날 밤 별궁 위에서 신비한 싸움이 벌어졌다던가.
당운망이 연적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장주님, 신을 죽였다면 혹시 장주님도 신의 경지에 도달한 겁니까?”
“그건 아니야. 구주의 신들이 나에게 반신(半神)의 경지라고 하더라고.”
“아아! 반신…….”
당운망이 황망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강호에서 입신(入神)의 경지라고 하는 것은 비유에 불과하다.
누군가 입신의 경지에 들었다 해도 그를 신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연적하는 분명히-절이나 도관에 있는-신이라고 했다.
연적하의 무위가 천외천의 경지라는 건 알고 있지만, 신은 또 다르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글쎄다’라 말하고 있었다.
사위의 군사를 물리칠 정도로 연적하의 무위가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
포탄을 허공에 잡아 두는 것이나 엄청난 숫자의 검형은 놀라웠지만, 그건 신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일이었다.
‘진짜 신이라면 금군과 싸워서 이길 테지만…….’
당운망은 연적하가 진짜 반신이기를 바랐다.
석경장의 사람들이 금군 앞에서도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했다.
잠시 후 월아와 금아가 방에서 짐을 꺼내 마루로 내왔다.
침구류와 아기와 관계된 물건들로 커다란 봇짐이 여섯 개나 됐다.
마지막으로 산후조리를 돕는 모녀가 남궁연과 함께 방에서 나왔다.
남궁연은 대나무로 만든 커다란 바구니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아기가 든 바구니다. 후다닥 달려간 연적하는 대나무 바구니를 포대기로 단단하게 감쌌다.
그리고 벌써부터 짐을 들고 서 있는 월아와 금아에게 말했다.
“짐은 내려놔.”
“사조님, 저희가 들고 갈 수 있어요.”
“맡겨 주세요.”
월아와 금아가 씩씩하게 말했지만 연적하는 허락하지 않았다.
“짐은 너희가 들고 가지 않아도 돼.”
단호한 연적하의 말에 월아와 금아는 머뭇머뭇 짐을 내려놓았다.
짐이 쌓인 곳으로 다가간 연적하는 즉시 ‘마하담’의 주법을 사용했다.
그가 봇짐을 들어 허공에 툭툭 던질 때마다 봇짐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무공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앞에서 석경장 사람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연적하는 마루에 쌓였던 짐들을 모두 공간 창고에 집어넣고 돌아섰다.
“가자고.”
이윽고 연적하와 남궁연이 나란히 마루를 내려갔다.
후우우웅-.
연적하가 만들어 낸 영기의 막에 휘몰아치던 눈이 삼 장(약 9미터) 밖으로 밀려 나갔다.
차가운 바람도 영기의 막을 뚫지 못했다.
객잔 위치를 아는 심통이 급히 선두로 이동하자 월아와 금아가 스승을 따라갔다.
홀로 대열의 후미에 남아 있던 당운망은 기이한 눈으로 투명한 막을 살폈다.
무려 삼 장이나 되는 거대한 구(球)에 둘러싸인 느낌이다.
호신강기도 아니고, 어떤 무공의 원리이기에 눈과 바람을 막아 주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눈앞에서 사라진 짐들까지.
이 년 만에 다시 만난 연적하가 보여 주는 것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가슴 밑바닥에서 살그머니 희망이 차올랐다.
지금의 연적하라면 금군의 손에서 자신들을 지켜 줄 수 있지 않을까?
연적하 내외가 떠난 직후 별궁에 청성파 장문인과 장로들이 나타났다.
황망한 눈으로 ‘투명한 구’를 보던 원양 진인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사형. 어째 우리가 큰 실수를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자 덕양존자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역사에는 거짓이 없네. 무림사에 홀로 금군을 상대로 싸워서 이긴 사람이 있던가. 연 대협이 오룡궁 출신이니 우리가 모르는 술법을 썼겠지.”
“한 달이 넘도록 청성파에서 지냈으니 보통 인연은 아닌데, 이렇게 되어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남궁 부인이 ‘청성파가 협의를 저버렸다’고 할 때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문도가 없는 석경장과 우리 청성파를 같은 잣대로 보면 안 되지. 책임질 사람이 없으면 자신의 신념대로 사는 게 어렵지 않네. 하지만 청성파 도사들의 안위를 생각하면, 누 구라도 장문인의 선택이 백번 옳다고 말할 걸세. 아직 젊은 사람들이라 세상의 이치를 몰라서 그러는 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