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14
814회. 모두가 옳다고 생각한 일이네
원양 진인은 사형의 말에 공감했다.
확실히 식솔이 몇 안 되는 석경장과 수백의 제자를 거느린 청성파가 처한 상황은 달랐다.
연적하와 남궁연은 그 뛰어난 무공으로 잠적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청성파는 그럴 수 없다.
황실에 역도로 찍히는 순간 청성파 제자들은 몰살을 당할 터였다.
그러니 자신의 선택은 옳다.
석경장을 내쳐서 손해 볼 일은 없지만, 황실에 찍히면 피의 보복이 뒤따른다.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투명한 구(球)를 보며 원양 진인이 중얼거렸다.
“다시 마주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머리로는 자신들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석경장 사람들을 보면 ‘협의를 저버렸다’는 남궁연의 말이 생각날 것 같았다.
어딘지 허허로운 원양 진인의 음성에 덕양존자는 슬쩍 고개 돌려 사제를 보았다.
씁쓸한 표정을 보니 마음의 갈등이 심한 모양이다.
“자책하지 마시게. 오늘의 결정은 장문 사제 혼자서 내린 것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 모두가 옳다고 생각한 일이네. 한두 사람의 판단이라면 혹 실수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청성파를 위해 수십 년간 헌신한 장로들의 중지(衆志)가 그렇다면, 그것이 최선이며, 옳은 것이네.”
사형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금양진인이 거들고 나섰다.
“장문 사형, 덕양 사형의 말씀이 맞습니다. 연 대협 내외가 젊다 보니 젊은 혈기로 좌충우돌하는 것입니다. 우리 청성파가 저들의 장단에 맞춰 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멸문의 화를 당하고 말 겁니다. 연 대협의 무위가 천외천의 경지인 것은 사실이나, 그 한 사람에게 청성파의 존망을 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형제들의 조언에 원양 진인은 홀가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장로님들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와 같은 일이 또 생긴다 해도 나는 청성파를 우선시할 것입니다. 그것이 나와 여러 원로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청성파를 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청성파는 예로부터 황실과 나라에 충성했습니다. 연 대협이 그릇된 길을 가고 있는 겁니다. 그 길을 우리가 함께 갈 수는 없지요.”
“맞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잘 갈라섰습니다. 남맹에서 이탈하는 문파가 속출하고 있다지 않습니까? 남맹도 그런데 우리는 말할 것도 없지요.”
장로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그간 쌓인 게 많았던지 뒤로 갈수록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잠시 후 분위기가 가라앉자 원양 진인은 뒤따르던 일대제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운.”
“예?”
“너는 지금 금의위를 찾아가 연대협이 청성파에서 떠났음을 알리거라. 그리고 적운.”
“예.”
“너는 은밀히 석경장 사람들의 뒤를 밟아라. 저들이 어디로 가는지 정도는 알아내야 할 것이다.”
“어디까지 따라가야 합니까?”
“도지휘사의 군대가 진치고 있는 십 리까지만 확인해라. 그 이후는 금의위나 도지휘사가 알아서 할 테지.”
“예.”
이윽고 자운산인과 적운산인의 신형이 흩날리는 눈발 속으로 사라졌다.
***
청성산.
청성파 산문.
여덟 명의 사람들이 산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연적하 일행들이다. 산문에서 빠져나가자마자 선두에 있던 심통이 좌측을 가리켰다.
“공자님! 저기 보이는 전각이 서촉관(西蜀館)입니다.”
“엄청 가깝네?”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객잔을 보았다.
객잔은 청성파 산문에서 백 보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걸 청성파에서 나갔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연적하는 거리가 가깝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영기로 바람을 막는다 해도 한겨울에 장거리 여행은 무리였다.
창밖으로 거리를 내다보고 있던 주인이 심통을 알아보고 허겁지겁 뛰어나왔다.
“어서 오십쇼! 소인이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주인은 연적하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지 제대로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연적하 일행은 주인의 뒤를 따라 별채로 들어갔다.
별채는 연적하 내외가 사용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객잔에 방을 얻었다.
짐 정리가 대충 끝나자 남궁연은-산후조리를 돕는-모녀에게 아기를 맡기고 밖으로 나갔다.
때마침 할 일 없이 빈둥거리던 연적하가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몸은 깨끗하기만 했다.
호신강기가 발동해 눈을 밀어낸 탓이다.
남궁연의 손에 들린 한 묶음의 산가지들을 본 연적하가 물었다.
“누님, 뭐하게요?”
“이곳은 별궁과 달리 지켜 줄 사람이 없잖아. 천지무종진(天地無終陣)이라도 펼쳐 놓으려고.”
“천지무종진은 뭐예요?”
“문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길을 잃고 헤매게 만드는 진법이야.”
“문이 생문(生門)이라는 소리예요?”
그동안 남궁연을 따라다니면서 주워들은 게 있는지 연적하가 알은체를 했다.
“그래. 맞아. 천지종의 진법답게 한 번 걸리면 누구라도 원기(元氣)가 고갈되어 쓰러지고 말아.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 둬. 꼭 문으로만 다니라고.”
“그럴게요.”
남궁연은 별채를 돌며 산가지들을 땅에 박아 넣었다.
그로부터 일각(15분) 후 마지막 산가지를 땅에 꽂은 남궁연이 손을 탁탁 털었다.
“끝났어요?”
“응.”
연적하가 애매한 눈으로 별채를 보았다.
천지종의 진법을 설치했는데 외관상 아무런 변화도 없다니 신기했다.
“종문의 진법치고는 상당히 수수하네요?”
“그게 천지무종진의 무서운 점이야. 평범함 속에 완전히 녹아들거든. 하지만 담을 넘는 순간 누구라도 광활한 천지에서 원기가 고갈될 때까지 헤매게 돼.”
“죽을 수도 있나요?”
“오래 갇혀 있으면 죽어.”
“오래라는 건 며칠을 말하는 거예요? 사흘? 열흘?”
“반나절.”
“헉! 고작 반나절 만에 죽는다고요?”
“반나절이라 해도 인간의 정신이 견디질 못해. 정신이 무너지면 육체도 무너지지.”
“그럼 자주 들여다봐야겠네요? 사람이 천지무종진에 빠진 걸 어떻게 알 수 있어요?”
“담장 근처에 누군가 쓰러져 있거나, 넋 나간 얼굴로 같은 자리를 배회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진법에 빠진 사람이야.”
“그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기절한 사람은 그냥 담장에서 멀리 끌어내고, 배회하는 사람은 기절시킨 후에 담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가면 돼.”
“담장에서 떼어 놓으라는 소리네요?”
“그렇지. 담장을 따라 진법이 펼쳐져 있으니까. 담장에서 오 장(약 15 미터)정도 떨어지면 정신의 금제가 풀려.”
“무섭다. 아무리 급해도 담을 넘으면 안 되겠다.”
“훗! 꼭 그렇지만은 않아. 모든 진법은 방향성이 중요한데, 이건 외부에서 넘어오는 침입자를 막기 위한 거야. 안에서는 담을 넘어도 괜찮아.”
남궁연은 연적하가 말릴 틈도 없이 한 마리 새처럼 훌쩍 날아 담장을 넘어갔다.
그리고 월동문을 통해 다시 별채로 들어왔다.
“봤지? 안에서 나가는 건 진법의 영향을 받지 않아. 하지만 들어올 때는 얌전히 문을 이용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 주게 돼.”
“깜짝 놀랐잖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말해 둬. 특히 한밤중에 담 넘어 들어오다 걸리면, 정말 위험하니까.”
“석경장 사람들 중에 담을 넘어 다닐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일은 모르는 거야. 수상쩍은 사람이 담 넘는 걸 보고 무심결에 뒤따를 수도 있잖아.”
“아! 그럴 수도 있겠다.”
확실히 그런 경우라면 석경장 사람들도 진법에 걸려들 것 같았다.
“지금 사람들을 불러서 가르쳐 줄게요. 객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빼 놔도 되겠죠?”
“객잔의 일꾼들이 담을 넘어 다니지는 않으니까.”
“문으로만 다니면 된다? 깔끔하네요.”
연적하는 뒤늦게 천지무종진에 감탄했다.
이렇게 안전하면서도 치명적인 진법이 세상에 또 있을까?
자신도 구주에서 소요종의 무공을 배웠지만 생각할수록 대단한 것 같다.
***
서촉관 식당.
연적하는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바로 석경장 사람들을 식당에 불러 모았다.
다행히 아직 미시 말(오후 3시)이라 식당에는 다른 손님이 없었다.
“오래 살고 싶으면 잘 들어. 누님이 별채에 천지무종진이라는 진법을 펼쳐 놨어. 그 진법의 생문은 딱 하나밖에 없어. 그게 뭐냐? 사람이 출입하라고 만들어 놓은 월동문이야. 그러니까 다들 월동문으로만 다녀. 괜히 급하다고 담을 넘다가는 진법에 걸리게 되니까.”
연적하는 사람들이 헛갈릴까 봐 ‘방향성’에 대해서 말해 주지 않았다.
안에서든 밖에서든 담을 넘지 않으면 되니까, 그것만 알려 주기로 했다.
“담만 넘지 않으면 돼.”
심통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공자님, 담을 넘으면 어떻게 됩니까?”
“천지무종진이라는 진법에 걸리게 되는데, 반나절이면 원기가 고갈돼서 죽어.”
반나절이라는 말에 심통의 유들유들한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고작 반나절 만에 원기를 말려 죽이는 진법이라니!
생각할수록 오싹 소름이 돋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자 연적하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월동문으로만 다니면 돼. 그럼 아무 문제 없어. 절대로 담을 넘지 마.”
뭔가를 생각하던 당운망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장주님. 불청객이 담을 넘다 진법에 걸리면 그냥 죽는 겁니까? 사로잡아서 그가 누구며? 왜 왔는지? 정도는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말 잘했어. 진법은 담장을 따라 설치되어 있어. 담장 옆에 누군가 쓰러져 있다든지, 혹은 넋 나간 얼굴로 담장을 배회하는 사람이 있으면, 진법에 걸린 거야.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담에서 오 장 정도 떼어 놓으면 돼.”
“담장에 가까이 가도 괜찮은 겁니까?”
“어. 그런 건 안심해도 돼. 담을 뛰어넘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 없어.”
그제야 사람들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별채를 두른 담장 근처에만 가도 진법에 걸리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
하남성.
개봉.
금의위 개봉 지부 대공각.
신시 초(오후 3시).
진우생 소기는 포화명 총기의 급한 부름에 대공각으로 달려갔다.
“총기 대인. 부르셨습니까?”
포화명 총기가 읽고 있던 두루마리를 내려놓고 시선을 돌렸다.
“진우생. 오늘 특별히 지시받은 일이 있느냐?”
“주문우 백호의 비위에 대한 투서가 들어와 진위 여부를 조사하던 중입니다.”
“북진의 주문우?”
“예.”
“쯧! 주 백호에 대한 투서는 당분간 묻어 두거라. 그보다 네가 급히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명만 내려 주십시오.”
“개봉 포방(捕房, 관아)에 가서 죄인 하나를 데리고 오거라.”
“죄인을요?”
“초포산이라고 십여 년 전까지 북 진 유득공 천호의 뒤 구린 일을 해 주던 자가 있다. 그가 술에 취해 기루에서 난동을 부리다 추포되었다. 그에게 맞은 상대가 하필 개봉성 안찰사 부사의 아들이라, 바로 잡혀 들어갔지. 북진에서 그를 빼돌리기 전에 그를 데리고 와야 한다.”
“유 천호님과 관계된 죄인인데 소기에 불과한 제가 할 수 있겠습니까?”
“총기인 내가 움직이면 북진의 시선을 끌 수도 있다. 그러면 그자와 대면할 기회조차 없게 된다. 너와 같은 소기라면 북진에서 신경 쓰지 않을 게다.”
나름 일리 있는 말인지라 진우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소관이 쥐도 새도 모르게 그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래, 가거든 이종인이라는 포두를 찾아라. 그가 너에게 초포산을 내어 줄 것이다.”
“예!”
대답하는 진우생의 표정은 밝았다.
근 보름 가까이 대공각에서 두루마리 분류 작업만 하다가 모처럼 외부에 나가게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