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16
816회. 천외검선
하남성.
개봉.
금의위 개봉 지부 대공각.
술시 정(오후 8시).
한 남자가 비칠거리는 걸음으로 대공각에 들어섰다.
북진 주문우 백호에게 온몸에 골병이 들 정도로 맞은 남진의 진우생 소기다.
진우생은 자신이 돌아오기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포화명 총기를 찾아갔다.
‘덜그럭’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던 포화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멀쩡한 얼굴로 나갔던 진우생이 잔뜩 깨진 채로 돌아와서다.
“어찌 된 일이냐?”
“개봉 포방에 갔다가 주문우 백호를 만났습니다. 주 백호가 왜 왔느냐고 묻기에 지나던 길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만.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항명이라 하시며 소관을 때렸습니다.”
“초포산은?”
“소관이 유시 정(오후 6시)에 개봉 포방을 찾아가 이종인 포두를 만났으나, 그가 말하기를 지금은 보는 눈이 많으니 반 시진(1시간) 후에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반 시진을 기다렸다가 다시 찾아갔으나 소관보다 한발 먼저 주문우 백호와 세 명의 소기가…….”
“초포산을 북진에게 빼앗겼단 말이냐?”
“……예.”
진우생은 고개를 떨궜다.
자신이 그냥 밀어붙였다면 초포산은 물론 자신도 주문우에게 맞지 않았을 터였다.
눈 뜨고 초포산을 북진에 빼앗긴 것으로도 모자라 맞기까지 했으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 분명 너를 보내는 것은 북진이 모르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거늘. 북진에 초포산을 빼앗기고 매까지 맞다니. 우리 남진의 망신은 네가 다 시키고 다니는구나.”
“송구합니다.”
“초포산을 은밀히 빼돌리기 위해 이종인에게 은자를 이백 냥이나 먹였다. 나와 다섯 명의 소기가 공들인 일을 네가 망쳐 버렸구나. 너는 오늘 이종인에게 초포산을 넘겨받았어야 했다.”
“송구합니다.”
진우생은 ‘송구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왜 이종인 포두의 말에 따랐는지 자신이 한심해서 죽고 싶을 지경이다.
“포두와 포졸이 어떤 놈들인지 몰랐더냐? 신의도, 충성심도 없이, 당장 눈앞의 이익에 제 친구도 팔아먹는 놈들이다. 그런데 그 천한 놈의 말을 믿고 반 시진이나 지체해? 네가 그러고도 금의위 소기라 할 수 있느냐!”
“용서해 주십시오!”
고개를 떨구고 있던 진우생은 급기야 철퍼덕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북진의 백호에게 맞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종인 포두를 믿고 있다가 일을 망친 게 더 큰 문제였다.
진우생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던 포화명이 차갑게 말했다.
“내일부터 대공각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부를 때까지 집에서 근신하고 있어라.”
“……예.”
진우생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말이 근신이지 금의위에서 축출될 게 분명했다.
잠시 후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진우생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회의실을 떠났다.
***
다음 날.
쉬쉬했지만 진우생이 북진에 당한 일은 남진의 소기들에게 알려졌다.
화가 난 남진의 소기들이 포화명 총기에게 우르르 몰려갔다.
“아무리 백호라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당한 사람은 진우생인데 왜 그가 벌을 받아야 합니까?”
“남진의 일을 이제는 북진에 일일이 보고해야 합니까? 총기님!”
격정을 이기지 못한 양태진 소기가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그는 과거 진우생과 수차례 일한 적이 있어 누구보다 화가 난 상태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포화명 총기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한순간 소란이 잦아들었다.
포화명이 소기들을 찬찬히 둘러보며 말했다.
“이번 일은 남진과 북진의 문제가 아니다. 진우생에 대한 처벌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뜬금없는 포화명의 말에 양태진이 황망한 얼굴로 물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남진과 북진의 문제가 아니라니요? 어젯밤 개봉 포방에서 북진의 백호에게 진우생이 개처럼 맞고 왔는데…….”
“너희도 귀가 있다면 청성산에서 벌어진 사태를 알고 있을 테지?”
청성산이라는 말에 소기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건 정말 남진과 북진의 권력 투쟁을 아득히 초월한 문제였다.
“북진무사 장부아(개봉의 북진무사)가 동수유 남진무사께 은밀히 전한 소식이다. 지휘사이신 모양 대인에게 황상의 밀지(密旨)가 내려졌다고 한다. 그 내용은 ‘대역죄인 연적하를 생사불문하고 추포하라’는 것으로 짐작된다. 지휘사의 치밀한 성품상 직접 구시우 도지휘사를 만나 보고 금군의 동원을 진언(進言)하실 모양이다.”
“…….”
소기들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연적하가 대역죄인이 되면 진우생은 물론 개봉의 금의위도 탈탈 털릴 게 분명했다.
“이번 일은 금의위 개봉 지부의 존망이 걸린 일이다. 북진무사가 남진 무사께 협조를 요청한 것도 그래서지. 남진과 북진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개봉 지부에서 여러 사람의 목이 잘릴 것이다.”
멍하니 듣고 있던 양태진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진우생을 개봉 포방으로 보낸 게 남진과 북진이 계획한 일입니까?”
“맞다. 황실에서 우리의 충성심을 의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를 쳐 내기로 했다. 그렇게 함으로 개봉 지부의 충의(忠義)를 드러내 보일 것이다. 이제 ‘진우생의 처벌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한 말의 의미를 알겠느냐?”
“예.”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도 모르고 소란을 피워 송구합니다.”
양태진과 소기들은 자신들이 살아야 하기에 더 이상 진우생의 편을 들지 않았다.
연적하가 대역죄인이 되면 그다음 차례는 진우생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제는 진우생과 거리를 두어야 할 상황이었다.
포화명이 소기들에게 못 박듯 말했다.
“조만간 진우생이 추포될 테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거라. 행여나 그에게 어설픈 동정을 보일 생각은 마라. 그랬다가는 그와 나란히 오라를 받게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도 공과 사를 구별할 줄은 압니다.”
금의위 개봉 지부의 남진과 북진은 살아남기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다.
밀지의 내용은 까 봐야 알겠지만, 그들은 북진의 전언(傳言)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개봉.
남문촌.
이른 아침.
한 청년이 방문을 열고 나와 좁은 마당으로 내려왔다.
자택 근신을 명받은 진우생이다.
그는 길이가 오 장(약 15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마당을 오락가락 거닐었다.
진우생이 아침 내내 산책만 하자 이유화가 마루로 나왔다.
“오늘은 등청하지 않아도 돼요?”
“어제 고생했다고 멍이 빠질 때까지 쉬라네.”
이유화가 진우생의 멍든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정말 일하다가 다친 거 맞아요? 다른 일이 있는 거 아니죠?”
그녀는 금의위가 저 정도로 맞을 일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라고 부인하려던 진우생은 머뭇거렸다.
생각해 보니 이건 숨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나 금의위 그만둘까?”
“무슨 소리예요? 금의위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해요?”
“실은 요즘 금의위 분위기가 좋지 않아. 다들 연 대협의 일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데, 내가 대형 사고를 쳤거든.”
“금의위까지 그만둬야 할 정도로 큰 잘못을 한 거예요?”
“잘 모르겠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혹시 연 오라버니 일로 금의위에서 나가라고 눈치를 줘요?”
“남진의 윗분들은 별말 안 하는데……. 북진에서는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야. 그런데 하필 이번에 내가 친 사고가 북진과 관계된 거라서……. 내가 총기 대인을 아주 곤란하게 만들었어. 금의위에 계속 남아 있어도 평생 소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이렇게 눈칫밥 먹으면서 사느니 다른 일을 찾아볼까 해서.”
“미안해요. 저 때문에…….”
“아니야. 당신이 미안할 건 없어. 나도 연 대협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남진에서도 연 대협이 잘못했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어. 북진에서는 난리를 쳐도 내 동료들은 연 대협을 협객이라고 말해.”
“그래도 저와 혼인하지만 않았어도…….”
“괜찮다니까. 어차피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꼭 금의위만 하라는 법은 없잖아. 세상에 할 일이 얼마 나 많은데! 표두나 해 볼까? 아! 내가 표행을 나간 동안 당신이 혼자 있어야 하니까 그건 좀 그런가?”
“정말 금의위를 그만두실 생각이에요?”
“왠지 북진에서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지가 않아.”
진우생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주문우 백호는 자신을 짓밟았고, 천산갑 총기는 처를 넘기라 했다.
그들이 이대로 물러날 리가 없다.
분명히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하게 자신을 몰아세울 것이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실망하실 거예요. 그분들이 서방님께 거는 기대를 아시잖아요.”
“그래도 어쩌겠어. 내가 무능해서 사고나 치고 다니는걸. 더 큰 일이 닥치기 전에 그만 두는 게 낫지.”
“…….”
이유화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금의위가 천직이라던 진우생이 오죽하면 저럴까.
진우생은 우두커니 서 있는 이유화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남편이 금의위라고 어깨에 힘주는 것도 오늘까지만이야. 내일부터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쾅!’ 하고 대문을 박차며 금의위가 들이닥쳤다.
진우생이 급히 이연화의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천산갑 총기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진우생에게 다가갔다.
“전에 내가 말했지? 네 처를 넘기면 살 수 있을 거라고. 내 말을 듣지 그랬느냐.”
“총기 대인!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러냐고? 몰라서 묻느냐? 지휘사께서 연적하를 추포하기 위해 움직이셨다. 그래도 금의위니 기회를 주지. 연적하의 혈육인 네 처를 역도로 고변(告變)해라. 그럼 정상을 참작해 주마.”
“고변이라뇨! 제 처는 역도가 아닙니다! 그건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풋! 보증? 이거 정신이 완전히 나간 놈일세. 네놈이 네 처를 감싼 순간 너 역시도 역도가 되었음을 모른단 말이냐? 역도가 역도의 보증을 서? 끌고 가라!”
“예!”
금의위 위사들이 벼락처럼 달려들어 진우생과 이유화를 포박했다.
“총기 대인! 오해십니다! 역도라니요! 금의위에 충성한 저를 왜 역도라 하십니까!”
역도가 아니라며 발버둥치는 진우생을 위사들이 주먹으로 후려쳤다.
주먹질은 진우생이 축 늘어진 뒤에야 멈췄다.
천산갑 총기는 집안에 사람이 더 없음을 확인한 뒤 진우생 부부를 금의위로 압송했다.
***
개봉.
포공사(包公祀).
땅거미가 뉘엿뉘엿 질 무렵, 십여 명의 사람들이 포공사로 진입했다.
검은 빛깔의 철릭과 허리에 찬 수춘도를 보니 금의위다.
형형한 눈빛을 보면 그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고수인지 알 수 있다.
그들은 금의위 지휘사 모양과 그를 호위하는 금의위 고수들이었다.
잠시 후 모양이 백색 돌로 쌓아 만든 백룡전에 도착했다.
모양이 자리를 잡고 앉자 누군가 유령처럼 그의 앞에 나타났다.
탄탄한 체격의 사내는 금의위 개봉 지부의 남진무사 동유수였다.
“남진무사 동유수, 부르심 받고 왔사옵니다.”
동유수가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하자 모양은 가볍게 손을 까닥였다.
“앉거라.”
“예.”
모양은 담담한 얼굴로 주위를 한차례 둘러본 후에 입을 열었다.
“개봉의 상황은?”
“북진의 유득공 천호와 천산갑 총기가 주도하여 진우생을 추포하였습니다.”
“북진무사 장부아는?”
“그는 꼭 필요한 정보만 전달할 뿐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진우생은? 금의위를 원망하고 있더냐?”
“아닙니다.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부인은?”
순간 동유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지휘사의 얼굴을 보았다.
금의위 소기의 처인 이유화를 이 부인이라고 부르니 당황한 것이다.
“크게 놀랐는지 옥사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있습니다.”
“쯧! 쯧!”
혀를 차던 모양은 이내 정색을 하고 말했다.
“황상께서 연적하에게 ‘천외검선’이라는 별호를 하사하셨다. 더불어 그에게 ‘황상의 검이 되어 황실과 나라를 지켜 달라’ 부탁하셨다.”
동유수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황상께서 연적하에게 ‘부탁’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가 ‘황상의 검’이 되겠다면, 그에게 ‘생사여탈권’을 부여하겠노라고도 하셨다. 네가 연적하를 만나 그런 황상의 뜻을 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