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20
820회. 유명교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금의위는 장사경 북진무사의 시체를 수습한 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들이 들어와 시체를 가지고 돌아가기까지 반각(약 7분)도 걸리지 않았다.
금의위가 떠나자 문밖에서 얼쩡거리던 사람들은 다시 주루에 들어갔다가 청년이 여전히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금의위가 시체를 짊어지고 나온 것을 보았는데 청년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니?
기이한 상황에 청년을 힐끔거렸지만 감히 그에게 묻는 사람은 없었다.
연적하는 술 한 잔을 여러 번에 걸쳐 천천히 마신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 주루 안의 손님들은 그의 정체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댔다.
월하주루를 나온 연적하는 이내 운종술로 청성산으로 날아갔다.
성도에서 청성산까지 무려 백이십 리(약 5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지만 일각(15분)도 걸리지 않았다.
연적하를 태운 구름이 청성산 외곽에 내려앉았다.
이윽고 구름에서 내린 연적하는 눈 덮인 작은 봉분 앞으로 다가갔다.
“한 소저, 미안해요. 내가 조금 더 신경을 써 줬어야 했는데……. 낙성문은 걱정하지 마요. 유명교 욕한다고 역적이 될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금의위가 알아서 기는 걸 보면 유명교와 단절할 모양이다.
그럼 낙성문에 대한 압력도 사라질 것이다.
설사 금의위가 아직은 유명교와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다 해도, 자신과 한소양의 관계를 아는 한, 낙성문은 안전할 터였다.
문득 한소양과 처음 만나던 날의 대화가 떠올랐다.
“유명교 욕을 했거든요.”
“무슨 욕을 했는데요?”
“성도에서 저희 낙성문과 경쟁하는 문파가 있어요. 삼정검문이라고. 그런데 삼정검문이 유명교에 드나들면서 저희 낙성문 쪽의 상점들을 하나씩 빼앗겼어요. 정확히는 관에서 저희 낙성문 쪽 상점을 계속 건드렸어요. 그걸 견디다 못한 상점들이 삼정검문으로 옮겨 간 거죠. 인심이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삼정검문과 손잡으면 관에서 뒤를 봐주니까, 아무리 낙성문이 잘해 줘도 소용없더라고요.”
“그게 유명교와 무슨 관계가 있는데요?”
“유명교주가 대법사가 됐잖아요. 호국의 종교가 된 뒤로 관부에서 특별 관리를 해 줘요. 현령들은 뭐 도와줄 게 없나 살피느라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교를 들락거리죠. 그러다 보니 유명교에 줄을 대면 성공하고, 줄을 대지 않으면 빼앗기는 형국이 된 거죠.”
“유명교가 직접적으로 나쁜 짓을 한 건 없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맞나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유명교 존재 자체가 악을 만들어 내고 있잖아요. 지방 관원들이 알아서 눈치를 보면서 기는 상황이라……. 법과 도덕보다는 유명교에 드나드는 사람들 입맛대로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고요!”
그녀의 말이 맞았다.
유명교가 악행을 저지르는 건 아니지만, 유명교 존재 자체가 악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법과 도덕을 개똥으로 여기는 세상이 됐다.
금의위가 한소양을 고문하다 죽이고, 불에 태워 버린 것도 그래서다.
마음 한구석에서 반론도 일어났다.
‘그래서 뭐? 유명교가 나타나기 이전에도 세상은 법과 도덕과 거리가 멀었다고.’
맞다. 세상은 과거에도 그랬다.
‘관원들이 권력자와 돈 앞에서 기는 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잖아.’
그것도 맞다.
‘유명교를 없애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거야.’
그것 역시 맞는 말이다.
유명교가 없던 시절에도 세상은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
결국 연적하는 아무런 다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한소양의 음성이 뒤에서 들리는 듯했다.
“청성산에는 왜 가는 거예요?”
“그곳에 남천 대협이 계시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유명교와 싸우던 그분이라면 도와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사천무림과 호천맹도 있잖아요.”
“사천무림은 유명교와 친하고, 호천맹은 유명무실하게 된 지 오래거든요.”
“연적하도 별수 없을 거예요.”
그날 한소양은 ‘왜죠?’ 하고 물었다.
하지만 끝내 그녀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왜냐면 유명교와 싸울 마음이 없었거든요. 유명교 때문에 법과 도덕이 사라진 게 아니에요.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세상이라고요. 신이라 해도 어쩔 수 없을 거예요.”
구주의 존재들이 뒤틀린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듯 이 세계는 악하다.
연적하가 생각하기에 그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었다.
유명교와 팔황신모조차 인간의 숙명이 만들어 낸 결과인지 모른다.
무덤은 말이 없었다.
연적하는 씁쓸한 얼굴로 걸음을 떼어 놓았다.
한소양의 무덤에 찾아와 변명을 늘어놓는 걸 보니 꽤나 미안했던 모양이다.
***
청성파 산문 앞 서촉관(西蜀館).
별채로 돌아간 연적하를 반가운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직례성에서 남궁세가 소가주 청운검 남궁천이 찾아왔던 것이다.
“형님!”
“어! 연 아우. 연이 데리고 오느라 고생했어. 정말 고마워. 아버지도 연 아우에게 감사하고 있어. 해결할 일이 있어 성도에 갔었다면서?”
“예.”
“연이에게 구주(九州)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들었어. 그런 세계가 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아.”
“그런 세상도 있더라고요.”
“바다 건너 다른 나라에 갔던 건 아니지?”
“형님. 구주에는 바다만큼 넓은 강이 흘러요. 다른 나라에 그런 강이 있다는 소리 들어 봤어요?”
“없지. 그냥 하도 황당해서 해 본 소리야.”
무안해진 남궁천은 슬쩍 화제를 돌렸다.
“조카를 봤는데 예쁘더라. 연이를 구하러 간 줄 알았는데 언제 조카까지 만들었대?”
“헤헤, 형님은요? 그동안 진전이 좀 있어요? 혼인했다는 말은 없던데.”
“나야 뭐 늘 그렇지. 아우와 연이가 그렇게 됐는데 여자 만날 정신이 있었겠어?”
“아,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거예요? 진 소저는 잘 지내고 있죠?”
연적하가 은근한 눈으로 남궁천을 보았다.
그가 정주 창인문의 진설하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물은 것이다.
“진 소저는 남맹에서 일하고 있어.”
“어? 정주에서 합비로 거처를 옮긴 거예요?”
“멀어서 만날 수가 있어야지. 남맹에서 사람들을 모을 때 진 소저가 자원했어.”
“형님을 보고 간 거네요?”
“뭐, 그렇지.”
“그럼 얼른 혼인을 하셔야죠. 진 소저가 그렇게까지 노력하는데.”
“아우와 연이가 없는데 어떻게 혼인을 해? 이제 두 사람이 돌아왔으니 슬슬 준비하려고.”
“축하드립니다. 두 분이 결국 맺어지시네요?”
“고마워. 연 아우 덕분이야.”
남궁천이 계면쩍은 얼굴로 연적하의 어깨를 툭 쳤다.
연적하는 녹림에 있을 때 정의맹 정주 지부 사람들(설차수, 유근식, 진설하)과 함께 다닌 적이 있다. 그때 남궁천과 진설하가 안면을 트게 됐으니 연적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반 시진(1시간)쯤 지났을까?
쌓였던 이야기가 슬슬 바닥을 드러낼 때 연적하가 물었다.
“형님, 그런데 남맹에서는 유명교를 어떻게 보고 있어요?”
“남들과 비슷하지.”
“호국 종교요?”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역적이 되는 세상이니까. 놀랍지? 단지 이 년 만에 무림공적이던 사교가 호국 종교 소리를 듣고 있으니.”
“국경의 오랑캐들을 물리쳐서 그렇게 됐다면서요?”
“입맛이 쓰지만 부정할 수도 없어. 그렇게까지 나라를 위해 싸운 종교는 없었거든.”
“그럼, 지금 강호에 사천무림, 호천맹, 남맹이 있는 거예요?”
“정파가 그렇고 사파를 보태면 몇 개 더 되지.”
“사파도 단체가 있어요?”
“녹림도 단체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최근에는 명왕교가 세를 늘리고 있어.”
“명왕교요? 그거 예전에 유명교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 아니에요?”
“맞아. 유명교가 호국의 종교가 되면서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됐잖아. 명왕교는 그 유명교에 맞서는 유일한 단체야. 호천맹도 못하는 걸 명왕교가 하고 있으니 묘하지?”
“유명교가 호국 종교가 아닐 때도 힘을 못썼는데, 호국 종교가 된 지금 명왕교가 세를 키우고 있다고요?”
연적하는 남궁천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유명교 그늘 아래 지금쯤 지리멸렬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세를 키우고 있다니?
“명왕교 장난 아니야. 호광성을 중심으로 장강 일대는 다 명왕교의 세력이라고 보면 돼.”
“그렇게나 커졌다고요?”
“요즘 강호에서는 북직례성은 유명교, 하남성은 호천맹, 사천성은 사천무림, 남직례성은 남맹, 그리고 호광성은 명왕교 천하라고 공공연하게 말해.”
“놀랍네요.”
“그나마 다행인 게 유명교가 워낙 강해서 명왕교 세력이 호광성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거야. 명왕교가 장강 북쪽으로 올라오면 사천무림과 호천맹, 남맹에 피바람이 불걸?”
“그 정도예요?”
“나도 처음에는 명왕교가 유명교 떨거지들인 줄로만 알았어. 그런데 아니더라고. 명왕교와 싸운 방파들 중에 살아남은 사람이 없으니 말 다 했지.”
“유명교가 그걸 그냥 두고 봐요?”
“이상하게 호국의 종교가 된 뒤로 유명교가 잠잠하더라고. 천하를 다 장악했다고 생각하는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유명교주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 벌써 일 년이 넘어.”
“풍지산의 신당도 버려져 있던데 유명교주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대요?”
“그걸 아는 사람이 없어. 예전에 유명교가 활동하지 않을 때와 비슷해. 우화등선했다는 말도 있고, 주화입마에 빠져 죽었다는 말도 있고. 뭐가 뭔지 모르겠어.”
“교주가 사라진 상태인데도 유명교는 잘만 돌아가네요?”
“호국 종교가 됐으니 흔들릴 일이 없는 거지. 대놓고 나라에서 뒤를 봐주는데 누가 건드리겠어? 유명교에 대해 나쁜 말을 하면 바로 금의위에 잡혀 들어갈 정도인데.”
연적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남궁천은 아직 천외이선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다.
“형님 생각에 유명교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사라질 일이 있나?”
“상상은 해 볼 수 있잖아요.”
“피바람이 불겠지. 내일이라도 명왕교가 장강 북쪽으로 치고 올라올 테니까.”
“그래 봤자 유명교에서 떨어져 나온 찌꺼기들이잖아요. 호천맹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 않아요?”
“정확한 건 아닌데 명왕교에서 마교의 전대 고수를 목격했다는 소문이 있어.”
“마교요?”
“만약 천산의 마두들이 명왕교와 연관됐다면 호천맹으로는 무리야. 당장 마교 집마령(集魔令) 아래로 녹림을 비롯한 사파의 방파들이 몰려갈 테니까.”
“집마령은 또 뭐예요?”
무림사에 어두운 연적하는 집마령이 낯설기만 했다.
“수백 년 전 마교가 천하를 종횡할 때 사파의 종주들이 충성을 맹세한 증표야.”
“녹림 총채주 파천마군 석무해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응하지 않을걸요?”
“천하십대고수에 마교의 이름은 빠져 있잖아. 왜 그런지 알아?”
“왜요?”
“마교는 자신들을 천외천(天外天)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천하십대고수에 이름을 넣지 않은 거지. 파천마군보다 강한 자가 마교에 수두룩하다고.”
“진짜요?”
“연이에게 물어봐. 내 말이 맞는지 아닌지. 연아? 너도 듣고만 있지 말고 한마디 해 줘 봐.”
남궁천의 말에 한쪽에서 아기를 어르고 있던 남궁연이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말이 맞아요. 적하야. 천마와 소수신녀, 천산마제는 천하십대고수보다 강하다고 알려져 있어.”
“들었지? 그런 마교가 명왕교와 손을 잡았다고 생각해 봐. 천하가 피에 잠길걸?”
“그러니까 형님 말씀은 유명교가 건재해서 명왕교가 잠잠한 거라는 거죠?”
“유명교주인 팔황신모도 천하십대고수에는 이름이 없잖아. 마교에서도 유명교주를 어려워할 거야. 황실에서 뒤를 봐주고 있는 지금은 더할 테지. 오늘날 무공이나 권력으로 유명교주를 찍어 누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물론 적하 너는 예외로 하고.”
연적하를 띄워 주었지만 남궁천의 눈에는 반신반의의 기색이 역력했다.
남궁연과 연적하에게 구주에서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선뜻 믿어지지 않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