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28
828회. 귀하가 금인상방의 대행수요?
‘무림 초출’이라는 말에 연적하가 화를 내자 심통이 어르듯 말했다.
“공자님이 십두마병을 잡으러 강호를 두루 돌아다닌 것은 맞지만, 기간은 얼마 되지 않지 않습니까? 그리고 무림 초출이라는 건 좋은 말입니다. 그만큼 강호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공자님이 저처럼 닳고 닳은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
심통의 교묘한 언변에 연적하는 반박하지 못했다.
심통처럼 닳고 닳았다는 소리를 듣느니 깨끗한 초출 소리가 나아 보여서다.
심통은 연적하가 또 툴툴거릴까 봐 얼른 화제를 돌렸다.
“마교 고수의 짓일까요?”
“내 생각은 달라. 마교 고수가 그렇게 강하다면 튀어나와 길을 막지. 쥐새끼처럼 숨어서 얼음을 녹이겠어?”
“그건 또 그렇네요.”
심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교 고수라면 연적하와 싸워 보지 않았으니 정면 승부를 걸었을 터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흩날리는 눈발을 멍하니 보던 심통이 연적하를 슬쩍 쳐다보았다.
연적하는 왜 유명교주도 아니고, 마교도 아니라고 했을까?
“공자님, 혹시 따로 짚이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천외이선이라는 사람들이 좀 신경 쓰여서 그래.”
“황궁에 처박혀 두문불출한다는 사람들이 이 먼 곳까지 왔겠습니까?”
“그렇지?”
“이거도 아니고, 저거도 아니면……. 결국 날씨 탓일까요?”
“이 추위에 그런 말이 나와?”
연적하의 타박에 심통은 뻘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이런 날씨에 얼음이 그렇게 빨리 녹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다음 날 아침.
연적하는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눈은 그쳤지만 금방이라도 다시 쏟아부을 것처럼 어두웠다.
밖에서 모닥불을 쬐고 있던 심통이 연적하에게 다가왔다.
“일어나셨습니까?”
“어, 날씨가 애매하네?”
“그러게요. 대행수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식사는?”
“반 시진(1시간)쯤 전에 끝났지요. 숙수들이 공자님 식사를 보냈는데 주무셔서 제가 먹었습니다.”
“왜 안 깨우고?”
“곤히 주무시는 것 같아서 안 깨웠습니다.”
“내 걸 뺏어 먹으려고 그런 건 아니고?”
“흐흐. 공자님 식사가 다르긴 하더라고요. 숙수들의 정성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걸 알면서도 안 깨워?”
“공자님이야 원하시면 어디라도 가서 먹고 오실 수 있지 않습니까.”
“에라! 이 화상아.”
연적하는 툴툴거리며 모닥불로 다가갔다.
연적하가 등장할 때부터 일어나 있던 마부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일어나셨습니까!”
“에이, 뭘 그렇게 요란을 떨어요. 앉아요. 앉아.”
연적하의 손짓에 마부들이 하나 둘 쪼그리고 앉았다.
심통이 불 옆으로 다가오자 연적하가 막았다.
“잠깐. 심 노인은 숙수들에게 가서 먹을 것 좀 얻어 와.”
“제가요? 다른 사람을 보내면 안 되겠습니까?”
“어, 안 돼.”
단호한 거절에 심통은 입을 삐죽이면서도 돌아섰다.
연적하의 고집을 꺾느니 그냥 한번 움직이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해서다.
결국 심통은 연적하를 위해 음식을 얻어 왔다.
숙수들이 연적하가 일어나 음식을 찾는다고 하자 아예 새로 만들어 바친 것이다.
연적하가 먹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던 심통이 불쑥 말했다.
“그런데 공자님.”
“왜?”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
“어제부터 화창한 날에 폭설이 내리지 않았습니까? 이것도 술법의 연장이 아닐까 해서요.”
“술법으로 눈을 내리게 할 이유가 있어?”
“그렇게 말하면 얼음을 녹일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연적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심통의 말처럼 얼어붙은 강을 녹일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술법으로 갑자기 폭설이 쏟아지게 할 수 있습니까?”
“얼어붙은 강을 녹일 수 있다면, 눈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겠지. 크게 보면 그런 것도 역시 풍운조화(風雲造化)의 일종일 테니까.”
“그렇다면 반대로 그걸 깨뜨릴 수도 있겠네요? 이게 술법으로 인한 거라면 말입니다.”
“아마도?”
“공자님도 깨뜨릴 수 있습니까?”
“해 보진 않았지만, 이 날씨가 술법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밑져야 본전이라지 않습니까? 한 번 깨뜨려 보는 건 어떻습니까?”
연적하는 대답을 망설였다.
심통은 밑져야 본전이라고 했지만, 실패하면 자신은 날씨에 대항한 멍청이가 되기 때문이다.
때마침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송이들이 음식물 위에 내려앉자 연적하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해 보자.”
이게 정말 술법의 장난이라면 상대의 손바닥에서 놀아나고 싶지 않았다.
연적하와 심통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부들이 일제히 연적하에게 주목했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두고 술법이네 어쩌네 하더니, 깨부수겠단다.
말도 안 되는 허튼 짓거리지만 그걸 지적할 담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마부들은 이 모두를 연적하와 심통의 여흥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뛰어난 술사라 해도 날씨를 조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연적하는 검결지를 얼굴 앞에 세웠다.
그리고 ‘사주파해(邪呪破敬)’의 주문을 외우며 검결지를 앞으로 뻗었다.
“천계멸유(天計滅類) 신력일하(神力一下)!”
일체의 사악한 주박(呪)을 해체하는 오룡궁의 술법이 펼쳐졌다.
츠츠츠츠-.
기이한 소리와 함께 회색 하늘이 길게 갈라졌다.
“와아!”
“오오!”
마부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두컴컴하던 하늘에 금이라도 간 것처럼 긴 줄이라니! 저건 대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길게 났던 줄은 이내 회색 하늘에 잡아먹혔다.
연적하의 술법에도 여전히 사위는 어두웠고, 눈발은 오히려 더욱 거세졌다.
하늘을 살피던 심통이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그냥 자연의 조화였던 모양입니다?”
“아니야. 심 노인의 말이 맞았어. 술법이야.”
“예에? 이게 술법이라고요?”
연적하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만약 이게 자연의 조화였다면 하늘에 금이 가지도 않았을 거야. 본래의 맑은 하늘을 이 우중충한 날씨가 가로막고 있다는 뜻이지.”
“아!”
심통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분명히 하늘에 금이 갔었다.
술법이 깨진 틈으로 본래의 모습이 살짝 드러나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깨뜨릴 수 있겠습니까?”
“‘사주파해’를 검결지가 아니라 검으로 하면 될 거야.”
연적하는 허공에서 천둔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사주파해의 주문과 함께 들어 올렸던 검을 길게 내리찍었다.
“천계멸유 신력일하!”
쩌저저저적-.
얼음장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회색 빛 하늘이 무너졌다.
“어어어!”
“으헉!”
두 조각난 하늘이 떨어져 내리자 마부들은 비명을 지르며 마차로 달려갔다.
마차 아래로 숨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회색 하늘 조각은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서 조금씩 흐려지더니, 마침내 사라져 버렸다.
거짓말처럼 날이 환하게 밝았다.
해는 나왔지만 석 자(약 90센티)나 쌓인 눈은 녹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날씨가 갑자기 맑아지자 호위들이 뛰어다니며 출발준비를 외쳤다.
마차로 도망쳤던 마부들이 뻘쭘한 얼굴로 모여들었다.
그런 마부들을 보며 심통이 혀를 찼다.
“에잉! 쯧쯧! 의리 없는 것들 같으니. 혼자만 살아 보겠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나냐? 곧 출발한다니 빨리 천막이나 걷어라.”
마부들은 찍소리 못 하고 천막에 달라붙었다.
연적하는 마부들이 정리한 물건을 공간 창고인 ‘마하담’에 쓸어 담았다.
상단은 가슴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앞으로 전진했다.
선발대의 뒤를 짐마차가 따라가고, 상인과 짐꾼 들은 꼬리처럼 길게 뒤에 늘어섰다.
일다경(약 20분)쯤 눈밭을 뚫고 가자 단단하게 다져진 관도가 나왔다.
선두에서 길을 뚫던 태산검 하후찬 대주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눈이 쌓여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게 웬 행운인지 모르겠다.
이윽고 짐마차들이 줄지어 눈밭에서 나왔다.
등원용 대행수의 마차가 관도로 올라오자 하후찬은 말을 달려 가까이 다가갔다.
“대행수님. 다행히 이제부터는 눈이 없습니다.”
“그래요? 그것참 신기하구려. 우리가 머무르던 들판에만 집중적으로 눈이 내리다니.”
“저도 겨울 상행을 오래 다녔지만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마을까지 이십 리(약 8킬로미터)라고 했소?”
“예.”
등원용이 하늘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날씨는 맑았지만 오후의 해가 짧으니 마을에서 쉬고 가는 게 나았다.
“그럼 오늘은 마을에서 머무는 것으로 하십시다. 다들 너무 고생을 해서 좀 쉬게 해야겠소.”
“알겠습니다.”
하후찬은 즉시 선두로 달려가 속도를 늦추었다.
어차피 이십 리 밖의 마을에서 쉴 거면 서두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성도 동편.
서가촌(舒家村).
신시 말(오후 5시) 무렵.
서가촌 초입에 마흔일곱 대의 짐마차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금인상방의 상단이다.
한겨울에 등장한 상인들로 인해 조용하던 서가촌은 활기를 띠었다.
등원용 대행수는 서가촌에서 가장 큰 객점을 하루 동안 세를 냈다.
연적하와 행수들의 숙소로 쓰기 위해서다.
그날 저녁, 등원용 대행수는 연적하와 행수들을 식사에 초대해 대접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등원용이 두 손으로 술병을 받쳐 들고 말했다.
“연 대협. 오늘 이 등 모가 연 대협께 술 한잔 올리고 싶습니다. 받아 주시겠습니까?”
“예.”
연적하는 반주 삼아 마실 생각으로 사양하지 않았다.
연적하가 빈 잔을 내밀자 등원용이 잔에 가득 차도록 술을 따랐다.
“연 대협의 도움으로 큰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이제 상행 초반인데 벌써부터 이러니 걱정이 큽니다. 아무쪼록 마지막 날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예.”
연적하는 건성으로 답하며 술을 마셨다.
입맛이 쓰고 텁텁한 게 달달한 향설주가 당겼다.
하지만 상행 중에는 금주(禁酒)가 기본인지라 다른 술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
그가 아쉬움을 달랠 때 십여 명의 무인이 객점으로 들어왔다.
마지막 사람이 문을 늦게 닫아 찬 바람이 한차례 실내를 몰아쳤다.
행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출입구를 향했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연적하도 무심코 새로 온 손님들을 쳐다보았다.
태양혈이 툭 튀어나온 걸 보니 내공의 고수들이다.
서가촌과 같은 외곽의 마을에 저만한 고수들이 돌아다니다니 의외다.
그런데 그들은 그냥 식사를 하기 위해 온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계산대에서 무인들과 한참 뭐라 말하던 객점 주인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어 대행수님?”
“예. 무슨 일입니까?”
주인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팔달문의 분들이 상단 대표자를 만나고 싶으시답니다.”
“팔달문요?”
등원용이 고개를 갸웃했다.
성도에서 활동하는 팔달문과 금인상방은 아무런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셔 오십시오.”
등원용이 허락하자 주인이 팔달문의 고수들에게 돌아갔다.
이윽고 팔달문 고수들이 등원용의 자리로 다가왔다.
태영혈이 유난히 튀어나온 중년인 하나가 과장된 동작으로 읍(揖)을 하며 말했다.
“나는 팔달문의 일대제자인 송충이오. 귀하가 금인상방의 대행수요?”
“예, 등원용이라 합니다. 헌데 무슨 일로 저를 만나자고 하신 겁니까?”
“아, 별일 아니외다. 상행 중이라니 도움을 좀 드릴까 해서 찾아왔소.”
“도움요? 말씀은 감사한데 저희는 호위대가 있어서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습니다.”
등원용은 여지를 남기지 않고 거절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특히나 문파에서 상행에 도움을 주면 대가를 지불하는 게 원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