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3
83회. 그만 죽어라
그때 청운관의 낭인들 속에서 음산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으흐흐흐. 대력귀 따위가 협박을 하다니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 모양이지? 공자님,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에게 맡겨 주시지요.”
“저 허세꾼을 알아?”
“이십 년쯤 전에 하남성에서 강도짓을 하고 다니던 애송이입니다.”
부들부들 떨던 대력귀가 이를 갈며 물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대력귀는 지금의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여수 혈겁 이후로 은하장은 당금 무림의 공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은하장의 호법인 자신에게 저런 개소리라니?
구천노도 심통이 푸들푸들 웃으며 말했다.
“곧 죽을 놈이 그런 건 알아서 뭐 하게? 귀찮으니까 빨리 오거라. 우리 공자님은 시간 끄는 거 싫어하신다.”
말과 함께 심통이 유엽도를 뽑아 들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상대를 눈곱만큼도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다.
“이제 보니 미친 늙은이로구나!”
욕을 하면서도 대력귀는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상대의 심상치 않은 기세에 눌린 것이다.
그는 일단 노인이 낭인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칼질 한 번만 봐도 상대의 기량을 짐작할 수 있으니 적절한 대처였다.
대력귀가 바라만 보자 남양상방에서 고용한 낭인들이 심통의 앞을 막아섰다.
그래도 심통의 걸음은 느려지지 않았다.
상대가 일 장 거리까지 다가오자 낭인들이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머, 멈추시오!”
“뭐야!”
순간 심통의 유엽도가 허공을 갈랐다.
스슥. 슥.
병장기를 든 낭인들의 팔이 툭툭 떨어졌다.
뒤늦게 팔이 잘린 걸 안 낭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악!”
“으아악!”
심통은 마치 추수를 하는 농사꾼처럼 거침없이 칼질을 하며 전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낭인들이 흩어졌다.
아무리 칼 밥을 먹는 낭인들이라 해도 심통의 무자비한 칼질은 견뎌 내질 못했다.
낭인 다음은 홍방의 차례다.
홍방의 방주 철혈대검 홍대세가 버럭 소리쳤다.
“쳐라!”
그러나 홍방의 방도들은 머뭇거릴 뿐 감히 나서지 못했다.
보다 못한 홍대세가 대검을 치켜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는 천지양단의 수법으로 대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놈! 내가 철혈대검 홍…….”
콰직.
심통이 그를 스쳐 지나가며 도 손잡이로 홍대세의 이마를 찍었다.
홍대세가 ‘끄응’ 하는 신음과 함께 허물어졌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위다.
기가 죽은 홍방의 방도들이 좌우로 길을 텄다.
단숨에 대력귀 앞으로 걸어간 심통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으흐흐. 대력귀야. 호랑이 없는 산에서 왕 노릇 하니 재미있더냐?”
대력귀가 천천히 도를 뽑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상대는 낭인과 홍방 모두를 쏟아부어도 당해 내지 못할 고수였다.
“본좌가 은하장의 호법임을 알고도 덤비는 걸 보니 간이 부은 늙은이로군. 너와 네가 모시는 그 공자라는 놈은 물론, 너희가 속한……. 헛!”
쉬이익.
대뜸 심통이 유엽도로 대력귀를 베어 갔다.
대력귀는 황급히 도를 종횡으로 휘둘러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
챙.
대력귀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었다.
단 한 번의 겨룸으로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된 것이다.
심통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거침없이 대력귀를 몰아붙였다.
대력귀는 은하장의 이름으로 상대를 겁박하려 했지만 입을 열 틈도 없었다.
차차차차창.
단숨에 다섯 번이나 도를 휘두르던 심통이 갑자기 멈췄다.
“은하장도 별것 아니구먼. 호법이라는 놈이 이렇게 약한 걸 보니.”
순간 대력귀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상대는 확실히 은하장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본좌는 유명교의 십두마병으로…….”
다급해진 대력귀는 유명교의 이름까지 내세웠지만 통하지 않았다.
한순간 심통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만 죽어라.”
심통이 칼끝을 천천히 지면으로 늘어트렸다.
대력귀는 급히 도를 가슴 앞에 세우고 상대의 칼끝을 노려보았다.
츠츠츠-.
갑자기 허공에서 마치 뱀이 풀잎을 스치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렸다.
‘헉!’
대력귀는 눈을 부릅떴다.
홀연히 지면에서 치솟아 오른 도기가 무릎과 허리와 목을 노리며 날아왔다.
대력귀는 전신의 내공을 끌어 올린 뒤 벼락처럼 도를 사선으로 그었다.
그의 성명절기인 대력일섬(大力一 閃)이다.
두 가닥 도기(刀氣)가 중간에서 격렬하게 마주쳤다.
펑. 펑. 펑.
폭발음이 따갑게 귀청을 울렸다.
충돌의 여파를 감당하지 못하고 대력귀가 멈칫했다.
그때 하늘을 향하던 유엽도의 칼끝이 그림처럼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구천세법의 이 식인 용무천상이다.
찰나지간에 한 줄기 도기가 대력귀의 가슴을 관통했다.
구멍 뚫린 그의 가슴에서 검붉은 피가 꿀렁꿀렁 솟아 나왔다.
“가, 감히……. 유명교가 두렵지도…….”
대력귀는 말을 맺지도 못하고 고개를 툭 떨구었다.
상대의 죽음을 확인한 심통이 돌아섰다.
그때다. 누구도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대력귀의 머리와 팔다리가 마치 기지개를 켜듯이 천천히 움직인 것이다.
“…….”
홍방의 방도들이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갑자기분위기가 싸해지자 심통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심통과 대력귀의 눈이 마주쳤다.
“헐! 살다 살다 별걸 다 보네.”
대력귀의 눈은 흰자위가 없이 온통 검기만 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흑안(黑眼)이 심통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오싹한 한기에 흠칫 몸을 떨던 심통이 중얼거렸다.
“유명교에서 사술을 배운 모양이구나. 이번에는 확실히 죽여 주마.”
그때 대력귀의 입이 열렸다.
“캬아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대력귀가 몸을 뒤틀었다.
투둑. 투둑.
놀랍게도 그가 한번 펄떡거릴 때마다 옷과 살가죽이 터져 나갔다.
홍방과 남양상방의 무사들은 갑작스러운 괴사에 놀라 분분히 뒤로 물러났다.
심통 역시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력귀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가 없었다.
옷이 다 떨어져 나간 대력귀의 몸은 괴이했다.
키는 한 자(약 30센티)나 더 커졌고 덩치도 그에 비례해 불어났다.
드러난 피부는 용암처럼 붉었는데 쩍쩍 갈라진 곳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야말로 용암으로 찍어 낸 거구의 괴물처럼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기사에 심통이 입을 쩍 벌렸다.
저 괴물을 대력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대력귀가 아니라면 저건 뭘까?
“쿠오오오!”
괴성과 함께 대력귀가 가까이 있는 심통에게 손을 뻗었다.
깜짝 놀란 심통은 급히 유엽도로 대력귀의 손을 잘랐다.
쩡.
묵직한 소리와 함께 심통의 유엽도가 튕겨 나갔다.
깜짝 놀란 심통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유엽도를 상단으로 들어 올렸다.
곧이어 구천세법의 이 식 용무천상이 펼쳐졌다.
유엽도에서 일어난 검기가 대력귀의 머리에 박혔다.
퍼억.
검기가 떨어진 자리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났지만 그뿐이다.
대력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심통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크르르르!”
대력귀의 입에서 야수와도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뭐, 뭐지? 이놈. 죽어라! 죽어!”
심통은 뒷걸음질 치며 쉬지 않고 유엽도를 휘둘렀다.
퍽. 퍽. 퍽.
도기가 박힐 때마다 대력귀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풀썩풀썩 일어났다.
그래도 대력귀는 여전히 생생했다.
턱.
남양상방의 외벽에 심통의 등이 닿았다.
상대를 벽에 몰아붙인 대력귀가 이번에는 파리 잡듯 손을 휘둘렀다.
놀란 심통은 유엽도를 세워 대력귀의 손을 막아 냈다.
콰앙.
“크윽!”
심통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충격에 손아귀가 찢어졌다.
단 한 번 막았을 뿐인데 벌써 단전이 찌르르 저려 오기까지 했다.
“크르르…….”
묘한 소리와 함께 대력귀가 주먹을 휘둘렀다.
심통은 얼른 유엽도를 고쳐 잡고 다시 한 번 내력을 끌어 올렸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 멀리서 한 자루 검이 날아와 대력귀의 등짝을 찍었다.
퍽. 태앵.
검은 대력귀의 몸을 뚫지 못하고 이내 땅바닥에 떨어졌다.
“크아아!”
순간 대력귀가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돌아섰다.
자신을 공격한 상대를 찾고 있는 듯했다.
깜짝 놀란 청운관의 낭인들이 피라미 떼처럼 순식간에 달아났다.
선두에 홀로 남은 연적하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쉬이익.
대력귀의 발치에 떨어져 있던 검이 그의 손아귀로 빨려들듯 날아갔다.
“허, 허공섭물!”
소우진이 눈을 부릅떴다.
설마하니 연적하가 허공섭물까지 펼칠 줄은 몰랐다.
소교 역시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심통에 이어 연적하까지.
남양이라는 변두리 소도시에서 상상도 못 한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소교는 낙양오협을 힐끔 보았다.
그들은 연적하의 무위를 이미 알고 있었던 듯 무덤덤해 보였다.
‘어쩐지 잘 참아 주더라니.’
하긴 저 정도면 낙양오협이 아니라 칠파이문의 장문인들도 눈치를 보겠다.
소교가 잠시 한눈을 파는 동안 대력귀와 연적하의 싸움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연적하의 손끝에서 구천세법이 꼬리를 물고 쏟아져 나왔다.
비룡승천, 용무천상, 운룡풍호, 풍화겁륜…….
퍽. 퍽. 퍽.
대력귀는 검기의 소나기를 뚫고 천천히 앞으로 전진했다.
연적하는 그가 조금씩 다가오는 걸 보면서도 전혀 물러나지 않았다.
마침내 두 사람의 거리가 일 장(약 3미터)으로 좁혀졌다.
어느 한쪽이 도약하면 바로 상대의 몸에 닿을 거리다.
대력귀의 무릎이 슬쩍 굽어지는가 싶더니 번개처럼 연적하를 덮쳤다.
순간 연적하가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대력귀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연적하의 발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쿠어어어!”
괴성과 함께 대력귀는 연신 손을 휘저었다.
그러나 공중으로 날아오른 연적하는 땅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대력귀의 머리 위에서 연적하의 신형이 아홉 번이나 자리를 바꾸었다.
‘기경팔맥과 신맥에 잠들어 있는 용을 깨운다’는 구룡번신(九龍翻身)이다.
뒤이어 구천세법의 마지막 구 식 뢰검분형이 펼쳐졌다.
꽈르릉.
천지를 진동시키는 뇌성과 함께 하늘에서 전뢰의 검기가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
아홉 개나 되는 벼락같은 검기가 박히자 대력귀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대력귀의 앞으로 연적하가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크르르르…….”
대력귀의 입에서 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헐!”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놀랍게도 저 괴물은 자신의 전신 내공이 담긴 뢰검분형에 맞고도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