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31
831회. 극락왕생(極樂往生)
흑검대로 돌아간 송충은 부대주 소비를 시켜 수하들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모인 숫자는 여섯에 불과했다.
흑검대 총원이 열둘이니 넷이나 비는 셈이다.
흑검대원들의 소집조차 뜻대로 되지 않자 송충이 인상을 찌푸렸다.
“넷은 어디에 있느냐?”
그러자 소비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상단에서 저녁을 먹겠다고 나간 지 꽤 된답니다. 돌아올 때가 됐습니다.”
송충은 짜증이 났지만 그들을 욕하지 않았다.
당장 자신과 소비도 상단에서 초반(볶음밥)을 먹고 왔기 때문이다.
여섯 명의 대원들은 대주의 심기가 불편해 보이자 눈알만 굴렸다.
네 명의 흑검대원은 그로부터 일다경(약 20분)이 지난 뒤에 돌아왔다.
송충이 흑검대원들 앞으로 나섰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조금 전 부대주와 함께 상단을 둘러보다 연적하와 시비가 붙었다. 청성산에서 도지휘사의 군대를 박살 낸 그 남천 연적하다.”
남천 연적하라는 말에 흑검대원들이 술렁였다. 평생 만날 일 없는 거물과 시비가 붙었다니 그럴 만도 하다.
“대행수가 왜 그를 소개해 주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됐다. 거짓말 같아서 상인들에게 확인했는데 연적하가 맞았다.”
흑검대원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유명교 쪽으로 선 팔달문에 연적하는 두려움의 대상인 까닭이다.
“연적하는 오늘 밤에 흑검대가 죽산의 도적 떼를 몰아내지 않으면, 흑검대는 물론 팔달문까지 없애 버리겠다고 했다.”
대원 중에 하나가 황급히 물었다.
“대주님. 상단 호위의 지원을 받는 겁니까?”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흑검대라고.”
“상단의 호위들과 힘을 합쳐야 상대할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연적하가 어떤 놈인지 모르느냐? 놈이 원하는 것은 차도살인이다. 흑검대가 도적 떼를 죽이든, 혹은 반대로 도적 떼 손에 흑검대가 죽든 하라는 거다.”
“…….”
흑검대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일석이조(一石二鳥)라고 히히덕거리며 상단을 따라왔는데 사지로 내몰리게 될 줄이야!
“알고 있겠지만 놈은 허언을 하지 않는다. 도적 떼가 죽든, 우리가 죽든 해야 끝날 일이라는 거다. 평생을 낭인으로 떠돌아다닐 게 아니라면, 오늘 밤 죽산의 도적 떼를 몰아내야 한다. 나와 소비는 도적 떼를 몰아내기로 했다. 너희는 어쩔 테냐? 도적 떼를 몰아내고 흑검대로 살겠느냐? 아니면 남은 평생을 낭인으로 살 테냐?”
“흑검대로 살겠습니다!”
흑검대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평생을 낭인으로 떠돌아다니는 것보다 도적 떼와 싸우는 게 나았다.
송충이 비장한 얼굴로 수하들을 보며 말했다.
“잘 생각했다! 우리는 팔달문의 흑검대다! 오늘 밤 우리 손으로 죽산의 새 역사를 쓰자!”
흑검대원들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도적 떼의 숫자가 많다고 하지만 그래 봐야 낭인과 화전민에 불과하다. 팔달문과 같은 무림 문파와 싸움이 벌어지면 지레 겁먹고 달아날 터였다.
자정 무렵.
한 사내가 미친 듯 산길을 내달렸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그는 흑검대 부대주 소비였다.
“헉! 헉!”
어깨까지 들썩이며 가쁘게 숨을 헐떡이는 그의 얼굴은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단 한 사람에게 팔달문의 흑검대가 몰살을 당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장난처럼 휘두르는 일검에 한 사람씩 죽었다.
죽산의 도적 떼는 녹림보다 더 무서웠다.
지금 그의 희망은 연적하였다.
연적하의 강요로 사지에 내몰렸지만, 그가 아니고서는 살길이 없었다.
헐떡이며 달려가는 그의 앞에 검은 그림자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헉!”
급하게 멈춰 선 소비는 뒤돌아 달아나려 했지만 지친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사, 살려 주십쇼!”
결국 소비는 목숨을 구걸했다.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한, 사내도 계집도 아닌, 상대의 붉은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극락왕생!”
말과 함께 검이 허공을 갈랐다.
하얀 검기가 오 장(약 15미터)이나 떨어져 있던 소비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츠츠츠-.
몸에서 분리된 소비의 머리가 산비탈을 떼구르르 굴러 내려갔다.
***
다음 날 아침.
출발 준비를 막 끝내고 쉬고 있는 연적하에게 호위대 대주 태산검 하후찬이 찾아왔다.
“남천 대협.”
“예?”
“상단 후미에 있던 흑검대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짐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사라졌습니다. 혹시 그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아, 어젯밤에 우리한테 와서 시비를 걸길래, 죽산의 도적 떼를 쫓아내면 용서해 준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직 안 돌아왔나 보네요? 아니면 달아났나?”
하후찬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들이 죽산에 가는 걸 본 사람이 있는지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흑검대가 달아났다면 모를까?
죽산으로 갔는데 돌아오지 않았다면 사달이 났음을 의미한다.
상단의 호위 책임자인 그는 사실 확인부터 해야 했다.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하후찬이 하겠다는 걸 막을 이유도 없었다.
잠시 후 상단을 한 바퀴 돌고 돌아온 하후찬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흑검대가 지난밤에 죽산으로 가는 걸 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한 걸 보면 아무래도 죽산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심통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흑검대 놈들이 도적 떼에 잡히거나 몰살당할 수준은 아닌데. 그렇지 않습니까? 공자님?”
“그러게. 달아나지도 못했다는 건 좀 그렇네. 녹림도 그 정도는 아닌데.”
그들을 죽산에 보낸 건 밤새 고생하라는 의미지 다른 뜻은 없었다.
그런데 흑검대가 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강적이 죽산에 있었다니 의외다.
녹림의 유명한 산채라면 모를까?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죽산이 흑검대를 집어삼키다니?
새삼 ‘강호는 넓고 기인이사는 모래알처럼 많다’는 말이 실감 났다.
하후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천 대협. 어떻게 할까요?”
“죽산을 넘어가야죠. 흑검대의 일도 알아볼 겸.”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후찬은 연적하에게 묵례를 한 뒤 선두에 있는 호위대로 돌아갔다.
뭔가 생각하던 연적하가 심통을 돌아보았다.
“심 노인.”
“예.”
“성도 주변에 흑검대를 제압할 녹림이 있어?”
“흑검대를 소리 없이 제압하려면 대별산채나 광풍채, 장강수채 정도의 규모는 돼야 합니다. 성도 주변에는 그만한 세력이 없습니다.”
“그렇지? 그럼 누구지?”
“그러게요.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이전처럼 녹림에 십두마병들이 숨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놈이 흑검대를 제압했을까요?”
“녹림에서 별다른 말 없었지?”
“그야 모르지요. 그동안 저도 공자님 곁에 딱 붙어 있었지 않습니까?”
“녹림과 연락을 끊고 지낸 거야?”
그러자 심통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공자님. 녹림과의 연락은 석경장에 들어갈 때 끊었습니다. 지금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아, 그래? 심 노인은 음흉한 구석이 있어서 뒤로 연락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제가 뒤로 연락할 위치는 아닙니다. 이제는 앞으로 연락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구천노도라고 하면 관부에서도 설설 깁니다.”
“그러셔? 그럼 내 옆에 붙어 있어서 모른다는 소리 하지 말고, 여기저기 연락 좀 하면서 살아. 세상 돌아가는 걸 알 수가 없잖아.”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서 뭐하시게요? 어차피 석경장에 돌아가면 그걸로 끝이지 않습니까?”
“그걸로 끝이라니? 석경장이 공동묘지인 줄 알아? 항상 사람이 귀를 열어 두고 살아야 하는 법이야.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가 죽을 거야?”
“예, 예, 앞으로는 제가 정보를 물어다가 공자님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떠드는 동안 짐마차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마침내 상단이 죽산에 진입했다.
그렇게 일다경(약 20분)쯤 지났을까?
매의 눈으로 주위를 살피던 하후찬이 벼락처럼 손을 들어 올렸다.
천천히 전진하던 상단이 일시에 정지했다.
뒤쪽에 있던 부대주 이풍이 하후찬의 곁으로 말을 달려왔다.
“대주님? 무슨 일이라도?”
하후찬이 전방을 가리켜 보였다.
그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리던 이풍이 눈살을 찌푸렸다.
길 옆에 수박통만 한 크기의 뭔가가 처박혀 있었다.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아무래도 사람의 머리 같았다.
이윽고 하후찬과 이풍이 나란히 말을 몰아 그것에 다가갔다.
역시나 사람의 머리였다.
말에서 내린 하후찬이 발끝으로 머리를 툭 밀자 얼굴이 드러났다.
흑검대 부대주 소비다.
“으음!”
얼굴을 확인한 하후찬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이풍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죽었을까요?”
“모르지.”
하후찬은 산길로 시선을 돌렸다.
경사진 길 위쪽으로 검붉은 핏방울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굴러떨어진 건가.’
굳이 머리를 치우지 않은 걸 보면 저 위쪽에 몸통도 있을 것 같았다.
하후찬이 막 걸음을 떼어 놓으려는 순간이다.
텅 비어 있던 위쪽 길에 유령처럼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표홀한 신법에 놀란 하후찬은 가슴이 철렁했다.
‘예사 도적 떼가 아니다!’
정체불명의 상대에게 압도당한 그는 고개를 뒤로 돌려 연적하부터 찾았다.
그사이 이풍이 산길을 막아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금인상방의 상단입니다! 그쪽은 누구신지요!”
정체불명의 무리 중에서 노인 하나가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흐흐흐. 알 것 없다. 너희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마. 가져온 짐을 두고 달아날지, 짐을 끌어안고 그 자리에서 죽을지, 골라라.”
하후찬은 당장이라도 달아나고 싶었지만 연적하를 믿고 버텼다.
“저는 호위대 대주인 태산검 하후찬입니다. 노선배님의 존성대명은 어떻게 되십니까? 혹 여러분이 어젯밤 팔달문의 흑검대를 죽였습니까?”
노인, 무정신마 한원요가 기이한 눈으로 하후찬을 보았다.
분명히 겁에 질린 얼굴인데 당장 달아나지 않고 도리어 따져 묻다니?
자신의 삶에서 저런 놈은 처음이다.
그 용기가 가상해 의문을 풀어 주기로 했다.
“어젯밤의 그놈들을 우리가 죽였냐고? 절반만 맞았다. 우리가 죽인 게 아니라 우리 중에 한 사람이 죽였다. 이제 그만 선택해라. 짐을 두고 가겠느냐? 죽겠느냐?”
하후찬이 막 뭐라고 답하려 할 때다.
정체불명의 무리 속에서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한 사람이 냉소를 날렸다.
“흥! 한원요. 너는 말이 너무 많아.”
동시에 하얀 검기가 하후찬의 목줄기로 날아갔다.
츠츠츠-.
번개처럼 파고드는 검기를 하후찬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눈만 부릅떴다.
절체절명의 순간, 하후찬의 뒤쪽에 서 한 줄기 검기가 대응하듯 날아왔다.
곧이어 두 개의 검기가 하후찬의 눈앞에서 마주쳤다.
파지직-.
뇌전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자신의 검기가 소멸하자 백면서생은 비호처럼 하후찬을 덮쳤다.
“극락왕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