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38
838회. 그 말을 전하라고 살려 준 거야
중년 남자, 파천대 대주 시산혈도 유해가 턱을 빳빳하게 세우고 말했다.
“관계가 있냐고? 그렇다면 어쩔 테냐?”
“다 죽는 거지.”
말을 마친 연적하가 홀연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흠칫 놀라 주위를 살피는 유해의 앞에 연적하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유해는 반사적으로 도를 뽑으려 했지만 연적하가 더 빨랐다.
그는 유해의 손을 눌러 발도(拔刀)를 막은 뒤, 손날로 유해의 목울대를 쳤다.
“캑!”
답답한 비명과 함께 유해가 뒤로 나뒹굴었다.
목뼈가 짓이겨진 그는 땅바닥에서 경련을 일으키다 이내 축 늘어졌다.
깜짝 놀란 열 명의 파천대 대원들이 일제히 자신의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마도단천문의 호법인 귀도비마 뇌공이 뜨악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녹림 출신의 성질 더러운 젊은 고수 정도로 알았는데 일격에 파천대 대주를 즉사시키다니!
“너는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
연적하가 심드렁한 눈으로 노인을 보았다.
심통보다 강해 보이니 평범한 내력을 가진 사람은 아니리라.
물론 그래도 죽는 건 마찬가지일 테지만.
“몰라. 왜? 알아야 해?”
“녹림의 총채주도 우리 앞에서 칼을 뽑지 못한다. 그런데 태상호법인 네가…….”
“모르나 본데. 총채주님도 나를 못 말려. 그런데 당신들 정체가 뭐야?”
연적하가 관심을 보이자 뇌공은 내심 안도했다.
‘그럼 그렇지.’
총채주도 못 말린다고 했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이제야 대화할 마음이 생겼느냐?”
뇌공은 살짝 뜸을 들였다.
마교의 이름을 쉽게 입에 올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화? 아닌데? 찾아가서 싹 다 죽이려고 물어보는 건데?”
연적하가 무심한 눈으로 노인을 보았다.
십두마병을 죽이고도 괴로워하던 과거를 떠올리면 믿기 어려운 변화다.
구주(九州)에서의 전쟁 경험으로 적을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진 것이다.
연적하의 호언(豪言)에 뇌공은 눈을 찌푸렸다.
마교의 이름을 듣고도 저럴지 궁금했지만 그건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호법이나 돼서 상대와 타협하기 위해 마교의 이름을 꺼낼 수는 없었다.
“실로 광오한 놈이로군. 네놈에게 그럴 능력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적하가 허공에서 천둔검을 꺼내 휘둘렀다.
쓰아아아-.
검기가 파도처럼 파천대를 향해 밀려갔다.
깜짝 놀란 뇌공은 어기충소의 신법으로 솟구쳐 검기의 파도를 피했다.
뒤늦게 파천대원들도 뛰어올랐지만 돌연 검기가 해일처럼 일어나 파천 대원들을 쓸어 버렸다.
열 명의 파천대원들은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육편(片)이 되어 흩어졌다.
검기가 변하는 광경을 본 뇌공은 그야말로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헉! 어찌 검기가…….’
한번 발출한 검기는 저런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
저건 마치 한 바가지의 물이 갑자기 강물로 변한 것과 같았다.
저 한 수만 봐도 자신은 연적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뇌공은 더욱더 높이 솟아오른 후에 천마행공의 신법으로 달아났다.
아래에서 노인을 올려다보고 있던 연적하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수직으로 치솟은 노인이 공중에서 방향을 틀더니 새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얼마 전 죽산에서 보았던 그 기묘한 신법이 떠올랐다.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게 꽤나 닮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늙은이를 놓아줄 마음은 없다.
“흥!”
연적하가 천둔검을 힘껏 던졌다.
쐐애액-.
파공성과 함께 천둔검이 뇌공을 향해 날아갔다.
뇌공은 이미 까마득히 먼 곳에 있었지만 연적하에게 그 정도 거리는 코앞과도 같았다.
한순간 천둔검이 뇌공의 어깨를 관통했다.
큰 충격을 받은 듯 유유히 날아가던 뇌공의 신형이 한차례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뇌공은 덜렁거리는 팔을 움켜잡고 계속해서 멀어져 갔다.
연적하는 노인의 앞으로 날아간 천둔검을 다시 불러들였다.
노인을 격살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에 노인에게 전음을 날렸다.
-늙은이가 속한 곳에 전해. 너희는 다 죽은 목숨이라고. 그 말을 전하라고 살려 준 거야.
갑자기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소리가 들려오자 뇌공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크윽! 어찌 인간이…….’
저건 인간이 아니다.
세상에 무신(武神)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 게다.
이 순간만큼은 이미 사망한 시산혈도 유해가 원망스러웠다.
그가 연적하의 의형제만 죽이지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주인 수라혈제 금언무가 아니라면 연적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하남성에서의 활동을 멈추게 해야 해.’
최소한 연적하가 남직례성으로 돌아갈 때까지만이라도 그래야 한다.
그러지 않고 그냥 방치했다가는 모두 연적하에게 죽임을 당할 게 분명했다.
***
하남성.
승현.
황가장.
늦은 밤.
황가장의 앞마당으로 한 인형이 뚝 떨어져 내렸다.
탑하(課河)에서 달아난 마도단천문의 호법 귀도비마 뇌공이었다.
그가 낸 인기척에 마도단천문의 고수들이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피칠갑을 한 그를 본 마도단전문의 고수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파천대와 함께 간 마교 육문의 호법이 저렇게 당했다니!
마도단천문의 고수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파천대는 보이지 않았다.
믿기지 않게도 뇌공이 유일한 생존자인 모양이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잠자리에 들었던 마도단천문의 문주 수라혈제 금언무가 마루로 나왔다.
그의 앞으로 다가간 뇌공이 머리를 조아렸다.
“문주님.”
“어찌 된 일이냐?”
금언무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한쪽 팔이 사라진 뇌공을 보니 파천대가 어떻게 됐는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탑하에서 연적하를 만났습니다. 파천대는 그가 날린 검기에 모두 죽임을 당했고, 저는 어검술에 한쪽 팔을 잃었습니다.”
뇌공은 수치심과 두려움에 이를 악물었다.
연적하의 검에 어깨를 관통당한 뒤 하루 동안 팔을 붙들고 달렸다. 하지만 마을 의원에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잘라 냈다.
“설마하니 연적하 한 놈에게 당했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순간 울컥한 금언무가 소리쳤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 천하십대고수라 할지라도 파천대를 몰살시킬 수는 없거늘!”
“…….”
뇌공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당사자인 자신도 믿어지지 않지만 사실인 걸 어쩌란 말인가.
한참 동안 뇌공을 노려보던 금언무의 입에서 맥 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놈의 무위가…… 소문보다 더 뛰어나더냐.”
“예. 놈은 허공에서 검을 꺼내 사용했습니다. 속하는 지금도 그것이 실제인지, 술법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상관이냐. 파천대를 격살할 정도로 강한 것이라면……. 그에 맞는 응대를 해야지. 놈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지금은 상단과 함께 개봉으로 가고 있습니다. 개봉 이후의 행선지는 아직 알려진 바 없습니다.”
“개봉이라.”
금언무가 곤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십대상방은 낙양, 정주, 개봉에 하나씩 있다.
그래서 마도단천문이 낙양, 명왕교가 정주, 무광곡성문이 개봉을 맡았다.
그러니 마도단천문이 개봉으로 가면 무광곡성문의 영역을 침범하게 된다.
마교 육문은 마교의 뿌리이자 기둥이지만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깥에서 만나면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을 냈다.
그러니 마도단천문이 개봉으로 가면 무광곡성문과 충돌하게 될 터였다.
누구보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 뇌공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개봉으로 가면 무광곡성문에서 싸움을 걸어올 것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무광곡성문에 복수를 맡기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뇌공은 명왕교는 아예 거론하지도 않았다.
명왕교 신장들의 무위로 연적하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다.
“무광곡성문에 연적하를 떠넘기자는 말이냐?”
“예, 어차피 연적하는 마교와 불구대천의 원수입니다. 제 의동생을 죽인 게 마교라는 걸 알면, 마교 이문을 찾아다닐 겁니다.”
“흥! 꼬리를 말고 숨어도 부족한데 마교 이문을 찾아다닐 거라고? 너는 그놈이 본교에 칼을 뽑아 들 거라고 생각하느냐?”
“놈은 벌써부터 천하제일인처럼 행동하니 그러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가만, 놈이 파천대와 너의 신분을 알고 있느냐?”
“아직은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광곡성문와 명왕교가 하남성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알아차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겁니다.”
“흐음!”
금언무의 입에서 묵직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생각해도 무광곡성문에 연적하를 떠넘기는 게 최선이었다.
파천대의 복수를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지만, 하남성에서 무광곡성문과 싸우는 것보다 그편이 백배 나았다.
“고생했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터이니 그만 쉬도록 해라.”
“예.”
뇌공이 지친 얼굴로 물러갔다.
금언무는 수하들에게 하남성에서의 활동을 접고 대기하라 명했다.
***
하남성.
정주.
정오 무렵.
금인상방의 상단이 정주에 들어섰다.
대규모 상단의 방문으로 겨울을 맞아 잠잠하던 도시가 활기를 띠었다.
등원용 대행수는 서안에서 가지고 온 물품을 상방에 팔거나 교환했다.
그동안 연적하는 객점에 머무르며 녹림으로부터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은 심통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낙양과 정주 일대의 하오문을 찾아다니며 공자님의 지시를 녹림에 전하라 했습니다. 개봉에 도착할 때쯤이면 어떤 놈들 짓인지 알게 될 겁니다.”
“수고했어.”
“그런데 오는 길에 탑하에서 놈들을 만나셨다면서요?”
“어, 열두 명이 길을 막고 있더라고. 다 죽이고 하나만 살려서 보내 줬어.”
“싸워 보면 대충 어떤 놈들인지 느낌이 오지 않습니까? 정파다 사파다 하는 식으로요.”
“아! 그 생각을 못 했네? 한방에 다 죽어 버리더라고.”
“잘하셨습니다. 어차피 공자님은 놈들과 손을 섞어도 못 알아볼 겁니다.”
“나만 그런 줄 알아? 심 노인도 그럴걸? 초식만 보고 내력을 대충 알아맞힐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아? 명문에서 백 년쯤 공부한 사람들이나 가능할걸?”
심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그건 명문 출신의 천하십대고수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지, 연적하처럼 무림사 전반에 대해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는 무리였다.
“참! 낙양에 계실 때 연가무관에는 찾아가 보셨습니까?”
“철산이 일 때문에 못 가 봤어.”
연가무관은 연무백이 낙양 인근의 맹진현 고성촌에 세운 무관이다.
지나는 길에 들르려 했지만 하필 철산에게 변고가 생겨 그러지 못했다.
“그러셨군요. 지난 이 년 동안 공자님에 대한 온갖 유언비어가 떠돌았을 테니 나중에라도 한번 들러 보십쇼. 미우니 고우니 해도 핏줄 아닙니까.”
“돌아가는 길에 들러 보자고. 내가 바쁜 일로 깜빡 잊으면 옆에서 말해 줘.”
“저는 점심이 되면 아침에 뭘 먹었는지도 모르는데요?”
“어떻게? 뼈에라도 새겨 줄까?”
“아닙니다. 어떻게든 기억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하오문을 들락거렸다면서 그놈들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
“없습니다. 하오문 놈들이 죄다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돈을 안 줘서 그러는 건지,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공자님의 지시를 녹림에 전하기나 하라고 했습니다.”
“얼마라도 손에 쥐어 주지 그랬어?”
“하아! 제 주머니 사정 아시지 않습니까? 저보다 개방의 거지들에게 돈이 더 많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