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39
839회. 이걸 좀 보아 주십시오
연적하와 심통이 모처럼 만에 노닥거리고 있을 때다.
낯선 얼굴의 청년 하나가 쭈뼛쭈뼛 다가오더니 꾸벅 머리를 조아렸다.
심통이 심드렁한 얼굴로 물었다.
“뭐 하는 놈이냐?”
“안녕하십니까? 저는 금선상방의 호위인 유달이라고 합니다. 풍 대주님에게 두 분에 대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풍 대주? 풍연초를 말하는 게냐?”
“예! 그렇습니다.”
청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풍연초와 같은 상방에서 일하는 인연으로 전설적인 고수들과 말을 섞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의형의 이름이 나오자 연적하가 관심을 보였다.
“유 형, 우리 풍 대형은 잘 지내요?”
“예! 잘 지내고 계십니다. 풍 대주님과 탁 대주님은 금선 상방을 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입니다.”
“탁 둘째 형도 대주가 됐어요?”
“예, 상단이 늘어난 만큼 호위대도 늘어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풍 대주님과 탁 대주님은 같이 일하려고 했지만, 새로 만들어진 호위대를 이끌 사람이 없어서요.”
“야아! 금선상방 잘나가나 보네요?”
“그래도 십대상방들에 비하면 아직 멀었습니다. 그들은 호위대가 못해도 다섯 개는 됩니다만, 저희 금선 상방은 세 개뿐이거든요.”
“가만, 풍 대형과 탁 둘째 형님도 정주에 있어요?”
“아닙니다. 저는 진 대주님의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풍 대주님과 탁 대주님은 다른 곳에 계실 겁니다.”
“아하!”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 개의 호위대가 있다고 하더니 풍연초나 탁고명의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십시오.”
어정쩡하게 서 있던 유달은 분위기가 감당이 안 됐던지 다시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런 그를 연적하가 불러 세웠다.
“유 형, 잠깐만요.”
“예?”
“금선상방의 상단은 몇 명이나 돼요?”
“짐마차 세 대에 짐꾼도 열 명 정도밖에 안됩니다.”
“작네요?”
금인상방에서 만든 상단의 규모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물론 금인상방이 연적하를 믿고 상단을 불려 그렇게 됐지만 말이다.
십대상방의 상단이 한번에 마차 수십 대를 운용하는 것에 비해도 아주 작았다.
“그래서 십대상방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고 한 것입니다. 호위대가 세 개라고 해도 상단이나 호위대 규모는 한참 부족하니까요.”
유달이 계면쩍은 얼굴을 했다.
사실 금선상방의 호위대가 세 개라고 해도 십대상방의 호위대 하나만도 못하다. 호위대의 숫자는 절반에 육박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요즘 도적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던데 괜찮아요?”
상단의 규모가 작을수록 도적들에게 더 피해를 보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데 유달의 대답은 달랐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같은 길을 오갔지만 어중이떠중이들만 만났습니다. 가끔 녹림의 도적들을 만났지만 통행세를 내고 지나갔고요. 녹림에서는 금선상방에 오봉십걸이 계시다고 대우를 해 주니까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래도 조심해요. 요즘 날뛰는 도적들은 호위대를 싹 다 죽이니까.”
“그, 그렇습니까? 그럼 저희가 운이 좋았던 거네요?”
유달이 불안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호위대를 싹 다 죽이는 도적들이라니?
자신들과 같이 호위대가 일곱에 불과한 상단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리라.
“참고로 우리는 서안에서 정주까지 그런 놈들을 두 번이나 만났어요.”
“헉! 두 번이나요?”
유달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런 끔찍한 도적들을 두 번이나 만났다니 놀라울 뿐이다.
황망한 얼굴로 서 있던 유달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돌아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던 심통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개봉에 해원상방도 있지 않습니까? 공자님의 누이가 있는 곳 말입니다.”
그제야 연적하는 까맣게 잊고 있던 배다른 누이 연설주를 떠올렸다.
“아! 그러네. 왜들 죄다 상방에 있는 거야?”
“돈벌이가 되니까 상방에 있지요. 당장 공자님과 저만 해도 상방의 일을 돕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네. 젠장.”
“해원상방에 말이라도 해 두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라고? 이상한 도적들이 기승을 부리니까 연설주는 호위로 돌리지 말라고? 그럼 그게 호위야?”
“그래도 이철산처럼 되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그러다 일이 생기면 어쩌시려고요?”
심통이 연적하를 빤히 보았다.
그와 배다른 형제들 간의 미묘한 긴장은 이제 많이 수그러든 상태였다.
정체를 감추고 연가무관에 찾아가 도움을 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지금 배다른 형제들에게 일이 생기면 이철산의 죽음보다 더한 충격을 받게 될 터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던가.
“일이 생기면 생기는 거지. 내가 연설주의 보호자도 아니고.”
말과 달리 연적하의 표정은 착잡했다.
아닌 게 아니라 연설주가 상단의 호위로 다니다 죽는 건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잊고 살다가 갑자기 챙겨 주는 것도 우스웠다.
연설주의 독립적인 성격상 그걸 좋게 받아들이지도 않을 게다.
“연 누이는 집에서 정한 혼처가 싫다고 가출까지 한 사람이야. 내가 해원상방에 손을 쓰면 고맙다고 할 것 같아? 아마 원수지간이 될걸?”
“그건 그렇네요. 참 나. 별 이상한 놈들 때문에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심통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구주에 가기 전에는 유명교가 극성이더니, 지금은 정체불명의 도적 떼가 기승을 부린다.
두 사람이 연설주의 문제를 두고 고민할 때다.
식당 문을 열고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무심코 입구 쪽을 보던 연적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때마침 연적하와 눈이 마주친 중년 남자가 반가운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연 대협. 그간 별래무양하셨습니까?”
남진무사 동유수가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청성산의 서촉관에서 만나고 두 달여 만에 다시 만나는 자리였다.
“동 대인? 어쩐 일이에요?”
“대협께 진 소기 부부의 일을 알려 드리려 찾아왔습니다.”
“아, 어떻게 됐어요?”
“진 소기 부부는 자택으로 귀가 조치했습니다. 진 소기도 다시 복귀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간 연 대협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지. 그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찾아 온 거예요?”
“의제(義弟)인 이 소협에게 일어난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삼가 조의(弔意)를 표합니다. 범인들이 누군지 조사하라고 하남성의 포방(捕房)에 공문을 내렸습니다.
뭐라도 나오면 대협께 즉시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알게 된 거 있어요?”
“상방을 조사해 보니 처음 시작은 호광성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호광성에서 하남성으로 점차 올라오고 있는 형국입니다. 황실에서는 도적들이 북직례성까지 진출하는 건 아닌지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 도적들이 녹림과 다르다는 건 알고 있죠?”
“물론입니다. 이 소협은 오봉십걸인데 녹림에서 그를 건드렸을 리가 있겠습니까.”
“대체 어떤 놈들인지 모르겠네요. 누군지만 알면 내가 쫓아가서 뿌리까지 싹 뽑아 버릴 텐데.”
“녹림에 명을 내리셨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관과 무림이 한뜻으로 찾고 있으니 조만간 정체가 드러날 겁니다. 이후라도 관부의 도움이나 조언이 필요하시면 아무 포방이나 가서 말씀만 하십시오. 포방에서 연 대협의 일을 최우선으로 처리해 드릴 겁니다.”
“내가 황실의 일을 돕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너무 후한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연 대협께서 하시는 일은 결과적으로 나라를 위한 일입니다. 관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돕는 게 당연하지요. 부담은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럴게요.”
연적하는 거절하지 않았다.
공짜라서가 아니라 언젠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심통이 불쑥 끼어들었다.
“동 형제. 개봉에 우리 연 공자님의 배다른 누이가 있다는 건 알고 있는가?”
“예, 연 소저가 해원상방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여 제가 도와 드릴 일이라도?”
“이철산의 일로 공자님께서 마음고생이 심하시네. 여기에 연설주까지 상행에 나갔다가 변을 당하면 어찌 되겠나. 우리는 당분간이라도 연설주를 상방에 눌러 앉히고 싶은데, 좋은 수가 있으면 말 좀 해 보게.”
“아! 연 소저를 상행에 나가지 못하게 해 달라는 말씀이시지요?”
“그렇네.”
“그 문제라면 제가 해원상방의 방주를 만나 조용히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상단이 아니라 해원상방 본점의 호위로 돌리면 될 것 같습니다.”
“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 역시 관인들은 그런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간다니까. 자네만 믿겠네. 참! 우리 공자님은 그 일과 관계가 없네. 그건 자네가 독단적으로 처리한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저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동유수가 시치미를 뚝 잡아뗐다.
사실 금의위 남진무사인 그에게 연설주의 보직을 바꾸는 건 누워서 떡 먹기였다.
***
하남성.
낙양.
맹진현 연가무관.
“……하여 연 관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길고 긴 이야기 끝에 금와상방의 행수 노규가 머리를 숙였다.
와룡검객 연무백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노규를 보았다.
맹진현에 연가무관을 연 지도 어언 삼 년.
그동안 수십 명의 제자를 가르쳤다.
그들 중에 몇은-다른 무관 출신들이 그러하듯-상방이나 표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지난해 자질이 뛰어난 제자 하나를 가르쳤는데, 운 좋게 십대상방인 금와상방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잊었는데 그 제자가 행수 하나를 데리고 찾아왔다.
그런데 노규라는 이름을 가진 행수가 그를 번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최근 하남성에 살육을 일삼는 도적이 들끓어 호위대를 꾸리기가 어렵다나?
본래 도적을 막으라고 있는 게 호위대인데 얼마나 악명이 높으면 모두가 사양할까!
정기적으로 남직례성에 가는 상단의 책임자가 노규인데, 연가무관 출신의 제자가 그곳에 있었던 모양이다.
자기 스승을 천하제일로 믿는 제자의 강력한 추천으로 노규가 연가무관까지 찾아온 것이다.
연무백은 쉽게 답하지 않았다.
과거 와룡장 시절에는 상방을 위해 일하기도 했지만 무관의 관주는 또 다르다.
제자를 육성할 사람이 상단의 호위라니?
그것도 호위대 내에서도 못하겠다고 발을 빼는 위험천만한 시국에?
아무리 생각해도 득보다는 실이 많은 자리였다.
그가 속으로 거절의 말을 준비할 때, 노규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관주님! 이걸 좀 보아 주십시오.”
말과 함께 노규가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무심코 종이를 집어 들고 읽던 연무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차용증?’
‘중원상방에 은자 오백 냥을 빌린다’는 글 아래에 작은 수결이 찍혀 있었다.
수결의 주인은 백미주.
차용증이 만들어진 날짜를 보니 사 년 전 궁장에 와룡장을 세울 때였다.
백가장의 도움으로 와룡장을 재건한 줄 알았는데, 중원상방의 돈도 끌어다 쓴 모양이다.
“연 관주님의 모친께서 작성한 것이지만, 와룡장의 이름으로 돈을 빌렸지요. 그리고 당시 와룡장의 주인은 연 관주님이셨습니다. 지금의 연가무관과 관계가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도의적으로 연 관주님께서 책임을 지시는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하아! 그래서요?”
“연 관주님께서 낙양에서 남직례성으로 가는 올겨울의 상행을 도와주 십시오. 그렇게만 해 주시다면 이 차용증을 넘겨 드리겠습니다.”
연무백은 갑자기 밀려오는 피로감에 눈을 감았다.
한마디로 무보수로 그 위험한 상단의 호위를 맡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어머니…….’
지금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소식조차 끊어진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