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48
848회. 삼살(三殺)의 율법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
연적하는 풍운비가 마음에 들었다.
눈빛은 맑고 얼굴도 밝은 게 죽은 의동생 이철산을 보는 것 같았다.
실제로 스무 살인 그는 이철산과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았다.
‘운비에게 소요종의 대라금나수와 일파장천(一派長天)의 검공을 가르쳐 볼까?’
이 정도는 돼야 나중에 심통의 경지를 넘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풍연초가 아는 건 약장수에게 배운 천지도법과 구천세법의 몇 가지 초식뿐이었다.
그 정도로는 심통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할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풍운비에게 먼저 대라금나수를 가르쳤다.
한 시진(2시간)쯤 가르치자 풍운비는 얼추 대라금나수의 공법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일파장천까지 가르치고 싶었지만 벌써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다.
“운비야.”
“예.”
“밤이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 끝내야 할 것 같다. 다음에 만나면 일파 장천이라는 검공을 가르쳐 주마. 그때까지 대라금나수를 완전히 익혀 두도록 해라.”
“예!”
풍운비는 연 숙부가 검공까지 가르쳐 준다니 좋아 죽을 것 같았다.
연적하는 풍운비의 어깨를 다독인 후에 돌아갔다.
들뜬 풍운비는 그 뒤로도 지쳐 움직이기 어려울 때까지 대라금나수를 연습했다.
***
다음 날.
아침 일찍 연적하와 풍연초는 금선상방으로 나갔다.
때마침 상방에 나와 있던 탁고명이 연적하와 풍연초를 보고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연 아우? 형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제저녁에 연 아우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너에게 사람을 보냈는데 집에 없다고 하더구나. 요즘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게냐?”
풍연초가 은근한 눈으로 탁고명을 보았다.
그러자 탁고명이 시선을 회피하며 대충 얼버무렸다.
“그런 거 없습니다. 어제는 부대주와 기루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쯧! 고명아. 너 그렇게 흥청망청 돈을 물 쓰듯 쓰면 혼인 못 한다.”
“어이쿠! 형님. 저에게 물 쓰듯 쓸 돈이 어디 있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나저나 연 아우. 이야기는 들었다. 도지휘사의 군대를 물리쳤다지? 장하다. 요즘 사람들이 입만 열면 연 아우 이야기뿐이다.”
“형님도 잘 지내셨어요? 저도 상단을 따라오느라 갑자기 오게 됐어요. 오늘 바로 무한으로 가야 돼요.”
“철산이 이야기는 들었다. 채연이에게 가는 거라면 나도 함께 갔으면 하는데.”
그러자 풍연초가 고개를 저었다.
“방주님이 대주가 둘씩이나 자리를 비우는 건 허락하지 않을 게다.”
“형님이 가시게요?”
“당연히 가야지.”
“끙! 방주님께 말이라도 해 볼게요. 혹시 압니까? 두 사람 다 다녀오라고 할지?”
풍연초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말았다.
어차피 자신이 아니라 방주가 결정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풍연초와 탁고명은 금선상방의 방주 금동신을 찾아갔다.
역시나 금동신은 두 명의 대주가 자리를 비우는 것에 난색을 표했다.
상방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인지라 탁고명도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결국 풍연초가 무한에 다녀오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대화가 마무리되자 금동신 방주와 풍연초, 탁고명은 연적하를 만나기 위해 객청으로 이동했다.
금동신 방주는 연적하를 보자마자 머리가 바닥에 닿을 듯 수그렸다.
“남천 대협! 누추한 곳에 찾아 주셨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금선상방의 방주인 금동신이라 합니다.”
연적하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저런 식의 인사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이제는 별 느낌도 없었다.
“별말씀을요.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나요?”
“두 분의 대주가 자리를 비우면 상방에 어려움이 있어 풍 대주만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고마워요. 혹시라도 풍 형님이 자리를 비운 동안 생긴 문제가 있다면……. 다녀와서 내가 싹 정리해 드릴게요.”
연적하가 그렇게까지 말해 주자 금동신은 입이 귀에 걸렸다.
이렇게 되면 풍연초의 빈자리가 오히려 상방이 커 갈 수 있는 기회였다.
연적하가 뒤를 봐주기로 했다는 걸 알게 되면 누구도 금선상방을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
이윽고 금동신 방주와 탁고명의 배웅 속에 연적하와 풍연초는 금선상방을 나섰다.
***
개봉 외곽.
인적이 드문 곳에 이르자 부지런히 걸어가던 연적하가 걸음을 멈췄다.
무심코 몇 걸음 앞서던 풍연초가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냐?”
“더 빨리 가려고요.”
이윽고 연적하는 운종술을 펼쳤다.
그의 발아래로 하얀 구름이 뭉글뭉글 뭉치기 시작했다.
“그, 그게 뭐냐?”
“운종술이라는 거예요. 구름을 타고 가면 금방 갈 수 있어요.”
이윽고 구름으로 걸어 들어간 연적하가 풍연초에게 손짓했다.
“큰형님도 오세요.”
“구, 구름을 타고 간다고?”
풍연초가 반신반의한 얼굴로 주춤주춤 연적하에게 다가갔다.
상방에서 ‘연적하가 구름을 타고 다닌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웃어 넘겼다.
아무리 연적하라고 해도 구름은 지나쳤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사람이 탈 수 있느냐?”
“얼른 타세요. 누가 보면 귀찮아져요.”
연적하의 재촉에 풍연초는 주춤주춤 구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의외로 구름은 부드러우면서도 견고했다.
이대로라면 하늘 위로 올라가도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막 그런 생각을 할 때 구름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늘 위로 둥실 떠올랐다.
“어? 어?”
처음 구름을 타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풍연초도 연적하를 붙잡았다.
“이 구름이 형님 몸을 잡아 주고 있으니까 나를 잡지 않아도 돼요.”
“그러냐?”
그제야 풍연초는 슬그머니 잡고 있던 연적하의 팔을 놓았다.
“어검비행과 비슷한 이치예요. 검이 몸에 착 달라붙듯 구름도 그래요.”
“아하!”
풍연초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어검비행은 단지 검 위에 사람이 올라타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는 균형을 잃고 금방 떨어질 수 있거든요. 진짜 어검비행은 검과 몸이 일체가 되는 거예요. 운종술도 그런 원리라고 생각하면 돼요.”
“대단하구나. 이런 건 어디에서 배웠느냐?”
“구주(九州)요.”
“아! 혹시 심 노인도 운종술을 배웠느냐?”
“심 노인은 배우지 못했지만, 설령 방법을 안다 해도 펼치지는 못해요.”
“그건 또 왜 그러느냐?”
“운종술은 내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내력이 이 세상에 속한 힘이라면, 영기는 이보다 상위 차원의 힘었다.
운종술은 그 영기를 필요로 했다.
풍연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연적하가 무당파에서 수련한 것을 알기에 술법의 일종이려니 생각했다.
‘하기야 신선들이 구름을 타고 다니는 그림도 있으니…….’
구름에 대해 어느정도 알게 되자 풍연초도 조금씩 여유를 되찾았다.
그때부터 그는 구름을 만져 보기도 하고, 심지어 입에 넣기까지 했다.
“크크큿! 큰형님, 그걸 왜 먹어요?”
“아니, 진짜 구름인지 궁금해서.”
“진짜 구름은 먹어 봤어요?”
“아! 그러네. 먹어 본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계면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던 풍연초는 구름 아래 세상으로 관심을 돌렸다.
구름은 말보다 몇 배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 아래로 산과 들이 보였지만 지형만 봐서는 어디쯤 왔는지 알기 어려웠다.
“적하야.”
“예?”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가는 거 맞지?”
“일단 남쪽으로 가는 중이에요. 어느 정도 갔다 싶으면 내려가서 물어 보려고요.”
“그래, 가급적 관도를 따라가도록 하자.”
그는 오봉산에서도 길을 잃고 헤매던 연적하를 떠올리고 바짝 긴장했다.
***
삼월 초.
하남성.
개봉 통허현.
마가장 안채.
정오 무렵, 무광곡성문의 문주 초혼귀마 요진갈은 총령(總領) 천산귀매를 불러들였다.
삼사십 대 나이로 보이는 미부(美婦)가 요진갈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부르셨습니까?”
“혈룡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느냐?”
잠시 곤혹스러운 얼굴로 요진갈을 보던 천산귀매의 입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문주님. 혈룡대는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만.”
“그런데?”
“가노하 인근에서 천지개벽할 싸움이 났었다는 소문이 개봉에 돌고 있습니다.”
“가노하 인근?”
“금인상방의 상단이 지나간 곳입니다.”
“허면 그곳에서 혈룡대와 연적하가 싸웠다는 말이냐?”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다?”
요진갈이 기막힌 얼굴로 천산귀매를 보았다.
매사에 철두철미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의 입에서 저런 막연한 소리라니?
천산귀매가 말을 이었다.
“시기적으로 볼 때 가노하에서 연적하와 싸운 상대는 혈룡대인 것 같습니다. 소문대로라면 혈룡대로부터 소식이 두절된 것도 당연합니다.”
“어떤 소문이기에?”
“정체불명의 도적들이 상단을 공격했으나……. 연적하의 검공에 모두 육편이 되었다고 합니다. 단 한 사람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조각났다고…….”
“그게 혈룡대다?”
“오늘날 강호에서 마교와 명왕교 외에 연적하를 대적하는 세력이 없으니까요.”
“너는 고작 한 사람이 혈룡대를 육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물론 소문에 불과하나 연적하는 청성산에서 이만이 넘는 군대를 단신으로 물리친 자입니다. 그자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가능성은 있다고 여겨집니다.”
“흐흐흐. 연적하라는 놈이 혈룡대를 육편으로 만들었다고? 우리 무광곡성문의 사람들을 죽였단 말이렷다?”
“송구하나 정황상 그런 것 같습니다.”
“크크크큿!”
요진갈은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천산귀매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갔다.
이윽고 요진갈의 웃음이 멈췄을 때 방 안은 섬뜩한 귀기(鬼氣)로 가득 찼다.
“우리 무광곡성문이 한 방울의 피를 흘리면 상대는 한 바가지의 피를 흘려야 마땅하다. 연적하와 놈의 상단은 어디에 있느냐?”
“개봉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새로운 세상이 오게 하려면 다 처죽여야 하는데 상방을 접수하자고 하다니? 너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무림의 패권 따위에 관심이 없다. 마교 육문이 왜 사파들 흉내를 낸단 말이냐? 그럼 무광곡성문의 조상신들께서 노하실 게다.”
“마도단천문과의 약조를 깨실 생각 이십니까?”
“약조보다 중한 것이 이 세상을 대하는 마교 육문의 근본 정신이다. 마교 육문에서 삼살(三殺)의 율법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
삼살은 첫째, 악인을 죽여라[惡人殺].
둘째, 선인을 죽여라[善人殺].
셋째, 배교자를 죽여라[背敎殺]다.
이 세 가지 율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냥 싹 다 죽여라’다.
“그런데 문주님.”
“뭐냐?”
요진갈이 살기 어린 눈으로 천산귀매를 보았다.
자신이 ‘삼살’을 앞세우겠다고 천명했는데 ‘그런데’ 라니?
아무리 총령이라도 그건 방자한 짓이었다.
천산귀매는 문주의 살기에 소름이 오싹 돋았지만 꾹 참고 말했다.
“연적하의 상단은 사천성 성도에서 서안, 낙양, 정주를 거쳐 개봉에 왔습니다. 어떻게 마도단천문과 명왕교의 구역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요?”
“…….”
한순간 요진갈이 내뿜던 살기가 사라졌다.
요진갈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 말에 담긴 뜻을 알 수 있었다.
마도단천문과 명왕교 역시 연적하를 죽이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