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49
849회.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초혼귀마 요진갈이 내뿜던 살기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강력한 의형살인의 기운에 한순간 마가장이 들썩거렸다.
그러나 다 죽어 가던 천산귀매의 얼굴에는 도리어 혈색이 돌았다.
조금 전까지의 그녀를 향하던 살기가 씻은 듯 사라진 까닭이다.
이윽고 감정을 가라앉힌 요진갈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마도단천문과 명왕교가 연적하와 만나지 않았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천산귀매는 고민하지도 않았다.
연적하가 속한 금인상방 상단의 규모를 생각할 때 그건 불가능하다.
마도단천문과 명왕교가 그걸 안 건드렸을 리 없다.
그럼에도 상단이 건재하다는 것은 마도단천문과 명왕교가 당했음을 의미한다.
“역시 그렇다고 봐야 하겠지?”
요진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도 자신처럼 상단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수하들을 보냈으리라.
십중팔구 결과마저도 동일했을 것이다.
마도단천문과 명왕교에 이어 무광곡성문까지 당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가노하에서 벌어진 싸움에 대해 더 들은 바가 있더냐?”
뒤늦게 요진갈은 가노하의 싸움에 관심을 보였다.
연적하의 무위를 추측하기 위해서다.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지만, 때로는 소문만큼 정확한 것도 없으니까.
“하늘에서 수십 개의 검이 떨어져 내려 정체불명의 도적들을 육편(肉片)으로 만들었다 합니다.”
“수십 개의 검이 떨어져 내려 사람들을 육편으로 만들었다?”
“예, 분명히 그리 들었습니다. 혹여 짚이는 검공이 있으십니까?”
“실제로 수십 개의 검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 검기(劍氣)나 검형(劍形)이겠지.”
“지켜본 사람들의 눈에 검으로 보였다고 했으니 검형이 아니었을까요?”
“흐음!”
요진갈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유형화된 ‘검기’도 까다로운 상대지만 그것이 ‘검형’이라면 더더욱 골칫거리다.
검형의 원천이 검강(劍罡)인 까닭이다.
하나의 검강을 발현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인데 수십 개를 자유자재로 부린다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고 연적하가 두렵지는 않았다.
그저 쉬운 상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마교 육문의 문주에게-그 정도 존재감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사건이었다.
분명 마도단천문의 문주도 지금의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싸우면 손해다.
연적하를 이겨 봐야 본전인 반면, 만에 하나 패할 경우 잃을 게 너무 많았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요진갈이 멈칫했다.
마교 육문의 문주인 자신이 ‘만에 하나 패할 경우’라는 걸 생각했다니?
그건 이성이 아니라 본능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사고(思考)다.
‘좋지 않아.’
고개를 젓던 그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연적하가 그의 의형제를 죽인 자들을 찾는다고 했더냐?”
“예.”
“그 일에 관계된 자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했다지?”
“말씀드리기 송구하나 그렇습니다.”
“의형제가 누구라고?”
“연적하의 의동생인 이철산이라는 애송이입니다.”
“우리가 죽였느냐?”
“아닙니다. 낭산에서 죽었다고 하니 마도단천문에 당한 것 같습니다.”
“마도단천문이 벌집을 건드렸군.”
“문주님,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요진갈이 고개를 끄덕였다.
답답하지만 지금은 마교 육문의 자존심만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혈룡대가 한 사람에게 몰살을 당했습니다. 무림사에 연적하와 같은 이는 아직 없었습니다. 그를 기존의 잣대로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솔직히’라고 했지만 천산귀매는 최대한 돌려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괜히 문주의 심기를 건드려 험한 꼴 당하고 싶지 않아서다.
다행히 요진갈은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본능적으로 이번 일이 간단하지 않음을 알고 있던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훗! 나로 하여금 무간혈주(無間而呪)를 쓰게 만들다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놈이야.”
천산귀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무간혈주란 문주의 피로 만드는 주문으로, 시공을 초월해 의사를 전달하는 술법이다.
무간혈주에 쓰이는 피는 그냥 피가 아니라 ‘법력의 극치’로 알려진 신혈(神血).
‘신혈’은 무인으로 치면 ‘선천지기’와도 같은 것이라 어지간한 일에는 쓰지 않았다.
‘교주님에게 알리시려나 보구나.’
하기야 천산에 사람을 보내 교지(敎旨)를 받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다.
“문주님께서 무간혈주를 쓰셨다는 게 알려지면 마교가 발칵 뒤집어질 것입니다.”
무간혈주는 수천 년 전 마교 내부에서 전쟁이 치열하던 때 몇 차례 등장했다.
당시 무광곡성문은 무간혈주로 큰 위기를 넘기고 마침내 육문(六門)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 뒤 무간혈주는 마교의 존립을 위협할 만한 일이 벌어질 때 사용됐다.
하지만 지난 수백 년간 무간혈주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니 요진갈의 무간혈주가 일으킬 파장은 실로 대단할 터였다.
“너는 무간혈주가 과하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연적하는 과거 마교가 만났던 어느 위험보다 클지 모릅니다.”
“연적하가 그 정도라고?”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천산귀매가 복잡한 눈으로 요진갈을 보았다.
사실 요진갈에게 하지 못한 말이 있다.
그것은 ‘연적하가 구름을 타고 하루에 천 리를 날아간다’는 것이다.
너무 허황되고, 자신도 반신반의하는 이야기라 언급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한편으로 마음에 걸렸다.
‘연적하가 정말 풍운조화의 경지에 올랐다면, 육문의 문주들은 그를 감당하지 못한다.’
마교 교주이자, 일곱 번째로 천자마(天子魔)의 위를 이은 단제산만이 가능할 것이다.
“평가에 박한 네가 그토록 그 애송이를 높게 보다니 의외로구나.”
“연적하가 칠파일문의 제자였다면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칠파일문에서 초월지경에 이른 자가 나온 예가 없었으니까요.”
그녀가 칠파일문을 낮추어 말하자 요진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칠파일문을 폄하하는 건 마교도에게 일상인지라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잠시 후 요진갈은 나직이 무간혈주의 주문을 외웠다.
그런 후 소지하고 있던 단검으로 검지 손가락 끝을 가볍게 그었다.
손가락에 피가 맺히자 허공을 종이 삼아 글자를 적어 나갔다.
놀랍게도 허공에 혈서가 떠올랐다.
요진갈은 마교 이문에 닥친 일을 소상히 적은 후 짤막하게 외쳤다.
“무간혈서신주 급급여율령 사바하[無間血書神呢 急急如律令 娑婆詞]!”
순간 허공에 떠올랐던 혈서가 눈부신 빛을 발했다.
환하게 밝았던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는 혈서도 남아 있지 않았다.
***
신강(新疆).
천산(天山).
용화궁.
무경을 읽던 마교 교주이자 칠 대 천자마인 단제산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디선가 익숙한 기운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응? 이건 요진갈의 기운인데?’
용화궁에서 하남성에 있는 요진갈의 기운이 느껴지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단제산이 눈을 찡그렸다.
착각이 아니었다.
확실히 용화궁에 무광곡성문 문주 요진갈의 기운이 점차 강해졌다.
그러더니 어느 한순간 눈앞에서 빛이 번쩍였다.
예기치 않은 상황이지만 단제산은 눈을 감지 않고 오히려 더욱 크게 떴다.
만에 하나 이게 상대의 암수라면 눈을 감으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빛이 사그라들자 허공에 혈서가 나타났다.
“무간혈주?”
단제산이 눈을 찌푸렸다.
강호를 손에 넣으라고 마교 이문을 보냈는데 일이 터진 모양이다.
그가 천천히 혈서를 읽어 나갔다.
놀랍게도 그가 읽은 글자들이 차례로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마지막까지 읽자 혈서도 모습을 감추었다.
“마교 이문이 녹림의 태상호법 연적하 한 사람에게 당했다고?”
만약 편지로 전해진 것이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광곡성문 문주가 직접 그의 신혈로 쓴 글이니 믿어야 했다.
황망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던 그가 나직이 말했다.
“탈혼마검을 불러라.”
“존명.”
용화궁의 어딘가에서 작지만 분명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로부터 일각(15분)쯤 지났을까?
동방 순찰사자 탈혼마검 노도경이 조용히 들어와 머리를 조아렸다.
“교주님. 부르셨습니까?”
“너에게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 오라 했다. 연적하와 명왕교까지 동행을 하였다지?”
“그랬습니다.”
“네 눈에 그의 무위가 마교 육문의 문주보다 위로 보이더냐?”
“아닙니다. 그의 무위가 대단한 것은 사실이나 상생(上生)의 범주에 들 정도였습니다.”
“천인(天人)이 아니라 상생이라고?”
예상 밖의 대답에 단제산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교는 신분제 사회다.
가장 위에 있는 것이 천인으로 교주와 육문의 문주가 이에 속한다.
그다음이 상생으로 원로와 장로들을 비롯한 사방사자, 칠대대주와 부대주다.
그 아래로 하생(下生)과 미생(未生)이 있다.
대부분의 마교도가 하생이라면, 미생은 입교 대기자들을 뜻한다.
그런데 무광곡성문의 문주인 요진갈이 무간혈주까지 써 가며 지원 요청을 한 상대가 상생이라니?
못해도 천인 급이라 생각하고 있던 단제산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노도경은 교주가 너무 황당해하자 서둘러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렇습니다. 천하십대고수라고 해 봐야 ‘상생’의 수준인데 연적하는 그보다 조금 못했습니다. 그러니 ‘상생’의 범주에 든다고 말씀 올렸던 것입니다.”
잠시 생각하던 단제산이 말했다.
“조금 전 무광곡성문의 문주로부터 무간혈주를 받았다. 그는 마도단천문과 명왕교, 무광곡성문이 연적하를 당해 내기 어렵다며 지원을 요청해 왔다. 너는 무광곡성문의 문주가 보낸 무간혈주의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
노도경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분명히 이 년 전에 자신이 만난 연적하는 천하십대고수의 아래였다.
이십 대 초반의 청년이 고작 이 년 만에 그렇게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아니, 육문의 문주가 지원 요청을 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 콧대 높은 늙은이가 지원을 요청했다고?’
신혈까지 소모해 가며 무간혈주를 보냈다면 거짓이나 과장은 아닐 게다.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던 노도경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교주님. 연적하의 무위는 이 년 전에도 그 나이 대에 이르지 못할 경지였습니다. 일반적인 잣대로 그를 판단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천인’에 이르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년 만에 ‘상생’에서 ‘천인’으로 올라가는 게 가능하다고?”
단제산의 음성에는 황당함과 노기가 뒤섞여 있었다.
설사 마교 육문의 사람이라 해도 그렇게 빠른 속도로 올라가지는 못한다.
그러니 노도경의 말은 연적하가 마교 육문의 사람들보다 뛰아나다는 소리였다.
그제야 ‘아차!’ 싶은 노도경이 얼른 말을 돌렸다.
“아닙니다. 속하가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실언을 했습니다. 저의 안목이 부족해 이 년 전에 잘못 보았을 수도 있음을 간과했습니다.”
“흥! 줏대 없는 놈. 동방사자나 되는 놈의 의견이 그처럼 오락가락해서야. 쯧!”
노도경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 들어가고 싶었다.
잔뜩 움츠러든 그를 한심한 눈으로 보던 단제산이 계속해서 말했다.
“생사불괴문(生死不怪門)과 천마대, 귀혼대, 수라대를 보내겠다. 그들과 함께 개봉으로 가서 연적하의 수급을 취하도록 해라.”
“존명!”
노도경은 격하게 허리를 접었다.
생사불괴문은 교주가 속한 문파로 마교 육문 중에 최강이다.
어디 그뿐인가!
천마대, 귀혼대, 수라대 역시 칠대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주의 직속인 흑룡대를 제외하면 마교의 난다 긴다 하는 고수가 총동원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