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57
857회. 정녕 천산에 가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마교를 심판하는 게 하늘의 뜻인 것 같아.”
연적하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마교도 앞에서 그 말은 불경의 극치였다.
탈혼마검 노도경은 한순간 말을 잊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경망스러움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마교 고수들 앞에서 저런 망발이라니!
기껏 생각해서 기회를 줬건만 그는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생사불괴문(生死不怪門)의 문주인 불사신마 단극진이 차갑게 말했다.
“탈혼마검. 저런 놈에게 입교를 권유하다니 네 눈도 썩었구나. 천산으로 돌아가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
노도경은 원망의 눈으로 연적하를 노려보았다.
마교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 알면서 저런 말로 자신까지도 위험에 처하게 만들다니!
“연적하! 내가 너를 잘못 보았구나! 쓸 만한 인재인 줄 알았는데, 개만도 못한 놈이었어! 오늘 너를 죽여 내가 지은 죄를 씻겠다!”
그러자 연적하가 냉소를 쳤다.
“흥! 뭐래? 당신이야말로 살고 싶으면 ‘마교’인지 ‘말교’인지를 떠나. 하늘의 뜻에 따라 마교부터 청소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이놈이 그래도!”
부들부들 떨던 노도경이 천마대, 귀혼대, 수라대를 힐끔 보았다.
솔직히 연적하와의 싸움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사불괴문의 문주 앞에서 천마대, 귀혼대, 수라대를 앞세우기도 눈치가 보였다.
연적하의 무위는 아직 마교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고작해야 무광곡성문과 마도단천문이 그의 척살에 실패했다는 정도가 전부다.
내키지 않았지만 그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자신이 밀리면 생사불괴문의 문주가 더 많은 인원을 투입할 터였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그는 그런 바람으로 생사불괴문 문주를 힐끔 보았다.
하지만 단극진의 표정은 냉랭해서 그 뜻을 알기가 어려웠다.
노도경은 이를 악물고 시선을 돌렸다.
입맛이 썼지만 그는 감히 단극진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했다.
자신의 신분은 상생(上生)이지만 육문의 문주는 천인(天人).
그의 말 한마디면 자결이라도 해야 하는 게 자신의 처지인 까닭이다.
연적하가 마지못해 나서는 노도경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안면이 있으니까 기회를 줄게. 당신이 내 일 초식이라도 받아 내면 살려 주지.”
“미친놈.”
노도경은 모멸감에 치를 떨었다.
마교도들 앞에서 동방사자가 저런 황당한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스르릉-.
노도경이 걸어가며 천천히 검을 뽑았다.
과거 탈혼십절로 그를 어쩌지 못했으니 탈혼십일절부터 십삼절까지 퍼부을 생각이다.
“차핫!”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날아오른 노도경은 탈혼십일절 검광만편(劍光萬 片)을 펼쳤다.
그의 검신에서 갈라져 나온 검영(劍影) 수십 개가 연적하를 향해 몰아쳐 갔다.
촤라라락-.
순간 연적하는 허공에서 천둔검을 꺼내 수평으로 길게 그었다.
고오오오-.
검 끝에서 일어난 반월형의 진검강이 검영을 향해 마주 나아갔다.
콰자자작-!
진검강에 검영이 터져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검영을 가루로 만든 진검강이 파도처럼 노도경에게 밀려갔다.
대경실색한 노도경은 코앞에 닥친 진검강을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쩌엉-!
검신이 부러지며, 그 반탄력에 노도경이 낙엽처럼 뒤로 날아갔다.
콰콰콰콰-.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방금까지 노도경이 서 있던 자리가 초토화됐다.
비칠거리며 일어나던 노도경이 기침과 함께 연신 피를 게워 냈다.
“쿨럭! 우욱! 우웨엑!”
피를 토하던 노도경은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철퍼덕 땅에 주저앉았다.
그런 그를 향해 불사신마 단극진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퍽-!’ 소리와 함께 노도경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이윽고 균형을 잃은 노도경의 상체가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연적하가 차가운 눈으로 백발의 노인을 보았다.
노도경과 같은 이를 망설이지 않고 죽인 걸 보면 꽤나 높은 신분인 모양이다.
“정 없는 늙은이네.”
“녹림의 태상호법이라고? 제법이구나. 그래 봐야 개가 호랑이에게 덤벼드는 꼴이지만.”
“늙은이야말로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 하지 말고 덤벼. 무서우면 떼거리로 와도 돼. 어차피 당신들 운명은 정해졌으니까.”
“흐흐흐. 패기 하나는 고금제일이로구나. 너와 같은 애송이에게 내가 직접 손을 쓸 것 같으냐? 누가 저놈의 머리를 나에게 가져올 테냐?”
단극진이 광오한 얼굴로 천마대, 귀혼대, 수라대를 쓸어 보았다.
누군가 나서서 처리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동방사자가 일검에 박살 난 것을 본 마교도들은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러자 연적하가 허공으로 걸어 올라가며 말했다.
“안 오면 내가 갈게. 천산검영이라는 수법인데 재주껏 살아 봐.”
그가 천둔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하늘에 ‘검의 화신(化身)’이 가득 찼다.
그것은 천백억(千百億) 개나 되는 ‘검의 화신’이었다.
하늘이 온통 검으로 가득 차자 마교도들은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을 본 단극진이 소리쳤다.
“환술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마라! 저것은 실재가 아니니 너희를 다치게 할 수 없다!”
그제야 소란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건 단극진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차라리 당면한 위협이라고 생각해 피했다면 혹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검의 화신’이 생사불괴문과 천마대, 귀혼대, 수라대 마인들 위로 떨어졌다.
콰콰콰콰쾅-!
‘검의 화신’에 직격당한 마교도들은 말 그대로 육편(肉片)이 되고 말았다.
단극진은 뒤늦게 하늘의 검들이 실재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늦었다.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육편이 되자 단극진은 ‘어헝!’ 소리와 함께 연적하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오 장(약 15미터)여 거리를 전진하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전히 하늘에서 비처럼 검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에 실린 힘이 어찌나 컸던지 정면으로 받았다가는 즉사할 것만 같았다.
그는 마치 미꾸라지처럼, 떨어져 내리는 검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연적하의 앞에 도달한 그는 필살기인 전륜마겁(轉輪魔劫)을 펼쳤다.
“죽어라!”
저 ‘하늘의 검’을 생각하면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그의 검 끝에서 ‘죽음을 부른다’는 생사불괴문 최강의 검강이 솟구쳤다.
시커멓게 빛나는 검강이 연적하에게 날아갔다.
슈아악-.
그걸 본 연적하가 반사적으로 검강을 쳐 냈다.
콰앙-!
묵직한 폭발음과 함께 수십 가닥으로 분열한 검강이 연적하를 덮쳤다.
퍼퍼퍼퍽-.
날카로운 파열음에 단극진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것은 전륜마겁의 수많은 검강이 연적하의 몸에 박히는 소리였다.
‘놈! 마침내 죽었구나!’
그러나 단극진의 미소는 얼마 가지 못했다.
검강에 난자당했어야 할 연적하가 너무도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너, 너는…….”
단극진이 황망한 얼굴로 연적하를 보았다.
전륜마겁은 호신강기도 찢어 버릴 만큼 강력한 강기다. 그래서 그가 당했음을 의심하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나 뭐? 재밌는 수법을 사용하네. 잘 봤어. 보답으로 나도 재밌는 걸 보여 줄게.”
천둔검의 ‘하늘과 땅을 포용한다[包羅天地]’는 단지 크기만 의미하지 않는다.
포라천지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에서 출발한다. 온 대지와 만법은 많음[多]이지만 하나[一]이다. 하지만 그게 꼭 크기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
예컨대 저 늙은이가 사용한 검강처럼 숫자도 늘릴 수 있을 터였다.
하나이지만 많음이 될 수도 있는 거다.
연적하가 ‘포라천지’를 떠올리며 천둔검을 던졌다.
차라라락-.
천둔검 수십 자루가 단극진을 향해 날아갔다.
깜짝 놀란 단극진은 미친 사람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검을 피했다.
하지만 수십 자루의 검은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붙었다.
단숨에 오십 장(약 150미터)을 날아간 단극진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게 화근이었다.
그가 멈칫한 그 찰나의 순간 몇 개의 천둔검들이 그의 몸에 박힌 것이다.
퍼퍼퍼퍽-.
마교 육문의 문주인 단극진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지상으로 추락했다.
쿠웅-.
때맞춰 비처럼 쏟아붓던 ‘검의 화신’이 멈췄다.
유일한 생존자인 천마대 대주 천산마룡 진궁이 부들부들 떨며 연적하를 보았다.
자신에게만 검이 떨어지지 않은 걸 보면 의도적으로 살려 준 게 틀림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적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야?”
“나, 나는 천마대 대주요.”
전설적인 마교 천마대의 대주답지 않게 진궁은 말을 더듬었다.
“이름은?”
“……진궁이라 합니다.”
조금 진정이 되자 진궁은 연적하에게 존대를 썼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연적하가 손을 까닥였다.
“심 노인.”
“예!”
마부와 함께 있던 심통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오늘부터 심 노인이 진궁을 맡아. 마교에 찾아갈 때 길 안내를 해 줄 사람이니까 잃어버리면 안 돼.”
“알겠습니다. 그런데 마교는 언제 가시게요?”
“석경장에 갔다가 바로.”
“어이쿠! 꽤 오래 끌고 다녀야겠는데요?”
“왜? 자신 없어?”
“그럴 리가요. 제깟 놈이 튀어야 벼룩이지요.”
말과 함께 심통이 손가락으로 진궁의 단전 부위를 꾹꾹 눌렀다.
내력을 봉한 것이다.
말로는 ‘튀어야 벼룩’이라고 했지만 어지간히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암암리에 내력을 운기하던 진궁의 얼굴이 굳었다.
‘틀렸다. 내력이 움직이질 않는구나. 구천노도의 무위가 칠파일문의 장문인들에 비견된다고 하더니……. 과연! 신묘한 점혈술이다.’
속으로 탄식하던 진궁이 슬쩍 운을 띄웠다.
“남천 대협. 정녕 천산에 가실 생각이십니까?”
“왜? 안내하기 싫어? 그럼 우리도 굳이 데리고 다닐 필요가 없는데.”
연적하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에 진궁은 흠칫했다.
그것은 마교에 입문한 뒤로 처음 받아 보는 생명의 위협이었다.
“우리 교주님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신 분이십니다. 남천 대협의 무위가 뛰어나지만, 그래도 천산에 찾아가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이쯤에서 그만 은원을 정리하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진궁은 슬쩍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연적하가 마교를 찾아 싸움을 건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 반대다.
마교에서 열심히 그를 쫓아 이 지경에 이르렀다.
자신들은 마치 불나방처럼 굳이 그를 찾아가 하나뿐인 목숨을 바쳤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떠본 것이다.
만약 그가 받아들인다면 어떻게든 교주를 설득해 이 싸움을 끝낼 생각이었다.
뜻밖의 제안에 연적하가 진궁을 빤히 보았다.
눈빛을 보니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아무 말이나 던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팔방에 핏물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다.
진궁을 앞세워 천산에 찾아가면 이보다 더한 피를 봐야 할 게다.
그렇지 않아도 귀가 얇은데, 마음마저 여린 연적하는 진궁의 말에 흔들렸다.
‘그래, 뭐 좋은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