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60
860회. 완전체가 됐을 거야
남궁연은 착잡한 표정으로 불이문(不二門)을 내려놓았다.
강호로 돌아온 뒤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왕들의 하늘[梵天欲界王在天]’과 관계된 것들이 현세에 남아 있는 것을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하기야 생각해 보면 유명교주의 술법도 아직 현세에 남아 있었다.
물론 이제 ‘왕들의 하늘’로 보내지면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렇다 할지라도 현세와 ‘왕들의 하늘’간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이문’과 ‘귀신 들린 소녀’의 말이 그 방증이다.
“그 여자아이가 했다는 말이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곳이 어디겠어요?’가 맞니?”
“맞아요. 그렇게 말했어요. 그건 혹시 구주(九州)를 뜻하는 걸까요?”
“그런 것 같아.”
“헉! 그 귀신이 구주에서 온 거예요?”
“그건 아닐 거야. 내 생각에는 구전범천이 불이문을 통해 현세에 그 말을 전한 것 같아. 구전범천이 현세의 뭔가를 통해 그 말을 하게 한 거지.”
“현세의 뭔가라는 건 귀신이죠?”
“글쎄. 귀신인지 다른 영적인 존재인지, 혹은 구전범천의 일부인지는 모르지. 우리가 이 세상의, 아니 우주의 모든 법칙을 다 아는 건 아니니까.”
“모든 것을 다 알 것 같은 누님이 그런 소리를 하니까 조금 이상하네요. 여하튼 그 귀신이 구주에서 온 게 아니라는 거죠?”
연적하는 그냥 뭉뚱그려서 귀신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의 상식에서 남궁연이 말한 존재는 귀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 같아.”
“귀신이 구주에서 온 게 아니다. 그거로 끝이에요?”
“아니, 구전범천이 전하려는 말은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면 뭔데요?”
“구전범천은 두 가지를 전하려고 했어. 하나는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
“그리고요?”
“두 번째는 그곳이 어디겠는가? 하는 질문이야.”
“그러니까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 그곳이 어디냐? 같은 소리 아니에요?”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곳이 어디냐?’라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구주’라는 답이 나온다.
하지만 남궁연의 생각은 달랐다.
“불이문의 대화록이 가르치는 것은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야.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여자아이가 한 질문의 답은 ‘구주’지.”
“그것으로 끝이 아닌가요?”
남궁연이 고개를 저었다.
“유명교주가 술법을 썼을 때, 나를 대신해 넘어온 게 금사(金莎), 우샤스 킨샤사라고 했지?”
“네.”
“그럼, 너를 대신해서 온 존재도 있을 테지?”
“아마도요?”
연적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알 듯 말 듯 했지만-본능적인 거부감에-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 봐. 범천욕계에서 너는 금사를 만났지?”
“그랬죠.”
“현세에 금사가 넘어왔는데, 어떻게 범천욕계에 ‘금사’가 있었을까?”
“그러게요? 분신술이라도 썼나?”
“범천욕계에서 우샤스 킨샤사는 신적인 존재였어. 돌이켜 보면 신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지. 어쩌면 신격(神格)의 일부가 현세로 온 건지도 몰라.”
“범천욕계에 있는 금사의 일부가 현세로 넘어왔다고요?”
“그것 외에는 둘이 같은 이름을 쓸 이유가 없어. 더구나 나와 등가교환(等價交換)이 된 거잖아. 그렇다면 우샤스 킨샤사 정도는 돼야 할 거야.”
가만히 듣고 있던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연은 현세는 물론 구주에서도 아주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너를 대신해서도 신적인 존재가 넘어왔을 거야. 나를 대신해서 ‘군주’가 넘어왔으니, 너를 대신해서는 ‘팔왕 중에 하나’가 넘어왔을 수도 있어.”
“그렇겠죠?”
연적하는 내심 뜨끔했다.
자신의 고집으로 현세에 극단적으로 뒤틀린 욕망을 가진 신이 넘어온 까닭이다.
“‘팔왕 중에 하나’도 금사처럼 신격의 일부가 넘어왔을 거야. 그런데 범천욕계에서 네가 우샤스 킨샤사와 여러 신좌들을 죽였잖아?”
“그랬죠.”
“그 죽음 중에는 현세로 넘어온 ‘팔왕’ 중에 하나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어.”
“그렇겠죠?”
“범천욕계의 존재는 죽어서도 범천욕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했지?”
“네. 마신이 그렇게 말했어요.”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금사’와 ‘팔왕 중에 하나’를 두고 한 말인지도 몰라.”
“범천욕계에서 죽은 ‘금사’와 ‘팔왕 중에 하나’가 현세의 그것들과 하나가 됐다는 소리예요?”
“‘불이문’에 의하면 그래. 그게 사실이라면 ‘금사’와 ‘팔왕 중에 하나’는 현세에서 완전체가 됐을 거야.”
“마신이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요?”
“그건 아닐 거야. 아직 ‘금사’와 ‘팔왕 중에 하나’가 완전하게 죽은 건 아니니까.”
“아하! 현세에서 완전체가 죽으면 그들의 영혼이 범천욕계로 돌아갈 거라는 거죠?”
“마신의 말이 맞다면 그렇게 될 거야.”
“구주에서는 ‘금사’와 ‘팔왕 중에 하나’가 완전하지 않았다는 거네요?”
“신격이 나뉜 상태였을 테니까.”
“허! 기가 막히네요.”
연적하는 황당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나누어졌던 신격이 현세에서 다시 하나가 되다니?
구주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남궁연의 말이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구주에서 그들을 죽였다고 방심하지는 마. 완전체가 되었으니 그때와는 다를 거야.”
“그래 봤자 구천검령의 상대는 안 될 거예요. 가만? 그것들이 현세에서 하나가 됐다고 했죠?”
“응.”
“그럼 우리가 현세로 돌아왔다는 것도 알고 있겠네요?”
“소문을 들었다면 알겠지.”
“유명교주와 함께 황제를 만났다는 천외이선이 그들이겠죠?”
“그럴 거야.”
“금군이 당했다는 것도 이해가 되네요. 결국 그들이 황궁을 손에 넣은 거네요? 유명교주 하나 때문에 아주 나라가 뒤집혀 버렸네.”
연적하는 혀를 내둘렀다.
황궁이라는 구중심처에서 일어난 일이라 백성들이 알지 못해 다행이다. 만약 백성들이 알게 된다면 천하가 혼란에 빠지고 말 게다.
“황제가 도지휘사의 군대를 물리친 너에게 오히려 ‘천외검선’이라는 별호를 내려준 건, 그만큼 그의 자리가 위태롭다는 뜻이기도 해.”
“천외이선들의 신격이 하나로 모였다면……. 나에 대해서도 잘 알겠네요?”
“금인상방의 상단과 타강(陀江)을 건널 때 이상한 일이 있었다고 했지?”
“예. 상단이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데 갑자기 녹아서 난리가 났었어요.”
“그건 어쩌면 천외이선들이 벌인 짓인지도 몰라.”
“왜요?”
“네가 정말 현세로 넘어왔는지, 무위는 여전한지 알고 싶었을 거야.”
“흐음!”
연적하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돌이켜 보니 강 한복판에서 갑자기 날씨가 더워진 게 이상하기는 했다.
“그러다 네가 천둔검으로 활약하는 걸 보고 조용히 떠났을 테지.”
“내가 영기의 사용에 제약을 받았다면……. 모습을 드러냈겠죠?”
“당연히.”
남궁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구천현녀에게 ‘보증의 징표’를 받지 못했다면, 영기를 쓰지 못해 죽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낸 날들 속에 이렇듯 생사의 고비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와아! 아슬아슬했네요. 부산현에서 미친 노인네를 만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네.”
연적하 역시 뒤늦게 호들갑을 떨었다.
노인에게 접신(接神)한 태일신(太一神)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영기를 쓰지 못했을 터였다.
그랬다면 그날 얼어붙은 타강에서 생을 마감했으리라.
팔이 뻐근해지자 연적하는 안고 있던 아기를 침상 위에 조심조심 내려놓았다.
“황궁에는 언제쯤 갈 생각이니?”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당장은 누님과 아기 옆에 진득하니 있고 싶어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낭인처럼 강호를 떠돌아다니는 게 이젠 좀 지겹네요. 누님 생각은 어때요? 내가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당분간은 마교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보는 게 나을 것 같아. 황실에서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네가 없는 동안 마교가 석경장을 노릴 수도 있거든.”
“천마대 대주는 자기가 교주를 설득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던데.”
“그건 그의 생각일 뿐이야. 지금까지 마교 교주들은 모두 독단적이었어. 마교에서는 강자의 말이 곧 법이자 진리야. 천자마 단제산은 그런 분위기에서 살아온 사람이라 수하의 말에 따르지 않을 거야.”
“단제산의 별호가 ‘천자마’예요?”
“사실 마교도들에게 ‘천자마’는 신앙의 대상이야. 그래서 입신의 경지에 든 최고 고수에게 ‘천자마’나 ‘천마’라는 별호를 붙여 주지. 단제산은 마교 역사상 일곱 번째로 그 칭호를 받은 사람이야.”
“범천욕계에 있던 그 천자마는 아니겠죠?”
“그야 모르지. 마교의 가르침 중 외부에 알려진 건 극히 일부분이라.”
“마교에서 범천욕계의 마왕 천자마를 섬기는 거면 진짜 웃기겠다.”
연적하의 얼굴에 얄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이 마왕 천자마를 죽였다는 걸 마교 교주가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
사월 말.
신강(新疆).
천산(天山).
용화궁.
마교 교주 천자마 단제산이 황당한 얼굴로 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연적하의 목을 가져오라고 생사불괴문과 천마대, 귀혼대, 수라대를 보냈는데 천마대 대주만 홀로 돌아와 기가 막힌 소리를 하고 있었다.
“뭐라? 내가 일백오십 명의 본교 고수들이 일검에 죽었다는 해괴한 소리를 믿을 것 같으냐?”
그러자 천마대 대주 천산마룡 진궁이 부복(府伏)하며 말했다.
“속하가 어찌 교주님께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생사불괴문의 단 문주님을 포함해, 천마대, 귀혼대, 수라대의 일백오십 명은 연적하의 일검에…….”
“닥쳐라!”
“…….”
“이제 보니 네놈이 연적하의 사술에 당했구나!”
말과 함께 단제산이 손을 뻗었다.
순간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던 진궁의 몸이 단제산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진궁의 머리를 거칠게 움켜잡은 단제산은 천마안(天魔眼)을 펼쳤다.
술법에 능한 연적하가 진궁의 머리통에 무슨 수작을 부렸나 확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머리 어디에도 술법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내친김에 내력으로 머리통을 휘저었지만 외부에서 침입한 이질적인 기운도 없었다.
‘정말 일검에 일백오십 명을 죽였다고?’
그건 자신이라 해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천외천의 검공이었다.
생사불괴문의 문주인 불사신마 단극진은 자신도 십 초 이상 싸워야 제압이 가능한 절대고수다.
그런 고수를 일검에 격살하다니?
고금을 통틀어 무림사에 그런 고수는 없었다.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자 단제산은 신경질적으로 손을 휘저었다.
진궁의 몸이 대전 바닥에 ‘철퍼덕!’ 떨어졌다.
교주의 내력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바람에 진궁은 바로 일어나지도 못했다.
진궁이 허우적거리자 교주의 친위대 중에 하나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진궁은 살아 보겠다고 교주의 친위대에게 매달렸다.
후들거리는 그의 하체를 힐끔 본 귀검 진여락이 속삭이듯 말했다.
“진 대주. 정신 차리시오.”
그것이 그가 진궁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진여락은 휘청거리는 그를 남겨 두고 유령처럼 대전에서 사라졌다.
단 위의 돌의자[石座]에 앉은 단제산이 살기등등한 눈으로 진궁을 노려보았다.
진위 여부를 떠나 알아낼 건 다 알아냈으니 이젠 사람 구실 못하게 된 진궁을 치워야 했다.
그를 방치해 분란의 근원지가 되게 할 수는 없었다.
교주의 심기를 파악한 친위대 대주 혈우검 단손익이 진궁의 뒤에 나타났다.
“교주님께 예를 갖추지 않으면 죽는다!”
말과 함께 단손익은 비틀거리는 진궁의 목을 부러뜨린 뒤 어깨에 둘러 업고 나갔다.
그제야 단제산은 얼굴을 펴고 돌의자의 손잡이를 손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생사불괴문과 세 개 대 일백오십 명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겠으나 열 배, 백 배로 복수하지 않으면 강호인들이 마교를 비웃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