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68
868회.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로군
연적하와 좌신양이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총관의 안내가 끝났다.
그 뒤로 마치 부잣집 회갑연 같은 연회가 벌어졌다.
천막마다 상이 차려진 것은 물론 악사와 무희까지 동원되어 흥을 돋웠다.
선상 생활을 하던 연적하 일행은 만사 접어 두고 요리를 즐겼다.
양의문의 일대제자 좌신양은 기막힌 얼굴로 젊은 부부 가족들을 힐끔거렸다.
조금 전까지 대역죄가 될 수도 있는 심각한 소리를 늘어놓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먹자판이다.
저건 누가 봐도 공짜 음식을 얻어 먹기 위해 서가장에 온 뜨내기들의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헛소리였나?’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좌신양에게 이대제자 호열이 술잔을 내밀었다.
“한잔하시지요. 스승님이 좋아하시는 검남춘(劍南春)입니다.”
“검남춘이라고? 어쩐지 향이 진하더라니.”
좌신양이 못 이기는 척 술잔을 받아 들이켰다.
이윽고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에게 호열이 물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누굽니까? 아까부터 함께 말씀을 나누시던데.”
“저 사람들?”
옆으로 고개를 돌리던 좌신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자기소개만 했지 저들의 이름을 아직 듣지 못했다.
‘아니 모르는 게 나은 건지도.’
저들은 대역죄인이 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자신이니까 그냥 넘어갔지 다른 사람이라면 포방(捕房)에 신고를 하고도 남았다.
“모르는 사람들이다.”
“아, 예…….”
호열은 스승이 대답을 꺼린다고 생각해 더 묻지 않았다.
그런 호열에게 좌신양이 노파심에 한마디 덧붙였다.
“좀 이상한 사람들이니 너도 저들을 가까이하지 않도록 해라.”
“……예.”
호열이 곁눈질로 젊은 부부와 그 가족들을 보았다.
확실히 이상하기는 하다.
아기를 안고 있는 아름다운 여자와 평범한 남자, 노인 둘에 귀여운 소녀 둘.
얼핏 대가족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그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뭐지?’
어떤 관계인지 궁금하지만 스승의 당부가 있으니 확인해 볼 수도 없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저 기괴한 대가족의 일을 머릿속에서 털어 냈다.
식사를 마친 연적하 일행은 서가장을 떠났다.
연회 자리를 지키고 있어 봐야 얻을 게 없으니 밖으로 나가 쉬려는 것이다.
연적하는 서가장에서 멀지 않은 언덕에 천막을 꺼냈다.
그가 허공에서 잇달아 침구류 등을 꺼내자 당운망이 황망한 얼굴로 물었다.
“장주님. 그것도 오룡궁의 술법입니까?”
“이건 ‘마하담’이라고 구주의 술법이야.”
“그 안에 물건이 들어 있는 겁니까? 아니면 만들어 내시는 겁니까?”
“신(神)도 아닌데 내가 무슨 수로 물건을 만들어? 노숙에 필요한 도구들을 넣어 놨었어.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아! 그러셨군요. 그 술법을 다른 사람도 배울 수 있습니까?”
“배울 수는 있는데 쓰지는 못할 거야. 누님, 여기 앉아서 쉬어요.”
연적하가 커다란 의자 하나를 꺼내 남궁연의 뒤에 놓아 주었다.
“고마워.”
의자에 앉은 남궁연은 배가 고파 보채는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당운망은 술법에 욕심이 나는지 연적하의 주위를 맴돌며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다른 사람은 왜 쓰지 못합니까?”
“이 술법을 쓰려면 영기(靈氣)가 필요한데, 이 세상에는 허락되지 않은 기운이야.”
“아! 법력이 아니라 영기가 필요하다는 겁니까?”
“뭐 간단히 말하면 그래.”
물론 그전에 원영지체를 이루어야 하지만 현세에서 불가능한 일이라 생략했다.
“그런 기운을 장주님은 쓰실 수가 있는 거고요?”
“구천현녀가 보증을 해 줘서 현세를 주관하는 신이 눈감아 준 거야.”
“예에?”
당운망이 황당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의 생각에 허공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보다 지금의 이야기가 더 기이했다.
연적하는 의자 하나를 더 꺼내 남궁연 옆에 나란히 놓은 뒤 당운망을 향해 돌아섰다.
“이거 보여?”
연적하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쓸어 올린 뒤, 영기를 끌어 올렸다.
순간 그의 이마 한가운데 기이한 문양이 떠올랐다.
다시 영기를 푼 연적하가 넋 나간 얼굴로 서 있는 당운망에게 말했다.
“이게 보증의 징표야. 누님도 마하담의 술법을 배웠지만, 영기를 금제 당해서 쓰질 못해. 그래서 배울 수는 있겠지만 쓰지 못한다고 한 거야.”
“누가 영기를 금제한 겁니까?”
“현세를 주관하는 신.”
곧이어 연적하는 의자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뒤 눈을 감았다.
눈을 끔벅이며 서 있는 당운망에게 심통이 손짓했다.
“당가야. 공자님 귀찮게 하지 말고 이리 오거라. 우형(愚兄)이 설명해 주마.”
자칭 ‘형’이라는 말에 당운망은 ‘울컥!’했지만 설명이 듣고 싶어 꾹 참고 다가갔다.
월아와 금아도 귀를 쫑긋 세우고 스승의 입에 주목했다.
심통은 현세와 구주의 차이를 가르쳐 주고 청성산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날 구천현녀가 보증을 해서 공자님이 영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 말이다.”
심통의 설명에 당운망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현세가 감당하지 못할 신적인 능력이라면 봉인하는 게 맞았다.
당운망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장주님은 정말 신인(神人)이 되셨구나.”
“미련한 놈. 그걸 이제야 알았느냐?”
당운망은 큰 충격을 받았는지 심통의 욕설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월아와 금아가 선망의 눈으로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사조(師祖)의 무위가 천하제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
그날 밤.
연적하는 느지막이 천막을 나섰다.
천막 밖에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심통과 당운망이 쪼르르 달려왔다.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당운망을 보며 물었다.
“당 노인은 왜?”
“저도 석경장의 일원이니 장주님을 모셔야지요.”
“됐어. 당 노인은 천막이나 지켜.”
“심가는요?”
“심 노인?”
“너무 심가만 데리고 다니는 게 아니신가 해서 말입니다.”
“좋은 데 다니는 것도 아닌데 뭘. 따라가 봐야 고생길이니까 부러워하지 마.”
정곡을 찔린 당운망은 머쓱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의기소침한 그의 모습에 연적하는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당 노인.”
“예.”
“혹시 모르니까 천막 부근에 뭐 좀 뿌려 놔. 아기가 놀라면 안 되잖아.”
연적하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당운망을 보았다.
남궁연의 무공을 생각하면 별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그제야 당운망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예!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 못 하게 하겠습니다.”
“수고해.”
연적하가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당운망을 스쳐 지나던 심통이 고까운 얼굴로 말했다.
“물귀신 같은 늙은이. 분수를 모르고 어딜 나대? 천막이나 잘 지키고 있거라. 행여나 아기가 놀라서 울기라도 하면 경을 칠 줄 알아.”
“지랄. 네놈이나 장주님 발목 잡지 말고 잘해. 누구한테 훈계질이야?”
심통은 뭐라고 한마디 더 하려다가 연적하가 휙 사라지자 부리나케 달려갔다.
***
서가장 내원.
해시 정(오후 10시) 무렵.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일찌감치 잠이 들었던 좌신양은 몸이 흔들리자 힘겹게 눈을 떴다.
“무슨 일이냐?”
어둠 속에서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아저씨. 일어나요.”
“…….”
아저씨 소리에 좌신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낮에 잠깐 만났던 그 사내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너는?”
“인신 공양 보고 싶다면서요? 얼른 따라와요.”
인신 공양 소리에 좌신양은 벌떡 일어났다.
양의문 제자들은 외부인이 잠자리까지 침입한 것도 모르고 깊게 잠들어 있었다.
“어떻게 나를 찾았나?”
“그게 뭐 어렵다고 그래요? 따라오기나 해요.”
연적하가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그가 방문을 열고 오락가락하는 데도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이놈들은 이렇게 잠귀가 어두운가?’
좌신양은 양의문 제자들의 무딘 감각을 욕하며 사내의 뒤를 따라 나갔다.
마당에는 염소수염의 노인이 달빛 아래 서 있었다.
그런데 그 기세가 웅위하고 장엄해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좌신양이 엉겁결에 염소수염의 노인에게 묵례하자 노인이 ‘흥!’ 하고 냉소를 쳤다.
“호랑이 굴에서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잠을 자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로군.”
노인의 비난에 좌신양은 양의문도들을 대신해 변명했다.
“호랑이 굴이라니요. 고관대작은 물론 무림의 명망 있는 인사들까지 죄다 모여 있는데.”
“쯧쯧! 뚫린 입이라고 마음대로 놀리는구나.”
혀를 차던 심통이 연적하에게 다가갔다.
“공자님. 어디로 가야 합니까?”
주위를 휘휘 둘러보던 연적하가 전각 지붕 위로 훌쩍 날아올랐다.
심통이 지체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랐다.
좌신양은 사내와 노인의 표홀한 신법에 잠시 놀랐지만 이내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젊은 사내는 기왓장 위에 드러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나에게 뭘 보여 준다고 하지 않았나?”
연적하가 고개를 살짝 틀어 좌신양을 보며 말했다.
“이제 슬슬 사람들이 모이고 있으니까, 잠깐만 기다려 봐요. 일찍 가서 줄이라도 서 있게요?”
“험, 그런데 서가장에 내통하는 사람이라도 있는가?”
“왜요?”
“우리 양의문의 숙소를 찾아온 것도 그렇고……. 그 인신 공양이라는 것도 서가장 내부의 조력자가 없다면 알기 어려운 일 아닌가. 물론 그걸 믿는다는 것은 아닐세만.”
노련한 좌신양은 빠져나갈 여지를 남겨 두었다.
그의 그런 태도에 피식 웃던 연적하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이제 시작하려나 보네요. 가죠.”
말과 함께 연적하가 좌신양의 허리를 붙잡았다.
깜짝 놀란 좌신양이 그를 밀쳐냈지만 그는 마치 바위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두 사람의 몸이 밤하늘을 가르며 안쪽으로 날아갔다.
‘헉!’
좌신양의 입이 쩍 벌어졌다.
오 장(약 15미터)쯤 아래에 있는 전각 지붕들을 보니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연신 얼굴에 부딪혀 오는 차가운 밤바람.
꿈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당하는 일은 꿈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잠시 후 가장 안쪽의 전각 지붕에 내려선 연적하는 좌신양에게서 손을 뗐다.
좌신양은 사내의 손에서 풀려나자마자 급히 뒤쪽을 돌아보았다.
‘헉! 근 오십 장(약 150미터)의 거리를 날아왔구나.’
벌렁거리는 심장이 가라앉자 좌신양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 누구십니까?”
그가 사내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돌연 발밑이 꺼졌다.
“어어어!”
발버둥 치는 그의 팔을 연적하가 붙잡았다.
콰르르르-.
연적하와 심통, 좌신양의 몸이 한참 동안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오 장 아래의 지하실.
흐릿한 유등 아래 수십 명의 도사
와 중 들이 결박당한 채 줄지어 앉아 있었다.
유명교 고수 둘이 가장 앞쪽에 있던 도사를 일으켜 세운 뒤 제단으로 끌고 나갔다.
삼십 대로 보이는 미부(美婦)가 웃으며 도사의 귓가에 속삭였다.
“삼계개고(三界皆苦) 아당안지(我當安之)라는 말을 알고 있겠지? 두려워 마라. 이곳이 너의 낙원이다. 너의 모든 고통을 내가 끝내 주마.”
미부가 막 검으로 도사의 목을 그으려는 순간, 천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