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73
873회. 이게 무슨 일인지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흑무는 단지 검은 구름이 아닌 듯 다가올수록 참기 어려운 냄새가 났다.
썩은 생선 냄새와도 같이 비릿하면서도 역겨운 냄새에 연적하는 인상을 찌푸렸다.
냄새 때문일까?
아기가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한번 금부처가 쌍장을 쭉 내밀며 소리쳤다.
“일체고액(一切苦厄)!”
금부처의 손바닥에서 나온 눈에 보이지 않는 파장이 장내를 휩쓸었다.
쿠우우웅-!
순간 연적하의 눈앞에 그가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학대받던 어린 시절들과 좁고 어두운 창고, 오봉산에서의 도적질, 그리고 마침내는 구주(九州)에서 종문들과 벌인 살육전까지.
청사(靑蛇)에서 뿜어져 나온 진검강의 끝이 하늘을 가리킨 순간, 새파란 하늘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검의 화신(化身)’이 나타났다.
일점무량과 포라천지의 검의가 담긴 천산검영이었다.
한순간 머리가 숙여질 정도로 하늘이 묵직해졌다.
고오오오-.
검수지옥(劍樹地獄)이라는 게 있다면 이럴 것일 게다.
혈주종 고수들도 ‘검의 화신’에 맞서 하늘로 ‘검형(劍形)’을 쏘아 올렸다.
이윽고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검의 화신’과, 지상에서 쏘아져 올라간 혈주종의 ‘검형’이 허공에서 맞부닥쳤다.
꽈르르릉! 콰광-!
협곡 상공에서 천여 개의 폭발이 일어났다.
협곡 상공을 덮었던 거대한 불꽃은 허망하리만치 금방 사라졌다.
“아아!”
“안 돼!”
땅에서 쏘아 올린 검형은 사라졌건만, 하늘에서 내려오는 ‘검의 화신’은 여전했다.
이윽고 수직으로 낙하한 ‘검의 화신’들이 혈주종 고수들 위로 뚝 떨어졌다.
콰지직!
육체를 으깨고 지나간 ‘검의 화신’이 지면에 틀어박히면서 요란하게 폭발했다.
콰콰콰쾅-!
혈주종 고수들의 몸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가 거칠게 대지 위에 패대기쳐졌다.
콰르르! 철퍽!
그리고 피, 피, 피…….
방금까지 혈주종 고수들로 바글거리던 광장이 한순간 초토화됐다.
그 와중에 수백여 명이 살아남았지만 사지가 멀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생존자들 속에서 아비규환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악!”
“악!”
혈주종 고수들의 비명이 귀에 쟁쟁 울렸다.
분명 좋았던 시간들도 있을 텐데 묘하게 고통스러운 기억들만 생생했다.
찰나지간에 그는 피와 죽음으로 점철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가슴은 다 타 버린 재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다.
흑무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이 저 냄새보다 더 역겹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강호에 돌아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수천의 목숨을 빼앗았다.
구주에 살아가는 존재들의 뒤틀린 욕망을 비난했지만,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더 나쁜 놈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욕망은 ‘생존’과 관계된 것이지만, 자신은 ‘돌아가기’ 위해 그랬으니까.
한마디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 격이다.
미지의 강적 앞에서 뜻밖에도 연적하는 자기혐오와 인생무상의 늪에 빠졌다.
“씨발……. 인생 참 뭣 같네.”
그렇게 상대방을 욕하며 나는 다른 것처럼 살아왔는데, 내가 더한 놈이었다니.
‘울컥’하고 치밀어 오른 자기혐오의 감정에 그는 생각했다.
‘콱! 죽어 버릴까?’
남궁연은 아까부터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는 연적하가 이상했다.
반신(半神)의 경지에 이른 그의 무위면 저런 금부처쯤 상대가 되지 않을 텐데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다.
“적하야!”
그러나 연적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 대답하지 않았다.
흑무가 발끝까지 밀려오자 남궁연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물리적인 힘을 통과시킨 흑무와 몸이 흔들릴 정도의 파장.
아무래도 그 두 개가 연적하에게 자신이 알지 못할 영향을 끼친 것 같았다.
그녀는 천지종의 상급 공법인 봉황음(鳳凰吟)을 끌어 올린 후 소리쳤다.
“적하야!”
콰르르르-.
천지가 진동을 했지만 연적하는 요지부동이었다.
자기혐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봉황음에 멈칫했던 흑무가 연적하를 덮쳤다.
깜짝 놀란 남궁연은 손을 뻗어 연적하를 잡고는 뒤로 끌어당겼다.
휘날리던 옷자락이 흑무에 닿자 ‘푸스스!’ 소리와 함께 새까맣게 재가 되어 떨어졌다.
봉황음으로도 그를 깨우지 못하자 남궁연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말로 안 되면 때려서라도 그의 정신을 일깨울 생각이었다.
그녀가 막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이다.
그녀의 품에서 버둥거리던 아기가 금방 숨이 넘어갈 듯 자지러지게 울어 댔다.
“으아앙! 으앙-!”
깜짝 놀란 남궁연이 아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흑연과 파동에 아기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히 아기의 울음소리는 이내 멎었다.
극도의 자기혐오에 빠져 죽음을 바라던 연적하가 움찔했다.
‘응?’
그러고 보니 자신에게는 아기가 있었다.
자신이 잘한 딱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아기를 지켜 낸 일이다.
‘아기가 울고 있다?’
자기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아기는 아니다.
어둡게 가라앉아 있던 그의 눈에서 광망이 쏟아져 나왔다.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있던 그의 심장에 다시금 뜨거운 피가 돌았다.
정신을 차린 연적하는 주위를 쓰윽 둘러보았다.
불길한 흑무 너머로 오색 서기를 뿜어내고 있는 금부처가 보였다.
‘천둔검은?’
금부처에 맞고 튕겨 난 천둔검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천지간(天地間)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대단한 놈이군.’
연적하는 금부처 형상을 한 마물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까지 빠르고 무방비하게 자신이 무너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구주에서의 살육이 양심의 가책으로 남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흑무가 소리 없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먹먹한 얼굴로 금부처를 응시하던 연적하가 손을 들어 올렸다.
신맥에 깃들어 있던 구천검령이 하늘로 솟구쳤다.
십 장(약 30미터)이나 되는 거대한 구천검령의 그림자가 지면에 드리워졌다.
연적하가 검결지를 내리긋자 구천검령은 벼락처럼 금부처 위로 떨어졌다.
날카로움은 둘째치고 크기만으로도 금부처를 가루로 만들 기세다.
쿠웅-!
거대한 범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금부처가 산산조각 났다.
금부처를 박살 낸 구천검령은 거짓말처럼 종적을 감췄다.
사라라락-.
흑무가 모래알처럼 가루가 되어 지면에 내려앉았다.
수북이 쌓였던 모래알은 이내 물처럼 땅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남궁연을 향해 돌아선 연적하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했다.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남궁연이 폐허가 된 무산소축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럭저럭?”
“에? 그럭저럭은 뭐예요?”
그러자 남궁연은 아직 남아 있는 외곽의 전각들을 가리켰다.
“아! 남은 게 있었네요? 깔끔하게 마저 정리해 드릴게요.”
허공에서 천둔검을 꺼내 든 연적하는 바로 구천구검 오 식 산검멸지(散劍滅地)를 펼쳤다.
츠츠츠츳-!
부챗살처럼 뻗어 나간 수백 개의 검영(劍影)이 전각을 관통했다.
콰르르르- 콰릉-!
연적하는 외곽의 전각들을 모두 주저앉힌 뒤에 손을 ‘탁탁!’ 털었다.
“이제 마음에 드십니까? 손님?”
“후훗! 후식은 천람소축(天覽小築)에서 먹고 싶군요.”
“예예,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연적하가 운종술을 쓰자 하얀 구름이 두 사람의 발밑에 피어났다.
곧이어 두 사람을 태운 구름이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신묘한 구름은 무산소축 주변을 한 바퀴 돈 후에 남궁세가를 향해 날아갔다.
***
소호의 무산소축에서 일어난 참사로 조용하던 남직례성이 시끌시끌했다.
“연적하와 남궁연이 무산소축을 폐허로 만들었다!”
“무산낭랑 이매화와 무산소축의 십두마병들이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드디어 남궁세가가 유명교에 칼을 빼 들었다!”
“호천맹이 숨어서 무림첩을 돌릴 때 남궁세가는 유명교를 박살 냈다!”
사람들은 남궁세가를 칭송하고, 호천맹의 느려 터진 대응을 질타했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때를 노리던 호천맹으로서는 억울했지만 변명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연적하와 남궁연이 관계된 일이라 함부로 입장 표명을 하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남직례성.
합비.
남궁세가.
정오 무렵.
가주의 집무실인 창궁각에 사 남 일 녀가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검왕 남궁벽과 창천대 대주 척사검 남궁진, 그리고 호천맹의 사자(使者)인 무당파의 천성 도사, 화산파의 불영선자, 승운검객 마천덕이다.
호천맹의 사자들은 모두 연적하에 호의적인 사람들이라-남맹과 호천맹이 갈등을 일으키는 와중에도-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그것도 대화의 소재가 신변 잡담일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나저나 중양절의 무림대회 말입니다. 공교롭게 호천맹에서 무림첩을 보냈는데, 남맹에서 따로 또 보내셨더군요. 날짜도 같아서 이게 무슨 일인지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호천맹과 남맹이 다르냐 이거죠.”
불영선자의 말에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대화가 끊이지 않던 창궁각에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남궁진이 남궁벽을 대신해 간단히 말했다.
“다르지요. 호천맹은 하남성에 있고, 우리 남맹은 남직례성에 있지 않습니까?”
누가 봐도 질문의 요지를 벗어난 대답이다.
하지만 호천맹의 사자들은 남맹이 호천맹과 선을 긋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불영선자가 안타까운 얼굴로 남궁벽과 남궁전을 보았다.
“유명교를 상대로 싸울 때 과거에는 사파의 도움까지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파가 호천맹과 남맹으로 갈라져 싸운다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남궁진이 다시 답했다.
“과거 이야기를 하시니 저도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우리 남궁세가는 유명교와의 전쟁에서 항상 최전방에 서 있었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의 남궁세가도 페허 위에 다시 세운 것이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정의맹과 천지맹 시절, 어느 누구도 몰락한 남궁세가에 관심을 보이는 분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남궁세가가 쇠락해지자 밟으려고 들었지요. 우리의 권익을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아서 자구책으로 만든 게 남맹입니다. 남직례성에 있는 방파들끼리 서로 돕자는 취지라고나 할까요? 피를 흘려야 할 때는 함께 싸우자고 손 내밀지만, 막상 싸움이 끝나면 나 몰라라 하는 그런 관계를 더 이상 지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답이 됐나 모르겠군요.”
호천맹의 사자들은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 정의맹 시절에 사람들은 남궁 세가가 이대로 몰락할 거라고 믿었다.
무림사에서 흥망성쇠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 까닭이다.
그래서 남궁세가는 지원은커녕 모든 행사에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았다.
천성 도사가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물론 정의맹과 천지맹에서 일처리를 매끄럽지 못하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과거의 실수로 미래를 망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도사님은 호천맹과 남맹이 합치지 않으면 미래가 망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과거에는 정사파가 연합을 했음에도 유명교를 막아 내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지금은 유명교주와 천외이선까지 합세한 상황이 아닙니까?”
천성 도사가 안타까운 눈으로 남궁진을 보았다.
호천맹과 남맹을 위해서라도 남맹은 호천맹에 흡수되어야 했다.
하지만 남궁진은 요지부동이었다.
“우리 남맹에는 남천 연적하와 십전무후 남궁연이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맹주님?”
갑자기 남궁진이 자신을 끌어들이자 남궁벽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의 마음은 잘 알겠소. 하지만 나는 창천대 대주와 같은 생각이오. 우리 일은 걱정 마시고, 호천맹은 호천맹의 일을 잘하시면 될 것 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