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74
874회. 바다에게 강으로 오라고 한 거나 마찬가지네요
검왕 남궁벽의 말에 호천맹의 사자(使者)들은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파에까지 손 내밀어야 할 상황에서 같은 정파가 각자 갈 길을 가자니?
과거 남궁세가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답답했다.
승운검객 마천덕은 그게 정말 맹주의 진심인지 궁금해 남궁벽의 안색을 살폈다.
‘검왕처럼 강호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당금 무림의 상황을 잘 알 텐데…….’
지금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협력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니 각자 갈 길을 가자는 것은 남궁벽이 그저 던져 본 말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칠파일문에 대한 섭섭함을 그런 식으로 표시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슬쩍 내질러 보았다.
“맹주님. 혹 저희 호천맹에 바라는 것이 있으십니까? 그런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가 이 자리에서 가타부타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남맹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어떤 요구 조건도 들어줄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건 상대를 떠보기 위해 한 말에 불과했다.
고작 정주 지부 지부장에 불과한 그는 호천맹에서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 많은 남궁벽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마천덕을 보았다.
“마 대협.”
“예.”
“마 대협의 충심은 잘 알겠소이다. 하지만 남궁세가가 호천맹에 바라는 것은 없소. 이건 무림 동도로서 드리는 말씀이오만, 무극상인에게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말을 전해 주시면 고맙겠소.”
“송구하나 무엇을 서두르지 말라는 것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마천덕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이 중양절의 무림대회를 지칭한 것인지,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명교와의 싸움을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오.”
“하지만 강호 동도들은 지금도 늦었다며 호천맹을 다그치고 있습니다. 서두르지 말아야 하는 연유가 있습니까?”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오, 호천맹으로서는 그들을 상대하기 어려울 게요.”
화산파의 불영선자가 못내 아쉬운지 끼어들었다.
“맹주님. 그럴수록 호천맹과 남맹이 하나로 뭉쳐야 하지 않습니까? 이대로라면 호천맹은 물론 남맹도 낭패를 면치 못할 텐데요.”
“우리 남맹은 그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오.”
호천맹의 사자들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대비요?”
“그게 뭡니까?”
“대비라고 하심은?”
남궁벽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 남맹에는 남천과 십전무후가 있지 않소? 그들이라면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을 잘 막아 줄 게요.”
너무도 전형적인 대답에 실망한 불영선자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남천 대협과 십전무후 여협의 능력이 출중함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은 금군까지도 무력화시킨 천외천의 고수입니다. 남천 대협과 십전무후 여협만으로는 조금 무리가 아닐까요?”
불영선자는 애써 담담한 얼굴로 남궁벽을 보았다.
예의를 차리느라 ‘조금 무리’라고 했지 마음 같아서는 ‘불가능하다!’ 외치고 싶었다.
남궁벽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연적하는 구름을 타고 다니며, 몸 안에 신조차 죽일 수 있는 아홉 개의 검령을 가지고 있었다.
‘쯧! 연적하가 구주(九州)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가르쳐 줄 수도 없고…….’
지금 남궁벽의 최대 고민은 유명교주나 천외이선이 아니라 ‘손녀의 이름을 무엇으로 짓느냐?’였다.
“나는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오. 이제 됐소?”
“맹주님?”
불영선자는 남궁벽의 말에 기가 막혔다.
연적하가 청성산에서 도지휘사의 군대를 물리쳤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금군과 도지휘사의 군대는 질적으로 다르다.
도지휘사의 군대라고 해 봐야 사천성 일대에 주둔하고 있던 수비대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금군은 황제의 정예 부대로 국가의 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남천과 십전무후가 뛰어나다 해도 금군의 상대는 되지 못할 터였다.
‘아실 만한 분이 왜 고집을 부리시는지 원…….’
불영선자는 답답했다. 잘 나가다가 아까부터 마치 벽을 보고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이다.
황망한 얼굴을 하고 있는 호천맹의 사자들에게 남궁벽이 확인하듯 말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무극상인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전해 주시구려. 다른 이야기가 없으면 이만 남맹의 일을 처리했으면 하오만.”
축객령이다. 탄식하던 호천맹의 사자들은 복잡 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궁각을 나가자마자 마천덕은 불영선자와 천성 도사에게 말했다.
“잠시 개인적으로 만날 사람이 있는데, 객청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천성 도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그러고 보니 창인문의 진설하 소저가 남맹에 있다지요?”
“예. 모처럼 남궁세가에 왔으니 얼굴은 보고 가려고요.”
그러자 불영선자가 주위를 둘러본 후에 나직이 말했다.
“검왕이 왜 저렇게 자신만만한지 궁금하군요. 진 소저에게 이것저것 좀 물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남천 대협과의 자리도 주선해 달라고 해 보시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천덕은 두 사람에게 묵례를 해 보인 뒤, 남맹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전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남맹.
마천덕이 진설하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건 사고가 없어서 남맹의 고수들이 전각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함께 일하던 마천덕을 본 진설하는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지부장님! 남맹에는 어쩐 일이세요? 설마 제가 보고 싶어서 오신 건 아니죠?”
“호천맹에서 나를 남맹으로 보내는 사자에 끼워 넣었다. 남맹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그런 거겠지. 덕분에 이렇게 너를 보는구나.”
“어머! 그러셨구나. 호천맹에서 사자가 왔다는 말은 들었어요. 좋은 결과를 얻었나요?”
정주 지부 출신인 진설하는 호천맹과 남맹이 잘되기를 바랐다.
“그게 잘 안됐다.”
마천덕은 어차피 곧 퍼질 이야기인지라 감추지 않았다.
“잘 안됐다는 건 뭐예요?”
“호천맹은 남맹이 이전처럼 함께해 주기를 바라는데 남맹에서 싫단다.”
“훗! 요즘 남궁세가의 분위기를 보면 그럴 만도 해요.”
“분위기가 어떤데?”
“오가면서 못 보셨어요? 다들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 있잖아요.”
“왜?”
“남천 대협과 십전무후 때문이죠.”
“그 두 사람이 함께 있던 천지맹 시절도 유명교는 어려운 상대였다만.”
“지부장님. 그 두 사람이 이 년간 실종됐다가 돌아온 건 아시죠?”
“은거다, 실종이다 말이 많았지.”
“실종됐다가 돌아온 거 맞아요.”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마천덕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진설하를 보았다.
그녀가 남궁세가에 오래 있었으니 실종이 맞겠지만 그게 뭐 어떻다고?
“음…….”
진설하는 한참을 망설였다.
남궁세가의 직계들만 알고 있는 것을 마천덕에게 말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남궁천은 그에 대해 따로 주의를 주지 않았다.
그건 타인에게 발설해도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실종된 이 년 동안 두 사람이 상계(上界)를 다녀왔다고 해요.”
“푸하핫! 세월이 지났어도 너는 여전히 사람들 말을 잘 믿는구나. 하긴 그래야 진설하지.”
마천덕은 눈물이 찔끔 맺힐 정도로 시원하게 웃었다.
그간의 답답함이 진설하의 진지한 얼굴을 보니 일시에 풀어지는 듯했다.
“진짜라니까요. 남궁세가의 직계들만 알고 있는 거예요. 외부에서 받아들인 제자는 물론, 방계 쪽 사람들도 모르는 일이라고요.”
“푸흐흐! 그래. 상계 어디?”
“거기까지는 저도 잘 몰라요. 하여튼 두 사람이 유명교주의 술법에 휘말려 상계로 떨어졌었대요. 아, 정확히는 구천노도까지 세 사람이요.”
유명교주의 이야기까지 나오자 마천덕도 쉽게 흘려듣지 못했다.
“그래서?”
“연 대협이 그곳에서 대도(大道)를 터득해 반신(半神)이 됐대요. 뭐 반신이라는 말에 저도 좀 웃었지만, 여하튼 남궁세가의 직계들은 그렇게 믿더라고요.”
“허! 거참!”
마천덕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상계’니 ‘대도’니 ‘반신’이니 하는 말이 황당했지만, 그 세 개를 한곳에 모으니 묘하게 소문과 맞아떨어졌다.
“왜요? 설마 지부장님도 그 말을 믿는 건 아니겠죠? 조금 전에 저를 비웃으셨으면서.”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조금 이상해서 그런다.”
“뭐가 이상한데요?”
“너 최근 연 대협에 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느냐?”
“대악마요?”
“그런 것 말고. 연 대협이 ‘구름을 타고 다닌다’거나 ‘허공에서 검을 만들어 낸다’는 소리 말이다.”
“그게 왜요?”
“아니, 반신이라고 하니 갑자기 생각이 나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말이 있지 않으냐?”
“…….”
진설하도 연적하만큼이나 귀가 얇은 여자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녀의 입이 쩍 벌어졌다.
“헉! 남궁 공자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군요? 상계에서 대도를 터득해 반신이 된 거죠?”
“아니, 나는 꼭 그렇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여러가지 소문에 비추어 보면 네가 한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그게 그거죠. 그런 분과 함께 있는 남맹에게 호천맹이 들어오라고 한 거예요? 바다에게 강으로 오라고 한 거나 마찬가지네요.”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구나.”
마천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남궁벽과 남궁진이 호천맹 사자들의 말을 귓등으로 들을 만했다.
물론 남궁천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는 거다.
하지만 그런 꿈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턱이 없지 않은가!
“그것 외에 달리 남맹에서 의지할 만한 것은 없느냐? 고금제일의 전대 고수를 모셨다든지,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법보를 가졌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없어요. 그런 게 있으면 진즉에 소문이 났죠.”
“그렇구나.”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있던 마천덕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왜요?”
“이전에는 호천맹과 남맹이 한 식구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저도 전에는 몰랐는데 칠파일문에서 합당한 대우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들었다. 너무 세상인심을 따라 행동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더구나. 그나저나 너는 어떠냐?”
“저요?”
“청운검과 잘되고 있는 게냐? 차수와 근식이가 그걸 꼭 물어보라고 해서.”
“올해가 가기 전에 혼례를 올리기로 했어요.”
“그래? 정말 잘됐구나. 혼례는 어디에서 올리기로 했느냐?”
“그야 물론 남맹이지요.”
진설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그녀가 정주 출신이기는 하지만 가족 외에 혈족이 없어서 남맹으로 정한 것이었다.
진설하의 집안 내력을 아는 마천덕은 더 묻지 않았다.
“지부장님과 설 사형, 유 사형에게는 따로 초대장 보낼게요. 와 주실 거죠?”
“그야 이를 말이냐? 우리 정주 지부의 꽃을 그냥 보낼 수는 없지. 늦었지만 남맹에서의 생활은 어떠하냐? 텃세를 부리는 사람은 없느냐?”
“텃세요? 다들 제 눈치를 너무 봐서 미안할 지경이에요.”
“하하! 다행이구나. 세상인심이 본래 그런 법이니 그러려니 하거라.”
남궁천과 혼인을 하면 남궁세가의 사람이 되니 다들 눈치를 볼 만도 했다.
검왕, 청운검, 남천, 십전무후, 자신이 생각해도 아찔한 뒷배였다.
연적하를 떠올리던 마천덕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험, 험. 설하야. 모처럼 찾아와 할 말은 아니다만……. 어려운 부탁을 해야겠다. 남맹을 떠나기 전에 남천 대협과 만나고 싶은데,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겠느냐?”
마천덕이 멋쩍은 얼굴로 먼 산을 보았다.
연적하와 만나기 위해 남궁세가를 찾는 사람이 하루에도 수십 명.
그중에는 고관대작도 즐비했다.
금의위 남진무사도 천람소축(天覽小築)을 기웃거렸지만 끝내 들어가지 못했다던가.
그래도 같은 식구가 될 진설하의 청이라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