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75
875회. 신을 만나 보셨습니까?
진설하는 연적하와의 자리를 주선해 달라는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천람소축이 외부인들을 받아 주지 않고 있지만 승운검객 마천덕은 연적하가 아는 사람인 까닭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녀는 즉시 천람소축으로 달려가 연적하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불편하면 만나지 않아도 괜찮아요.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할까요?”
그녀는 무리하게 청하지 않았다.
연적하도 정주 지부장이 왜 그를 만나려고 하는지 알 것이기 때문이다.
“정주 지부장이면 진 소저가 모시던 윗분이죠?”
“네.”
“그는 어떤 사람인가요?”
“좋은 상사였어요. 아랫사람의 실수를 모른 척 덮어 주기도 하고……. 사람들을 포용할 줄 아는 분이시랄까요? 칠파일문 출신이 아닌 데 지부장까지 올라가실 정도로 사람 관리를 잘하셨어요.”
“그런 사람이면 만나 봐도 괜찮을 것 같네요. 모시고 오실래요? 내가 갈까요?”
“엇! 만나 보시게요?”
“모처럼 진 소저의 부탁인데 들어 줘야죠. 나쁜 사람도 아닌 것 같고.”
“고마워요. 제가 천람소축으로 모시고 올게요. 다른 곳에서 만나면 엉뚱한 날파리들이 꼬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세요. 그럼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연적하의 말에 진설하는 후다닥 일어나서 밖으로 달려 나갔다.
말로는 ‘굳이 안 만나도 괜찮다’고 했지만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다.
잠시 후 진설하는 오십 대 초반의 풍채 좋은 남자와 함께 돌아왔다.
연적하와 눈이 마주치자 마천덕은 서둘러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호천맹 정주 지부장 마천덕이라 합니다.”
“석경장의 연적합니다. 진 소저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앉으세요.”
연적하가 빈자리를 가리켜 보이자 마천덕이 조심해서 걸터앉았다.
“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저는 근무 중이라 이만 남맹으로 돌아가 볼게요.”
진설하는 요령 있게 두 사람만 남겨 두고 자리를 피했다.
마천덕이나 연적하가 자신을 의식해 편하게 대화를 나누지 못할 것 같아서다.
마천덕은 조심스럽게 연적하를 살폈다.
대악마, 어쩌면 천하제일인, 그리고 최근에 들은 반신(半神)까지, 그를 가리키는 말은 많았다.
‘어느 게 진짜일까?’
한편으로 아들뻘인 연적하가 그런 지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소문이 다소 부풀려짐을 감안해도 그의 무위는 나이를 아득히 초월했다.
연적하가 먼저 운을 뗐다.
“설 소협과 유 소협은 잘 지내고 있나요?”
“예, 잘 지냅니다. 그러고 보니 인사가 늦었습니다. 과거 저희 정주 지부 사람들을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 대협께서 여러 차례 구해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별말씀을요. 저도 그때 도움 많이 받았어요.”
연적하는 정주 지부 사람들과 유명교 십두마병들을 조사하러 다닐 때를 떠올리고 웃었다.
대화가 잠시 끊겼다. 마천덕이 그때 연적하와 동행했다면 모를까?
직접적인 접촉이 없던 두 사람에게는 그 정도 대화가 전부였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마천덕이 불쑥 말했다.
“연 대협께서도 아시겠지만, 제가 이곳에 온 것은 중양절의 무림대회 때문이었습니다.”
“아, 예. 들었어요. 호천맹과 남맹이 따로 무림대회를 열기로 했다죠?”
“엄밀히 말해 호천맹에서는 그렇게 합의한 바가 없습니다. 호천맹에서 무림대회를 연다는 무림첩을 보낸 이후, 남맹에서 따로 무림대회의 무립첩을 보낸 거지요. 그 일로 호천 맹에서 사자를 보냈습니다. 호천맹과 남맹이 이전처럼 하나가 되자고 말입니다.”
“아하.”
연적하는 알고 있었지만 처음 듣는 사람처럼 장단을 맞춰 주었다.
“그런데 남맹의 맹주님께서 ‘다시 하나가 되자’는 제안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랬군요.”
연적하는 이렇다 저렇다 의견을 표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마천덕은 그런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어 갔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유명교주와 천외이선까지 등장한 터라……. 정파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연 대협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아무 생각 없어요.”
“예?”
마천덕이 황망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강호를 떨쳐 울리는 절대고수가 시정잡배나 할 법한 소리를 하니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남맹에는 나보다 머리 좋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분들이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나까지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가 없잖아요.”
“흠!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입니다만 연 대협께서도 남맹이 단독으로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을 당해낼 수 있다고 보십니까?”
“못할 것도 없죠. 그들이 뭐 대단하다고.”
“…….”
눈을 끔뻑이던 마천덕은 연적하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것이 젊은 절대고수의 허세인지, 진심인지를 알고 싶어서다.
장난기 가득한 연적하의 눈을 보고 있으려니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마천덕은 잡념을 떨치고 승부수를 던져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곳에 오기 전 설하에게 연 대협과 관계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하하. 나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도 진 소저라면 좋은 이야기를 했겠죠?”
“연 대협과 십전무후, 구천노도 이 세 분이 유명교주의 술법에 휘말려 상계(上界)로 가셨었다고 하더군요.”
“아! 그 얘기를 들으셨구나.”
“그런 쪽으로는 제 공부가 부족해서 그런데……. 상계라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있을까요? 혹 신선들이 산다는 무릉도원 같은 곳입니까?”
“하하하! 무릉도원이면 우리가 왜 현세로 돌아왔겠어요? 그냥 거기서 쭈욱 살고 말지.”
“아! 무릉도원은 아니군요?”
“사실 나도 몰랐는데 우주에는 수많은 세계가 있더라고요. 현세에서 수도를 하면 보다 높은 차원으로 간다고 하잖아요. 그 높은 차원에 있는 세계 중 하나예요. 더 자세히 설명해 주고 싶지만 나도 그 이상은 잘 몰라요.”
“예, 무슨 말씀인지 대략 알 것도 같습니다.”
마천덕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불가와 도가에서 말하는 ‘삼십육천’이 언뜻 떠올랐다.
믿어지지 않지만 ‘세 사람이 그중에 한 곳을 갔다’는 소리인 것 같았다.
“상계에 가려면 죽거나 우화등선을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봅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유명교주는 진짜 대단한 사람이에요.”
물론 그 모두가 불로장생에 대한 유명교주의 집착이 만들어 낸 결과지만, 누구도 하지 못할 일을 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남맹의 맹주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을 상대하는 데 남천 대협과 십전무후 여협만으로 충분하다고. 저는 남맹의 자신감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진설하가 그러더군요. 남천 대협은 상계에서 대도(大道)를 터득해 반신(半神)이 되었다고. 정말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을 상대할 자신이 있으신 겁니까?”
마천덕은 꾹 눌러 두었던 말을 단숨에 쏟아 냈다.
나중에 후회할지언정 천금 같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인 어르신께서 또 뭐라고 하시던가요?”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이 강하니 유명교와의 싸움을 서두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가 문득 물었다.
“신선과 신을 뭐라고 생각해요?”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가 아닙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범천욕계에 가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럼 지금은 다르게 생각하신다는 겁니까?”
“내가 범천욕계에 가서 자칭 신이라는 존재들을 만나 봤거든요. 그런데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는 것 외에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더라고요. 하는 짓은 사람과 비슷하거나 더 개차반이었죠.”
“신을 만나 보셨습니까?”
“영생불멸에 풍운조화를 일으키고 그러면 신이라 부를 만하잖아요?”
“마, 맞습니다. 오직 신만이 가능한 일이지요.”
“지금 황궁에 있다는 천외이선은 아마도 범천욕계의 신들일 거예요.”
“헉! 그 범천욕계라는 게 아까 말씀하신 그 상계가 맞습니까?”
“맞아요. 그곳의 정확한 이름은 ‘범천욕계 왕재천’이라고 하더군요. 천외이선은 분명 그곳에서 온 신들일 거예요.”
“상계의 신이 어떻게 현세에…….”
“나와 십전무후, 구천노도도 상계에 다녀왔으니 그들이 오지 못할 것도 없죠.”
“그, 그들이 정말 상계의 신들이라면 우리가 섬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
순진한 마천덕의 말에 연적하는 빵 터지고 말았다.
“푸하핫! 그들을 섬겨야 하냐고요? 내가 아까 말한 거 잊었어요? 상계의 신들을 만나 봤더니 우리와 비슷하거나, 더 개차반인 것도 있었다고 했잖아요.”
“하, 하지만 신이라면 마땅히…….”
“섬겨야 한다?”
마천덕은 차마 답하지 못하고 연적하의 입만 보았다.
상상을 초월한 소리를 너무 들은 탓일까?
이제는 상계니 반신이니 하는 말들이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들이 말하는 반신이니 신이니 하는 걸 그냥 ‘경지’로 받아들였어요. 그랬더니 비로소 이해가 되더라고요. 왜 사람과 비슷한지, 왜 사람보다 더 개차반인 신들이 있는지. 강호도 그렇잖아요?”
“단지 ‘경지의 표현’이라는 말씀이신 겁니까?”
“맞아요. 어린아이 눈에는 절대고수의 행동이 신으로 보이겠죠? 마찬 가지로 그들의 경지가 지극히 높아 그렇게 보일 뿐, 우리가 상상한 그런 신은 아니라는 거죠. 나를 두고 반신이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예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경지를 나타낸 거라고 생각하세요.”
“‘마치 신으로 보일 정도로 높은 경지일 뿐이다’라는 말씀이신 겁니까?”
“맞아요.”
연적하가 영기를 일시에 개방했다.
싸아아아-.
심신의 힘을 돋워 주는 신묘한 기운이 천람소축을 가득 채웠다.
마천덕은 전율에 휩싸였다.
전설에나 나오는 선기(仙氣)나 법력의 바다에 풍덩 빠진 것 같았다.
내력도 아니고 이 기이한 힘은 뭐란 말인가!
사지 백해로 알 수 없는 힘이 뻗치고, 모호하던 것들이 선명해져, 마침내는 자신의 성취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뻥 뚫릴 것 같았다.
그가 신묘한 기운에 취해 있을 때 연적하가 영기를 거둬들였다.
천람소축의 영기가 다시 연적하에게 모여들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천덕은 크나큰 상실감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적하가 담담하게 말했다.
“범천욕계에서 온 신들은 이런 기운을 수련해서 신좌(神座)에 오른 영생불멸의 존재들이에요.”
“남천 대협께서는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있으십니까?”
마천덕이 뜨거운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이제야 남맹의 맹주가 왜 그렇게 자신만만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범천욕계에서 나를 신살자(神殺者)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
남궁세가 객청.
마천덕이 돌아오자 화산파의 불영 선자와 무당파의 천성 도사가 그에게 다가갔다.
불영선자가 먼저 물었다.
“남천 대협에게 말했나요?”
“했습니다.”
마천덕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천맹의 사자들은 진설하를 기다리는 동안 호천맹과 남맹의 연합에 대한 질문을 준비했었다. 이제는 소용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뭐라고 하던가요? 그도 검왕처럼 반대하던가요? 아니면…….”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남천 대협은 검왕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아아!”
“허!”
조마조마한 얼굴로 듣고 있던 불영 선자와 천성 도사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 남천 대협은 검왕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천성 도사가 씁쓰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결국 그렇게 되는구려. 본래 검왕이 남천 대협의 빙부이자 백부라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아쉽군, 아쉬워. 대의를 생각했어야 하는데.”
마천덕은 실망한 두 사람에게 연적하에 대해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연적하가 상계에서 대도를 터득해 반신이 되었다’거나, ‘천외이선이 범천욕계의 신들이다’라는 말을 해도 믿어 줄 것 같지 않아서다.
자신이야 연적하의 신묘한 기운을 몸으로 체험해 어느 정도 믿게 되었지만, 저들은 다르다.
연적하를 반신이라 말하면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볼 게 틀림없다.
처음에는 자신도 진설하를 팔랑귀로 생각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