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76
876회. 연적하와 무관함을 증명하라
칠월 초하루.
사천성.
성도 도강언.
이른 아침, 청성산 초입에 삼백여 명의 무림인들이 나타났다.
저신으로 섬뜩한 마기를 내뿜고 있는 그들은 마교 육문 중에 삼문인 묘법구경문(妙法究竟門), 독행무주문(獨行無住門), 무사무생문(無死無生門)과 친위대인 흑룡대와 전위대 격인 적룡대였다.
선두에 있던 남방 순찰사자 재견우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교주님. 저곳이 연적하가 머물렀다는 서촉관(西蜀館)입니다.”
청성파 산문으로 가던 마교 교주 천자마 단제산이 서촉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자 교주의 친위대인 흑룡대 대주 쾌주패도 단여락이 수하들에게 손짓했다.
흑룡대 대원 열 명이 서촉관으로 달려가 안에 있던 손님들을 모두 내쫓았다.
마교 교주가 도착했을 때 서촉관에는 한 사람의 손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식당 창가 자리에 앉은 천자마 단제산이 재견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청성파에 가서 ‘천산마교와 연적하는 불구대천의 원수이니, 그와 관계된 모든 문파를 멸할 것이다. 살고 싶으면 연적하와 무관함을 증명하라’ 전해라.”
“존명!”
재견우는 연적하와 무관함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그건 자신이 아니라 청성파가 알아서 해야 할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서촉관 앞에 대기 중이던 적룡대 오십 명을 이끌고 산문으로 향했다.
청성파 산문.
산문 아래쪽 길을 살피고 있던 삼대제자 무학이 명학에게 말했다.
“사형, 무림인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데요?”
“몇 명?”
“오십 명쯤 되는 것 같은데, 어느 방파의 사람들일까요?”
“사천무림이겠지.”
“그들이 왜요?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 있다고?”
“만나 보면 알겠지. 그런데 사천무림 맞냐? 행색이 영 이상한데?”
무림인들과 거리가 좁혀지자 명학이 고개를 갸웃했다.
투박한 옷차림과 기괴하게 생긴 병장기가 마치 이민족을 보는 것 같았다.
“저들을 사천무림이라고 한 건 제가 아니라 사형이라고요. 혹시 유명교면 어떻게 하죠?”
유명교라는 말에 명학이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청성파를 방문할 단체는 사천무림이 아니면 유명교였다.
‘복식이 기괴한 걸 보니 사천무림인들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정말 유명교인가?’
명학과 무학이 상대의 정체를 추측하고 있을 때, 재견우와 적룡대가 산문 앞에 이르렀다.
명학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시 걸음을 멈춰 주십시오. 이곳은 청성파의 도량(道場)입니다. 내 방객들은 어느 방파의 분들이신지요?”
재견우가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나이 대를 보니 삼대제자로 보이는구나. 장문인은 있느냐?”
“계십니다. 어느 문파의 누구신지 존함을 가르쳐 주시면 안으로 기별을 넣겠습니다.”
“장문인이 원양 진인이지?”
“그렇습니다.”
“원양에게 ‘천산마교의 남방사자 재견우가 왔으니 나와 맞이하라’ 전해라. 일다경(약 20분) 준다. 그 안에 원양이 맞이하러 나오지 않으면, 죽이며 산을 오를 것이야.”
“헉!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으로 기별을 넣겠습니다.”
명학이 무학을 돌아보았다.
자신과 무학 중에 한 사람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가 머뭇거리자 무학이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사형이 저보다 경신술이 뛰어나니 가서 전하십시오. 제가 자리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명학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학의 어깨를 다독였다.
“얼른 가서 장문인을 모시고 오마.”
“예!”
명학은 지체 없이 돌아서 산 위로 달렸다.
그는 자신의 두 발에 많은 사람들 목숨이 달려 있다 생각해 잠시도 쉬지 않았다.
상청궁.
명학의 말에 깜짝 놀란 청성파 장문인 원양 진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뭐라! 지금 천산마교라고 했느냐?”
“예, 그는 자신이 천산마교의 남방사자 재견우라 했습니다.”
원양 진인이 명학과 함께 온 등운정의 책임자 자운산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운 장로. 명학의 말이 사실인가?”
“송구하나 화급을 다투는 일인지라, 아직 소도(小道)의 눈으로 확인은 하지 못했습니다. 급한 대로 등운정의 도사들을 먼저 신문으로 보내기는 했습니다만.”
“흐음! 그랬군.”
원양 진인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산문에 나가 있던 명학이 등운정에 전하자, 자운산인이 그를 데리고 바로 상청궁으로 달려온 모양이다.
그건 자운산인이 잘한 일이었다.
삼대제자인 명학이 상청궁의 장문인을 만나려면 몇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눈치를 보던 명학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가 일다경 안에 장문인께서 마중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일다경? 시간이 얼마나 남았느냐?”
“반각(약 7분) 정도 남았습니다.”
원양 진인이 난감한 얼굴로 명학을 보았다.
마교 고수 오십 명이면 청성파를 몰살시키고도 남을 전력이다. 그런 그들 앞에 아무런 대책 없이 허둥지둥 달려 나가도 되는지 모르겠다.
“자운 장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선은 마중을 나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자운산인은 장문인의 질책하는 듯한 시선을 슬쩍 피했다.
물론 재수가 없으면 마교 고수들에게 참살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마중을 나가지 않으면 사람을 죽이겠다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원양 진인이 머뭇거릴 때, 상청궁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곧이어 요란스러운 발소리와 함께 금양 진인이 장문인의 집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장문인! 큰일 났습니다!”
“또 무슨 일인가?”
“마교의 악적들이 외원(外院)을 장악했습니다!”
“마교가 외원을 장악해? 마교가 산문에서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느냐!”
깜짝 놀란 원양 진인이 명학에게 소리쳤다.
명학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답했다.
“맞습니다. 남방사자라는 이가 분명히 일다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외원을 장악했다고 하지 않느냐! 정말 일다경이 맞느냐?”
“예, 일다경이라 했습니다.”
명학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억울했다.
약속을 안 지킨 건 마교인데 왜 자신에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원양 진인은 명학을 닦달해 봐야 소용 없다는 걸 알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원양 진인이 상청궁 밖으로 나오자 청성파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장문인! 마교가 쳐들어왔습니다!”
“외원이 함락당했습니다!”
“외원에 더 이상의 생존자가 없습니다!”
“모두 죽었습니다!”
제자들이 한꺼번에 소리치자 원양 진인은 천강무상심공을 끌어 올려 소리쳤다.
“갈(喝)! 대도(大道)는 흔들림이 없어야 하거늘 이 무슨 소란이냐!”
장문인의 일갈에 도사들이 잠잠해졌다.
원양 진인이 상황을 파악하려고 고개를 들어 올릴 때다.
‘꽝!’하는 폭발음과 함께 상청궁과 외원을 연결하던 월동문이 터져 나갔다.
곧이어 오십여 명의 마교 고수들이 내원으로 진입했다.
얼마나 사람을 죽였는지 마교 고수들의 몸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들이 상청궁 안마당으로 진입하자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청성파의 멸문을 예감한 원양 진인이 절규하듯 외쳤다.
“남방사자 재견우가 누구냐! 너는 산문의 도사들에게 ‘일다경 안에 마중을 나오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로부터 아직 일다경이 지나지 않았건만 이 무슨 무도한 짓이냐!”
그러자 재견우가 느물느물 웃으며 나섰다.
“이 몸이 네가 말하는 그이다. 내가 차를 좀 빨리 마셔서 그렇게 된 것뿐이니 오해는 풀도록 해라. 그래서 마중 나올 결심은 굳혔느냐?”
“…….”
원양 진인은 상대가 자신을 희롱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참았다.
여기서 그와 부딪쳐 봐야 청성파 제자들만 죽어 나가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대화로 이 위기를 넘겨야 했다.
“끙! 좋소. 빈도(貧道)의 오해라고 칩시다. 빈도는 산문으로 마중을 나가려고 했소이다. 대답이 됐소?”
“그럼 어디 마중을 나와 보거라.”
재견우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뒷짐을 지고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속으로 이를 갈던 원양 진인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서 오시오. 빈도는 청성파의 장문인 원양 진인이오.”
순간 재견우가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본좌는 천산마교의 남방사자다. 너는 교주님의 교지(敎旨)를 받들 준비가 되었느냐?”
재견우는 철저하게 원양 진인을 아랫사람 대하듯 했다.
그가 자신을 수하 다루듯 하자 원양 진인은 황당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청성파가 몰살당할 판이라 참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준비가 되었느냐!”
재견우가 재차 묻자 원양 진인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하아. 그렇소. 세이경청 하리다.”
청성파 장문인이 수그리고 나오자 재견우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교주님께서 ‘천산마교와 연적하는 불구대천의 원수이니, 그와 관계된 모든 문파를 멸할 것이다. 살고 싶으면 연적하와 무관함을 증명하라’고 말씀하셨다. 선택해라. 지금 이 자리에서 죽겠느냐? 연적하와 무관함을 증명하겠느냐?”
원양 진인이 황망한 눈으로 재견우를 보았다.
저 멀리 천산에 있는 마교가 뜬금없이 연적하를 불구대천의 원수라 하다니?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는가 보다.
청성파가 연적하에게 별궁을 내준 적이 있지만 그와의 관계를 청산한 까닭이다.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오. 우리 청성파가 연적하 내외에게 별궁을 내어 준 적은 있소. 하지만 그가 황실에 맞서는 걸 보고 청성파 밖으로 내쫓았소. 그건 도강언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외다.”
그러자 재견우가 스산한 어조로 말했다.
“원양 진인, 얼마를 더 죽여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교주님께서는 무관함을 증명하라 하셨다. 교주님의 뜻에 거역하겠다면 청성파를 멸할 것이다.”
재견우가 적룡대에게 눈짓하자 적룡대는 즉시 그들의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상청궁 앞마당이 적룡대가 뿜어내는 마기와 살기로 가득했다.
그제야 말귀를 알아들은 원양 진인이 황급히 소리쳤다.
“증명하겠소! 증명할 테니 시간을 좀 주시오!”
원양 진인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어차피 연적하와 청성파의 관계는 절단이 난 지 오래였다.
연적하의 무위가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천년마교에 비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호천맹이다.
마교라면 치를 떠는 호천맹에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턱밑까지 파고든 마교의 칼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했다.
“보름 주마. 그 안에 증명하지 못하면 청성파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윽고 재견우는 적룡대를 이끌고 상청궁을 떠났다.
마교 고수들이 사라지자 원양 진인은 청성파 도사들을 해산 시켰다.
***
중양절의 무림대회를 두고 호천맹과 남맹이 갈등하고 있을 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어느 날 갑자기 천산마교가 사천성에 진출한 것이다.
호천맹과 남맹을 두고 저울질하던 사천무림이 발칵 뒤집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교 교주의 포고령이 사천무림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연적하와 관계된 모든 문파를 멸할 것이다. 살고 싶으면 연적하와 무관함을 증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