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86
886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상인들의 이야기에 술맛이 떨어진 연적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적하 일행이 주루를 떠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칠현금 연주는 계속됐다.
***
남궁세가.
천람소축.
“젠장. 날도 덥다면서 무슨 길거리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대. 씻고들 좀 다니지. 에이!”
연적하가 구시렁거리며 들어오자 남궁연이 야릇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의식한 연적하가 얼른 변명했다.
“나 욕 안 했어요.”
“알아.”
“그런데 왜 그런 눈으로 봐요?”
“추파주루에 갔었다면서?”
“에? 그 얘기가 벌써 누님 귀에 들어간 거예요? 와아! 남궁세가 장난 아니다.”
“내가 혼인하기 전에 남궁세가를 관리했었잖아. 아직도 나에게 강호의 은밀한 이야기를 전해 주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이 있어.”
“으, 은밀이라뇨? 나는 심 노인, 당 노인과 같이 목 축이러 갔던 건데.”
“누가 뭐래?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그럼, 호광성에서 마교가 벌인 짓도 알고 있겠네요?”
“백화궁, 천방문, 신천방, 일조문, 신녀궁의 일이라면 알고 있지.”
“누님은 그런 거 언제 알았어요?”
“네가 호천맹에 갔을 때.”
“아! 그렇구나. 남궁세가의 정보력이 놀랍네요.”
“이젠 남맹의 정보까지 같이 들어오니까 전보다 더 빠르고 세밀해지긴 했어.”
“남궁세가 부럽다.”
“부러워할 것 없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워서 마지못해 하는 일이거든. 하지만 너를 위태롭게 할 대상은 없잖아. 아니 오히려 천하가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 할걸?”
“에이, 내가 뭐라고요. 장인어른이라면 모를까.”
연적하는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임을 알면서도 실실 웃었다.
그때 남궁연이 말했다.
“그리고 네가 오해하는 게 있어. 나는 상엽이 네게 술을 따른다 해도 그녀를 죽이지 않아.”
“와아! 진짜 너무하다. 그런 말까지 해요?”
“말했잖아. 천하가 너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있다고.”
“그런데 정말 죽이지 않는다고요?”
“그래.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너를 멀리할 거야. 그게 나와 너의 차이야.”
“상 소저가 멋대로 그런 건데 왜 나를 멀리해요?”
“네가 허락하지 않으면 누구도 네게 그럴 수 없잖아. 그러니 너의 잘못이지. 하지만 나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건 허락할게.”
“무슨 말요?”
“너에게 치근대면 내 손에 죽을 거라는 말.”
“그런 협박은 해도 되는데 실제로 손해를 보는 건 나라는 거네요?”
“맞아.”
“진짜 너무한다.”
“그래서 싫어? 지안이는 잠들었는데.”
순간 벌떡 일어난 연적하는 영기로 실내의 소리를 차단하고 남궁연에게 돌진했다.
***
다음 날 오전.
천람소축에서 아기와 놀아 주는 연적하에게 청운검 남궁천이 찾아왔다.
“여어! 연아, 그리고 매제! 지안이와 단란한 시간을 방해해서 미안한데, 매제는 나를 따라 가야겠다.”
연적하가 아기를 남궁연에게 넘기고 물었다.
“남맹의 준비가 끝난 거예요?”
“그래. 오십 개 방파에서 이백 명의 지원자가 모였다. 우선은 그들만이라도 보내시겠다는구나. 더 모일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호광성의 상황이 좋지 않거든.”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가 남궁연을 돌아보았다.
“누님은 어떻게 하실래요?”
십전무후의 능력이라면 어떤 상황이든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터였다.
“난 남아 있을래.”
“지안이 때문인가요?”
“응. 지안이에게 무림의 살풍경한 광경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아.”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자신도 갑자기 그 부분이 꺼려졌다.
메누아의 원신에게 살육은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렇네요. 내가 두 사람 몫을 할 테니까 누님은 지안이를 잘 돌봐 줘요.”
“그럴게.”
연적하는 아기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고 남궁천과 함께 천람소축을 나섰다.
연적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남맹을 향해 걸어가는 남궁천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일차 지원군은 오십 명씩 네 개의 대로 나누었어. 아버지가 일 대, 창천대 대주인 남궁진 형님이 이 대, 삼 대는 선우세가 가주, 사 대는 개방의 장로인 포의신개가 맡을 거야.”
“저는요?”
“너는 자유로이 움직이게 편성에서 제외하라고 하더라.”
“누가요?”
“연이지 누구겠냐.”
“그랬구나. 제가 조직 생활을 잘 못하긴 해요.”
“너 정도 되면 오히려 조직이 너에게 맞춰야 하니 신경 쓰지 마라.”
“제가 그래도 조직에 피해는 안 끼치잖아요.”
“하하하! 그런 건 있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두 사람은 남맹의 구역으로 진입했다.
마당에 가득한 남맹 사람들을 보며 연적하가 물었다.
“형님, 원래 남맹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았나요?”
“맞다. 도향촌에 있던 것을 남궁세가 옆으로 옮긴 것이다.”
“왜 옮긴 거예요?”
“남궁세가를 주축으로 남맹을 운영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때마침 남궁세가와 맞닿아 있던 청운장이 싼 값에 나오기도 했고.”
“아하! 그럼 청운장을 사서 남궁세가와 연결한 거예요?”
“그렇지. 지금은 남맹의 방파들과 남궁세가 모두 만족해 하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도 도향촌의 시설을 운영하는 건 조금 피곤한 일이었거든.”
“왜요?”
“남궁세가의 식솔이 많지 않으니까.”
남궁세가는 유명교에 큰 피해를 입어 몰락 직전까지 내몰렸었다.
그걸 일으켜 세운 게 남궁연이다.
가세는 일으켰지만 사망한 식솔들로 인한 일손의 부족은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이 줄어든 남궁세가와 남궁세가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했던 남맹은, 남맹을 남궁세가의 옆으로 옮기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연적하가 남맹의 안마당에 들어서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보았다.
마교를 상대로 싸우러 가자고 모인 사람들의 표정은 전에 없이 밝았다.
남천 연적하가 마교 교주보다 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맹의 주축은 남궁세가의 무인들이다.
그들에 의해 전파된 소문으로 남맹에서만큼은 연적하가 천하제일인을 넘어 고금제일인이었다.
술렁거림이 일제히 멎고 숨 막히는 침묵이 안마당을 휘감았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기이한 열기에 남맹이 달아올랐다.
모용세가의 가주이자 최근 남맹의 총사로 임명된 반천일검 모용문은 중인들의 시선이 연적하를 향하자 헛기침으로 다시 이목을 끌었다.
“험! 험! 피를 흘리는 호광성의 동도들을 위해 우리 남맹의 영웅들이 출전하기로 했소. 이미 호천맹에서 오백 명의 고수가 남하하고 있소. 호천맹의 목적지는 아마도 무한일 게요. 오늘 우리 남맹도 무한을 향해 출발할 것이오! 저 악독한 마교도들에게 남맹의 의로운 기상을 보여 줍시다! 의기천추(義氣千秋)!”
그가 선창하자 안마당에 모여 있던 이백 명의 무인들이 주먹을 치켜들고 ‘의기천추!’를 따라 외쳤다.
‘의기천추’의 뜨거운 외침이 남맹의 담장을 넘어 거리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연적하가 남궁천에게 속삭였다.
“저분은 누구예요?”
“이번에 총사로 뽑힌 반천일검 모용문 대협.”
“저분도 출정해요?”
어딘지 삐딱하게 느껴지는 연적하의 말투에 남궁천이 슬쩍 물었다.
“왜? 모용 대협과 안 좋은 일이 있느냐?”
“그건 아닌데요. 제가 원래 앞에서 선동하는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해서요. 천지맹의 총사를 봐서 그런가. 이상하게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아하! 신기수사 그분은 좀 그런 구석이 있지. 그러고 보니 제갈세가는 망했나? 사람도 안 보내고 아예 쥐 죽은 듯 조용하네.”
“망했나 보죠. 전에 제갈가의 소가주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쯧! 강호에서 무가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야.”
“남궁세가의 소가주는 형님이잖아요? 올해 혼인하실 수 있겠어요?”
“네가 얼마나 빨리 마교 교주를 물리치느냐에 달렸다. 나와 진 소저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해다오.”
“진 소저는 형님과 같은 대에 들어간 거죠?”
“그래. 진 소저와 나는 이 대에 속해 있다. 너도 정해 둔 곳이 없으면 당분간 우리와 함께 다니는 건 어떠냐?”
“좋아요.”
연적하는 흔쾌히 승낙했다.
무한까지 혼자 가느니 남궁천이 속한 이 대와 함께 가는 게 여러모로 나았다.
잠시 후 남맹의 정문으로 이백여 기의 인마(人馬)가 질서 정연하게 나왔다.
이백여 기의 인마는 이내 서쪽으로 내달렸다.
거리에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하남성.
허창 북부 관왕촌.
해거름 무렵.
오백여 명의 무인들이 관도 저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정주에서 출발한 호천맹의 고수들이다.
선두의 삼백여 명은 말을 탔지만 나머지는 두 발로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말에 탄 사람들은 괜찮았지만 걷고 있는 사람들은 패잔병들을 보는 듯했다.
찌는 듯한 더위에 지친 그들은 싸움은커녕 걸어가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뒤를 힐끔 본 맹주 무극상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아! 저래서야 무한에 도착한들 싸움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려.”
그러자 총사 공손일랑 공손기가 면목 없다는 듯 말했다.
“자비량으로 참전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가지고 오라 했습니다만……. 저렇게 많이 맨몸으로 올 줄은 몰랐습니다. 참전하겠다는 것도 감사할 일이긴 한데……. 무더위가 다른 때보다 일찍 찾아와 고민입니다.”
“내일부터는 낮에 자고 밤에 이동하는 것은 어떻겠소?”
“그것도 좋은 방법 같습니다. 밤과 낮을 바꿔서라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최선이니까요.”
그때 총사부의 무인 하나가 다가와 공손기에게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대나무 통을 내밀었다.
“남맹이 출정했다고 합니다. 목적지는 저희와 같은 무한입니다.”
전서함에서 종이 쪽지를 꺼내 내용을 확인한 공손기가 무극상인에게 쪽지를 건넸다.
“생각보다 빨리 남맹이 움직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누가 마교와 처음 일전을 벌이느냐가 중요하게 됐는데……. 고민이군요.”
공손기도 남천 연적하의 검공을 목격한 사람 중에 하나다.
그는 호천맹이 무력으로 남맹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번 마교와의 전쟁에서 호천맹이 챙길 수 있는 것은 명예가 전부다.
호천맹이 몸을 사리지 않고 먼저 마교와 싸웠다는 것.
앞으로도 호천맹이 무림의 주인 역할을 하려면 그것 하나만큼은 챙겨야 한다.
하지만 지금 호천맹 전투 부대의 면면을 보면 그것도 어려울 것 같다.
‘만약 남맹이 먼저 마교와 싸우게 되면, 우리가 얻을 건 아무것도 없다.’
천하인들은 남맹을 칭찬하고, 호천맹을 비웃으리라.
목숨 걸고 출정까지 한 마당에 계속 그런 욕을 먹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한편 무극상인은 단번에 공손기가 염려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자신의 바람도 그와 같았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同價紅裳]’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몸 사리는 칠파일문을 어렵게 설득해 출정한 만큼 좋은 결과를 얻어야 했다.
“총사. 방법이 없겠소?”
맹주의 질문에 공손기는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마교는 남직례성을 목표로 동진(東進)하고, 호천맹은 남진(南進), 남맹은 서진(西進)중이다. 세 세력이 만나는 한복판에 있는 게 무한이었다.
“무한의 호천맹 산하 방파들에게 ‘마교를 무한 북부의 목련산(木蓮山)으로 유인하라’ 명하십시오. 남진하는 우리는 하루를 벌 수 있지만, 서진하는 남맹은 꼬박 하루를 손해 볼 것입니다.”
“그건…….”
무극상인이 머뭇거렸다.
자칫 그 일에 동원된 무한의 방파들이 떼죽음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