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99
899회. 네가 제멋대로인 건 사실이야
긴장이 풀어진 상태에서 기분을 내다 보면 말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남맹의 총사 반천일검 모용문이 그랬다.
총사부의 노고를 치하하다가 그만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을 하고 말았다.
남맹의 피해는 줄이고, 호천맹의 피해를 늘린다는 것.
총사부 모두가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내부적으로는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발언은 아까부터 불편한 눈으로 보던 연적하의 심기를 크게 거슬렀다.
“당신 지금 뭐라고 그랬어!”
연적하가 모용문을 노려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잔칫집처럼 왁자지껄 떠드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뭐?
호천맹의 피해를 늘렸다고 칭찬하더니 앞으로도 그렇게 하라고?
한편 모용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본래 오대세가끼리는-마치 칠파 일문이 서로 그러하듯-호형호제(呼兄呼弟)해 왔다.
사석에서 모용문이 검왕 남궁벽을 형님이라 부르니 연적하의 숙부뻘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무림세가들 앞에서 연적하가 그를 ‘당신’이라 부른 것이다.
연적하가 남궁세가의 사위이니 보는 관점에 따라 존장을 능멸한 행위였다.
모용문은 수치스러웠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잠시 총사부의 노고를 치하하던 중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소?”
그래도 남들 앞에서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한 그는 평소와 달리 하오체로 맞받았다.
남맹 고수들 앞이니 연적하가 제멋대로 굴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모용문이 시치미를 뚝 떼자 연적하가 그에게 다가갔다.
“이 아저씨야. 호천맹 사람들이 삼백 명 넘게 죽었어. 그런데 뭐? 총사부에서 일을 잘해서 호천맹의 피해가 늘어났다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라고? 그게 남맹 총사의 입에서 나올 소리야? 나는 당신이 녹림인 줄 알았어. 녹림은 전통적으로 호천맹과 죽고 죽이는 사이거든. 그런데 당신 모용세가 사람이잖아? 그런데 왜 녹림과 똑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그걸 듣고 박수치며 좋아하는 총사부 인간들은 또 뭐고? 나는지금까지 남맹이 정파인 줄 알았는데 사파였어? 그런 거야?”
“사파라니! 아무리 남천 대협이라도 말을 가려서 하시오. 우리 남맹은 정파를 떠받치는 기둥이오.”
“그럼 호천맹이 사파구나? 그래서 호천맹 사람들이 많이 죽은 걸 보고 좋아했구나? 맞아?”
“끙! 억지 부리지 마시오. 호천맹과 남맹 모두 정도를 추구하는 문파들의 모임이외다. 알 만한 분이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소.”
“모르니까 묻지. 알면 내가 묻겠냐? 내가 볼 때 너희 총사부기 사파든지, 아니면 호천맹이 사파야. 그러니 호천맹 사람들이 죽은 걸 두고 좋아하지. 말해 봐. 너희들 사파냐?”
“너희라니! 실로 방자하구나! 나는 남맹의 총사다! 사적으로는 검왕의 의제로 너의 숙부뻘이라 할 수 있다.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너에게 그런 소리를 들어도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연적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어, 괜찮아. 내가 볼 때 너희들은 사파야. 사파의 서열은 힘으로 정해. 안 그래 심 노인?”
연적하의 질문에 심통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요. 사파에서는 힘 센 놈이 웃어른이지요.”
연적하가 턱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들었지? 너희들은 싹 다 내 아래야. 불만 있냐? 불만 있는 놈은 씨불여 봐. 내가 왜 너희들의 윗사람인지 가르쳐 줄 테니까.”
지켜보는 눈이 많은지라 모용문은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꺾지 않았다.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총사부는 사파가 아니며! 당연히 너도 우리의 존장이 아니……. 악!”
모용문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뒷걸음질 쳤다.
어느새 그의 앞에 나타난 연적하가 모용문의 멱살을 움켜잡고 들어 올렸다.
“누가 윗사람인지 다시 말해 봐!”
“방자하……. 악! 악! 악!”
모용문의 머리가 좌우로 연신 돌아갔다.
연적하는 쉬지 않고 모용문의 따귀를 후려쳤다.
모용문의 입이 찢어지고,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지만 연적하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 그만! 그만해!”
“웃어른에게 말버릇 봐라?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려나?”
연적하가 다시 손을 치켜세울 때다.
“멈춰라!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벽력같은 남궁벽의 호통에 땅이 찌르르 울렸다.
그제야 연적하는 슬그머니 모용문의 멱살을 놓고 돌아섰다.
남궁벽이 호랑이 같은 눈으로 연적하를 쏘아보며 거듭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다!”
물론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다른 남맹의 사람들처럼 연적하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지켜봤다.
그러니 그의 질문은 연적하를 향한 힐난이라 봐야 옳다.
연적하도 백부의 눈빛을 보고 알았다.
누구라도 지금 검왕 남궁벽의 얼굴을 보면 그의 분노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게다.
하지만 연적하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총사와 총사부, 그리고 더 나아가 남맹의 맹주인 검왕에게 실망한 상태였다.
“이 사람이 총사부가 호천맹의 피해를 늘렸다고 칭찬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옳고 그름을 가르치던 중이었어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네가 이 사람이라고 부르는 그는 남맹의 총사다.”
“그가 남맹의 총사면 더더욱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잖아요? 아닌가요?”
남궁벽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남맹의 고수들 앞에서 그냥 구경만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한마디 했다.
“너의 이런 행동 역시 정파와는 거리가 멀다. 너는 사파냐? 만약 네가 사파라면 어째서 총사를 비난하느냐?”
순간 연적하의 굳건하던 눈빛이 흔들렸다.
남궁벽의 말은 교묘해서 그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네가 사파라면 어째서 총사를 비난하느냐?’라는 말이 그의 가슴에 화살처럼 박혔다.
불의 앞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연적하의 가슴이 차갑게 식어 갔다.
이를 악물고 있던 연적하가 또박또박말했다.
“아무리 내가 사파라도 옳고 그름이 뭔지 정도는 압니다. 백부님의 남맹은 틀렸습니다. 그리고 백부님도요.”
너무도 차가운 그의 음성과 눈빛에 남궁벽은 흠칫 놀랐다.
‘아뿔사! 내가 실수를 한 건가.’
그를 설득했어야 하는데 홧김에 ‘너도 똑같이 나쁜 놈이다’라며 비난하고 말았다.
뒤늦게 남궁벽은 변명하려 했지만 연적하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심 노인.”
“예!”
심통이 큰 소리로 답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는 턱을 세우고 주변의 남맹을 오연한 얼굴로 쓸어 보았다.
“지금까지 헛짓거리한 것 같아. 그만 가자.”
말을 마치자마자 연적하는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심통은 검왕과 총사를 향해 ‘흥!’ 하는 냉소를 날린 후 그의 뒤를 따랐다.
어기충소의 신법으로 날아오른 두 개의 신형은 이내 빛으로 변해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졌다.
설마하니 연적하가 이렇게 떠날 줄 몰랐던 남궁벽은 황망한 눈으로 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뒤늦게 자신이 연적하의 성정을 너무 간과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연적하가 남맹과 결별한 게 알려지면 남맹의 기세는 반토막이 나고 말 터.
남궁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남맹 고수들의 근심 가득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저들도 알고 있는 게다.
남맹의 기둥이 연적라는 것을.
연적하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남맹은 그야말로 개밥의 도토리가 되고 만다.
그는 짐짓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다.
“연적하가 아주 떠난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얼굴들이오? 남궁세가로 돌아가 몇 마디 하면 풀어질 터이니 너무 걱정들 하지 마시오.”
그제야 남맹 고수들의 표정이 조금씩 살아났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맹주님. 나는, 아니 우리 모용세가는 이번 일을 묵과하지 않겠습니다.”
모용문의 말에 남궁벽이 되물었다.
“묵과하지 않으면?”
“남맹이 나서지 않는다면, 모용세가의 이름으로 남천의 패악질을고 발하겠습니다.”
“고발하면 자네가 맞은 일의 경위가 천하에 드러날 걸세. 설마 그러기를 바라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제 꼴이 어떤지 보십시오. 저는 남맹의 총사 이전에 모용세가의 가주입니다. 그런 저를 연적하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시란 말입니다!”
“자네에게는 안된 일이네만 어쩌겠나? 연적하의 잘못만도 아니니 털어 버리게.”
“제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연적하가 사람 죽어 나가는 걸 싫어함을 알면서 함부로 떠들어 댔잖은가. 드러내 자랑할 일과 조용히 넘겨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왜 몰라?”
“우리는 남맹입니다! 남맹을 위해 한 일을 왜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적당히 하게. 그게 정말 자랑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남들 앞에서도 자랑을 해 보든가!”
남궁벽이 버럭 소리 지르자 모용문은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날이 서 있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사위라고 연적하의 편을 드는 모양이다.
‘두고 보자. 언제고 이번 일에 대한 복수를 꼭 하겠다.’
고개를 떨군 모용문은 벌어진 입 사이로 흘러내리는 침방울을 보며 아무도 모르게 복수를 다짐했다.
***
남직례성.
합비.
남궁세가 천람소축.
“누님. 석경장으로 가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남궁세가로 돌아온 연적하가 남궁연을 보자마자 한 소리다.
남궁연은 어딘지 차가운 그의 표정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도 오랫동안 함께 지냈는데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보고 가야지. 무슨 일이 있었니?”
연적하는 남궁연에게 무한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때 백부님이 그러더라고요. 너도 사파처럼 행동한다고. 그러면서 왜 총사를 비난하냐고. 그때 깨달았어요. 녹림에서 정파를 왜 위선자들이라고 욕하는지. 누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백부님과 남궁세가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요.”
“적하야…….”
남궁연은 그 짧은 순간 연적하가 왜 이렇게 분노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언법(言法)을 수련하면서 그는 부지불식간에 언행일치의 삶으로 돌아섰다.
그에게 ‘뜻’과 ‘말’과 ‘행동’은 같았다.
그런 그의 눈에 남맹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위선자로 보였으리라.
자신의 부친마저도 그 범주에 속한다는 게 안타깝지만, 사실 연적하가 옳다.
오직 그만이 바른길을 가려 한다.
호천맹과 남맹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사파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지만, 연적하는 그러지 않는다.
남궁연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자신을 보자 연적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틀린 건가요? 총사와 백부님의 말이 맞아요? 누님은 천하에서 가장 지혜로우니까, 누구 말이 맞는지 가르쳐 주세요. 총사 말대로 내가 무공만 믿고 제멋대로 구는 거라면 반성할게요.”
“네가 제멋대로인 건 사실이야.”
“역시, 그런 건가요?”
의기소침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연적하를 보며 남궁연이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네가 옳아. 남맹의 미래를 위해 호천맹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지독하게 이기적인 생각이야. 그런 사람들의 말은 귀담아듣지 마.”
다 죽어 가던 연적하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남궁연의 말을 들으니 갈대처럼 흔들리던 마음이 다시 바위처럼 굳건해졌다.
“다행이네요. 총사까지 때렸는데 모두 내 잘못이면 어쩌나 고민했거든요.”
“얼마나 때렸기에?”
“얼굴이 퉁퉁 부어오를 때까지?”
“제갈세가도 그렇고 총사들과 상성이 안 맞네.”
“괜찮아요. 나는 누님하고만 잘 맞으면 돼요.”
연적하가 남궁연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천하에서 오직 그녀만이 자신의 편이다.
남궁천만 해도 ‘이해한다’고만 했지 ‘네가 옳다’고 말해 준 적은 없었다.
남궁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당장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아버지와 오라버니에게는 내가 따로 연락할게.”
그녀는 ‘우리 집’을 힘주어 말했다.
남궁세가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일 뿐 그녀에게 집은 석경장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