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07
907회. 뭐가 대(大)고 뭐가 소(小)인데?
호천맹 맹주와 육파일문의 장문인들은 넋을 잃고 총사가 맞는 걸 보았다.
그들 중에 누구도 남천 연적하가 호천맹의 총사를-그것도 칠파일문 장문인들 앞에서-개 잡듯 팰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칠파일문의 장문인들은 비현실적인 광경 앞에서 입만 쩍 벌렸다.
그들은 연적하의 말에 양심이 찔려 움츠리고 있던 터라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총사부 무인들은 그들의 지휘관인 총사가 공개 석상에서 얻어맞자 바로 움직였다.
그중에서도 공손암이 가장 빨랐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총사부 무인들을 이끌고 귀빈석으로 뛰어들었다.
싸움의 유불리를 따지기 전에 총사부의 일원으로 총사가 맞는 걸 구경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손암이 버럭 소리쳤다.
“멈추시오!”
그러나 누가 멈추란다고 멈출 연적하가 아니다.
그의 손이 다시 한번 허공으로 올라갔다.
순간 울컥한 공손암이 ‘멈춰라!’ 소리치며 호랑이처럼 연적하를 덮쳤다.
그러자 연적하는 잡고 있던 총사의 몸을 공손암에게 들이밀었다.
공손암이 얼떨결에 총사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두 사람의 몸이 겹쳐지자 연적하가 총사의 안면 부위를 손바닥으로 힘껏 내리쳤다.
‘철썩!’ 소리와 함께 총사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며 공손암의 얼굴을 찍었다.
“악!”
공손암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뒤로 나뒹굴었다.
귀빈석에 뛰어 들어와서 우물쭈물하던 총사부의 무인들이 공손암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공손암이 두 손으로 내려앉은 콧잔등을 감싸며 소리쳤다.
“총사님을 구해라!”
그것은 저 인외지경의 남천에게 돌격하라는 소리다.
남천이 두려웠지만 그들은 화살 맞은 맷돼지처럼 저돌적으로 달려갔다.
칠파일문 장문인들과 구경꾼들 앞에서 총사가 더 망신당하게 둘 수 없어서다.
총사부 무인들이 달려오자 연적하는 슬쩍 손을 흔들었다.
휘우우웅-.
손바닥에서 일어난 광풍에 총사부 무인들이 낙엽처럼 날아갔다.
근 삼 장(약 9미터) 밖까지 날아간 총사부 무인들은 땅에 처박히자마자 후다닥 몸을 일으켰지만 감히 귀빈석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공손암이 황망한 얼굴로 칠파일문의 장문인들을 둘러보았다.
누가 뭐래도 칠파일문이 무림의 종주라 믿었다.
그 칠파일문의 장문인들이 모인 곳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걸 보고도 누구 하나 나서서 남천을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장문인들도 남천의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무위가 두려워서일까?
전자라면 희망이 있지만, 후자라면 ‘호천맹의 종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한 사람의 패악도 막지 못하는 호천맹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때 연적하가 공손암에게 물었다.
“이봐, 총사부 아저씨. 당신도 대(大)를 위해서 소(小)가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렇소!”
공손암이 결연한 어조로 답했다.
비록 무공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지만 기개에서만큼은 그를 압도하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보여지기를 바랐다.
“뭐가 대(大)고 뭐가 소(小)인데?”
“무림 정의가 대고, 개인의 영달이 소외다!”
“뭐가 무림 정의인데?”
“마교의 침탈에서 천하를 구원하는 일이오!”
“그럼, 내가 대네? 당신들이 소고.”
“어째서 당신이 대라는 거요! 마교를 물리친 것은 당신이 아니라 우리 호천맹이거늘!”
“내가 마교 교주를 죽여서 그들이 천산으로 달아난 거거든. 그러니까 내가 마교의 침탈에서 천하를 구한 거지. 설마 마교가 호천맹과 남맹에 겁먹고 달아난 줄로 생각했던 거야?”
“…….”
너무도 뜻밖의 말에 공손암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남천이 마교 교주를 죽였다니?
하기사 돌이켜 보면 마교가 목련산에서 갑자기 철수한 게 이상하기는 했다.
“내가 대고, 당신들이 소니까. 나를 위해서 몇 대 맞아 줄 수도 있는 거잖아? 안 그래? 내 말 틀려? 대를 위해서 소가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면서?”
“당신에게 맞아 줌으로 무림 정의가 지켜진다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무림 정의와 당신이 총사부를 괴롭히는 게 어떤 관계가 있소? 이건 그저 호천맹의 운영 방식에 대한 화풀이가 아니오?”
“관계가 있거든? 호천맹이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을 상대할 수 있어? 말해 봐. 있어? 없어?”
공손암은 칠파일문의 장문인들을 보았다.
모두가 불가하다는 듯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공손암은 마지못해 답했다.
“없소.”
“그런데 나는 그 머저리들을 이길 자신이 있거든? 그런데 말야. 당신들이 하는 짓들을 보면 끼어들고 싶지가 않아. 위선 덩어리인 당신들을 줘 패야 나설 마음이 생긴다면 어쩔 거야? 그래도 내가 줘 패는 걸 분풀이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어? 위선과 가식덩어리인 당신들을 내버려 두고 석경장에서 알콩달콩 제자들이나 키우면서 살까? 말해 봐? 내가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
“…….”
공손암은 북받치는 울분에 파르르 떨었다.
하늘이 왜 저런 꼴통에게 천외천의 힘을 허락했는지 원망스러울 뿐이다.
공손암이 침묵하자 연적하가 맹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이, 무늬만 도사님. 내가 도사님 싸대기를 한 대 날려야 속이 풀려서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을 정리해 줄 수 있다면, 어쩔 거예요? 무림 정의를 위해 한 대 맞아 줄 거예요? 싫다면 그냥 무림 정의고 뭐고 석경장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살고요.”
호천맹 맹주인 무극상인이 씁쓰름한 얼굴로 말했다.
“천하창생을 위해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겠소? 열 번, 백 번이라도 맞아 드리리다.”
연적하가 잡고 있던 총사의 멱살을 놓고, 공손암과 마주 섰다.
“당신 눈에는 내가 대(大)로 안 보이지? 나도 마찬가지야. 내 눈에는 호천맹이 땅에 떨어진 명예를 되찾기 위해 사람들을 사지로 내몬 걸로 보인다고.”
공손암은 슬며시 그의 눈을 피했다.
사실을 알고 온 사람에게 아니라고 해 봐야 통할 리 없기 때문이다.
공손암이 침묵하자 연적하는 만족한 얼굴로 남궁천에게 다가갔다.
“형님. 대충 자리 잡고 앉아서 구경이나 하자고요.”
이윽고 연적하는 남궁천에게 의자 하나를 내주고 그 옆에 걸터앉았다.
혹시나 연적하에게 맞을까 봐 긴장하고 있던 무극상인은 총사부에 눈짓을 보냈다.
총사부에서 입담 좋기로 소문난 공손방이 기절한 종사를 대신해 연단으로 걸어 나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송구합니다! 보셨다시피 무림대회는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겁니다. 귀빈석의 솔선수범에 감사를 드립니다.”
“…….”
나름 분위기를 띄우려고 던진-자학에 가까운-농담이지만 귀빈석은 물론 관중들도 웃지 않았다.
“험, 험, 그럼, 지금부터 호천맹의 무림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당황한 공손방은 서둘러 대진표에 기록된 무인들의 이름과 별호를 호명했다.
***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중양절 무림대회가 끝났다.
호천맹은 무림대회를 통해 삼백 명의 고수를 선발했다.
그들 중에 최고수 열 명은 대회가 끝난 뒤 호천십걸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하지만 삼백 명의 고수와 호천십걸보다 더 이목을 끈 사람은 남천 연적하였다.
그가 호천맹 총사와 총사부를 두드려 팬 일이 천하에 알려지면서 호천맹 무림대회는 ‘역사상 가장 끔찍한 무림대회’로 불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적하와 남궁천은 호천맹 무림대회가 끝나자마자 합비로 돌아갔다.
그날 밤.
남맹 대회의실.
남궁천은 장거리 여행의 피로를 풀 틈도 없이 대회의실로 불려 갔다.
대회의실을 가득 채운 오대세가 고수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남맹의 중추라 할 수 있는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남맹이 아닌 호천맹 무림대회에 참관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남궁천이 착석하자 남맹 총관인 반천일검 모용문이 그를 호명해 일으켜 세웠다.
“남궁천. 자네는 지난 중양절, 남맹의 무림대회에 불참하고 호천맹으로 갔던 사실이 있나?”
“예.”
“남맹과 호천맹의 긴장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자네가 왜 호천맹에 갔는가? 남천 대협이 가자고 끌어들였나? 아니면 자네에게 다른 의도가 있어서인가?”
남궁천은 애써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남천은 제가 가겠다고 해서 동행해 준 것뿐입니다. 의도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동도로서 호천맹의 무림대회가 궁금해서 갔습니다. 가면 안 된다는 법이나 규칙이 있습니까? 있었다면 고려해 봤을 텐데요.”
그의 말에 오대세가 고수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고려해 봤을 거라는 말은 즉, 규칙을 정해도 갈 수 있다는 소리인 까닭이다.
남궁천이 삐딱하게 나오자 모용문은 슬쩍 물러섰다.
맹주의 앞에서 남궁세가의 소가주를 몰아붙여 봐야 득이 될 게 없어서다.
“이 자리는 자네를 비난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네. 자네와 남천 대협이 호천맹을 뒤집어 놔서 오히려 남맹에 호재가 됐는데 그럴 이유가 없지. 자네를 부른 것은 이우로 호천맹의 행사에 참여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네. 한 산에 두 마리 호랑이가 살기 어렵네. 남맹과 호천맹은 무림이라는 산에 살고 있는 호랑이일세. 둘 중 하나가 떠나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지. 자네도 남맹이 무림에서 사라지기를 바라지는 않겠지?”
“글쎄요.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요? 무림이 산이 아니라 바다라면요? 그리고 남맹과 호천맹이 호랑이가 아니고 고래라면 어떻습니까? 각자의 영역에서 더불어 잘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자 사대세가 고수들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어허! 어디 총사가 말하는데 꼬박꼬박 말대꾸를!”
“우리 무림세가 사람들은 생각이 너만 못해서 그런 소리를 하는 줄 아느냐!”
“남궁세가의 소가주면 소가주답게 처신을 해야지!”
“맹주! 저것은 남궁세가의 뜻입니까?”
누군가 맹주를 끌어들이자 무림세가 고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남궁벽을 향했다.
묵묵히 앉아 있던 남궁벽이 입을 열었다.
“그게 남궁세가의 뜻이라면 이 자리에 소가주를 부르는데 동의했겠소? 나도 금시초문이외다.”
이윽고 그는 아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천아, 남맹과 호천맹이 지금은 무던한 관계지만, 산하 방파들 간에 분쟁이 생기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호천맹과 거리를 두라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도리어 호천맹의 행사에 참가하다니, 나는 네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얼마 전까지의 너는 누구보다 남맹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갑자기 심경에 변화가 생길 만한 일이 있었더냐?”
남궁천은 이때다 싶어 벼르던 말을 꺼냈다.
“열흘 쯤 전에 호천맹의 사자들이 왔었는데, 그들은 과거 진 매와 함께 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남맹을 떠나기 전에 진 매를 만나고 돌아갔지요. 그날 진 매는 호법당으로 불려 가 다섯 시진(10시간)이나 취조를 받았습니다. 호천맹의 지인을 잠깐 만났다는 이유 하나로 말입니다. 호법당에서 진 매를 간자 취급했다고 하더군요. 남맹과 호천맹 사이에 전쟁이라도 났습니까? 같은 정파의 단체들끼리 너무한 것 아닙니까? 지인과 만났다고 간자 취급이라니요? 예, 그래서 호천맹 행사에 갔습니다. 호천맹 사람들과 만나는 게 무슨 대죄라고 그 난리냐 이 말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쭈욱 호천맹 사람들과 만날 생각입니다. 무림 동도들과 만나 교류하는 게 언제부터 죄가 됐습니까?”
아들의 말에 남궁벽은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설마하니 정말 그런 이유로 저런 기행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
진설하가 간자 취급당했다고 호천맹에 들락거리겠다니?
십 대, 이십 대도 아니고 삼십 대에 접어든 아들에게 저런 치기가 남아 있을 줄이야!
“흐음! 진설하가 호천맹 사람들로 고초를 겪은 것은 안된 일이다만, 호법당에서 그럴 정도로 남맹과 호천맹의 관계가 좋지 않다. 너의 이런 행동은 남맹과 진설하 모두에게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러자 남궁천은 부친과 시선을 마주한 채로 말했다.
“지난번에 물으셨지요? 진 매가 남맹을 떠나겠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호천맹의 무림대회에서 깨달은 바가 적지 않습니다. 만약 진 매가 남맹을 떠나겠다면 저도 진 매를 따라갈 겁니다.”
남궁세가 소가주인 남궁천의 돌발선언에 대회의실이 발칵 뒤집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