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20
920회. 고지식하다는 말 자주 들었지?
남맹과 비슷한 시기에 호천맹도 가까운 낙양의 월하교당으로 청룡대를 보냈다.
월하선자가 유명교주를 따라간 틈을 노린 것이지만 결과는 남맹만큼이나 참담했다.
청룡대는 십두마병 하나를 죽이고, 거기서 나온 일각마인에게 청룡대의 절반을 잃었다.
다행히 청성파의 법보로 일각마인을 죽였지만, 청룡대는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생존자들 태반이 부상을 입은 탓이다.
하남성.
정주.
호천맹 총단.
통천각.
대회의실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총사 공손일랑 공손기가 난감한 표정으로 칠파일문 대표 앞에서 말을 이어 갔다.
“……청룡대에 보충할 인원이 없는 터라 해체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청룡대의 열두 명은 남아 있는 세 개 대에 재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손기가 잠시 호흡을 조절할 때 점창파의 도천 진인이 물었다.
“허면 청룡대가 하기로 한 일은 누가 맡게 되는 거요?”
본래 청룡대는 유명교를 상대로 싸우기로 되어 있었다.
네 개 대 중에서 청룡대만 유명교로 돌린 셈이다.
그들에게도 유명교와의 싸움은 보여 주기 식에 불과한 것이니 당연했다.
“여러분께서 백호대, 주작대, 현무대 중에서 하나를 정해 주십시오. 그들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청룡대의 일로 충격을 받은 공손기는 칠파일문의 대표에게 떠넘겼다.
초장부터 너무 큰 피해를 입었기에 자신이 지정하기가 난감해서다.
자기 문파의 제자가 죽거나 다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조용하던 회의실이 시장처럼 시끌시끌해졌다.
칠파일문의 대표들은 유명교와의 싸움에 자기 문파가 동원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렇게 모두가 유명교를 피하자 결국 맹주인 무극상인이 나섰다.
“청룡대가 하던 일은 백호대가 맡아 주시게.”
백호대의 핵심은 화산파다.
백호대 대주이자 화산파 장로 무상 진인은 움찔했지만 거부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화산파 장문인이 맡으라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눈치를 보던 공손기는 화산파가 잠잠하자 계속해서 회의를 이끌어 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맹이 악양에 묶이게 됐다는 점입니다. 팽가의 법보인 청사가 어찌 된 일인지 악양에 출몰한 뇌신에게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악양의 산월신당은 뇌신의 독무로 금지(禁地)가 되었습니다. 뇌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남맹은 다른 곳에 신경 쓸 틈이 없습니다. 그동안 분쟁 지역을 빠르게 정리할 생각입니다.”
무상 진인이 급히 말했다.
“팽가의 청사는 검선 여동빈이 만든 것으로 도가에서 유명한 법보(法寶)외다. 마물에게 왜 그것이 듣지 않았는지 원인을 규명해야 할 것이오.”
당장 유명교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화산파에게 그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자 맹주인 무극상인이 끼어들었다.
“청룡대가 월하교당의 일각마인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청성파에 금룡옥적(擔龍玉笛)이 있었기 때문이네. 마물이 법보의 힘에 약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네.”
무상 진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팔선 중 하나인 한상자의 금룡옥적은 효과를 보았는데 왜 청사는 실패했는지 모르겠다.
칠파일문 대표들이 술렁거리자 공손기가 나섰다.
“우리 총사부에서는 팽가에서 구한 청사가 모조품인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과거 십두마병의 실체가 처음 드러났을 때 가짜 법보가 횡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시기에 모조품인지 모르고 구입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칠파일문 대표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그게 아니고서는 산월신당의 일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전진파 장문인 무종상인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법보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산월신당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빈도는 무종상인의 말에 찬성합니다.”
“맞습니다. 무작정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진위 여부를 가리십시다.”
“옳소!”
“그럽시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니 진짜인지 가짜인지부터 가립시다.”
“그런데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누군가의 질문에 소란은 이내 가라앉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공손기는 무심코 맹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답하지 못하는 문제를 맹주가 혹 알까 싶어서다.
그러나 무극상인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머뭇거리던 공손기는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법보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마물을 상대로 써 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백호대에 여러 문파에서 소유한 법보를 빌려주시고, 진위 여부를 판명받는 것은 어떻습니까?”
칠파일문 대표들은 어딘지 떨떠름한 얼굴이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그보다 나은 대안을 찾기 어려워서다.
결국 칠파일문은 백호대에 자신들 문파의 법보를 빌려주기로 결의했다.
***
남직례성.
합비.
석경장.
객청.
아침부터 또다시 금의위 남진무사 원화평이 연적하를 찾아왔다.
연적하는 차마 그를 문전 박대하지 못하고 손님으로 맞아 주었다.
원화평이 자리 잡고 앉자 연적하가 그의 앞에 놓은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미리 말하는데 나는 안 움직여요.”
“악양의 산월신당이 독무에 잠겼습니다. 남맹에서 산월신당의 당주를 죽이고 뒤처리에 실패한 때문입니다. 현재 산월신당은 뇌신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남맹은 뭘 하고요?”
“독무를 뚫고 들어갈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아…….”
언젠가 만났던 뇌신을 떠올린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대체 독무를 얼마나 뿜어냈기에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한다는 거지?’
생각에 잠긴 그를 보며 원화평이 계속해서 말했다.
“문제는 신당 인근의 백성들입니다.”
“백성들이 왜요?”
“독무의 영향으로 인근에 괴질이 퍼지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서너 명씩 쓰러지고 있다 합니다. 사망자가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지요.”
“남맹을 좀 다그쳐 보세요.”
“어찌어찌 법보는 준비했으나 독무에 막혀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더군요.”
“쯧쯧! 그래서 어떻게 한대요?”
“백성들의 치료와 사상자가 나오면 배상을 하겠다고 합니다.”
“아니 그 사람들도 십두마병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 텐데, 왜 못 죽이고 일을 키웠대요?”
“팽가의 법보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무슨 문제요?”
“몇 해 전 법보가 한창 인기를 끌 때 모조품을 고가로 구입한 것 같습니다.”
“가짜 법보를 들고 유명교 신당에 쳐들어갔다는 거예요?”
“남맹에서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고 합니다.”
“에혀! 무책임한 사람들. 무슨 일처리를 그따위로 한대.”
“대협께서도 딱히 방법이 없으시겠지요?”
“신당 주변이 독무로 가득 차 있다면서요. 나라고 무슨 재주가 있겠어요.”
“역시 그렇군요. 황실과 남맹에서 당가와 백독문 등에 해독을 의뢰했는데 죄다 독무 앞에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고 합니다. 본 적은커녕 들은 적도 없는 독이라…….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거기까지 말한 뒤에 원화평은 슬쩍 운을 뗐다.
“저어, 대협. 호천맹과 남맹이 유명교와 싸우고 있으니 대협께서도 슬슬…….”
“슬슬 뭐요? 나는 뭐 바보인 줄 알아요? 호천맹과 남맹의 주요 전력이 여전히 뒤에서 싸우는데, 그들을 대신해 유명교를 처리해 달라고요?”
“아, 그런 뜻이 아닙니다.”
원화평은 연적하가 화를 내자 얼른 말을 바꿨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연적하에게 유명교를 처리해 달라 부탁할 수 없어서다.
“그럼 무슨 뜻인데요?”
“소관은 단지……. 그저, 마음의 준비라고 할까요? 호천맹과 남맹의 태도가 조금씩 좋은 쪽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바뀌기는 개뿔. 딱 보면 몰라요? 싸우는 척만 하는 거를? 그들이 작정하고 제대로 싸웠으면 산월신당의 뇌신도 죽였을 거예요.”
“그, 그렇죠?”
원화평은 섣불리 운을 뗐다가 본전도 찾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는 연적하와 한 시진(2시간)쯤 담소를 나누다 돌아갔다.
홀로 남은 연적하는-기가 빨린 얼굴로-멍하니 정면을 응시했다.
산월신당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죄 없는 백성들이 괴질로 고통받고 있음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곰곰 생각하던 그는 때마침 지나가던 집사를 불러 당운망을 찾아오라 했다.
잠시 후 안뜰과 연결된 월동문으로 집사와 당운망이 들어왔다.
“장주님, 부르셨습니까?”
“어. 이리 올라와 봐.”
연적하는 집사를 돌려보내고 당운망을 앞에 앉혔다.
“당 노인은 유명교의 뇌신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어?”
“인면사(人面蛇)요?”
“그래, 그 뇌신이 독무를 내뿜거든. 독무가 가득한 곳을 뚫고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
“해독약을 먹어야지요.”
“그런데 그 독이 인세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독이라면? 그래서 해독약이 안 들으면?”
“그야 당연히 못 들어가지요. 왜요? 뇌신의 독무에 들어갈 일이라도 있습니까?”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야.”
“장주님이 백독불침이라고 해도 안 들어가는 게 좋을 겁니다.”
“왜?”
“백독불침은 독에 내성이 있다는 거지, 중독되지 않는다는 게 아닙니다. 인세에 없는 새로운 독이라면 장주님에게 내성이 없을지 모릅니다. 아마 십중팔구는 없을 겁니다. 아무리 장주님이 반신(半神)의 경지라 해도 위험합니다.”
“그래도 독무를 뚫고 가야 한다면?”
“바람으로 날려 버리든지, 불로 태우십시오.”
“바람은 곤란한데. 독무 주변에 인가가 많다는 소리를 들어서.”
“그럼 잘 태우십쇼.”
“태우라고?”
“대체로 독은 불에 약합니다. 정히 독무로 들어가야 한다면 태우고 가십시오.”
“불로?”
“그럼 물로 태웁니까?”
당운망이 어이없는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는지 모르겠다.
“아니, 화기(火氣)도 되는지 궁금해서 그러지.”
“태울 수 있는 건 뭐든 됩니다.”
“알았어. 가 봐.”
그러자 당운망이 품에 손을 넣고 뒤적거리더니 자기병 하나를 꺼냈다.
“독무 근처에 가거든 이걸 드십쇼.”
“해약이야?”
“예, 제가 낙월독정의 해약으로 새롭게 만들어 본 물건입니다. 아직 이름은 짓지 못했지만요.”
낙월독정의 독성을 알고 있던 연적하는 냉큼 받아 챙겼다.
그토록 악독한 독을 해독할 수 있다면 뇌신의 독무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그가 자기병을 품에 갈무리하자 당운망이 물었다.
“그런데 유명교 일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관여하지 않을 거야.”
“뇌신은 십두마병이 죽은 뒤에 나오는 마물 아닙니까?”
“그래서?”
“유명교와 관계된 게 아닌가 싶어서요.”
“당 노인은 당가에 있을 때 고지식하다는 말 자주 들었지?”
“뭐, 어쩌다 한두 번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당운망은 순순히 인정했다.
당가에서 독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 치고 고지식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평생 독을 연구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 그런 사람들이 독에 매달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어딘가를 가는데 뇌신의 독무로 길이 딱 막혔어. 그걸 내가 치우고 가면, 그걸 두고 ‘유명교의 일에 나섰다’ 말할 수 있어?”
“못 하죠.”
당운망은 연적하가 원하는 답을 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서 물었다.
“뇌신의 독무로 길이 막혔다는 걸 알면 다른 길로 가도 되지 않습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가려던 길을 돌아가란 거야? 난 그렇게 못 해. 안 해.”
“아, 예에. 해독제까지 챙기면서 굳이 그 길로 가야 하나 싶어 드려 본 말입니다.”
“참 고지식한 사람이네. 얼른 가. 고지식한 거 옮을까 봐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