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35
935회. 우리의 죽음을 확신하고 있구나
연적하가 호천맹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동을 지적한 뒤로 호천맹 사자들은 입도 떼지 못했다.
그들에게 연적하는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예컨대 그의 출신(녹림)과 언행을 보면 ‘정사지간’이라는 표현이 맞는다.
하지만 정말 그가 ‘정사지간’이냐 하는 부분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정사지간’이지만 과정을 고려하면 전혀 그렇지만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협의에 충실함은 호천맹에서도 인정하는 바였다.
결국 호천맹의 인사들은 그가 ‘무례와 불의(不義) 앞에서 폭주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다 보니 호천맹 사자들은 호천맹에 반감을 드러낸 그의 앞에서 입조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천지맹 시절에는 종단에서 종사를 두드려 팬 사람이 연적하다. 그런 그의 앞에서 ‘호천맹 사자’라는 신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상황이 그렇다 보니 공손방과 관구종, 호열재는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그때 일꾼 하나가 다가왔다.
“장주님, 식사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공손방이 재빨리 말했다.
“어이쿠!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더 하실 말씀이 없으면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볼까 합니다. 혹 맹주님에게 전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 없어요.”
“허면 저희가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왜요? 점심이라도 먹고 가시지.”
“아닙니다. 대협과 관계된 일은 화급을 다투는 것이라 바로 달려가 보고해야 합니다. 말씀은 감사하나 마음만 받겠습니다.”
공손방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얼굴만 봐도 숨이 콱콱 막히는데 어떻게 함께 식사를 한단 말인가!
“바쁘시다니 잡지는 않을게요.”
연적하는 두 번 권하지 않았다.
그에게도 뻔뻔한 호천맹 사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호천맹 사자들은 바쁜 사람들처럼 부랴부랴 일어나 작별 인사를 건네고 떠났다.
안채.
연적하가 자리에 앉자 석경장 식솔들은 하나 둘 식사를 시작했다.
심통이 제 밥그릇 위에 고기를 수북하게 쌓아 올린 직후 물었다.
“호천맹에서는 무슨 일로 왔답니까?”
그러자 연적하가 그의 밥그릇을 보며 말했다.
“식탐 좀 그만 부려.”
“식탐이 아니라 습관입니다. 고기도 많은데 왜 그러십니까? 공자님이야말로 남의 밥그릇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십쇼. 호천맹에서 왜 왔냐니까요?”
“남경에 함께 갔으면 하더라고.”
“시류를 보고 움직이기는 했지만, 막상 남경에 가려니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이 겁난다 이거네요?”
“그런 거지.”
“그래서요? 함께 가시겠다고 하셨습니까?”
“미쳤어? 나 그렇게 생각 없는 사람 아니야. 남맹하고 틀어졌는데 호천맹과 다니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뭐라고 하긴요. 호천맹에 붙었나 보다 하겠지요.”
“그래서 따로 간다고 했어.”
“잘하셨습니다.”
석경장 식솔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이 생각해도 지금 연적하가 호천맹과 함께 움직이는 건 아니다 싶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당운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주님. 혼자 남경에 가는 건 아니죠?”
“왜?”
“이번에는 저도 코에 바람을 좀 넣어 볼까 해서요. 남경 구경도 할겸…….”
당운망은 말끝을 흐렸다.
생사결을 하러 가는 장주 앞에서 남경 구경은 좀 아닌 것 같아서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심통이 쏘아붙였다.
“에라 이 양심 없는 늙은이야! 공자님이 남경에 놀러 가는 줄 아느냐? 남경 구경을 하고 싶으면 혼자 조용히 가거라. 석경장에서 너 잡을 사람 아무도 없다. 어디 대사를 앞둔 공자님에게 그따위 망발이냐! 공자님, 저런 소리는 대꾸할 가치도 없습니다. 무시하십쇼.”
연적하는 자기가 생각해도 영 뚱딴지 같은 소리라 대꾸하지 않았다.
코에 바람이라니?
당운망도 늙었는지 머리를 거치지 않고 하는 말이 많은 것 같다.
연적하가 청채로 돼지 고기를 싸서 입에 넣으려는데 심통이 물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뭘?”
“남경까지 제가 모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든가.”
연적하는 무심하게 답하고 젓가락으로 들고 있던 고기를 입에 넣었다.
사실 당운망의 말을 무시한 건 이유가 있다.
당운망에게 남경은 너무 위험했다.
낙월독정이 뛰어나지만 유명교주나 천외이선에게는 통하지 않을 게다.
과거 자신도 낙월독정의 독기를 누르고 다니지 않았던가.
물론 얼굴에 독기가 올라 흉측했지만 무공을 펼치는 데 지장은 없었다.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의 경지에 당운망의 독공은 먼지바람과도 같을 터였다.
독공에만 능할 뿐 무위가 낮은 그를 남경에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그에 비해 심통의 무위는 절대의 경지라 달아나면 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연적하의 속도 모르고 당운망은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 툴툴거렸다.
“이런 제길. 심가야. 나나 너나 무슨 차이가 있다고 장주님을 모시겠다는 거냐?”
“흐흐. 당가야. 석경장에서 그 차이를 모르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게다.”
심통의 놀림에 당운망이 이를 갈자 보고 있던 남궁연이 한마디 했다.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에게는 독이 통하지 않으니 당 노인은 가지 않는 게 좋아요. 적하도 그래서 당 노인을 제외한 걸 거예요. 그렇지 않니?”
자상함과 거리가 먼 연적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당 노인은 그들이 손가락만 까딱여도 죽을 거예요. 심 노인은 한두 번 피할 수 있겠지만.”
남궁연이 당운망에게 빙그레 웃어 보였다.
“들었죠? 사람은 저마다 쓰임새가 달라요. 당 노인이 필요한 때가 있을 거예요.”
순간 당운망은 바쁘게 놀리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남궁연에게 공수의 예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가모님. 이 당운망, 석경장에 뼈를 묻겠습니다.”
당운망은 마음속으로 ‘가모님을 위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심통이 ‘흥!’ 하고 냉소를 쳤다.
“당가야, 석경장이 무슨 묘지인 줄 아느냐? 이곳에 너의 뼈를 묻게. 네가 죽어 묻힐 곳은 아마도 원가산 어디쯤일 게다. 흐흐흣!”
월아와 금아는 웃음이 났지만 억지로 참았다.
여기서 웃으면 스승과 함께 당운망을 놀리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어서다.
***
남경.
황궁.
무영전(武英殿).
늦은 밤.
역대 황제의 신위를 모시는 신궁감 유광이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의 거처인 무영전을 찾았다.
“교주님.”
“무슨 일이냐?”
유광을 안으로 들인 팔황신모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유광은 유명교 교도로 그간 황궁에 떠도는 정보를 물어 오는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었다.
이 야심한 밤에 찾아올 정도로 긴급한 일이 발생한 모양이다.
“호천맹의 반도들이 합비에 도착했는데 그 숫자가 무려 팔백이라 합니다.”
“팔백? 정주를 떠난 건 육백이라 하지 않았느냐?”
“남맹 지부가 철수하면서 호천맹에 합류하는 무인들이 늘어났습니다.”
팔황신모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세가 기울어진 듯하니 한 다리 걸치려는 자들이 붙은 모양이다.
하지만 금군도 제압한 천외이선에게 팔백이 아니라 팔천도 문제 될 건 없었다.
“남천의 움직임은?”
“여전히 석경장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가 호천맹에 합류하지 않겠다고 했다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남맹의 이야기가 없구나?”
“남맹은 아직까지 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심지어 합비에 도착한 호천맹 본진과의 만남도 갖지 않고 있습니다. 호천맹과 연합할 의사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남천과 사이가 틀어졌다지?”
“예, 검왕이 석경장에 의절을 선언했다 합니다.”
“쯧쯧! 검왕이 그렇게 옹졸한 사람이었다니……. 의외로군.”
“남천이 비상하는 남맹의 날개를 꺾어 놓았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팔황신모가 문득 유광을 보았다.
십두마병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름 자리 잡은 환관이 꽤나 유명교 일에 열심이다.
“황실의 인사들마저 무영전에 발을 끊은 지 오래거늘, 너는 어째서 아직도 본교에 충성하느냐?”
“오래전 환관들의 괴롭힘에 시달려 죽고자 할 때 현장 법사님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그때 큰 위로를 받고 살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그 은혜를 갚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장하구나. 은혜 갚을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너는 남경의 자은각을 아느냐?”
“예, 남경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큰 기루가 아닙니까?”
“그 기루의 주인이 사대기주 중에 한 사람인 ‘천상검제’다. 그에게 전해라. ‘사대기주는 호천맹이 남경에 발을 딛지 못하게 하라’고.”
“예.”
“그 말을 전하고 황궁을 떠나라. 그것이 나의 명이다.”
“황궁을 떠나라고요?”
“돌아와 봐야 너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유광은 남천이 아무리 강해도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을 어쩌지 못할 거라 믿었다.
“황궁 내관 중에 본교 사람은 너만 남았다. 네가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였다 해도 다른 환관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무영전을 드나들었다는 게 알려지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하지만…….”
“은혜를 갚겠다고 하길래 충성심이 대단한 줄 알았는데……. 사람을 잘못 보았군.”
차가운 교주의 말에 유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감히 유명교주의 명에 토를 달다니 그건 죽어 마땅한 대죄였다.
“용서해 주십시오. 교주님의 명대로 하겠습니다.”
“가라.”
팔황신모가 더 이상 말하기 귀찮다는 듯 손을 까딱였다.
유광은-마치 황제에게 하듯-뒷걸음질로 대전에서 물러났다.
홀로 남아 있던 팔황신모는 청류신이 가르쳐 준 구령신주(救靈神脫)를 읊조렸다.
그때 금사가 들어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인기척에 눈을 뜬 팔황신모에게 금사가 말했다.
“그 내관을 살리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교주인 나라도 믿음에 대한 보답을 해 줘야 할 것 같아서요.”
“네가 다른 인간에게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구나.”
“인간의 하찮은 변덕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변덕이라. 부동심의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하시지요.”
금사가 말을 빙빙 돌리자 팔황신모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후후. 고분고분하던 네가 눈에 힘을 주는 걸 보니 알겠다. 너는 우리의 죽음을 확신하고 있구나.”
“그래서 황궁을 도피성(逃避城) 삼아 지내고 있던 게 아니었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있느냐?”
“황궁 곳곳에 숨겨진 법진(法陳)을 보았습니다. 두 분의 영기를 차단하는 법진이더군요. 그래서 두 분이 남천을 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만 맞았다.”
“나머지 반은 뭔가요?”
“어쩌면 그도 우리와 만나는 걸 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황궁에 오지 않은 걸 보면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남천이 두 분을 꺼려 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건 우리가 상계에서 하계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저를 위해 조금 더 풀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너도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완전체가 되어 네 통제에서 벗어났음을 알지 않느냐?”
“그것과 관계가 있습니까?”
“있다마다. 이제야 말이지만 상계에 있던 우리의 본신은 그에게 죽임당한 적이 있다. 그 뒤 우리도 모르는 연법(緣法)에 의해 하계에서 완전체가 되었지.”
“…….”
팔황신모는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천외이선이 연적하를 피할 때 그들간의 우열을 짐작한 바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