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43
943회. 아주 큰 물을 먹이는 거지요
연적하의 항의에 풍수림이-이건 뭐지? 하는 눈으로-그를 보며 말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젊은이로군. 순리가 뭐야? 자연의 이치대로 흐르게 내버려 두는 거라고. 남천 대협이 힘으로 순리를 거스르면 자기 인생도 피곤해지고, 다른 사람의 인생도 피곤해진다는 걸 왜 몰라?”
“그럼 나쁜 걸 막지 마요? 그럼 세상이 개판 될 텐데?”
연적하가 따지듯 묻자 풍수림이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답했다.
“호천맹과 남맹의 분쟁을 남천 대협이 금지시켜서 뭐 달라진 거 있나? 세상이 거짓말처럼 평화로워졌어? 아니지? 그냥 장인에게 의절당하기만 하고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잖아. 남경에서 선우세가와 무극문이 싸우면 남맹과 호천맹은 구경만 할 것 같은가?”
“…….”
연적하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내세울 말이 없었다.
남맹과 호천맹의 싸움을 원천적으로 봉쇄했어도 어딘가에서 이렇게 새고 만다.
할 말을 잃고 서 있는 그에게 풍수림이 말했다.
“선우세가와 무극문의 분쟁도 마찬가지야. 저희들끼리 박 터지게 싸우다가 어디론가 흘러가겠지. 그게 인생이라고. 신도 인간이 자기 의지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던가? 그런데 남천 대협은 신도 하지 않는 일을 하려 한다고. 신보다 더한 권세를 부리는 건 좋다 이거야. 하지만 결과를 봐. 좋아지는 게 없잖아. 왜 그런지 아나?”
“왜요?”
“애들은 박 터지게 싸우면서 인생이라는 걸 배운다네. 강호의 분쟁도 마찬가지야. 방파 간의 싸움으로 희생자만 나온다고 생각하나? 아니야. 사람들은 분쟁을 통해 뭔가를 배우고 깨닫는다 이 말일세.”
“뭘 배우는데요?”
“하다못해 후회나 불행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같은 거라도 배우겠지. 아무렴 개도 아닌데 먹이를 앞에 두고 생각 없이 물어뜯기만 할까.”
“…….”
“하지만 남천 대협이 힘으로 방파들 간의 줄을 세우면 그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해. 남천 대협이 언제까지 신처럼 군림할 것 같은가? 내 장담하지. 남천 대협이 사라지면 세상은 다시 본래대로 돌아가고 말 걸세.”
연적하가 기막힌 눈으로 설화인(況活人)을 보았다.
다른 건 둘째치고 군림이라니?
자신이 언제 군림했다고 저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요, 남천이 언제 군림을 했어요?”
“남맹과 호천맹을 힘으로 찍어 눌렀으니 군림이지. 자기 자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런 걸 두고 군림이라고 하는 걸세.”
“남맹과 호천맹이 남천의 도움이 필요해서 눈치를 본 거 잖아요.”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가 그렇지 않은가. 남천 대협이 힘으로 남맹과 호천맹의 행사를 저지하고 있으니 군림이지. 마교 교주처럼 자기 말 안 듣는다고 처죽이는 것만이 군림은 아니라 이 말일세.”
“나쁜 짓인 줄 알면서 그냥 두는 게 옳다 이거예요?”
“내가 말하지 않았나. 신도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게끔 한다고. 그걸 남천 대협이 강제로 이래라저래라 하니까 잡음이 생기는 거야.”
“쩝…….”
연적하는 뻘쭘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그러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버려 두라는 거다.
노인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군림’ 소리만큼은 아팠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군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들은 물론 혈육과 장인까지도 자신의 뜻에 따르게 만들었으니까.
장인이 떨어져 나간 것도 그래서다.
그사이 주섬주섬 물건을 정리한 풍수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는 거예요?”
“이 시간에 집은 무슨.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거라네. 왜? 자네도 설화인에 관심이 있나?”
풍수림이 청년의 아래위를 살폈다.
설화인과 나이는 별개다.
입담이 좋고, 성질만 모나지 않으면, 누구라도 설화인이 될 수 있다.
“관심 없어요.”
“그래? 면상은 설화인 하기에 적당해 보이는데 아쉽군.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날 찾아오게.”
풍수림이 나간 뒤 연적하는 조금 더 다관에 머물렀다.
암행하듯 사업장을 둘러보다가 뜻밖의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울적했다.
선의(善意)를 가지고 한 일이 타인에게 군림으로 받아들여지다니…….
문득 장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천하보다 내 가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천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너희가, 천하를 위해 나에게 희생하라 하는구나. 원하는 대로 해 주마. 다만 너희가 나의 인생을 부정했으니, 너희와 나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이후로 다시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장인이 ‘너희가 나의 인생을 부정했다’고 할 때는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도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선의에서 한 일을 군림이라 하다니!
무림 방파의 사람이 그런 소리를 했다면 귓등으로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노인은 설화인이다.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그의 눈에 자신이 그렇게 보였다는 게 중요하다.
‘하아!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더 기막힌 건 그걸 반박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으려니 홁탕물처럼 혼탁하던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가 됐다.
본래 그는 아둔한 사람이 아니다.
아둔한 사람이었으면 설화인의 말에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 그는 번민을 털어 냈다.
이윽고 단숨에 식은 차를 입에 털어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여강현.
석경장.
집으로 돌아온 연적하가 처음 본 것은 심통과 청류신이 객청에 함께 있는 것이었다.
“이거 무슨 분위기지?”
연적하의 농담에 심통이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어이쿠! 공자님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닙니다.”
“응? 내가 무슨 생각을 한 줄 알고 그런 게 아니래? 진짜 이상하네?”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시네.”
“아니면 뭔데?”
“잠시 막간을 이용해 구주(九州)에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구주?”
뜻밖의 소리에 연적하가 청류신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청류신이 공손히 답했다.
“저도 구주의 일부를 봤던지라 심 대협과 그런 부분에 대해 말씀 나누고 있었어요.”
“아하.”
귀매(鬼魅)로 지내던 시절에 본 것을 두고 심통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모양이다.
연적하가 자리에 앉자 침묵이 흘렀다.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휘휘 젓던 심통이 물었다.
“영업장을 둘러보러 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갔다가 왔어.”
“벌써요?”
“다관에 가서 설화인 얘기를 들었는데…….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남경에 있는 무극문이 봉문을 푼 거로 시끌시끌해.”
“아하!”
심통은 대번에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렸다.
칠파이문으로 날리던 무극문이 다시 문을 열었으니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때마침 무극문 사람들로 보이는 남녀가 설화인에게 시비를 걸더라고. 선우세가가 무극문의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느냐면서.”
“예전에 방귀 좀 뀌던 무극문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했을 겁니다.”
“그랬던 것 같아.”
“그래서요?”
“설화인이 백배사죄하고 없던 일처럼 넘어갔지. 그런데 그 설화인이 나를 무슨 마교 교주나 되는 것처럼 말을 하더라고.”
“예에? 공자님의 사업장에서 공자님 욕을 했다고요? 미친 거 아닙니까? 뭐라고 했는데요? 제가 나중에 만나면 아주 주둥이를 찢어 놓겠습니다.”
“내가 남맹과 호천맹이 싸우지 못하게 한 걸 두고 뭐라 하더라고. 순리를 따르게 둬야 한다나.”
“욕은요?”
“그러면서 내가 남맹과 호천맹 위에 군림을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더라니까?”
“그게 전부입니까?”
“어.”
“마교 교주처럼 말했다면서요?”
“내가 마교 교주처럼 군림을 한 건 아니잖아?”
“아! 공자님을 마교 교주에 빗대 욕을 한 건 아니고요?”
“군림이라고 한 게 나한테는 욕이지. 선의로 한 행동을 두고 군림이라니. 좀 그렇잖아. 아냐?”
“뭐, 보기에 따라서는 군림으로 보일 수도 있지요.”
“심 노인도 그렇게 생각해?”
“남맹과 호천맹이 공자님 눈치를 살피지 않습니까? 공자님 비위를 거스르려고 하지도 않고. 그것도 군림이라면 군림인 거지요. 꼭 강제로 이래라저래라 명령을 하는 것만이 군림은 아니니까요.”
“아니, 나쁜 일을 막고 좋은 일을 권장했는데 군림 소리를 들어야 돼?”
“고금제일인은 숨만 쉬어도 군림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자님이 모든 사람들 머리 위에 있는 건 사실이잖습니까?”
“기분 더럽네.”
“그 정도는 감수하셔야지요.”
“그래서 심 노인이 볼 때도 내가 순리를 거스르는 것 같아?”
“공자님이 순리인데 거스르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습니까? 공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들이 순리를 거스르는 거지요. 그렇지 않으냐?”
심통이 가만히 듣고 있는 청류신을 끌어들였다.
청류신은 갑작스러운 심통의 물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생각을 정리해 말했다.
“세상살이가 다 내 마음 같지는 않잖아요. 더디게 가더라도 그냥 지켜보아야 할 때가 있고. 아마 그래서 설화인이 순리를 말한 게 아닐까 싶네요.”
그래도 수도자라고 청류신의 말에는 심통과 다른 깊이가 있었다.
‘흠. 더디게 가더라도 지켜보아야 할 때가 있다라…….’
자식을 키워서 그런지 연적하는 그녀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새삼스럽게 청류신을 보던 연적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처음 황궁에서 본 청류신과 지금의 청류신이 조금 달라진 느낌이다.
고작 사나흘밖에 안 지났는데 훨씬 차분하고 완숙한 기도를 풍기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라도 고작 사나흘 만에 기도가 이 정도로 바뀌지는 않는다.
연적하는 암암리에 통천안(通天眼)의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청류신을 보았다.
하지만 멀쩡했다.
그녀의 기도가 깜짝 놀랄 만큼 바뀐 건 술법의 영향이 아니었다.
연적하가 청류신의 급격한 변화를 두고 고민할 때, 문지기 소삼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장주님. 무극문의 사람들이 장주님께 인사를 드리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어찌할까요?”
“데리고 오세요.”
“예!”
소삼이 씩씩한 걸음으로 되돌아갔다.
막간을 이용해 심통이 말했다.
“공자님이 무극문과 선우세가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려는지 알고 싶어서 온 모양입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떻게 해야 되지?”
“그걸 왜 저에게 물어보십니까? 가모님과 상의를 하시는 것이…….”
심통이 말끝을 흐렸다.
무극문 사람들이 찾아온 이상 남궁연과의 상의는 늦은 감이 있었다.
“심 노인. 나한테도 내 주장이라는 게 있다고. 내가 뭐 매사를 누님에게 묻는지 알아?”
“알지요. 어차피 가모님에게 묻기도 늦었습니다. 그래서 공자님의 주장은 뭡니까?”
“와아! 생각해 보니 진퇴양난이네.”
“왜요?”
“솔직히 이제는 나도 순리대로 그냥 내버려 두고 싶어. 좋은 일 하고 ‘군림한다’는 소리를 들어야겠냐고. 하지만 그건 장인어른을 완전히 물 먹이는 짓이잖아.”
“아주 큰 물을 먹이는 거지요.”
심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른 지역에서 남맹 지부를 철수하게 만들고, 정작 무극문이 남경에서 설치는 걸 수수방관한다면, 검왕 남궁벽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