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45
945회. 조금만 늦추면 안 될까?
남경.
무극문.
천종각.
무극문의 회의실에 세 사람이 모였다.
문주인 천공도 장학과 소문주 장경수, 그리고 순찰당의 양소백이다.
못마땅한 얼굴로 두 사람을 보던 장학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시키지 않은 일을 했더구나.”
그러자 장경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남천 대협이 저희 또래라 말이 좀 통하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가 봤습니다.”
“무림에서 남천 대협을 두려워하는 것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입신(入神)에 이른 그의 무위 때문이다. 너희는 그의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해. 그게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면 너희는 죽었다.”
“그래도 남천 대협은 무당파 출신인데 죽이기까지야 했을라고요?”
“정확히는 그가 죽여도 할 말이 없지. 너희가 그렇게 위험한 짓을 했다는 걸 알아라.”
그 말에는 장경수도 반박하지 못했다.
남천의 괴팍함에 대해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탓이다.
“그래도 소득은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는 말은 이미 들었다. 그건 지금의 우리 상황에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는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
기묘한 침묵이 회의실을 감돌았다.
한참 만에 장학이 물었다.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하느냐?”
“지금까지 남천은 자신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검왕에게 의절을 당할 정도로 말이죠. 그런 그가 이제 와서 검왕을 의식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면서?”
“검왕이 마음에 걸려서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그는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겁니다. 남천 대협이 남에게 끌려다닐 사람입니까?”
“하지만 그가 검왕을 위해 나서면……. 우리는 남직례성을 떠나게 될 수도 있다.”
“아버지. 그는 단 한 번도 무극문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옳다는 걸 그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불의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무극문과 선우세가의 일을 호천맹과 남맹의 일로 비화시키는 자들이 잘못된 겁니다.”
“남천 대협이 정말 이번 일에 끼어드는것을 꺼려 한다고 생각하느냐?”
“예.”
장경수가 확신에 찬 얼굴로 답하자 장학은 양소백에게 시선을 돌렸다.
“남천 대협이 이번 일에 관여하기를 꺼리는 건 확실합니다. 그분이 ‘입장이 복잡하다’, ‘쉽게 답을 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할 때, 확실히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흐음!”
장학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하면 확실히 남천의 반응은 부정적이지 않았다.
“알겠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나가 봐라.”
“예.”
장경수와 양소백은 이구동성으로 답한 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장학은 무극문의 원로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무극문은 선우세가와의 전쟁을 결의하고 호천맹에 사자를 보냈다.
***
합비.
남맹.
천추각.
이른 아침, 오대세가 대표들이 대회의실에 모였다.
총사 반천일검 모용문이 참가자들에게 목례를 한 후 운을 뗐다.
“사흘 전 무극문의 소문주 장경수와 순찰당의 양소백이 석경장을 방문했습니다. 무극문과 선우세가의 분쟁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것이 목적이라 생각됩니다. 방문 시간이 짧았고, 석경장에 우리 쪽 인원이 하나뿐이라……. 오간 대화의 내용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무극문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조만간 선우세가와 무극문 간에 일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총사부의 결론입니다.”
순간 오대세가 대표들이 술렁거렸다.
정말 선우세가와 무극문 간에 싸움이 일어난다면 그 후폭풍을 예측하기 어려운 탓이다.
분위기를 살피던 선우세가의 원로인 선우단이 말했다.
“우리 선우세가는 무극문이 도발한다면 회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호천맹 산하의 문파가 남경에서 활개치지 못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러자 오대세가 대표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남경은 우리 남맹의 심장부나 마찬가지외다. 그곳에서 호천맹이 설치게 둘 수는 없소.”
“아무렴요. 아무리 무극문이라 해도 남직례성에서는 양보를 해야 마땅합니다.”
“이참에 무극문을 남직례성에서 내보낸다는 각오로 밀어붙입시다.”
“옳습니다. 무극문이 남경을 장악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그때 귀혼산수 당기로가 말했다.
“그런데 남맹이 선우세가를 지원하면 호천맹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총사를 향했다.
한 걸음 물러나 오대세가 대표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모용문이 다시 나섰다.
“우리 남맹이 선우세가를 지원하면 호천맹도 십중팔구 무극문을 지원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남맹과 호천맹의 대결 구도로 흘러갈 확률이 높습니다.”
당기로가 물었다.
“총사. 아무리 남직례성이라 해도 남맹이 호천맹의 상대가 되겠소?”
“호천맹이 전력을 기울이면 우리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아아!”
“허어!”
오대세가 대표들이 탄식을 터뜨렸다.
누구도 아니라고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천하의 종주인 호천맹에 비하면 남맹이 부족한 것은 사실인 까닭이다.
“하지만 호천맹이 전력을 기울일지는 의문입니다. 남직례성에서의 싸움이 커지는 것에 호천맹도 부담을 느낄 테니까요.”
선우단이 급히 끼어들었다.
“총사. 호천맹이 왜 부담을 느낀다는 거요?”
“남직례성은 남천이 인정한 남맹의 영역입니다. 호천맹도 그 부분에 있어서 신경이 쓰일 겁니다.”
“아! 총사의 말대로라면 호천맹이 처음부터 싸움에 끼어들지 않을 수도 있겠구려?”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무극문이 본래 남경을 기반으로 한 문파이기 때문에……. 호천맹에도 무극문을 지원할 명분은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호천맹이 남천의 눈치를 봐 가며 지원을 할 거라는 소리요?”
“장경수와 양소백이 석경장을 찾아간 것도 그것 때문일 겁니다.”
“허면 우리도 남천 대협의 의중을 알아야 하지 않소?”
“그렇지 않아도 오늘 석경장으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남천 대협이 아무나 만나 주지는 않을 텐데…….”
검왕과의 의절 이후 남맹과 남천의 관계는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청운검과 진설하가 갔으니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겁니다.”
선우단은 검왕 남궁벽의 얼굴을 슬쩍 살폈다.
무극문에는 천하십대고수인 무상도제 장무덕이라는 거대한 산이 있다.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검왕 남궁벽뿐이다.
지금도 아슬아슬한데 여기에 호천맹의 맹주인 무극상인이 끼어든다면?
더 생각할 것도 없는 남맹의 패배다.
남경을 무극문에 내어 주면 남직례성에서 남맹의 독보적인 지위도 흔들린다.
그렇게 되면 남맹은 합비의 패자(覇者)로 남게 된다.
천하를 도모하던 남맹이 한순간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되는 것이다.
‘또다시 석경장에 의해 남맹의 운명이 좌우되는 건가.’
천하의 지부를 폐쇄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시련이라니!
태산처럼 느껴지던 검왕의 존재감이 요즘 들어 자꾸만 쪼그라드는 것 같다.
‘잘돼야 할 텐데…….’
남경이라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젠 한 치 앞도 알 수 없게 됐다.
생각에 잠긴 그의 귓가로 모용문의 음성이 들려왔다.
“석경장의 대답과 무관하게 우리 남맹은 무극문의 세력 확장을 저지할 것입니다. 무극문이 남경에서 이전의 성세를 회복하면 남맹의 입지가 줄어드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선우단은 모용문의 선언이 공염불로 끝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선우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맹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래야 했다.
***
합비.
여강현 석경장.
정오 무렵, 일 남 일 녀가 석경장을 찾았다.
청운검 남궁천과 그의 정혼녀 진설하다.
두 사람의 방문 소식에 연적하와 남궁연은 지안을 데리고 대문으로 마중을 나갔다.
“형님, 진 소저, 어쩐 일이세요?”
“두 분 어서 오세요.”
“어, 그래.”
연적하와 남궁연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한 남궁천이 지안에게 손을 벌렸다.
“지안아! 삼촌 왔다!”
“삼촌!”
지안이 남궁천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남궁천은 지안에게 목마를 태우고 먼저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남궁천을 보며 진설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에효! 미안해요. 천 오라버니가 지안이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네요.”
“괜찮아요. 형님 저러는 거 하루이틀도 아니고. 지안이가 저보다 형님을 더 좋아한다니까요.”
“저에게도 입만 열면 지안이 같은 딸을 낳자고 해요. 지안이가 천 오라버니 눈을 너무 높여 놔서 걱정이에요. 아무리 봐도 지안이만 한 애는 없는데.”
그러자 남궁연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자기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법이니까. 지금은 저래도 진 소저가 아이를 낳으면 자기 자식이 더 예쁘다고 난리를 칠 거예요.”
“그럴까요?”
“그럼요.”
세 사람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안채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안채.
남궁천은 데리고 있던 조카를 월아와 금아에게 넘긴 후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자리에 앉자 연적하가 지나가듯 말했다.
“형님, 진 소저와 혼례는 언제 올려요? 지난해 올린다더니 흐지부지 넘어갔잖아요?”
“올 가을에 올릴 거야. 그렇지 않아도 시월 초하루로 날 잡았어.”
“오오!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혼인을 하시네요?”
남궁연도 두 사람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하드려요. 오라버니, 진 소저.”
“고마워요.”
진설하가 웃으며 화답했다.
웃으며 두 사람을 보던 연적하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두 분이 혼인 날짜를 알려 주려고 온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에요?”
그러자 진설하가 남궁천을 힐끔 보았다.
아무래도 자신보다 가족인 그가 말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다.
머리를 긁적이던 남궁천이 말했다.
“사흘 전에 무극문 사람들이 석경장에 찾아왔었다고 들었다. 내가 온 것도 그들과 무관하지 않다.”
“선우세가와 무극문의 분쟁 때문에 오신 거예요?”
“그래. 솔직히 선우세가는 무극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싸움이 나면 하루도 못 버틸 게다. 선우세가 사람들은 무상도제의 얼굴만 봐도 오줌을 지릴걸?”
“그렇겠죠?”
“그래서 남맹에 지원을 요청했다. 남맹에서는 그걸 받아들였고.”
“아, 그랬군요.”
연적하는 남의 이야기인지라 아무런 감흥도 없는 얼굴을 했다.
“특히 아버지는 선우세가 가주님과 오랜 친우라 조금도 망설이지 않으셨다. 요즘은 무상도제의 도법을 연구하고 계신다. 무상도제를 상대할 사람이 아버지뿐이니까. 네가 볼 때 무상도제와 우리 아버지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으냐?”
“막상막하일 거예요.”
“그래서 승자는?”
“모르겠네요. 무상도제를 본 지가 오래돼서.”
무덤덤한 연적하의 말에 남궁천은 그가 이 싸움에 아무런 관심이 없음을 알았다.
“사람들은 남맹이 선우세가를 도우면 무극문도 호천맹을 끌어들일 거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남맹과 호천맹의 싸움으로 번지겠지.”
고개를 주억거리던 연적하가 물었다.
“형님, 종사가 보냈어요? 아니면 맹주님이 가서 물어보래요?”
“둘 다.”
“저 이제 무림의 일에서 손을 떼려고요.”
“손을 뗀다고?”
“장인어른께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내가 나서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내 발목을 잡더라고요. 힘으로 순리를 거스르면 자기 인생은 물론 다른 사람의 인생도 피곤해진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그래서 흘러가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려고요.”
“무슨 말인지 알겠고, 네 심정이 이해도 되는데, 왜 하필 지금이냐? 그걸 조금 늦추면 안 될까?”
남궁천이 곤혹스러운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가 고의로 그러는 건 아닐 테지만 결과적으로 부친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