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51
951회. 사람이 시운에 맞춰 살아야지요
심통의 말에 연적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건 지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말과도 같기 때문이다.
“흐음! 그랬단 말이지…….”
“어떻게 사람을 좀 풀어 볼까요?”
“석경장에 누가 있다고 사람을 풀어?”
그러자 심통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사람이 석경장에만 있습니까? 하오문 놈들을 바짝 쪼면 제 일처럼 움직일 겁니다.”
“그럼 알아봐. 의형제들과 연가무관에 별일이 없는지.”
“남맹 쪽은요?”
심통이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위험하기로 따지면 호천맹과 싸우고 있는 남맹이 더한 까닭이다.
연적하가 애매한 얼굴로 반문했다.
“남맹에 일이 있겠어? 장인어른이야 천하십대고수이니 알아서 하실 테고. 형님과 진 소저가 마음에 걸리지만 호천맹이 설마 살수까지 쓰겠어?”
“그렇기는 하죠.”
심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호천맹이 미치지 않고서야 연적하의 지인에게 살수를 쓰지는 않을 게다.
무림의 분쟁에서 손을 뗐다 해도 지인이 죽거나 다치면 연적하가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니까.
“공자님의 의형제들과 연가무관으로 사람을 보내 무슨 일이 없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던 연적하가 뜬금없이 물었다.
“심 노인은 어떻게 생각해?”
“뭘요?”
“내가 장인어른이 원하는 대로 따라 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
“전에 남맹 지부를 철수하게 한 것도 그렇고, 이번 남경의 일도 그렇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장인어른이 하는 일을 방해한 꼴이잖아.”
“검왕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시운(時運)이 안 맞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자님이 검왕을 괴롭히려고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장인어른이 하자는 대로 했어도 상관없는데…….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지 모르겠어. 팔이 안으로 굽으나 밖으로 굽으나 어차피 세상은 바뀌지 않잖아.”
“공자님 팔이 안으로 굽으면 남궁세가 빼고 다 피눈물을 흘릴 겁니다. 그게 다른 거죠.”
“그런가?”
“지나간 일을 너무 생각하지 마십쇼. 공자님은 그때그때 최선의 선택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왜 이 모양이냐 이거지.”
“결과가 어때서요?”
“몰라서 물어? 장인어른이 의절을 했잖아. 요즘은 누님 얼굴 보기가 민망해.”
그러자 심통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공자님이 몰라서 그러시는 겁니다. 가모님이 검왕에게 더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데요 뭐.”
“누님이?”
“따지고 보면 남맹의 지부나 남경의 일 모두 검왕이 욕심을 부려서 그렇게 된 거 아닙니까. 검왕이 공자님에게 각을 세우지 않았다면, 오늘날 호천맹이 저렇게 훨훨 날아다닐 일도 없을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생각해 보십쇼. 지금은 공자님 마음도 변하지 않았습니까? 남맹이 천하에 지부를 세우든 안 세우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으로요.”
“그러기는 했지.”
“바로 그겁니다. 만약 검왕이 그때 흥분해서 의절을 선언하지 않았다면, 지금 무극문이 이문사방을 접수하건 말건 신경이나 썼겠습니까? 천하에 남맹 지부를 더 많이 세울 수 있는데, 남경이 대숩니까?”
“아, 그런 소리였어?”
“검왕이 ‘욱!’ 하지 않고 공자님과 잘 지냈더라면 무극문에도 양보를 얻어 낼 수 있었을 겁니다. 천하에 뻗어 가는 남맹 지부를 생각하면 이문사방에서 한두 개 정도 양보받는 건 일도 아니지요.”
“장인어른이 좀 다혈질이기는 하지.”
“잘나가는 남맹을 사위이자 조카가 주저앉히니 눈이 돌아간 거죠. 하지만 거기서 공자님을 내친 건 잘못이었습니다. 꾹 참고 나중을 기약했어야지요.”
“쩝.”
연적하는 할 말이 없었다.
사람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장인과 자신의 관계가 파탄 난 것도 그래서다.
그것을 어느 한 사람만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이 옳은 일일까?
심통이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자기는 남맹의 미래를 위한다고 그랬지만, 남맹을 망친 건 검왕입니다.”
“아까는 시운이 안 맞아서 그런 거라며.”
“시운이 언제 사람에게 맞춰 줍니까? 사람이 시운에 맞춰 살아야지요.”
“그게 장인어른만의 잘못은 아니니까 너무 뭐라 하지 마.”
“그럼 공자님도 자책하지 마십쇼. 그럼 저도 검왕의 잘못이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알았어. 그 얘기는 그만하자. 청류신하고는 잘돼 가?”
“아니! 여기서 청류신이 왜 나옵니까?”
심통이 언성을 높였다.
연적하가 딸뻘 되는 청류신과 자신을 자꾸 엮으니 짜증이 난 것이다.
“왜 화를 내? 내가 못 할 소리를 했어?”
“딸뻘 되는 계집과 잘될 게 뭐가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딸뻘? 그런 소리 하지 마. 며칠 지나면 청류신의 나이가 심 노인보다 많아질걸?”
“그래도 정신은…….”
“정신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본래 정신은 나이를 먹지 않아. 심 노인도 육체가 늙었지 그 속에 든 정신이 늙었어? 아니잖아?”
“그,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며칠 지나면 청류신이 친구 먹자고 해도 될걸?”
“친구라면 뭐 괜찮습니다.”
“이 늙은이가 아주 음흉하네. 친구나 하라고 그런 건데 뭘 생각한 거야?”
“잘돼 가냐고 하시니까…….”
“장가라도 가라는 줄 알았어?”
“험! 아니면 됐습니다. 공자님 권유도 있고 하니 친구까지는 고려해 보겠습니다.”
“권유 한 번 더 하면 장가도 가시겠어?”
“그럴 리가요. 저도 안목이라는 게 있는데. 아무하고나 혼인을 하지는 않습니다.”
“오! 몰랐네? 청류신이 들으면 좋아하려나?”
연적하가 자꾸 청류신 이야기를 하자 심통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자러 가게?”
“공자님도 좀 가서 쉬십시오. 비도 오는데 청승 그만 떠시고요.”
꽈르르릉-! 쾅!
가까운 곳에 번개가 떨어졌는지 한순간 사방이 환하게 밝았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심통이 흠칫 놀라자 연적하가 웃으며 물었다.
“부처님에게는 사과했고?”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십니까.”
툴툴거리던 심통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숙소 방향으로 달려갔다.
시커먼 하늘을 올려다보던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설마, 별일 없겠지.”
전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싶지만 번개 때문에 나가기가 꺼려졌다.
어느새 굵어진 빗줄기가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쏴아아아-.
천둥 번개에 비까지.
‘남맹과 호천맹도 이런 날씨에는 쉬겠지?’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이런 날씨에 싸움을 하겠느냐 말이다.
그것도 이 야심한 밤에.
***
그 시간 와부호(瓦埋湖).
합비에서 멀지 않은 와부호에도 폭우가 퍼붓고 있었다.
쏴아아아-I
어쩌다 번개가 하늘을 가로지를 때마다 아비규환의 전장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빗소리 사이로 칼에 맞은 사람들의 비명이 발작적으로 터져 나왔다.
“아악!”
“악!”
청운검 남궁천은 미친 듯 내달렸다.
어쩌다 남맹 사람과 부딪치면 ‘이대는 어딨습니까!’를 연발했다.
이대에 속한 진설하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해 주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남궁천은 밀려오는 사람들을 거스르며 앞으로 달려갔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상황은 개판이었다.
삼대와 이대가 완전히 뒤섞여 소속의 구별이 어려웠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그에게 칼을 휘둘렀다.
남궁천은 반보 뒤로 물러나 공세를 흘린 뒤 검을 길게 내뻗었다.
쉬이익-.
빗물이 검날을 때렸다.
검 끝이 상대의 가슴에 닿기 전 남궁천은 황급히 검을 회수했다.
“팽 대협!”
그는 선봉을 맡은 삼대 대주 용호도 팽무한이었다.
남궁천의 목을 베어 가던 팽무한의 도가 쾌속하게 뒤로 빠졌다.
아슬아슬하게 양패구상의 위기를 넘긴 두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물러났다.
“어찌 된 일입니까?”
남궁천의 물음에 팽무한이 답했다.
“소림사가 참여했네! 삼십육 동인(銅人)과 소림사 속가제자들에게 당했어! 벌써 일대까지 휘말린 건가?”
“아직 아닙니다. 제가 조금 빨리 왔습니다. 이대는 어떻게 됐습니까?”
“모르네. 지금은 피아의 식별조차 어려우니 일단 자리를 피하게!”
“먼저 가십시오! 저는 이대를 찾아 보겠습니다!”
“알아서 하게.”
팽무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한차례 번개가 쳤다.
그 틈에 남궁천은 빠르게 주위를 확인했다.
멀지 않은 곳에 모용세가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남궁천은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상대가 검을 휘두르기 전에 남궁천이 소리쳤다.
“남궁천입니다! 모용세가 분들이십니까!”
“맞습니다.”
남궁천이 다가오자 누군가 물었다.
“일대가 지원을 온 겁니까?”
“아닙니다. 사람을 찾으려고 제가 한발 먼저 왔습니다.”
“누굴 찾으십니까?”
“진설하 소저를 보셨습니까?”
“진 소저는 여기보다 앞쪽에 있을 겁니다. 이대에서도 선두에 있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남궁천은 잘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게 묵례를 하고 급히 몸을 돌렸다.
빗속을 달리던 남궁천은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진 매! 어디 있느냐!”
그러나 대답은 없고 근처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만 들려왔다.
남궁천은 소리를 향해 달려갔다.
이윽고 그는 모용세가 복장을 한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진설하가 어디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적들을 물리치는 게 우선이었다.
쉬리리릭- 쉬익-!
사방에서 강철 선장이 날아왔다.
남궁천은 상대가 팽무한이 말한 소림사 제자들임을 알아차렸다.
상대가 소림사 삼십육 동인이라 해도 두렵지는 않았다.
남궁천의 검과 소림사의 강철 선장이 어둠 속에서 충돌했다.
차차차창- 차앙-!
“윽!”
소림사의 승려 하나가 검기에 맞았는지 비명과 함께 주춤주춤 물러났다.
순간 다른 소림사 승려들의 눈에서 살기가 뻗어 나왔다.
동고동락하던 동료가 칼에 맞으니 눌러 두었던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삼십오 명의 동인 중에 무려 열 명이 남궁천과 모용세가 제자들에게 붙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빗속에서 난전이 벌어졌다.
모용세가 제자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강철 선장에 맞아 모두 쓰러졌다.
남궁천도 선장에 맞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진설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상처 입은 호랑이처럼 날뛰었다.
대연검법의 검기에 소림사 승려 둘이 또 전열에서 이탈했다.
그쯤 되자 소림사 승려들의 수법도 잔혹해졌다.
쉬이익- 쉬익-!
파파파팟-!
여덟 개나 되는 강철 선장이 집요하게 남궁천의 사혈을 노렸다.
만약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동인들도 손속에 사정을 두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두운 밤, 빗속에서의 난전에 그런 걸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아니 남궁천의 검술이 워낙 치명적이라 상대를 배려할 틈도 없었다.
퍼퍼퍽-!
‘아차!’ 하는 순간 남궁천의 상체에 세 개의 강철 선장이 박혔다.
“컥!”
남궁천은 짧게 비명을 내뱉었지만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공중으로 도약했다.
하늘을 향해 세운 그의 검 끝에서 만월(滿月)이 피어났다.
이윽고 천동망월(天動望月)의 검의(劍意)가 동인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꽈르르릉-!
세 명의 동인이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나머지 다섯이 버티고 섰다가 내려오는 남궁천을 강철선장으로 후려쳤다.
이미 내력을 소진한 남궁천은 방어조차 못 하고 한쪽으로 날아갔다.
철퍼덕.
대자로 뻗은 채 얼굴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남궁천은 탄식했다.
‘아아! 내가 어리석었다.’
뒤늦게 그는 자신이 고금제일인인 연적하의 흉내를 냈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