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67
967회. 뼈에 새기겠다니까 도와줘야겠네?
황강.
희수현.
정오 무렵.
세단산 초입으로 이두마차 두 대가 나란히 들어섰다.
석경장 식솔들의 마차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마차는 멈춰 서야 했다.
이십여 명의 상인들이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부를 향해 상인 중에 하나가 말을 걸었다.
“이보시오! 마차에 호위가 따로 있소?”
“없는데 왜 그러시오?”
“세단산에 산채가 들어섰소. 호위도 없이 왔다면 통행세를 모으고 있으니 협조 좀 해 주시오.”
마부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그런 거라면 마차의 주인 어르신과 이야기를 해 보시오.”
그러자 상인, 정일소가 마차 옆으로 바싹 다가섰다.
때마침 창문으로 밖을 살피던 연적하와 정일소의 시선이 마주쳤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십시일반으로다가 장락산채에 낼 통행세를 걷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가실 거면 마차 하나당 은자 두 냥 정도를 내주셔야겠습니다.”
“아저씨는 상방 사람이에요?”
“상방이면 호위들이 처리했겠지요. 우리는 보부상들입니다.”
“아하. 몇 명이나 돼요?”
“스물한 명입니다.”
“그럼 은자 닷 냥쯤 내나요?”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십니까? 은자 열 냥은 내야 합니다.”
“아하. 그래서 길을 막고 우리를 잡으셨구나? 십시일반 하려고.”
“우리와 함께 가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겁니다. 마차만 가면 은자 네 냥으로 절대 못 넘어갈 겁니다.”
“그래요. 뒤에 가서 은자 네 냥을 달라고 해요. 그럼 내줄 거예요.”
연적하는 흔쾌히 동의했다.
오봉산에서 산적질로 먹고살던 때가 생각이 나서다. 산적들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일소는 즉시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허! 옆자리의 미녀가 눈 돌아가게 이쁘네. 괜히 저 여자 때문에 일이 복잡해지는 건 아닌가 몰라.’
대체로 산적들은 미녀라면 환장을 했다.
왠지 느낌에 마차를 곱게 보내 줄 것 같지 않았다.
뒤쪽의 마차로 다가가자 염소수염의 노인이 은자 네 냥을 내밀며 물었다.
“산채 이름을 아느냐?”
“장락산채라 알고 있습니다.”
“채주는 누구고?”
“그것까지는 모릅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통행세를 바쳤나?”
“어이쿠! 상단이면 모를까? 우리 같은 보부상들이 그런 걸 왜 묻습니까? 꼬치꼬치 물었다가 죽으면 우리만 손해게요?”
심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기야 생각해 보니 오봉산에서 통행세를 받을 때도 그랬던 것 같다.
통성명을 해도 호위대장이나 상단주와 하지 다른 사람들과는 말을 섞은 기억이 없다.
“알았다. 가 보거라.”
돌아서 몇 걸음 걷던 정일소가 선두의 마차로 돌아갔다.
연적하가 또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저어, 만일을 위해 하는 말인데……. 산을 다 지날 때까지 그 창문은 좀 닫는 게 좋겠습니다.”
“이 더위에 창문을 닫으라고요?”
“산적들이 옆자리에 계신 분의 얼굴을 보면 그냥 보내 줄 것 같지가 않아서 그럽니다. 보물보다 귀한 게 미녀라고 하지 않습니까?”
“말씀은 고마운데 알아서 할게요.”
“나는 분명히 조심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 예. 걱정하지 마세요.”
정일소가 상인들에게 돌아간 직후 보부상들이 길을 텄다.
마차가 전진하자 그 뒤를 보부상들이 부지런히 따라붙었다.
산길로 접어든 지 한 시진(2시간)쯤 지났을까?
십여 명의 사내들이 좁은 산길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그들을 발견한 마부가 고삐를 살짝 잡아당겼다.
이윽고 마차가 완전히 멈추어 섰다.
뒤따르던 정일소와 두 명의 보부상이 허겁지겁 앞으로 달려갔다.
그에 응하듯 도적들 중에서 텁석부리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정일소는 그에게 은자가 담긴 꾸러미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돈 꾸러미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텁석부리가 중얼거렸다.
“마차가 두 대나 되는데 이게 다라고?”
정일소가 변명하듯 말했다.
“저들도 상방 사람들이 아니라서……. 지난번처럼 계산했습니다.”
“그래도 이두마차면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인데 계산을 바로 해야지. 보부상이라 그런가? 계산이 흐릿하네?”
정일소는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사내의 처분을 기다렸다.
텁석부리가 그런 정일소를 지나쳐 마차로 다가갔다.
“우리 장락산채는 조만간 녹림에 가입할 예정이다. 저 구강에 있는 장강수채의 추천을 받았거든. 그러니까 계산을 허투루 하면 안돼. 그건 녹림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들으란 듯 큰 소리로 말하던 텁석부리는 마차 옆에 멈춰 섰다.
그리고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마차 내부를 살폈다.
평범한 인상의 청년과 경국지색의 미녀, 그리고 어린 계집아이와 새끼 백호 한 마리가 전부였다.
계집아이 옆에 배를 까고 누워 갸르릉거리는 백호도 신기하지만, 그보다는 심장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더 충격적이었다.
“여어! 이거 은자로는 안 되겠는데? 최소 금자는 받아야 되겠어. 너! 분에 넘치는 여자와 함께 다니는구나. 뉘 집 자손이냐? 황제의 아들쯤 되냐?”
텁석부리의 말에 그를 뒤따라온 도적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마차 문이 거칠게 열렸다.
뒤이어 심통이 밖으로 나왔다.
“너 이 개 호로자식아! 아직 녹림에 이름도 올리지 못한 놈이! 녹림 태상호법님의 마차를 잡고서, 뭐어? 금자를 받아? 분에 넘치는 여자? 뒈지고 싶으면 어디 구석에 가서 칼을 물고 엎어지지, 왜 공자님 앞에서 지랄이냐?”
심통의 일갈에 놀란 텁석부리가 반신반의한 얼굴로 물었다.
“저, 정말 이 마차에 녹림의 태상호법님이 타고 계시오?”
“저, 병신 같은 놈! 에라 이 화상아!”
도저히 참지 못하겠던지 욕설과 함께 날아간 심통이 텁석부리의 가슴을 발로 찍었다.
“케엑!”
텁석부리가 답답한 비명과 함께 뒤로 나뒹굴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심통은 바람처럼 마차 주위를 돌며 모여 있던 도적들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텁석부리의 말에 웃던 여덟 명의 도적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남아 있던 나머지 절반의 도적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심통은 그래도 녹림에 가입할 놈들이라 더는 손을 쓰지 않았다.
가장 먼저 맞고 나뒹굴었던 텁석부리가 심통의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 와 땅에 머리를 박으며 외쳤다.
“용서해 주십쇼! 눈이 어두워 높으신 분들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네놈이 용서를 빌어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니라 석경장의 장주님과 가모님이시다.”
그러자 텁석부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차를 향해 소리쳤다.
“태상호법님! 용서해 주십쇼! 소인이 알아뵙지 못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심드렁한 얼굴로 보던 연적하가 물었다.
“형씨, 이름이 뭐야?”
“명재신이라 합니다!”
“명가구나. 세단산인데 이름은 왜 장락산채야?”
뜬금없는 질문에 명재신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상대의 얼굴을 보니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 같았다.
“즐거움이 오래도록 가라고……. 장락이라 지었습니다.”
“그럴 것 같더라. 가늘고 길게 가자는 거지?”
“예, 그렇습니다.”
“도적이 된 지 얼마나 됐어?”
“오 년쯤 됩니다.”
“나는 십 년이 넘었으니까 내가 한참 선배네. 선배가 하는 말 잘 들어. 가늘고 길게 가고 싶으면, 통행세 줄이고, 여염집 여자들에게 껄떡거리지 마. 그러다 바로 훅 가는 수가 있어.”
“예, 예!”
“그냥 하는 말 아냐. 오늘만 해도 우리는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통행세까지 내줬어. 그런데 형씨가 굳이 굳이 나서서 매를 벌었잖아. 재물 욕심, 색욕, 그거 조절 못 하면 도적질도 오래 못 해. 뭐, 한탕 크게 하고 멀리 떠나서 새 출발 하려면 그것도 괜찮겠지만. 딸린 식구들은 어쩔 거야? 장락산채 사람들 다 한몫 잡으려면 황궁을 털어야 할걸? 그러니까 적당히 하라고. 적당히.”
“예, 금과옥조 같은 가르침 뼈에 새기겠습니다.”
명재신이 어디서 주워들은 소리를 입에 올리자 연적하가 말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뼈에 새기겠다니까 도와줘야겠네?”
“예?”
도와주겠다는 말에 명재신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연적하가 손바닥을 가볍게 뒤집었다.
순간 명재신이 ‘윽!’ 소리와 함께 지면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마치 태산 밑에 깔린 듯 사지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사, 살려 주십쇼!”
“누가 죽인대? 뼈에 새기겠다면서? 도와주는 거야.”
이윽고 팔과 다리의 뼈가 뚝뚝 소리와 함께 부러졌다.
“악!”
“원래 한번 부러진 뼈가 붙으면 더 튼튼해진다 하더라고. 나는 안 부러져 봐서 모르겠지만.”
“…….”
명재신은 끝까지 정신을 잃지 않고 버텼다.
“나처럼 후배들을 생각해 주는 선배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심 노인? 나보다 더 후배를 생각해 주는 선배가 있었어?”
“없습니다.”
“명가야.”
“예…….”
“장락산채 때문에 못살겠다는 소리 들리면……. 너희들 다 묻어 버린다. 가늘고 길게 가고 싶으면 잘해라.”
“예, 아아…….”
목을 길게 뽑고 있던 명재신은 갑자기 담이 오자 머리를 지면에 처박고 버둥거렸다.
그 꼴을 보고 ‘쯧쯧!’ 하고 혀를 차던 연적하가 마부에게 말했다.
“가요.”
마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보부상들이 그 뒤를 부지런히 따라붙었다.
마차를 따라가던 정일소가 멈칫했다.
눈앞에 은자 꾸러미가 보였다.
텁석부리가 처음 맞고 쓰러질 때 떨어트린 것 같았다.
‘도적들도 없는데 도로 가져갈까?’
갈등하던 그는 뜨거운 시선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헉!’
지면에 널브러진 텁석부리가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급히 고개를 돌린 그는 서둘러 보부상들 속에 섞여 들어갔다.
그에게 찍히면 훗날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는 까닭이다.
***
합비.
장봉현.
해거름 무렵, 삼백여 명의 무인들이 조용히 마을로 진입했다.
호천맹의 이차 지원부대다.
총대주인 화산파 도산 진인이 육파일문의 ‘천명대’와 무림대회로 선발한 ‘호천대’ 대주들을 불러들였다.
“장봉현에 남맹의 방파가 있다고 들었는데…….”
도산 진인의 말에 호천대주 철아함이 답했다.
“창비문입니다.”
“그래, 총사는 자칫 창비문에게 뒤를 밟힐 수 있으니 먼저 정리했으면 하더군. 누가 맡으시겠나?”
뒤를 밟히는 것도 그렇지만 사실 복수의 의미도 있었다.
창비문은 오대세가 다음으로 유명한 남맹의 방파인 까닭이다.
철아함이 나섰다.
“호천대에 맡겨 주십시오.”
지난 일차 지원 때 피해를 입었기에 철아함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호천대가 선봉을 맡게. 달아나는 자들은 쫓지 말되, 은밀히 따라붙으려는 자들은 천명대가 척살하시게.”
“예.”
이 싸움의 의미를 아는 천명대주인 청성파 금양 진인의 눈빛도 차가웠다.
사위가 어둑어둑해 질 즈음, 호천맹의 이차 지원부대가 창비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백여 명의 호천대가 창비문의 담장을 넘어갔다.
조용하던 창비문이 발칵 뒤집혔다.
병장기 부딛치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꼬리를 물었다.
창비문이 비록 오대세가 다음이라고 하지만 무림대회를 통해 선발된 호천대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수십 명의 창비문 제자들이 창비문 밖으로 달아났다.
그들 중 몇은 어둠 속에 은신한 채로 적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하지만 그건 늑대를 피해 호랑이 앞으로 달려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숨어서 염탐하던 창비문 제자들은 천명대 손에 모두 죽임을 당했다.
남맹은 다음 날이 되어서야 창비문의 참사를 알게 되었다.
호천맹의 반격이 시작됐음을 알게 된 남맹 총사는 서둘러 장봉현으로 남맹의 고수들을 파견했다.
물론 호천맹을 격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들의 이동로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남맹 최고수인 검왕 남궁벽이 정양 중인 지금 남맹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