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72
972회. 죄인 정도진을 포박해라!
무창귀도 왕일도는 절정에 이른 고수다.
정군의의 도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척하면서 박살 낼 잔칫상으로 향하던 그가 멈칫했다.
젊은 부부와 아이, 미소녀 둘, 그리고 노인 둘까지는 뭐 흔한 조합이니 그렇다 치자. 그런데 아이의 무릎에 쪼그리고 있는 것은 새끼 백호였다.
새끼 백호를 데리고 다니는 일반인은 없다.
호랑이는 무림인이 아니면 고관대작의 집에서나 기른다.
어느 쪽이든 찜찜하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거의 다 온 마당에 멈추는 것도 우습다.
쐐애액―.
주제도 모르는 정군의가 또 도를 휘두르며 달라붙었다.
‘무림 고수거나 지체 높은 집안이었으면 상석으로 갔겠지?’
하지만 저곳은 일반인들을 위해 마련된 그저 그런 자리.
삼보표국에서 방치한 손님이라면 별 볼 일 없을 게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무창귀도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내디뎠다.
“어이쿠!”
와장창―.
그들 옆자리의 음식 그릇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정군의가 버럭 소리쳤다.
“무창귀도! 달아나기만 할 셈이냐!”
그러나 마지막 상차림까지 엎은 뒤에 정군의를 요리하기로 마음먹은 무창귀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무창귀도오―!”
정군의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다시 와락 달려들었다.
이제는 초식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마구잡이로 도를 휘둘렀다.
무창귀도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뜻하지 않게 격장지계를 쓴 꼴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상대를 요리하기가 더 쉬워진다.
쐐애액― 쐑―!
역시나 소리만 요란하지 실속 없는 헛된 칼질이다.
저런 걸 눈먼 칼이라고 한다.
무창귀도는 여유 있게 목표했던 잔칫상으로 한 걸음…….
‘응?’
갑자기 두 발이 상 위에 들러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공력을 끌어 모아 박차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깜짝 놀란 그는 급히 상체를 뒤틀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정군의의 박도가 옆구리를 길게 가르고 지나갔다.
“억!”
그건 고통보다 놀라서 내지른 소리였다.
뒤늦게 화끈하고 뜨거운 기운이 허리에서 밀려 올라왔다.
무창귀도는 황망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허리춤에서 뚝뚝 떨어진 피가 상 위를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다.
고정된 두 발로 인해 무게중심이 흐트러지자 몸이 급격하게 한쪽으로 넘어갔다.
쐐애액―.
하지만 그 덕분에 그는 정군의의 연격을 피할 수 있었다.
머리 위로 정말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칼이 스쳐 지나가갔다.
“이 개같은 놈이!”
정군의의 눈먼 칼에 맞은 무창귀도는 욕설과 함께 ―마치 움츠리고 있다가 뛰어오른―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아니 뛰어오르려 했다.
그러나 그의 다리는 쭉 펴졌지만 발바닥은 여전히 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 엄청난 도약력에 상이 딸려 올라가며 몸이 조금 앞으로 전진했다.
상을 발바닥에 붙인 채 정군의를 덮친 형국이다.
채채채챙―!
무창도귀는 절정고수답게 순식간에 네 번이나 칼질을 했다.
그 기세에 밀려 정군의는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자연히 일족일도(一足一刀)의 거리가 만들어졌다.
누구라도 한 걸음만 내디디면 상대를 벨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거리.
정군의는 무창귀도가 금방이라도 자신을 벨 거라고 생각해 잔뜩 긴장했다.
그러나 무창귀도는 땀만 뻘뻘 흘릴 뿐 거리를 좁혀 오지 않았다.
그제야 정군의는 그의 상태가 조금 이상함을 알았다.
‘왜 상에서 안 내려오지?’
그는 무창귀도의 연격에 밀리던 참이라 그의 기행을 보지 못했다.
한편 이곳에 절대의 고수가 있음을 깨달은 무창귀도가 머리를 숙이려 할 때다.
―입도 뻥끗하지 마. 입 열면 죽는다.
부르르 떨던 무창귀도가 한숨과 함께 도를 거두었다.
그만 싸우겠다는 표시다.
자신이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아는 정군의 역시 도를 내렸다.
그렇게 철혜 무창귀도 왕일도의 도발로 시작된 싸움은 끝났다.
그제야 두 발이 자유로워진 무창귀도는 대동전장 쪽으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대동전장의 초혜(추객의 우두머리)인 왕거돈이 무창귀도에게 속삭였다.
“왜 사정을 봐주셨소? 팔이라도 하나 자르시지.”
“…….”
무창귀도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절대의 고수가 입 열면 죽는다는 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답답하다는 얼굴로 보던 왕거돈이 금마표국의 총표두 마진상에게 턱짓을 보냈다.
대동전장이 판을 흔들어 놨으니 그쪽도 움직이라는 뜻이다.
마진상이 한숨 돌리고 있는 정군의에게 시비조로 말했다.
“정군의! 조금 전에 이상한 소리를 하던데. 대동전장이 우리 금마표국을 위해 행패를 부렸다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그런 모함을 하면 쓰나. 삼보표국에 망조가 든 걸 우리 금마표국의 탓으로 돌리다니. 너무 뻔뻔한 거 아니냐!”
절정고수와 싸우다 기진맥진했던 정군의는 마진상의 말에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망조라니! 그 무슨 개같은 소리냐! 대동전장이 행패를 부리지 않았다면, 우리 단골이 너희에게 갔겠느냐!”
“개같은 소리? 손님들 앞에서 나를 모욕하다니! 정녕 죽고 싶으냐! 죽고 싶다면 말해라! 바로 목을 따 줄 테니!”
“오냐! 더는 못 봐 주겠다. 덤벼라! 오늘 사생결단을 내 보자!”
정군의가 다시 도를 뽑자 삼보표국의 표두들이 만류했다.
절정고수와의 싸움으로 기진맥진한 총표두가 마진상과 또 싸우게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참으십쇼. 총표두님.”
“지금은 안 됩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정군의는 마지못해 도를 거두었다.
마진상이 자신의 하수라면 모를까?
비슷한 무위를 가진 그와 싸우면 패할 게 뻔했다.
정군의가 도발에 응하지 않자 마진상은 국주인 정도진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정 국주님! 자기 잘못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쇼! 장사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다! 그러니까 단골들이 우리 금마표국으로 넘어오는 거 아닙니까!”
마진상이 부친을 걸고 넘어지자 정은소가 반박하려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송겸이 그녀를 말렸다.
“참아. 싸우려고 시비를 거는 거잖아. 정 매가 나서면 더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거야.”
“…….”
정은소는 부들부들 떨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진상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피가 끓어올랐다.
그런 그녀의 곁에서 계속해서 참으라고만 하는 송겸의 표정도 좋지는 않았다.
이 순간 삼보표국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자신이 참 원망스러웠다.
그녀의 부친과 숙부가 자신을 냉대할 만했다.
하지만 삼보표국의 불운은 끝난 게 아니었다.
갑자기 누군가 대문을 부술듯 박차고 들어왔다.
뜻밖에도 그들은 관졸들이었다.
우르르 몰려온 관졸 오십여 명이 다짜고짜 삼보표국 사람들을 에워쌌다.
삼보표국주 정도진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관졸들을 보았다.
회갑연에 관졸들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일이 없는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멍하니 보던 그는 얼른 정신을 수습한 뒤 앞으로 나섰다.
“저는 삼보표국주 정도진입니다. 무슨 일로 왕림하셨는지요?”
그러자 관원들 중에서 한 사람이 차갑게 말했다.
“본관은 무창부(武昌府)의 추관(推官) 백운봉이다. 삼보표국의 국주인 정도진을 사기죄로 추포하겠다.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정도진이 황망한 얼굴로 되물었다.
“사, 사기라니요? 저는 일평생 남을 속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누구에게 어떤 사기를 쳤다는 말씀이십니까?”
“너를 고발한 곳은 대동전장이다. 너는 대동전장에 금자 십만 냥을 빌리고 갚지 않았다. 변재일을 넘긴 것은 물론, 상환 능력도 없다. 아니라고 하겠느냐?”
“대, 대동전장이 저를 고발했다는 것입니까?”
“사실인지 아닌지만을 말해라. 너는 대동전장에 금자 십만 냥을 빌리고, 변재일을 넘긴 사실이 있느냐?”
“변재일은 넘겼지만 전주인 손의정과 타협하여 여섯 달의 말미를 얻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운봉이 다시 물었다.
“변재일을 넘긴 것은 인정했고, 그다음은 상환 능력에 대해 묻겠다. 삼보표국이 여섯 달 안에 금자 십만 냥을 변재할 수 있느냐?”
“그, 그건…….”
정도진은 답하지 못했다.
표국이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 여섯 달 안에 금자 십만 냥을 갚기란 불가능한 까닭이다.
백운봉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지난달 삼보표국은 은자 천 냥을 벌어들였다. 이번 달은 손님이 더 떨어져 나가 그보다 못할 거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그런데 여섯 달 안에 금자 십만 냥을 갚겠다고? 그게 사기가 아니고 무엇이냐?”
“…….”
정도진은 고개를 떨구었다.
본래는 사정하며 조금씩 분할해서 갚아 나가려고 했다.
물론 엄격하게 말해 그러면 안 된다.
하지만 전장의 돈이라는 게 어디 그렇던가.
그들은 채무자가 일부를 갚으면, 남은 잔금에 이자를 높여 받는 식으로 운영해 왔다.
그렇게 해야 전장 수익이 늘어나기에 그걸 권유하기도 했다.
당연히 자신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동전장이 지금까지의 관례를 깨고 이렇게까지 나올 줄이야.
“죄인 정도진을 포박해라!”
백운봉의 명에 포졸들이 정도진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송겸이 포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한림원 학사의 실력을 보여 줄 때라 생각했다.
“멈추시오!”
포졸들이 백운봉을 돌아보았다.
추관의 앞에서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그의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다.
백운봉이 송겸의 아래위를 훑으며 물었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나라의 법 집행을 막고 나서는가?”
“저는 한림원 학사 송겸이라 합니다.”
백운봉이 야릇한 눈으로 송겸을 보았다.
한림원 학사는 종칠품으로 정칠품인 자신의 아래였다.
게다가 자신은 형명(刑名)을 담당한 관리로 서류나 만지작거리는 학사보다 힘이 더 강했다.
“이제 보니 한림원의 학사셨구먼. 본관과 정도진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이치가 어찌 되는지 알텐 데, 왜 법의 집행을 막아서는가?”
“정 국주가 돈을 빌리고 변재일을 지키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전주와 변재일을 늦출 것의 합의를 보았으니 사기로 단정하고 추포하기에는 이른 줄로 압니다.”
“그건 다툴 부분이 있으니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삼보표국이 여섯 달 이내에 변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부분 역시 다툴 여지가 많습니다. 대동전장은 변재일을 합의하고서 삼보표국의 영업을 방해하였습니다. 삼보표국의 수입이 줄어든 것은 대동전장의 방해 때문이니 오히려 삼보표국에서…….”
“잘 들었네. 하지만 그건 삼보표국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닌가? 내가 빚을 지고 갚지 못하게 됐다면 무슨 말인들 지어내지 못할까.”
“어째서 지어냈다고 단정하십니까? 소관은 오늘 대동전장의 행패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추관께서도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대동전장에서 정 국주의 회갑연을…….”
“돈을 받지 못해 고발까지 한 상태라면 화가 나서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보는데……. 그대는 아닌가 보군?”
“끙!”
송겸의 입에서 앓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대동전장이 삼보표국의 사업을 방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이상, 추관의 말에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런 송겸을 보며 백운봉이 말했다.
“한림원의 학사쯤 되면 공사를 구별할 줄 알아야지. 이쯤에서 물러나면 그대의 잘못을 묻지 않겠네.”
차마 물러나지 못하고 뻣뻣하게 서 있는 송겸의 팔을 정은소가 잡아끌었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아버지는 죄가 없으니 금방 풀려나실 거예요. 추관 대인, 손 전주님이 아버지와 변재일을 합의했다고 하면 풀려나실 수 있겠죠?”
“그렇소만. 고발인이 손 전주인데 그가 합의를 해 주겠소?”
“예에? 손 전주님이 직접 고발을 했다고요?”
정은소는 물론 국주인 정도진까지 기가 막힌 얼굴을 했다.
초혜인 왕거돈과 철혜인 무창귀도처럼 대동전장의 누군가가 물고 늘어진 줄로 알았는데 손 전주의 고발이라니!
백운봉이 포졸들에게 턱짓을 했다.
기다리고 있던 포졸들이 정도진에게 다가갈 때다.
몰려와 구경하던 손님들 속에서 누군가 말했다.
“추관이 전주에게 돈을 받아 처먹은 거 같지?”
“예.”
정체 모를 두 사람의 대화에 주위가 공동묘지처럼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