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78
978회. 이익을 나누기는 어려운 법이거든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연적하는 이내 마당에 내려섰다.
몇 걸음 걷는 그의 발밑으로 하얀 구름이 모여들었다.
이윽고 구름이 둥실 하고 떠올랐다.
막 마당으로 들어서던 총관 유정검호 남궁산호는 멍한 얼굴로 떠오르는 구름을 보았다.
운종술이라고 하던가.
처음 보는 장면은 아니지만 볼 때마다 경이롭다.
과연 저런 사람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건 고금제일인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어떤 전설적인 무림인도 살아서 저런 걸 보여 준 사람은 없었다.
구름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도 남궁산호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
남직례성.
남경.
무극문.
늦은 밤임에도 무극문은 환했다.
곳곳에 피운 모닥불 주변으로 번을 서는 무사들이 두세 명씩 보였다.
남맹의 습격에 대비한 것이다.
한 조가 된 주천교와 문유범은 육포를 꺼내 씹으며 지루한 시간을 버텨 냈다.
“……은월문과 싸움이 벌어졌을 때야. 하필 서연에게 셋이 달려들더라고. 재수가 옴 붙었던 거지. 그걸 보자마자 뛰어들었어. 생각할 틈도 없이 하나를 찌르고 돌면서 다른 하나의 팔을 베어 냈는데……. 하여튼 어찌어찌 서연을 구하고, 싸움이 끝났거든. 그런데 그 이후로 개안을 한 것처럼 검로(劍路)가 눈에 확 들어오는 거야.”
주천교의 말에 문유범이 고개를 주억고렸다.
“벽을 넘은 거로군.”
“뭐, 그런 것 같아. 이제는 철 대주를 봐도 그런가 보다 싶은 게. 이전같이 막막하지는 않더라고.”
“그래도 철 대주에게는 아직 안 될걸?”
“무슨 소리야. 이젠 상대의 어깨만 봐도 무슨 수를 쓰려는지 짐작이 된다니까.”
신나게 떠들던 주천교가 입을 다물었다.
문유범이 뒤를 돌아보자 저 멀리 철아함이 보였다.
이윽고 다가온 철아함이 물었다.
“별일 없나?”
주천교가 못 들은 체하자 문유범이 서둘러 답했다.
“이상 없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옆에서 자네들 목소리를 낮춰 달래. 시끄러워서 누가 와도 모를 지경이라나? 조금만 소리를 낮추도록 해.”
“예.”
철아함이 대답 없는 주천교 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다.
주천교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대, 대주님. 저기 뭔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주천교의 손이 밤하늘을 가리켰다.
그러는 사이 커다란 구름 한 덩어리가 무극문 안마당에 내려앉았다.
이윽고 구름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남자의 얼굴을 본 철아함이 한달음에 그 앞으로 달려갔다.
“남천 대협. 저는 호천대주 철아함이라 합니다.”
“아. 호천대주셨구나. 반가워요. 호천맹의 책임자가 누구예요?”
“총대주는 화산파의 도산 진인이십니다.”
“좀 나와 보라고 해요. 할 말이 있으니까.”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호천대주 철아함이 바람처럼 안쪽으로 사라졌다.
멀뚱멀뚱 서 있던 연적하가 모닥불로 다가갔다.
추워서라기보다는 그저 불구경을 하기 위해서다.
불가에 서 있던 주천교와 문유범이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주천교입니다.”
“문유범이라 합니다.”
“아, 예. 나는 신경 쓰지 마요. 그냥 호천맹의 도산 진인님에게 해 줄 말이 있어서 온 거니까.”
“예.”
번을 서야 하는 주천교와 문유범은 오도 가도 못하고 연적하를 훔쳐보았다.
“왜요? 나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요?”
“아, 아닙니다.”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힐끔거려요? 사람 민망하게.”
“조, 존경합니다.”
주천교의 뜬금 없는 말에 연적하가 눈을 끔뻑일 때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호천대주 철아함과 총대주 도산 진인, 그리고 천명대주 금양 진인이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었다.
연적하와 눈이 마주치자 도산 진인이 급히 읍을 했다.
“빈도는 화산파의 도산 진인입니다. 부족하지만 총대주를 맡고 있습니다.”
“천명대 대주를 맡고 있는 청성파의 금양 진인입니다.”
인사가 끝나자 도산 진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빈도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용무이신지요.”
연적하가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집어 넣으며 말했다.
“조금 전에 남궁세가에서 장인어른을 만나고 오는 길이에요.”
순간 도산 진인은 입을 움찔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연적하의 입에서 별다른 소리가 나오지 않은 까닭이다.
“남맹이 산동성, 하남성, 호광성, 절강성으로 진출했을 때의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때 내가 남맹에 다른 지역을 포기하라고 했잖아요. 왜 그랬는지는 알죠?”
“……예.”
도산 진인은 마지못해 답했다.
확실히 그때 남천 대협은 호천맹과 남맹의 싸움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그런 조치를 취했었다.
“장인어른께서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남맹이 백오십 개나 되는 방파를 다 버리고 남직례성으로 돌아왔는데, 최근에 호천맹이 남경을 접수했다고.”
“그, 그것이…… 무극문은 본래 남경에 뿌리를 둔…….”
“도산 진인.”
“예?”
“주위를 둘러봐요. 여기에 무극문 사람이 있는지.”
“남맹이 선우세가를…….”
“남맹은 본래 남직례성을 관리하는 곳이니 뭘 하든 그들의 자유 아닙니까?”
“그, 그렇기는 합니다만…….”
“호천맹주에게 전하세요. 호천맹이 남직례성에 한 발이라도 들어오면, 남맹이 잃어버린 백오십 개 문파를 내가 되찾아 줄 거라고.”
“헉!”
“호천맹 덕분에 장인어른하고 화해를 했네요. 이후로 남맹과 호천맹이 싸우면 나는 남맹의 편에 설 겁니다. 석경장이 남직례성에 있기도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잖아요. 나도 유난 떨지 않고 그냥 남들처럼 살아 보려고요. 유난을 떨면 뭐해요? 결과가 이 모양인데. 호천맹에서 남경의 방파들을 아주 작살냈다면서요? 내일 아침까지 남경을 비우세요. 호천맹에 내가 한 말 확실히 전해 주시고.”
“아, 아침까지입니까?”
“예. 문제 있나요?”
“아닙니다. 없습니다.”
“그럼, 나는 이만 갑니다. 다시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걸어가는 연적하의 발밑으로 구름이 모여들었다.
곧이어 둥실 떠오른 구름은 밤하늘로 사라졌다.
황망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금양 진인이 물었다.
“총대주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라니요.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소. 당장 천명대와 호천대 모두 깨우시오. 밤새 달려서라도 남경을 떠나야 하오.”
“알겠습니다.”
금양 진인은 군말하지 않았다.
남천 연적하가 언행일치라는 건 이미 강호에 널리 알려진 사실.
아침까지 남경을 떠나지 못하면 호천맹은 눈 뜨고 백오십 개의 방파를 빼앗기게 될 터였다.
깊은 밤 무극문이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일각(15분) 후 호천맹의 지원부대는 무극문을 빠져나갔다.
승리에 취해 있던 그들은 야반도주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다음 날 아침.
무상도제 장무덕의 거처로 천공도 장학이 찾아갔다.
문안 인사를 마친 장학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운을 뗐다.
“지난밤 호천맹의 지원부대가 남경을 떠났습니다.”
“알고 있다.”
장무덕의 입에서 가벼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밤중에 그 소란이 일어났는데 모를 리가 있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쩌긴, 내가 검왕 맹주와 담판을 지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이문사방을 내어 주면 그만이다.”
“검왕이 이번 일로 우리 무극문을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남맹을 괴롭힐 것이다. 너는 내가 누군지 잊었느냐?”
그제야 장학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하기야 무상도제가 남맹을 물고 늘어지면 남맹에도 좋을 게 없었다.
“이문사방에 나간 제자들을 불러들이고, 당분간은 지금 관리 중인 사업장에 집중하도록 해라.”
“예.”
***
호천맹에 쫓겨 양자강 너머로 달아났던 남맹의 지원부대가 보무도 당당하게 남경으로 돌아왔다.
무극문에 있던 호천맹 지원부대가 간밤에 달아난 것이 알려지자 남경에는 한바탕 광풍이 불었다.
“남천 대협과 검왕 대협이 화해했다!”
“남천 대협이 호천맹 지원부대를 남경에서 쫓아냈다!”
“남천 대협은 ‘이후로 호천맹이 남직례성에 들어오면 지난해 남맹이 포기한 다른 지역의 백오십 개 방파를 찾아 주겠다’고 선포했다!”
“남천 대협이 남맹의 편에 서기로 했다!”
무극문에 줄을 댔던 남경의 방파들이 다시 남맹으로 돌아섰다.
이문사방도 하루 만에 다시 남맹의 관할로 바뀌었다.
그런데 정작 남경을 장악한 남맹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무극문의 손에서 되찾은 이문사방의 처리를 앞두고 선우세가와 남맹의 입장이 서로 달라서다.
합비.
남맹.
천추각.
선우세가의 가주인 환우검 선우담이 탁자를 후려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쾅―!
“그 무슨 소리요! 이문사방을 남맹에서 관리하겠다니? 지금까지 우리 선우세가가 이문사방을 두고 무극문과 싸웠는데, 갑자기 남맹에서 관리하겠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요? 나는 동의할 수 없소이다! 그건 총사부의 뜻이오? 맹주의 뜻이오?”
그러자 총사 반천일검 모용문이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총사부가 언제 맹주님의 지시 없이 움직이는 것을 보셨습니까? 이건 맹주님은 물론, 다른 세가의 대표들도 동의한 부분입니다.”
“맹주와 다른 세가 대표들이 동의했다고?”
선우담이 황당한 눈으로 무림세가 대표들을 둘러보았다.
무림세가 대표들은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제야 선우담은 무림세가들이 자신만 따돌렸음을 알았다.
‘이 작자들이…….’
선우세가에서 이문사방을 취하면 무림세가의 서열이 뒤바뀔 것 같으니 뒤에서 수를 쓴 것이 분명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선우담의 귓가로 총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대신 선우세가에는 삼도방의 구역을 드릴까 하는데 어떻습니까?”
선우담은 이를 악물었다.
삼도방은 선우세가와 이웃한 문파로 무극문이 남경을 장악할 때 가장 먼저 무극문에 투신한 문파였다.
이문사방에 비교조차 안 되는 하찮은 방파지만 지금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마저도 거절하면 다른 세가에서 삼도방의 구역을 차지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총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문사방을 선우세가가 가져가면 언제고 무극문에서 걸고 넘어질 겁니다. 하지만 남맹이 직접 관리하면 무극문도 다시 욕심을 내지 못할 겁니다.”
“…….”
선우담은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총사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선우세가에 이문사방은 과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분쟁의 불씨였던 이문사방은 남맹의 손에 떨어졌다.
정확히는 맹주와 총사의 손이다. 그들이 이문사방의 관리 감독을 맡게 될 테니 말이다.
***
호광성.
무한.
소호.
호반의 나무 그늘에 젊은 남녀가 나란히 앉아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연적하와 남궁연이다.
심통과 당운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불현듯 남궁연이 말했다.
“고마워.”
“뭐가요?”
“아버지 체면을 세워 줘서.”
“에이, 사위가 돼서 그 정도는 기본이죠. 진즉에 그렇게 해 줬어야 했는데, 오히려 늦었죠.”
“네가 나와 지안이를 위해서 그랬다는 거 알아.”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남경에 갔다가 좀 놀랐어요.”
“왜?”
“호천맹과 무극문이 여러 방파를 박살 냈더라고요. 죽은 사람도 많겠죠? 나는 유명교와 마교만 그런 짓을 할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설마, 나쁜 사람들만 싸우는 줄 알았던 거야?”
“네. 유명교나 마교, 녹림 같은 사파들만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호천맹과 남맹은 같은 정파잖아요. 왜 같은 정파끼리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거죠?”
“어려움을 함께하기는 쉽지만……. 이익을 나누기는 어려운 법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