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86
986회.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호천맹.
의천각.
과거 남궁세가가 사용하던 의천각에 두 노인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다.
무당파 태허 진인과 소림사 원공 선사다.
문득 원공 선사가 입을 열었다.
“남천과 생사결을 해야 한다고 하던데 괜찮겠소?”
“허허. 안 괜찮을 건 또 뭐요?”
“남천이 무당파의 속가제자라는 말을 들어서 해 본 말이외다. 그리고…….”
원공 선사가 말끝을 흐렸다.
태허 진인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리고 또 뭐가 더 있소?”
“진인에게서 살의가 느껴지지 않아 그러오.”
“우리가 살의를 풀풀 풍기며 다닐 나이는 지나지 않았소? 선사에게도 없는 살의를 왜 나에게서 찾소?”
“뭐, 그렇기는 하오만. 빈승이 본래 돌다리도 두드려 본 후에 건너는 사람이라. 혹시 남천을 잡겠다는 마음이 없다면…….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소.”
“넷으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시오?”
원공 선사가 미지근하게 식은 차를 입에 털어 넣은 뒤 말했다.
“천하십대고수들의 무위는 서로 비슷해서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외다. 남천의 무위 역시 그 범주라고 생각하면……. 넉넉하지 않겠소.”
태허 진인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내가 무당파 장문인에게 했던 말을 하는구려.”
“오호! 그런 일이 있었소? 장문인이 뭐라고 하더이까?”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百聞不如一見]고 하더이다.”
“그럴 정도로 남천의 무위가 뛰어나다는 것이오?”
“그렇게 들었소.”
“허어!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요? 고작 이십 대가 천하십대고수의 반열에 들었다는 것도 못 미더운데 천하십대고수보다 뛰어나다니…….”
“허허허! 장문인에게 내가 꼭 선사처럼 말했소. 그러고 보면 사람 생각은 다 비슷한가 보오.”
원공 선사가 황망한 눈으로 태허 진인을 보았다.
그때 밖에서 어수선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총사부에 속한 공손암의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계십니까? 남천이 연무장에서 두 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태허 진인이 큰 소리로 물었다.
“남천이 홀로 왔던가?”
“아닙니다. 맹주님과 무상도제, 의천검존 님과 함께 계십니다.”
원공 선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천하십대고수 다섯이 합비의 포공사에서 남천과 싸울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다.
태허 진인이 원공 선사를 돌아보았다.
“혹시 합비의 포공사가 아니라 호천맹으로 장소를 바꾸었소?”
“그런 소리는 듣지 못했소. 연무장에서 기다린다고 하는 걸 보니……. 남천이 우리의 계획을 알아차린 것 같구려.”
“알고도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오다니……. 실로 대단한 자신감이 아니오?”
“그래서 진인은 어쩌시겠소?”
합공을 하겠느냐 말겠느냐의 물음이다.
태허 진인이 느긋하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나도 칠파이문 사람인데 무림세가 편에 서겠소? 허나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라는 말이 있으니……. 우선은 남천부터 만나 봐야겠소.”
원공 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그의 말대로 칠파이문과 무림세가의 주도권 싸움이었다.
남천이 비록 무당파 속가제자이지만 무당파와 남천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태허 진인은 무당파를 선택할 터였다.
의천각을 나선 원공 선사와 태허 진인은 곧바로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
원공 선사와 태허 진인이 연무장으로 들어서자, 맹주인 무극상인이 빠르게 다가갔다.
“포공사에서 검왕과 만났으나 남천의 개입으로 비무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디에서 정보가 샜는지 모르겠으나 남천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허어!”
원공 선사는 의천각에서 보인 태허 진인의 애매한 태도를 떠올리고 그게 무당파 짓임을 짐작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무당파 역시 칠파이문이 무림세가 아래에 놓이는 걸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태허 진인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네가 남천이구나. 나는 태허다. 너는 내가 누군지 아느냐?”
“예, 오룡궁 청불노의 제자 연적하 인사드립니다.”
연적하가 정중하게 공수의 예를 올렸다.
태허 진인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장문인에게 너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그런데 너는 무당파의 제자면서 왜 호천맹을 핍박하느냐?”
“핍박이 아니라, 장인어른을 조금 도와준 것뿐입니다. 내가 핍박했으면 호천맹은 진즉에 망했을 겁니다.”
“호오! 대단한 자신감이로구나. 너 혼자서 호천맹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럼요. 상계의 신들인 천외이선도 죽였는데 호천맹이 뭐 대수라고요. 어떻게, 말 나온 김에 오늘 해체해 버릴까요?”
대화가 길어지자 연적하의 말투가 조금 부드럽게 바뀌었다.
그러나 부드러워진 말투와 달리 내용이 무시무시했다.
그의 말에 놀란 호천맹 무인들이 술렁거렸다.
그러나 정작 맹주와 총사는 물론 무상도제와 의천검존은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소림사 최고 어른인 원공 선사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이었지만 태허 진인은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호천맹에 너의 사문인 무당파가 속해 있음을 모르느냐?”
그러자 연적하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호천맹이 사라진다고 무당파가 망하는 건 아니잖아요.”
“허허. 네 말이 맞다. 허나 호천맹은 지금까지 협의를 추구하며 천하무림을 지켜 왔다. 호천맹이 사라지면 천하가 도탄에 빠질 터인데, 그러기를 바라느냐?”
그러자 연적하는 슬쩍 말을 바꿨다.
“진인께서 호천맹을 감당할 수 있냐고 해서 그랬던 거고요. 나도 호천맹을 문 닫게 할 마음은 없어요. 아직 그 정도로 반감이 쌓인 게 아니라서.”
“그럼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맹주와 저 두 노인네가 장인어른을 죽이고, 사람을 더 모아 나까지 죽이겠다고 했다면서요? 그게 얼마나 허튼 망상인지 일깨워 주려고 온 거예요.”
태허 진인이 원공 선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렇다는구려. 이제 어쩌시겠소? 그래도 굳이 남천과 싸워야 한다면, 빈도도 칠파이문의 일원으로 한 손 거들어 드릴 용의는 있소만.”
남천에게서 살의를 느끼지 못한 태허 진인은, 남천의 무위가 너무 궁금해 천하십대고수들에게 손을 빌려줄 생각이었다.
원공 선사는 다시 맹주인 무극상인과 무상도제, 의천검존에게 시선을 돌렸다.
직접 본 남천은 천외천의 고수라기보다 시정잡배에 가까웠다.
어쩌면 유명교의 배후라던 천외이선도 대단한 사람들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맹주,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이곳에서 결착을 지어야 하지 않겠소?”
“그래야겠지요…….”
무극상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지 않았다.
순간 원공 선사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기껏 은거한 자신과 태허 진인까지 불러 놓고 저런 태도라니!
문득 무상도제와 의천검존을 보니 그들의 얼굴에도 투기는 없었다.
호천맹이 살려면 남천을 죽여야 한다더니 왜들 저러는지 모르겠다.
“남천과 싸우겠다는 거요? 말겠다는 거요?”
책망하는 듯한 원공 선사의 말에 무극상인과 무상도제, 의천검존이 뒤늦게 결의를 다졌다.
“싸워야지요.”
“호천맹을 위해서라도.”
“남천을 그냥 둬서는 안 됩니다.”
그제야 원공 선사가 연적하를 향해 소리쳤다.
“남천! 네 입으로 우리의 망상을 깨 주겠다고 했으니, 설사 우리가 합공한다 해도 원망하지 말거라!”
연적하는 원공 선사의 말에 답하지 않고 주변을 향해 말했다.
“거기 호천맹 아저씨들! 살고 싶으면 연무장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게 좋을 거예요.”
그의 말에 절반이 연무장을 벗어났지만, 나머지 절반은 그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연적하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거참. 내 말을 무시하는 거야? 의심이 많은 거야?”
연적하가 호천맹의 무사들을 뒤로 물리는 동안 천하십대고수들은 천천히 자리를 잡았다.
연적하를 다섯 명의 천하십대고수가 빙 둘러선 모양새다.
원공 선사는 천천히 무상반야공의 공력을 끌어 올려 쌍장에 담았다.
고오오오―.
바람도 없는데 그의 승포가 부풀어 올랐다.
백보신권으로 견제를 하다가 벼락처럼 달라붙어 천수여래장으로 끝을 볼 생각이다.
태허 진인은 고검을 뽑아 얼굴 앞에 세웠다.
그리고 왼손 검결지로 순양무극공의 공력을 검신에 주입했다.
우우웅―.
검신에서 묵직한 검명이 울렸다.
맹주이자 화산파 장문인인 무극상인은 검극을 지면으로 향하고, 자하신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다.
지이잉―.
검신에 자줏빛 검강이 맺혔다.
무상도제 장무덕은 도를 상단으로 들고 천지일원공을 끌어 올렸다.
홀연히 일어난 돌개바람이 그를 중심으로 맹렬하게 돌았다.
휘리리링―.
의천검존 이의정은 양손의 검결지를 가슴 앞에서 맞닿게 하고 현천팔극신공의 구결을 암송했다.
등에 비스듬히 맨 그의 검집에서 눈부신 백광이 뻗어 나왔다.
그런 다섯 명의 천하십대고수들을 무심한 얼굴로 보던 연적하가 허공에서 검을 한 자루 꺼냈다.
천둔검이다.
한순간 다섯 명의 천하십대고수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검을 꺼내다니!
술법인지, 검공의 일부인지 알 수 없지만 위축되는 건 사실이었다.
연적하가 검을 꺼내자마자 다섯 명의 천하십대고수들이 움직였다.
원공 선사가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순간 백보신권이라 불리는 두 개의 권영(拳影)이 화살처럼 쏘아 갔다.
후웅― 후웅―.
태허 진인의 검이 태극을 그리자, 희고 검은 음양(陰陽)의 검강이 정면으로 폭사했다.
무극상인의 검에서 생성된 이십여 개의 매화가 하늘하늘 날아올랐다.
태허 진인의 검강이 직선이라면, 매화는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였다.
무상도제의 도가 천지를 양단할 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가가가각―!
길게 뻗어 나간 도강이 연적하의 정수리로 떨어졌다.
의천검존의 검집에서 검이 저 홀로 날아올랐다.
순간 연적하가 하늘로 도약했다.
그가 서 있던 자리를 지나친 백보신권이 담벼락을 때렸다.
펑! 펑―!
무상도제의 도강에 연무장 바닥이 한 자 깊이로 갈라졌다.
콰콰콰콰―!
무극상인의 매화가 연무장에 떨어질 때마다 땅거죽이 ‘쩍! 쩍!’ 벌어졌다.
그 와중에 태허 진인의 음양 강기와 의천검존의 이기어검이 수직으로 솟구쳐 연적하를 따라갔다.
연적하는 허공에서 아홉 번이나 자리를 바꾸었다.
구룡번신의 절기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음양 강기와 이기어검도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허공에 우뚝 선 연적하가 하늘로 천둔검을 던졌다.
이윽고 그가 소요종의 절기인 천산검영(千山劍影)을 펼치자 하늘이 수백, 수천 개나 되는 ‘검의 화신(化身)’으로 가득 찼다.
순간 다섯 명의 천하십대고수들은 섬뜩한 위기감에 공세를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가리어질 정도로 많은 검형(劍形)을 보니 투기가 싹 사라진다.
그들은 각각의 ‘검의 화신’이 검강을 능가한다는 것까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막연한 공포를 느꼈다.
“쏟아진다!”
연무장에 있던 누군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쏴아아아아아―.
마치 소나기처럼 ‘검의 화신’들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퍼퍼퍼퍽―!
‘검의 화신’에 닿는 것은 모두가 구멍이 나거나 갈라졌다.
연무장은 한순간 벌집이 되고 말았다.
‘검의 화신’은 연무장을 중심으로 쏟아져 내렸지만, 수백 개는 조금 벗어난 지역에도 떨어졌다.
연적하의 경고를 한 귀로 듣고 흘린 무인들에게는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었다.
“악!”
“살려 줘!”
“으악!”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사람은 운이 좋았다.
정수리에 맞아 양단된 사람도 있었다.
‘검의 화신’들 중에 절반이 떨어졌음에도 연무장 인근은 완전히 초토화가 되고 말았다.
‘검의 화신’에 직격당한 천하십대고수들의 형편도 좋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야말로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형국이었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로 서 있던 무극상인이 소리쳤다.
“졌소! 우리가 졌소!”
입으로 피를 게워 내던 원공 선사가 덜덜 떨며 말했다.
“자비를…….”
무상도제와 의천검존도 들고 있던 도검을 바닥에 툭 떨궜다.
아직도 하늘에 가득한 기이한 검형을 보니 천외천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다리가 후들거리자 태허 진인은 더 이상 서 있지 못하고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남천에게서 살의가 느껴지지 않아 무위를 견식하려는 마음으로 맹주 편에 섰는데, 운이 좋아 살았다.
무심한 얼굴로 서 있던 연적하는 천산검영을 거두었다.
거짓말처럼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던 연적하는 이내 운종술로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