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90
990회. 끝났어요?
소윤의 대답에 남궁연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양이화를 보았다.
소씨가 아니라면 소윤을 그냥 이름으로 써도 될 것 같아서다.
양이화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남궁연이 슬쩍 운을 뗐다.
“소윤이는 무공을 좋아하니?”
“네.”
“그렇구나. 너는 혹시 내가 누군지 아니?”
“네, 알아요. 십전무후 님이시라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내 남편이 누군지도 알겠구나?”
“남천 대협요.”
“그래. 남천 대협이 너를 마음에 들어 하는데, 우리와 함께 석경장으로 가지 않을래?”
남궁연의 제안에 소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녀도 연가무관 수련생들의 꿈이 남천 대협에게 일초반식이라도 가르침받기 원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고 석경장으로 함께 가자니!
양이화는 남궁연이 왜 저런 소리를 하는지 아는지라 조마조마한 얼굴로 소윤의 입만 쳐다보았다.
한참 고민하던 소윤이 작은 소리로 답했다.
“아니요.”
“왜? 석경장이 싫으니?”
“싫은 건 아닌데요. 여기서 살고 싶어서요.”
“소윤이는 연가무관이 좋은가 보구나?”
“네.”
남궁연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연적하가 왜 이 아이에게 공을 들이는지 알 것도 같았다.
무림인 중에 석경장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런 아이라면 벌모세수와 대환단이 아깝지 않다.
아이가 없는 양이화와 연무백을 위해서도 잘된 일이었다.
양이화도 대견한 눈으로 소윤을 보았다.
그녀는 소윤이 석경장을 택한다면 양녀로 삼은 뒤에 보내 주려 했다.
무가에서 자녀를 유명 문파에 수련생으로 보내는 것은 드문일이 아니었다.
당장 남편(연무백)만 해도 십 년이나 남궁세가에서 수련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소윤이 ―석경장에 비하면 티끌만도 못한― 연가무관을 선택하니 고마우면서 미안했다.
연무백과 연승백도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실실 웃었다.
***
그 시간 숭산 소림사.
저녁 공양 시간에 느닷없이 재건축 중인 대웅보전 앞으로 구름 한 덩어리가 내려앉았다.
때마침 그 앞을 지나던 승려들이 구름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구름 속에서 한 청년이 걸어 나오자 그를 알아본 나한당의 천문 대사가 황급히 나아가 반수 합장하며 인사했다.
“남천 대협. 소승은 나한당의 당주인 천문이라 합니다. 무슨 일로 본사를 방문하셨는지요?”
“원공 선사님을 만나러 왔어요.”
“아! 선사께서는 이곳이 아니라 소실봉에 계십니다.”
“그래요? 누가 안내를 좀 해 줬으면 하는데.”
“소승이 안내를 해 드리겠습니다.”
천문 대사는 감히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못하고 길 안내를 자처했다.
“고마워요. 어디로 가죠?”
빨리 가자는 소리다.
천문 대사는 가까이 있던 나한당의 승려 하나를 불러 장문인께 알리라 하고 서둘러 걸음을 떼어 놓았다.
천문 대사와 연적하가 바람처럼 산 위로 사라지자 나한당의 승려는 장문인을 찾아 달렸다.
소실봉.
천문 대사는 산꼭대기에 조금 못 미친 암자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목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암자를 향해 말했다.
“원공 선사님! 안에 계십니까?”
그러자 곧 암자 안에서 탁한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냐. 누구도 이곳에 발걸음 하지 말라 했거늘.”
“나한당의 천문입니다. 남천 대협께서 원공 선사님을 찾아오셨습니다.”
순간 암자 문을 열고 원공 선사가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는 연적하의 얼굴을 보고는 급히 반수 합장의 예를 취했다.
“남천 대협.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이시오?”
원공 선사의 안색은 척 봐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호천맹에서 입은 내상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의 몰골을 본 연적하는 잠시 망설였다.
자신 때문에 골골거리는 사람에게 대환단을 달라기가 미안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기도 뭐해 슬쩍 운을 뗐다.
“대환단이나 하나 얻어 갈까 해서 왔는데……. 나한테 줄 게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원공 선사가 연적하의 안색을 슬쩍 살폈다.
대환단이 필요할 것 같지 않은데 왜 찾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감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빈승에게 마침 하나가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원공 선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암자로 돌아갔다.
잠시 후 다시 나온 그의 손에는 작은 목함이 들려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복용법은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노회한 원공 선사가 말꼬리를 흐렸다.
복용법 운운함으로 누가 먹을 건지를 떠보는 것이다.
역시나 경험이 일천한 연적하가 걸려들었다.
“복용법이 있어요?”
원공 선사는 짐짓 굳은 얼굴로 답했다.
“소림사의 대환단이나 무당파의 태청단과 같은 단약은 약성이 강해서……. 일반인이 복용 시에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물론 남천 대협과 같은 분에게야 냉수 한 그릇과 같겠지만 말입니다.”
“열두 살짜리 애에게 먹일 건데요. 어떻게 해야 하죠?”
“내공을 수련한 아이입니까?”
“무관에서 익히는 수준일 거예요.”
“그렇다면 두 조각이나 네 조각으로 나누어 먹이는 것이 좋을 겁니다. 복용 전에 충분한 식사와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신체가 건강할수록 반발력이 적으니까요.”
“아.”
연적하는 생각보다 평범한 내용에 안심했다.
“참고로 일반인에게 대환단이 만병통치의 약은 아닙니다. 그러니 환자라면 의원에게 따로 약을 처방받도록…….”
“아파서 먹이는 건 아니고요. 그냥 근골이 허약해서 그 뭐냐, 벌모세수(伐毛洗髓)라고 하나? 그런 거를 위해서 필요한 거예요.”
연적하는 원공 선사의 언변에 넘어가 술술 불었다.
그의 무위쯤 되면 감추며 살 이유가 없게 돼 그런 쪽으로 무딘 탓도 있다.
“벌모세수라면 저희 소림의 역근경이 효과적입니다. 만약 필요하시다면 장문인을 보내 도와드리겠습니다.”
원공 선사는 어떻게든 남천과 연을 맺으려 했다.
“아, 괜찮아요. 내 처가 벌모세수의 공법을 알고 있거든요. 처가 직접 벌모세수를 해 주기로 했어요.”
“허허. 십전무후시라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남천 대협의 제자분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큰 복을 받았군요. 대환단에 십전무후의 벌모세수공까지…….”
“내 제자는 아니고요. 형님네가 양녀로 받으려는 애예요. 아이고, 빨리 간다고 했는데 얘기가 길어졌네. 대환단 잘 쓸게요. 선사님도 요양 잘 하세요.”
말을 마친 연적하는 운종술로 훌쩍 떠나갔다.
구름이 사야에서 사라지자 원공 선사가 천문 대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들었느냐?”
“예.”
“남천 대협이 말하는 형님네가 누구인지 아느냐?”
“구름이 가는 방향도 그렇고, 낙양 연가무관의 연무백 내외를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남천 대협과 배다른 형제들 간에 불화가 심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최근 남천 대협은 검왕과 화해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과도 화해를 했을지 모릅니다.”
“장문인에게 연가무관에 대해 은밀히 알아보라 이르거라. 정말 그곳에서 양녀를 들였다면 소림사의 이름으로 선물을 보내는 것도 좋겠지. 남천 대협과 십전무후가 아끼는 아이니 어떻게든 교분을 맺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원공 선사님의 치료에 쓰일 대환단을 내주셨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치료는 소환단으로 병행해도 된다. 시일이 더 걸리겠지만, 어차피 늙어 죽을 일만 남았으니 상관없다. 천하십대고수의 칼이 쓸모없는 시대에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겠느냐.”
원공 선사의 목소리는 허허로웠다.
천문 대사는 조용히 반수 합장을 올리고 하산했다.
***
낙양 연가무관.
연적하가 한 식경을 조금 넘기고 돌아오자 남궁연이 웃으며 말했다.
“늦은 걸 보니 원공 선사와 수다라도 떨다가 왔나 보네?”
“어? 누님이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네가 찾아갈 만한 사람이 원공 선사밖에 없으니까.”
“하하. 대환단의 복용법에 대한 주의사항을 듣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풋! 이제는 원공 선사도 네 귀가 얇은 걸 알았겠구나.”
“엥?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단약 복용법 얘기하면서 누구에게 쓸 건지 미주알고주알 늘어놨지?”
“대환단의 약성이 세서 먹을 때 주의해야 한다니까……. 내가 실수한 거예요?”
“실수까지는 아니고. 연가무관 얘기까지 하고 온 건 아니겠지?”
“에이, 나도 그렇게 바보는 아니죠. 그냥 뭉뚱그려서 ‘형님네’라고 했어요.”
“그럼 다한 거네.”
“예? 그냥 형님네라고만 했다니까요?”
“그 말은 형님 가족을 의미하는 말이잖아. 너한테서 ‘형님네’ 소리를 들을 사람이 누가 있다고?”
머리를 긁적이던 연적하가 목함을 불쑥 내밀었다.
“여기 대환단요. 그나저나 원공 선사 안색도 별로 안 좋아 보이던데. 남의 약을 뺏어 오는 것 같아서 미안하더라고요?”
“그럼 천 오라버니에게 해 줬듯 영기로 진기요상이라도 한번 해 주고 오지 그랬어.”
“아! 빨리 오려고 그 생각을 못 했네. 가까우니까 이따가라도 살짝 들렀다가 와야겠다.”
연무백 내외와 연승백은 끼어들지 못하고 눈만 끔뻑거렸다.
왕복 이백 리(약 8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가까우니 살짝 들렀다가 온다니…….
남궁연은 목함에서 대환단을 꺼내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과연 원공 선사가 약성이 세다며 연적하를 겁줄 만도 했다.
“혹시 원공 선사가 소분해서 복용시키라고 했어?”
“네. 두 조각이나 네 조각으로 나눠 먹이는 게 낫다고 하더라고요. 장문인을 보내 주겠다는 걸 거절했어요.”
“잘했어. 나의 벌모세수 공법과 너의 영기라면 대환단의 약성을 다스릴 수 있을 거야.”
“나도 필요해요?”
“소분해서 먹이면 효과가 떨어지거든. 네가 영기로 소윤이의 혈맥과 단전을 지켜 주면 대환단의 약성도 크게 반발하지 않을 거야.”
“아하! 간단한 방법이 있었네요. 원공 선사의 얼굴이 심각해서 잘라 먹여야 되는 줄 알았는데.”
피식 웃던 남궁연이 대환단을 양이화에게 건넸다.
“언니가 소윤에게 먹여 주세요.”
“네.”
양이화가 소윤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한 뒤 대환단을 입에 넣어 주었다.
대환단은 소윤의 볼이 튀어나올 정도로 컸다.
소윤이 우물우물 대환단을 씹어 삼키자, 기다렸다는 듯 남궁연의 손가락이 현란하게 허공을 찍었다.
격공타혈의 수법으로 소윤을 점혈한 것이다.
소윤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남궁연이 소윤의 머리와 등에 손바닥을 대고 연적하에게 말했다.
“내가 진기인도를 할 동안 지켜 줘.”
“네.”
연적하가 즉시 영기를 발출해 소윤과 남궁연의 몸을 감쌌다.
순간 남궁연과 소윤이 앉은 자리에서 금색 광채가 피어올랐다.
금색의 광채는 ―마치 연꽃처럼― 꽃잎을 피운 뒤 하늘하늘 솟아올라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 기묘한 광경을 본 연무백의 입이 쩍 벌어졌다.
‘헉! 천화난추(天花亂墜)?’
무림인이라면 꿈에도 바라는 궁극의 경지가 눈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소윤의 머리카락과 이빨이 빠지고 자라기를 세 차례나 반복했다.
삼단 같은 머리카락이 소윤의 허리를 지나 엉덩이에 이르러서야 변화가 멈췄다.
소윤의 입에서 흘러나온 수십 개의 이빨이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녀의 다리 안쪽에 굴러다녔다.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과 옥수수 알갱이처럼 떨어진 이빨을 본 양이화가 연무백에게 속삭였다.
“저 정도면 벌모세수가 아니라 탈태환골 아니에요?”
“그러게…….”
부부의 옆에서 연승백이 부러운 눈으로 소윤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동정을 끌던 아이가 이젠 동경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잠시 후 벌모세수를 끝낸 남궁연이 손을 떼고 물러났다.
그제야 연적하도 영기를 거두었다.
남궁연과 소윤이 앉은 자리에서 연꽃처럼 쉬지 않고 피어오르던 금빛 광채가 씻은 듯 사라졌다.
연무백, 양이화, 연승백, 연적하, 남궁연이 석상처럼 앉아 있는 소윤을 뚫어져라 보았다.
살짝 실눈을 뜬 소윤이 양이화에게 속삭였다.
“끝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