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94
994회. 일을 더 키우지 마라
다음 날 아침.
연적하 일행은 나루터에서 개봉 방면으로 향하는 배를 탔다.
낙양에서 개봉까지 뱃길로 사백육십 리(약 180킬로미터).
사나흘 정도 선상 생활을 해야 하는 거리다.
그 기간 동안 석경장 식솔들은 처음으로 연적하의 눈치를 봐야 했다.
언제나 풀어져 있던 그의 얼굴이 하루 종일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실없이 연적하와 농담을 하던 심통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석양 무렵.
하루 종일 연적하의 눈치를 보던 당운망이 심통을 선미로 불러냈다.
“심가야. 오늘 하루 종일 장주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너라도 좀 풀어 드려야 하지 않느냐?”
“나라고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 같으냐? 그런데 지금은 나도 무서워서 말을 못 걸겠다. 공자님이 저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본다.”
“그 정도냐?”
“괜히 너도 기분 풀어 드리겠다고 허튼짓하지 마라. 지금은 쥐 죽은 듯이 지내야 한다.”
“허어. 평소 화를 안 내시던 분이 저러니까 진짜 무섭네. 어디를 가네 마네 하는 문제로 싸우시던데……. 설마 남연객점에 가는 것 때문인가?”
“남연객점이 왜?”
“거기 주인이 남 소저가 아니냐. 가모님 입장에서는 좀 그렇지. 혼인도 안 한 젊은 여자가 장주님과 함께 오랜 기간 생활까지 했다는데.”
“허튼소리. 우리 공자님과 남 소저가 그런 사이는 아니다.”
“물론 그건 나도 아는데, 여자의 마음이 또 그런 게 아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그래도 싫은 관계가 있느니라.”
당운망이 하도 확실하게 말하자 심통도 살짝 흔들렸다.
솔직히 남 소저가 연적하를 연모하는 것 같아 보이긴 했다.
연적하의 태도가 워낙 확실해서 내색조차 못 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귀신같은 남궁연이 그 정도 눈치도 알아차리지 못할 리는 없다.
‘정말 남 소저 문제로 다툰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이 납득은 간다.
‘쯧쯧! 남연객점에 들르자고 하지를 말았어야 하는데…….’
당운망의 말에 완전히 넘어간 심통은 남연객점을 화근으로 믿었다.
다음 날, 배는 정주에 도착했다.
대도시답게 정주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배에 올랐다.
선상 생활 이틀째에도 연적하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배가 선착장을 떠나 강 중심에 이르자 선객들이 갑판으로 몰려나왔다.
연적하는 오늘도 선수(船首)에 홀로 서서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면 ‘범천욕계왕재천’은 천운이 따랐다.
아홉 종문의 천문(天門)이 아니었다면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어야 했다.
천족과 수인 들의 세계나 마천에 떨어졌어도 운명이 실타래처럼 꼬였을 게다.
구주에 도착해 바로 종문 제자가 되지 않았다면, 천문의 비밀에 다가가지 못했을 터.
그렇게 생각하니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네 번째 하늘’에서 또 그런 행운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 설사 그런 천운을 또 얻었다 해도, 그곳에서 보낸 일 년이 현세의 백 년이라면 말짱 도루묵이다.
천운이 따라야 하는 것도 기가 막힌데, 시간의 흐름마저 현세와 같아야 한다.
그걸 다 알면서도 가라는 남궁연의 속을 모르겠다.
마치 황하의 흙탕물을 보는 것 같다.
자신은 남궁연을 다시 못 만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미칠 것 같은데, 왜 그녀는 가라고 할까.
남맹과 호천맹 따위야 어찌 되든 무슨 상관이라고.
‘네 번째 하늘’의 운명도 그렇다.
찾아보면 하계의 인간인 자신보다 월등한 존재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설사 그게 아니라 해도 ‘천자마’와 ‘금사’의 분탕질을 꼭 자신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이유는 없다.
구천현녀는 ‘너의 인생이 걸린 문제이니 강요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가라고 등을 떠미는 건 대체 뭐냐 말이다.
‘아아! 미쳐 버리겠네.’
연적하가 머리를 쥐어뜯을 때 갑판이 시끌시끌 해졌다.
그가 짜증 어린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정주에서 새로 배에 탄 선객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두 청년, 임우한과 석은평이 불콰한 얼굴로 갑판에 있는 여자들의 품평을 이어 갔다.
“형님, 저기 저 아가씨는 어떻습니까? 저 정도면 갑(甲)이라 할 만하지 않습니까? 반월루의 기녀들 뺨치게 생겼는데요?”
임우한의 말에 석은평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저 정도를 갑이라고 하면 안 되지. 그리고 반월루 기녀들의 얼굴도 얼굴이냐? 너는 풍류를 알려면 아직 멀었다.”
석은평의 무시하는 말을 임우한은 ‘하하!’ 웃으며 넘겼다.
그도 그럴 것이 임우한의 부친이 중원상방 대행수임에 반해 석은평의 부친은 형양현 현령인 까닭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두 청년은 언행에 거침이 없었다.
두 사람이 데리고 나온 호위만 열 명이라 그들에게 눈총을 주는 사람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낮부터 술도 한잔 걸쳤겠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져 갔다.
하필 그때 객실에 머무르던 지안이 백호와 함께 갑판으로 나왔다. 백호가 답답한지 낑낑거리자 데리고 나온 것이다.
하루 종일 지안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지키는 월아과 금아가 뒤따라 나온 것은 물론이다.
월아와 금아가 갑판으로 나오자 사람들의 이목이 그녀들에게 쏠렸다.
그중에는 임우한과 석은평도 있었다.
갑판 위 여자들을 품평하던 임우한과 석은평이 놀란 눈으로 서로를 보았다.
정주와 같은 대도시에서도 저만한 미소녀들을 본 적이 없어서다.
임우한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형님, 저 아가씨들 정도면 진정 갑이 아닙니까?”
“인정하겠다. 뉘 집 여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실로 장래가 기대되는 미색이구나.”
“이것도 인연인데 소제가 가서 모셔 올까요? 형님이 누군지 알면 얼씨구나 하며 올 겁니다.”
“뭐, 그래 보든가.”
석은평은 알아서 하라는 듯 말했지만 눈을 소녀들에게서 떼지 못했다.
임우한이 소녀들에게로 걸음을 떼어 놓았다.
뒤늦게 새끼 백호를 발견한 임우한이 슬쩍 운을 뗐다.
“백호가 아주 귀엽구나. 꼬마야, 네가 키우는 백호냐?”
“네.”
“호랑이를 키우다니 대단하구나. 너는 어디의 누구냐?”
그러자 월아가 지안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것까지는 공자가 알 필요 없어요. 무슨 일로 그러시죠?”
순간 임우한은 뻘쭘한 얼굴로 미소녀를 보았다.
제대로 말을 섞어 보기도 전에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나기에는 소녀의 미모가 너무 뛰어났다.
“아,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오. 나는 정주 중원상방의 사람이고, 내 일행은 형양현 현령의 아드님이시오.”
“그런데요?”
“이것도 인연인데 소저들과 술이라도 한잔 나눌까 하여…….”
“싫어요. 돌아가세요.”
월아의 단호한 거절에 임우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때 임우한을 따라온 호위중에 하나가 끼어들었다.
“우리 공자님들의 초대에 감사한 마음으로 응하는 게 좋을 거요.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은데, 우리 공자님들의 말 한마디에 소저들은 물론, 소저들의 집안까지도…….”
그러자 이번에는 금아가 직설적으로 말했다.
“꺼지세요.”
순간 호위, 상소엽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막 발작하려는 그를 임우한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어허.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하지는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좋은 일로 왔는데 화를 내면 쓰나. 그리고 너. 권주를 마다하고 굳이 벌주를 마셔야 겠느냐?”
임우한도 은근 짜증이 났는지 말을 놓았다.
그러나 금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자존심 상한 임우한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녀에게 손을 뻗었다.
금아가 그런 임우한의 손을 강하게 쳐 낸 후 소리쳤다.
“마지막 경고예요. 후회할 짓 하지 말아요!”
임우한은 계속된 소녀의 거절에 눈이 돌아갔다.
“안 되겠구나. 너희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나와 석 공자님이 술을 따르라면 따라야 하는 게 너희의……. 악!”
말하던 임우한의 얼굴이 반대편으로 홱 돌아갔다.
기녀 취급에 화가 난 금아가 전광석화처럼 그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임 공자!”
“공자님!”
임우한의 호위들이 우르르 몰려와 지안과 월아, 금아를 둘러쌌다.
월아와 금아가 호위하듯 지안의 좌우편으로 갈라섰다.
겨우 정신을 차린 임우한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저년을 끌고 와!”
호위들 중에 몇이 월아와 금아를 향해 걸음을 떼어 놓았다.
일촉즉발의 순간, 선수에 있던 연적하가 월아와 금아에게 전음을 날렸다.
―지안을 데리고 들어가라.
곧이어 그는 유령처럼 임우한의 옆에 나타났다.
그리고 다짜고짜 임우한을 밟기 시작했다.
“윽! 누구냐! 악! 악!”
깜짝 놀란 호위들이 연적하에게 몰려들었다.
그사이 월아와 금아는 지안을 데리고 선실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호위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연적하가 호위들을 잡는 족족 황하에 던진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명의 호위가 황하로 날아갔다.
그제야 위기를 느낀 나머지 두 명의 호위는 도검을 뽑아 들었다.
채채챙―.
이윽고 호위대의 우두머리인 이두호가 소리쳤다.
“당신은 누구기에 이리도 악독하게 손을 쓰는 거요!”
황하 한가운데 호위들을 던졌으니 살아서 나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나 연적하는 답하지 않고 임우한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 서슬 퍼런 기세에 놀란 이두호가 황급히 말했다.
“그분은 중원상방 임해수 대행수님의 장자요! 당장 그분을 내려놓지 않으면 귀하는……. 아, 안 돼!”
이두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연적하가 임우한마저 황하에 집어 던졌기 때문이다.
두 명의 호위가 뱃전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흙탕물에 던져진 임우한은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던 이두호가 연적하를 향해 돌아섰다.
“너는 누구냐! 중원상방 대행수님의 장자를 죽이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그러나 연적하는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 석은평이 있었다.
석은평은 괴청년이 자신을 노려보자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왜, 왜? 내가 뭘 어쨌다고?”
뒤늦게 석은평의 다섯 호위들 중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이분은 형양현 현령 석강월 대인의 아드님이시다. 우리는 이번 일에 관여하지 않겠으니, 일을 더 키우지 마라.”
연적하가 석은평을 지그시 응시했다.
주색에 물든 몰골을 보니 평소 어떻게 살았는지 알 것도 같다.
끼리끼리 논다고, 조금전 ‘너희에게는 선택권이 없다’고 씨불이던 놈과 같을 것이다.
대행수와 현령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던가?
그래 봐야 장사꾼과 관리 주제에 하는 짓은 황제 저리 가라다.
연적하는 무심한 얼굴로 성큼성큼 석은평에게 걸어갔다.
석은평의 호위들이 도검을 휘두르며 막아섰다.
연적하는 밭에서 무를 뽑듯 호위들을 잡아 황하에 던졌다.
그는 귀찮은 듯 애써 칼날을 피하지도 않았다.
퍽― 퍽―!
어쩌다 눈먼 칼이 그의 몸에 박혔지만 기이한 소리와 함께 튕겼다.
호신강기지만 호위들의 일천(日淺)한 안목은 그걸 알아보지 못했다.
네 명의 호위가 줄줄이 황하에 던져졌다.
혼자 남은 호위는 감히 덤비지 못하고 비칠비칠 뒤로 물러났다.
마침내 연적하가 석은평과 마주 섰다.
석은평이 떨리는 음성으로 애원했다.
“사, 살려 주시오. 살려만 준다면 무엇이든 하리다. 내 부친이 형양현 현령이오. 부친에게 말하면……. 캑! 살려 주시오! 사람 살려!”
석은평은 멱살이 잡혀 들어 올려지자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하지만 연적하는 무심한 얼굴로 그를 강 한복판에 던졌다.
황하의 탁류가 석은평을 집어삼켰다.
갑판 위로 기이한 침묵이 흘렀다.
살아남은 세 명의 호위를 쓸어보던 연적하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강 저 멀리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