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 Agent Reincarnated as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소우주
“아, 주형아.”
“우리 동기인데 막상 학교에서 보는 건 처음이네. 하하.”
김주형의 말에 연우가 웃었다.
“그렇네, 그런데 나인 걸 어떻게 알았어?”
캡모자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다가와서 어깨동무를 하는 김주형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너 모르는구나?”
“응?”
“모자랑 마스크 쓴다고 아우라가 없어지진 않아. 백 미터 밖에서 봐도 배우라고 말하는 자기주장 강력한 기럭지와 비율.”
그리고 김주형이 뒤쪽을 턱으로 가리키자 저 멀리서 연우를 보며 긴가민가해서 수군거리는 학생들이 보였다.
“아, 그래···?”
비록 완벽한 변장은 아니었지만, 캠퍼스 내에서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정체를 아는 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나보다.
“그나저나 포스터 붙었구나 「대학연극제」.”
“응, 나는 처음 듣는데 원래 저런 걸 했었나?”
“그래도 전통이 십 년은 됐을걸?”
김주형의 말에 연우가 끄덕였다.
생긴 지 겨우 십 년밖에 안 됐다면 캠퍼스 생활을 마친 지 20년도 더 된 연우가 모르는 게 당연했다.
“나도 참여할 생각이야. 예선부터 통과해야겠지만.”
“응?”
김주형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이야기에 연우가 되물었다.
그러자 부끄러운 듯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말을 잇는 김주형.
“그 왜, 있잖아. 작년에 유한이 도시락 배달 갔던 날. 그때 너네 둘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걸 보고 불타올랐거든.”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데얀도르」의 연습 무대에 섰던 일을 떠올리며 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연기로?”
김주형이 연기를 좋아하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직접 연기를 하는 모습은 상상이 잘 안 됐기에 고개를 갸웃하는 연우.
그걸 보고 김주형이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니아니, 내가 연기하는 건 아니고. 음···, 사실 글을 좀 써보고 있어. 시나리오 말이야.”
연우는 김주형의 말을 듣고 「화이트 블러드」의 시나리오를 영감을 받아 회의실에서 몰두해 쓰던 김진주 작가를 떠올렸다.
“주형이 네가 그런 재주가 있었구나.”
“에이, 재주까진 아니고 그냥 한번 해본 거지.”
“그럼 어디 카페라도 가서 이야기할까?”
“너 안 바빠?”
김주형의 질문에 연우가 빙그레 웃었다.
“바쁠 일 없지. 영화도 끝났고, 이제 복학준비 해야 하는데 마침 만났으니까 너한테 배워야겠다.”
인터넷으로 수강 신청을 하는 방법이라든가, 익숙한 교정이지만 교육과정이 워낙 바뀌고 시대가 바뀌었다 보니 모르는 것투성이일 것이다.
김주형과 경상관 옆에 위치한 교내 카페에 앉은 연우.
“혹시 시나리오 가지고 있어? 은근히 궁금한데.”
“아, 보여주기 부끄러운데. 연극동아리 선배들은 완전 별로라고 했거든.”
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교내에 연극동아리도 있구나?”
“응, 다들 취미로 하는 수준이지만 생각보다 규율이 빡빡해.”
김주형이 머뭇거리면서 메고 있던 가방에서 제본된 시나리오를 꺼냈다.
“오, 제본도 했네?”
“선배들한테 보여주려고 했지. 대차게 까였지만 말야.”
뒷머리를 긁적이며 연우에게 시나리오를 넘겨주는 김주형.
의기소침해 있는 모습을 보니 어지간히 혹평을 받았나 보다.
연우가 시나리오를 읽어봤다.
“··재미는 없겠지만 장르는 추리, 미스터리야.”
덧붙이는 김주형의 말에 연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읽고 나서 고개를 드는 연우.
“···좋은데?”
“에이,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맙다.”
빈말이 아니었다.
시나리오는 꽤나 탄탄했고, 읽는 것만으로도 무대의 구성이 그려졌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너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주형아.”
“어? 진짜? 그럴 리가 없는데···? 다들 별로라고 했거든.”
진지한 표정의 연우를 보고 김주형도 덩달아 진지해졌다.
“혹시 빈 강의실 문 열려있나?”
“빈 강의실? 아직 개강은 안 했지만 경상관 강의실은 다 열려있을걸?”
김주형의 말을 들은 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자. 내가 보여줄게.”
“응? 보여준다니 뭘?”
의기소침해 있는 천재에게 자신의 작품이 충분히 빛나는 글이라는 걸 보여줄 요량이었다.
앞장서는 연우의 뒤를 고개를 갸웃하며 따라가는 김주형.
“이 뒷길은 어떻게 알았데.”
카페에서 경상관으로 가는 지름길을 자연스럽게 성큼성큼 걸어가는 연우를 졸졸 따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서 연우가 강단이 제법 높은 203호 강의실의 문을 열었다.
“여기면 적절하겠는데?”
“음? 뭐가?”
“네 작품 말이야. 한 부분이지만 내가 연기해볼게.”
연우의 말에 김주형의 눈이 커졌다.
“헐, 진짜로?!”
그런 김주형을 보고 연우가 씨익 웃으며 강단으로 올라갔다.
“김주형 작가님, 이 앞에 앉아봐.”
“오우, 대박!”
들뜬 마음으로 신이 나서 강의실의 앞자리에 앉는 김주형.
연우가 시나리오를 읽다가 뭔가를 구상하는지 손을 몇 번 휘젓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한 장면을 연기해볼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기대 중인 김주형 앞에서 연우가 무대 연기를 시작했다.
순식간에 싸늘한 표정으로 바뀐 연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사람들은 말이야, 저마다 색(色)을 가지고 태어나. 열정이 넘치는 붉은색도 있다면 반대로 시니컬한 파란색도 있지.”
그리고 연우가 두 팔을 가볍게 벌렸다.
그리고 소름 끼치게 뚝뚝 끊기는 음절을 이어서 말하는 것 같은 말투가 들렸다.
“네 눈에는 내가 무슨 색깔로 보이니? 나 같은 인간은 좀 특이하단 말이야. 나는 검은색이야.”
찌푸렸던 눈가도 소름 돋게 올라갔던 입꼬리도 어느새 원위치 되어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으로 변했다.
목소리와 얼굴 표정이 자유자재로 바뀌는 연우를 보면서 김주형은 팔에 우수수 소름이 돋았다.
“검은색인 사람들은 좀 특이해. 자신이 검은색인 걸 감추려는 본능이 있거든. 끊임없이 자신이 회색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찾지.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몇 명 모이기 시작하면 골치 아파져.”
연우의 표정이 감정이 느껴지지 않던 무표정에서 순식간에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너무 환하게 웃으면 광기가 느껴져서 무서워진다.
지금 연우의 표정이 딱 그랬다.
“검은색과 회색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지들이 흰색이라고 우기기 시작하거든. 지금의 너처럼 말이야. 그래서 난 지금 너무 기뻐. 새카만 암 덩어리를 찾았으니 말이야.”
무대 위의 류연우에게 무언가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넘실거리는 듯했다.
그리곤 연우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으아.”
자신이 쓴 대본임에도 순간 김주형은 무대 위에서 느껴지는 날것 그대로의 광기에 심장이 쫄깃했다.
어느샌가 평소의 모습대로 돌아온 연우의 얼굴.
“어때? 이게 네가 쓴 대본이야.”
분명 맞았다.
대사 한 줄 한 줄, 묘사한 표정 모두 자신이 쓴 대본이 맞았다.
“어어, 그러게.”
김주형은 순간 깨달았다.
시나리오라는 건 누가 연기하냐에 따라 석탄이 될 수도 다이아몬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탄소 덩어리는 어떤 환경에서 어떠한 영향을 받았냐에 따라 석탄이 될 수도 있고 다이아몬드가 될 수도 있다.
눈앞에 있는 배우 ‘류연우’라는 사람은 분명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내가 극작가가 된다면 이런 경험을 늘 할 수 있는 건가···?’
자신이 적은 활자 조합물이 생동감 있게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연우야, 나는 네가 찍은 영화나 드라마도 전부 재밌게 봤는데 꼭 연극을 한번 했으면 좋겠다.”
친구 이전에 팬으로서 하는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직접 살아 숨 쉬는 연기를 마주했을 때 오는 압도감이 있다.
김주형의 말을 들은 연우가 미소 지었다.
전생부터 연극의 오랜 팬인 연우다.
“그럼 하면 되겠다. 네 작품 좋은데? 이걸로 하자.”
“그래 꼭···, 응?”
고개를 끄덕이며 연우의 연극 활동을 기대하던 김주형이 무언가 이상한 말을 감지하고 눈을 크게 떴다.
“에에엑?!”
연우가 피식 웃었다.
지나가는 말로 던진 건 아니다.
자신이 보기에도 이 작품은 확실히 가치가 있었다.
“이번 학기 동안 기틀을 잡고, 내가 촬영이 예정되어 있는 시리즈가 있는데 그 촬영이 끝나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연극을 올려보자.”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이야기였다.
연우는 머릿속으로 연기 스승 정철민을 떠올렸다.
대전에 그가 운영하는 소극장도 있고, 서울에서 공연을 올려야 한다면 연결할 수 있는 인프라도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
학원 소속의 배우들과 강사들도 있었고, 그런 부분은 이제 자신의 이름값이 높아졌으니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충분히 해결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아마추어인 김주형은 자신이 끄적거려본 시나리오가 급진행되는 느낌이 들자 템포를 따라잡지 못해 얼떨떨했다.
“그, 그러니까 정말로 이걸 공연하자구···? 에이, 장난치지 마.”
“이 시나리오는 공연할 생각까진 없었어?”
“응? 아니, 그건 아닌데···.”
물론 모든 연극 시나리오는 실제 공연을 목적으로 쓰인다.
김주형도 자신이 만든 시나리오가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될까 내심 너무 궁금했다.
“그동안 조금 더 다듬어봐. 우리끼리 한번 재밌게 연극 올려보자.”
미소 지으며 제본된 시나리오를 건네주는 연우의 모습을 보고 김주형이 불타올랐다.
“으어어! 이번 학기 학점과 맞바꿔서라도 내 혼을 갈아 넣어서 완성시킬게!”
“···어? 공부는 해야지.”
자신의 생각보다도 더 불타오르는 김주형을 보고 연우가 땀을 삐질 흘렸다.
***
연우가 대학 생활을 시작한 지도 두 달가량 흘렀다.
아무래도 학기 중엔 학업에 매진한다지만,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 있는데 고등학교 때처럼 상위권의 성적을 내는 건 무리였다.
“형, 그래도 중간중간 스케줄도 가는데 어떻게 진도를 다 따라와요?”
수업이 끝나자 연우의 자리 주변에 모여든 1학년 학생들.
재수나 삼수를 통해 들어온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 연우보다 한살 어린 현역들이다.
“난 그것보다 김태경 교수님이 연우 오빠를 좋아하는 게 더 신기해.”
“에이, 이렇게 유명한 배우인데, 아무리 성격 안 좋은 김 교수님이라도 별수 있나.”
그 말을 들은 유수진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선배들한테 들었는데, 오빠가 입학했을 때부터 그렇게 안 좋은 소리를 하셨었다던데? 심지어 수업시간에도.”
“그래? 형도 알고 있었어요?”
연우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마음씨 따뜻한 좋은 분이셔. 혹시 밴드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먼저 말 걸어봐. 락밴드 좋아하시거든.”
“엥? 락밴드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실 것 같은 이미지인데.”
연우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자 주변에 있던 후배들도 따라 일어났다.
“선배, 혹시 점심 약속 있으세요?”
“야, 속 보인다. 너 연우 형이랑 점심 먹으면 우리 학교 애니타임에 꼬리치는 불여우라고 사진 찍혀서 바로 글 올라올걸.”
“뭐어, 그러면 다 같이 먹으면 되잖아.”
왁자지껄 떠들면서 강의실을 나오는데 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김민수 매니저가 다가왔다.
“배우님.”
“아, 민수 형. 얘들아 점심은 다음에 먹어야겠다.”
“히잉, 네에.”
후배들과 인사를 하고 민수에게 다가갔다.
“민수 형 무슨 일이에요? 오늘 스케줄이 있었나요?”
“스케줄은 아니고, 세트장이 완공됐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드디어 완공이네요.”
연우의 눈이 빛났다.
차기작 「화이트 블러드」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자마자 곧바로 착공했던 세트장이다.
시나리오를 보고 연우가 상상했던 대로 구현이 됐을지 궁금했다.
“감독님들이랑 작가님은요?”
“한 시간 전에 출발했으니까 아마 곧 도착하실 겁니다.”
“그럼 저희도 서둘러 가보죠.”
경상관 앞에 주차되어 있는 민수의 차에 연우가 올라탔다.
그리고 차는 파주에 제작된 소우주(Microcosm)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