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 Agent Reincarnated as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598)
598화. 인턴
새별 회의에 참석한 뒤로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악당을 위한 클래식」의 촬영이 공식적으로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지막 촬영을 마친 배우들과 스탭들이 밝은 얼굴로 주변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연우도 마지막까지 필드모니터를 바라보며 마지막 씬을 검토하고 있는 리케 감독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할리우드가 아닌 곳에서 촬영한 영화로는 첫 작품이잖아요. 어떠신가요.”
“허허, 한국에서 「테세우스」도 촬영했지 않은가. 영화나 드라마나 나에겐 별 다를 바 없지.”
리케 감독은 그리 대답하면서도 상기된 표정으로 보아 영화 촬영을 마친 것에 꽤나 후련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시원섭섭한 마음을 느끼는 모양새였다.
그런 리케 감독의 표정을 읽곤 연우가 슬쩍 미끼를 던졌다.
“오늘 같은 날엔 술이 빠질 수 없겠죠?”
그러자 리케 감독이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인은 단순히 비가 온다는 이유만으로도 단체로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 아닌가. 당연히 술로 마무리를 해야겠지.”
그 말에 연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눈치를 보고 있는 진유한을 찾아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피는 것을 보니 역시나 이어질 회식 자리에서 몰래 도망가려고 타이밍을 재는 듯했다.
그리고 물론 그러한 전장의 탈영병을 놓칠 연우가 아니었다.
“감독님. 저기 유한이도 있네요. 이번 작품에 유한이도 참 고생 많이 했죠. 오늘은 감독님이 특별하게 직접 격려를 좀 해주셔야겠는데요.”
연우가 진유한을 가리키자 그 말이 맞다는 듯 리케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자네 말이 맞지. 오늘 회식 자리에선 진 배우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야겠구만. 헤이, 유한! 이리 와보게나!”
인파 속에 슬쩍 몸을 숨기려던 진유한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유한은 리케 감독의 옆에서 순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연우를 발견하곤 금세 사건의 전말을 모두 파악했지만 리케 감독이 자신을 부르는데 딱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류연우 이 자식이···.”
물론 평소 진유한이 연우를 꼰대라고 부른 것에 대한 복수는 아니었다.
뭐 아무튼 아니었다.
***
회식이 끝난 다음 날 연우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흐암, 오늘은 그래도 아침이 꽤 편안한데.”
버나드 못지않은 리케 감독의 주량을 어제 회식 내내 감당해 낸 이는 연우가 아니라 진유한이었으니 꽤나 상쾌한 아침을 맞았다.
리케 감독이 첫 방한을 했던 때부터 떨려서 말도 못 걸 정도로 리케 감독을 우상으로 생각했던 진유한이다.
어제 그 우상과 진하게 술의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제법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스트레칭하며 가벼운 운동으로 숙취를 해소한 연우는 샤워를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음, 이제 영화 후반 작업을 하는 기간이 두 달 정도 필요할 테지. 일정을 빠듯하게 잡았으니까 적어도 다음 달부터는 LA로 건너가서 이번 영화 홍보 활동이랑 할리우드에 새별 미국 지부의 자리를 잡기 위한 준비를 마쳐야겠어.’
지금도 새별의 로스앤젤레스 지부는 존재하긴 하지만, 미국에서 들어오는 극소수의 캐스팅 제의와 가끔 있는 할리우드 출장 업무를 보조하는 정도였다.
지부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규모로, 상주하는 직원은 겨우 둘뿐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지. 규모만 확장시키지 않았을 뿐 준비는 오랫동안 다 해뒀으니까.’
이번 「글로벌 매치Ⅱ」의 성공으로 받은 배당금도 상당했고, 그간 테렌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미국에 확보해 놓은 자본 또한 꽤나 많은 양이었다.
액수로 비교하자면 한국의 새별 본사와도 견줄 수 있을 정도.
‘언제나 문제는 사람인데···.’
초반 기틀은 윤미연 이사가 직접 건너가 잡을 테지만 믿음직스럽고 뛰어난 인물을 찾기가 어려웠다.
물론 새별 본사에서도 기존 직원들을 대상으로 지원을 받으면 LA에서 근무하고 싶은 직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직원들은 다 각자의 역할이 있기에 함부로 여러 명을 차출해서 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흐음, 차차 알아봐야겠네.”
샤워를 하고 나온 연우는 가벼운 외출복으로 갈아입곤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오늘은 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이다.
딱히 약속을 잡은 건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진유한이든 연우든 작품을 마치고 나면 자축하는 의미에서 그다음 날 아지트라고 할 수 있는 혜화동 새별극단의 2층 사무실로 모여드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친구들과 함께했던 연극들은 물론이고 진유한이 주연을 맡았던 뮤지컬 「데얀도르」의 마지막 공연을 마쳤을 때도, 영화 「달」의 크랭크업 때도 다음 날이면 늘 친구들과 모이곤 했다.
‘그러고 보니 「글로벌 매치」 촬영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도 모였었지. 전역 기념이기도 했고···.’
어차피 오늘 새별 사옥 카페도 설비 보수 때문에 쉬는 날이니 적어도 김주형은 이미 와 있을 테고 진유한은 어제의 여파로 좀 늦게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함께 영화를 촬영한 유한이는 물론이고 주형이는 회사에서도 자주 마주치는 것에 비해 준수와 성식이는 얼굴을 본 지 꽤나 오래됐다.
‘메신저로는 자주 대화하지만 요즘 뮤지컬부터 시작해서 연달아 촬영하고 외국도 자주 나가느라···.’
연우는 직접 차를 몰고 혜화동으로 향했다.
***
새별극단 건물 인근에 차를 주차하고 한산한 골목길을 걸어가 2층으로 향하는 좁은 계단에 서니 위에서 제법 시끌시끌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역시나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모두들 모인 듯했다.
연우가 피식 웃으며 계단을 올라 사무실 문을 여니 김준수와 우성식은 노트북으로 웃긴 고양이 모음 영상을 보며 낄낄대고 있었고 진유한은 덜 마른 빨래처럼 축 처져서 소파에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던 김주형이 연우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오, 왔어?”
그러자 나머지 세 사람도 연우를 발견하곤 인사를 건넸다.
“여.”
“여어.”
역시나 남자들끼리의 대화라 몇 개월 만에 보는 것임에도 마치 어제도 본 것처럼 손을 들며 정체 모를 의성어를 내뱉는 게 전부였다.
자리에 앉아서 간단히 요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연우는 친구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흐뭇하게 웃으며 지켜봤다.
아무래도 같은 나이대의 남자들이다 보니 관심사를 옮겨가며 여러 대화가 나왔다.
요즘 핫한 걸그룹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온라인 게임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물론 연우는 그 이야기에 끼어들긴 어려웠다.
마찬가지로 옆자리에서 듣고만 있는 진유한을 보곤 연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사실 전생을 합쳐서 아저씨라지만 진유한은 저 또래이지 않던가.
“너는 왜 저 대화에 안 끼어들어?”
“하아, 걸그룹은 무슨···. 나는 지금 숙취 때문에 박중현 팀장님이 더 간절하다. 혹시 지금 어디서 뭐 하시는지 아냐.”
“박 팀장님?”
그 말에 연우가 볼을 긁적였다.
아마 지금쯤 미국으로 망명한 전 국정원 차장 천혁주와 휘하 요원들에게 영국과 관련한 조사를 위해 여러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리 말할 수는 없으니 함축적으로 뜻을 전달했다.
“음, 박 팀장님 많이 바빠.”
“으아아앙.”
그 이야기에 진유한은 다시 빨래처럼 축 늘어졌다.
시선을 돌린 연우는 한창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김주형과 우성식 그리고 김준수를 바라봤다.
“야, 너는 어떻냐?”
“음, 나도 코스모스. 졸예 생각도 좀 있고···.”
그러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연우를 발견한 김준수가 우성식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렇게 말하면 얘는 하나도 못 알아들을걸. 웬만하면 줄임말은 쓰지 마.”
김준수의 말에 연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줄임말이 아니어도 애초에 걸그룹이든 게임이든 여태까지 전부 못 알아듣고 있긴 했다.
“뭐 코스모스는 새로운 걸그룹이냐. 졸예는···. 그거잖아. 졸라 예쁘다? 그 정도는 나도 알지.”
그러자 김준수와 우성식이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졸업 예정. 군대 갔다가 복학하면서 역학기가 되어버려서 코스모스 졸업인데 그렇다고 진로를 딱 정한 게 아니니까 졸업 유예할까 생각 중이라고.”
그 말에 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요즘 것들은···.”
그리곤 조용히 스마트폰을 들어 메모장을 켰다.
연우는 새롭게 알게 된 단어를 적으며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느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놓은 게 있어?”
그러자 김준수와 우성식이 우물쭈물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솔직히 극단에서 공연도 몇 번 해보니까 이런 쪽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막연히 들긴 하는데···.”
“나도.”
그 말에 연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
“이쪽 일을 하고 싶다는 건 정확히 말해서 어떤 걸 말하는 거야? 연극 배우?”
그 말에 김준수와 우성식이 손사래를 쳤다.
“에헤이, 우리도 거울을 본다고. 가끔 연극을 한 건 취미 수준이지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지.”
“그냥 막연하게 엔터 쪽 관련 일을 하면 어떨까 생각은 해봤는데 우리가 이쪽 전공은 아니니까.”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연우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차라리 새별에서 일을 해보는 건 어때?”
“엉?”
한 차례 되물은 우성식이 단호한 얼굴로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막 낙하산 그런 거 아니야? 절대 안 돼. 나는 싫다.”
그러자 김준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드라마에서처럼 막 힘 있는 사람이 꽂아주고 이런 건 다 부정한 행위라 싫다!”
두 사람의 반응을 보고 연우가 피식 웃었다.
“거 참 상상력도 풍부하네. 낙하산은 무슨. 내가 새별의 대표도 아니고 일개 소속 배우일 뿐인데 뭘 꽂아 넣어. 너네들 명문 연하대 졸업생이잖아.”
“으응? 졸업예정자이긴 한데···.”
그 말에 어깨를 으쓱한 연우가 다시 물었다.
“학점도 좋지?”
“뭐 그럭저럭 나쁘진 않지···?”
그 대답에 연우가 일부러 영어로 물었다.
“둘 다 영어도 되고 취업 스펙도 잘 쌓았지?”
“엄···. 그래도 취업 준비는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까···?”
원어민처럼 유창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발음으로 대답을 하는 우성식을 보며 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식으로 새별에 인턴 지원부터 해봐. 당당히 뽑히면 되잖아? 나는 아무런 터치도 안 할 거니까. 애초에 회사 인사는 내가 관여할 부분도 아니고.”
물론 거짓이긴 했다.
누구보다 확실하게 뒷조사를 통해 탈탈 털어서 사돈의 팔촌까지 확인하는 게 연우니까.
다만, 두 사람이 평소에 바보 같은 행동을 많이 해서 그렇지 명문대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대학 생활을 보낸 A급 취업준비생임은 틀림없었다.
머리를 긁적인 연우가 덧붙였다.
“아, 그리고 너네 혹시 미국 좋아해?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라스베이거스. 멋지지 않아? 어마어마한 연극이나 공연도 매일 열리는데.”
연우는 눈앞에 있는 두 친구가 사실 누구보다 믿을 만한 사람이니 잘만 가르치면 금세 밥값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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