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 Agent Reincarnated as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605)
국정원 요원 천재배우로 환생 605화(605/605)
605화. 에메랄드 그로브 영화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아시아인 여성의 목소리에 해리슨이 고개를 돌렸다.
“음, 반갑군요. 미연 윤.”
자신의 한국어 이름을 제법 또박또박 발음하며 손을 내미는 맥스웰 해리슨의 모습에 윤미연 이사의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런 거물을 만날 기회는커녕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으리라곤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지금껏 류연우 배우와 함께 일한 이후로 까무러칠 정도로 놀랄 만한 일이 한둘이었던가.
이제는 어느 정도 면역(?)이 생겨버린지도 몰랐다.
서둘러 정신을 차린 윤미연 이사가 해리슨의 손을 맞잡곤 악수했다.
“바, 반갑습니다. 미스터 해리슨. 그간 명성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러자 해리슨이 껄껄 웃으며 소파를 가리켰다.
“자, 앉아서 이야기 나눕시다. 그나저나 내가 직접 계약을 체결하러 나와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구만. 아마 10년도 더 된 듯하단 말이지.”
맥스웰 해리슨은 블루라인 픽쳐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회사 규모가 세계적인 규모로 커진 뒤로는 이런 실무들을 직접 맡을 필요가 없었기에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는 자리에 직접 나와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러고 보니 연우 자네도 제작 책임자이면서 동시에 주연 배우이니 생각해 보면 오늘 이 자리가 제법 별난 자리로구만.”
해리슨의 말에 연우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국내의 경우만 하더라도 계약 대부분을 실무자인 공민정 팀장과 에이픽쳐스의 탁정아 전무가 유선 및 전산상으로 조율을 마쳤다.
반면에 미국 시장의 공급 계약은 무려 블루라인 픽쳐스의 CEO가 직접 나서고 미팅 자리에 주연 배우까지 참석했으니 결코 평범한 조합은 아니긴 했다.
맥스웰 해리슨은 어제 술자리에서 나눴던 연우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 이번 영화 말인데요. 미스터 해리슨께서 직접 맡아서 해주실 거죠?
– 음? 내가 말인가? 우리 회사에도 유능한 실무진이 많네만?
연우는 해리슨의 말에 가볍게 미소 지었다.
– 에이, 그거야 당연히 알죠. 제가 지구 반대편 작은 나라에서 왔다지만 블루라인 픽쳐스가 얼마나 커다랗고 대단한 회사인지는 아는걸요.
커다랗고 대단하다는 묘사에 입꼬리를 씰룩인 해리슨이 다시 입을 열었다.
– 흐음, 나는 그런 실무에서는 손을 뗀 지 오래라 말이야. 정말로 나보다 훨씬 젊고 더 유능한 이들이 많은데···?
그 말에 연우가 고개를 저었다.
– 아무래도 저는 외국인이기도 하고 미국 시장에 처음 진출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니까 가능하다면 저에겐 대부와 마찬가지인 해리슨 씨가 직접 맡아서 해주셨으면 해서 여쭤봤어요.
대부라는 이야기에 턱을 쓰다듬던 해리슨이 왠지 기분이 좋으면서도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 허허, 내가 자네에게 대부라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이나 도움을 줬었던가?
– 물론이죠. 지난번에 해리슨 씨 덕분에 제 연기 인생 중 처음으로 뮤지컬을 시작했거든요. 평생 뮤지컬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해리슨 씨가 도와주셔서 매력 있는 세계를 새로 발견한 기분이었어요.
보통은 은혜를 입었으면 그에 대한 보답을 주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겠지만, 눈앞의 젊은 청년 류연우의 화법은 달랐다.
지난번에 도움을 주었으니 당신은 내 대부가 아닌가? 대부이니 이번에도 도움을 달라.
누구보다 당당한 모습에 해리슨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묘하게 설득되어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라고 여겼다.
‘하긴, 이 친구 입장에서 할리우드란 생전 처음 겪어보는 지구 반대편의 별천지나 다름없지 않나. 여기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나 마찬가지인 친구가 믿을 수 있는 건 나뿐이겠지. 담당자가 누구든 결국 우리 회사랑 공급 계약을 맺기로 한 거니까. 그리고 리케 감독의 명성이면 어차피 어떤 회사도 마다하지 않을 터.’
곰곰이 생각하던 해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이거 오랜만에 직접 활동하는 것도 나름 재밌겠구만. 그렇다면 내가 자네 영화의 담당자가 되어서 한번 진행해 보지.
– 앗, 정말요? 감사합니다. 가난한 제가 해리슨 씨께 드릴 건 없고 제 첫 번째 영화 티켓을 드릴게요.
연우에게 가난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리는 없지만 원래 가난은 상대적인 것이니 맥스웰 해리슨과 비교하자면 틀린 표현은 아니었다.
내용은 많이 다르긴 했지만 분위기만은 마치 명절에 손주가 용돈을 받고 할아버지께 어깨 주물러드리기 쿠폰이라도 드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
잠시 어제 술자리를 떠올리던 해리슨은 기획서를 읽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한 요약을 보고도 연우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블루라인 픽쳐스를 세계적인 배급사로 끌어 올린 이가 바로 맥스웰 해리슨인데 아무리 실무를 십여 년째 하지 않았다지만 그 감각과 실력은 결코 녹슬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흐음, 그러니까 자네 말은 LA 내의 극장 한두 곳에서만 상영을 미리 시작하고 본격적인 일정은 내년으로 미루겠다는 말이지?”
해리슨의 말에 연우가 곧바로 답했다.
“네. 어차피 반전 요소가 있는 영화는 아니니까 개봉 시기가 서로 달라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저희에게 미국 시장만큼이나 중요한 한국 시장은 1월 말이 주요 마케팅 포인트거든요.”
“루나 뉴 이어스 데이(Lunar new year’s day) 연휴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지.”
설 명절의 미국식 표현에 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연우와 기획서를 번갈아 바라보던 해리슨이 씨익 웃었다.
“하지만 오로지 그것 때문만은 아닐 텐데? 이거 자네의 자신감이 느껴지는 듯하구만.”
그 말에 연우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역시 해리슨 씨라면 곧바로 제 의도를 알아보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연히 이번 홀리데이 시즌에 중국 자본과 인도 자본이 집중된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양력으로 크리스마스쯤부터 새해에 이르기까지 연휴 간 수많은 영화들이 극장 경쟁을 벌인다.
극장들도 그때는 아주 빡빡한 개봉 수익을 크게 올리곤 1월 말의 스케줄은 조금 더 느슨하게 여유를 두고 준비한다.
그 이유는 바로 아카데미 때문이다.
“내년 1월 말은 한국에서 명절이자 연휴이겠지만, 미국 영화계에선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된 작품들을 발표하는 시기지.”
해리슨의 말에 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 만 명 안팎의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 : AMPAS) 회원들이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할 후보작들을 선정하는데 보통 1월 말에 LA 베벌리힐즈에 위치한 사무엘 골드윈 극장에서 최종 발표를 하게 된다.
어떤 작품이 노미네이트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극장가는 연말에 충분한 돈을 벌었으니 여유를 두고 상영관 스케줄을 느슨하게 운영하는 것.
1월 말에 주력하겠다는 뜻은 곧 이번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될 자신이 있다는 뜻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한편, 마치 핑퐁 게임을 하듯 순식간에 오가는 대화에 우성식을 포함한 새별 직원들은 각자 눈알만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뭐, 뭐라는 거야? 우리가 그런 계획이 있었어···? 그냥 가족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니까 우리나라 설 명절 시즌에 집중하자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와, 연우 녀석 영어 겁나 잘하네. 리스닝 연습 좀 더 해야겠다.’
***
그렇게 시간이 흘러 12월 말이 다가왔다.
한국 시장에선 소문만 무성한 영화 「악당을 위한 클래식」이 드디어 최종 예고편과 함께 개봉 일자를 발표했다.
– 1월 17일????? 아직 한 달이나 남았어 안 돼애애애앵
– 후후 얼마나 나를 만족시키려고 이렇게 계속 나를 기다리게 만드는 거지? 흑화한다
└ 나도 흐콰한다앗
– 리케 감독 + 류연우 + 휴머니즘 이거 어케 참냐?? 벌써부터 심장 떨린다
– 최종 예고편이 나왔다는 소식에 츄르 까는 소리 들은 우리집 냥이처럼 뛰어왔습니다
수많은 팬들은 아직도 한 달이나 남았음에 안타깝다는 반응과 기대된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해외팬들의 입장에선 그마저도 없었으니 부러운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해외 팬덤 중 한 곳에서 이상한 캡처가 돌기 시작했다.
– 헤이 가이즈. 이게 대체 뭐지? 영화관 사이트 오류인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내의 할리우드 버뱅크 공항보다도 한참 더 북쪽.
비교적 외곽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지역 극장 에메랄드 그로브 씨어터(Emerald Grove Theatres)는 영화의 도시인 할리우드에 위치해 있다지만 그리 주류라고는 볼 수 없는 극장이었다.
관광지랑 거리도 꽤나 멀기에 그 주변 지역의 주민들만 이용하는 로컬 극장.
해외 팬덤에서 이야기가 나온 ‘이상한 캡처’라는 것은 그 극장의 상영작 안내였다.
– 12/21(Sat) – Classical music for villains [Get tickets!]
1월 중순경은 되어야 첫 상영이 이루어질 영화의 티켓인데도 불구하고 그보다 한 달은 전인 12월 중에 상영한다는 안내와 함께 예약하라는 창이 버젓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 예약할 수 있다는 건가?
└ 개봉도 안 한 영화를 어떻게 예약해
└ 하지만 예약이 되는데? 나 지금 티켓 두 자리 예약했어
└ 정말로? 사진 올려봐
– 오? 진짜로 예약되는데? 근데 나 신시내티 거주 중인데? LOL
└ 헤이, 저긴 LA 극장이라고. 비행기 타고도 다섯 시간쯤 걸리잖아
이런 기이한 사이트에 대한 소식은 당연히 돌고 돌아 국내 커뮤니티에도 들어왔다.
– 류연우 신작 미리 보는 법.jpg [웹하드 광고 아님]
– 이게 뭐임? 미국?
└ 이 극장에서만 거의 한 달 먼저 상영하는 듯ㅋㅋㅋ
└ 이게 왜 진짜냐 ㅋㅋㅋㅋ
– 뭐냐 해외에서도 팬들 사이에선 난리라는데?
– 그냥 오류 아님? 내년 1월 21일 거를 12월 21일로 잘못 등록한 듯?
└ 현직 영화관 직원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 너 아이디에 이미 백수 겜폐인이라고 메모되어 있음
그리고 이틀이 지났는데도 영화관 측에서 오류에 대한 수정을 하지 않자 네티즌들은 점점 오류가 아니라는 의견에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론 류까들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타났다.
– [익명작성] 야ㅋㅋㅋ 니들이 그렇게 빨아재끼는 류연우도 할리우드에선 저런 취급받는 거다
두유노 류연우 같은 소리 하네ㅋㅋㅋㅋ 미국에선 아무도 모른다니까? 다 국뽕 너튜버들이 억지로 월클 만들기 해놓은 거지
현실은 구석에 있는 개쪼그만한 극장에서 겨우겨우 상영관 두 개? 저것도 빌고 빌어서 간신히 받아낸 거임ㅇㅇ
– 오옹 진짠가?
└ 진짜겠냐 화블 테세우스 그리고 글매까지 이미 미국에서 대흥행했는데
– 진심으로 하는 소리임? 말이 됨? 류연우가 아니더라도 칼 요한 리케 이름값만으로도 절대 무시 안 당함
– 아마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작 선정 때문에 몇몇 극장에서만 선개봉한 듯?
누군가는 음해와 비방을 서슴지 않았고, 누군가는 진실에 근접한 추론을 했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인터넷에서 갑론을박을 벌이는 사이 새별은 이렇다 할 입장 발표를 하지 않았다.
결국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파들도 생겨났다.
우즈 정회원이자 베를린에서 영화 「스케치」를 누구보다 먼저 보고 한국으로 특종을 전달했던 한새일보의 정유진 기자는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LA의 외곽에 있는 에메랄드 그로브 씨어터에서 류연우의 미공개 신작을 실제로 상영하든, 아니면 상영일이 다가오는데도 오류를 수정하지 않는 것이든 둘 모두 특종거리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대부분이 미국에 거주 중인 해외 우즈들이나 때마침 LA 여행 일정과 문제의 선개봉일이 겹친 몇몇 팬들이 깜짝 상영 예약에 성공했다.
그리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그저 예매율이 높은 것을 신기하게 생각해 예약한 미국인들도 몇몇 있었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발표된 개봉일보다 무려 한 달가량이나 일찍 LA 외곽에 위치한 영화관으로 수많은 이들이 몰려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