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191
2.
태웅이 내민 해약을 비격과 모금량은 주저 없이 삼켰다. 시선은 독귀자들을 놓치지 않았다. 영내의 우측에 자리 잡고 모인 그들은 맹주전에 이목을 집중하며 무림맹 무사들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오독문사람들을 볼 때는 험악한 살기를 뿌렸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위태로운 분위기다.
회군한 흑호단은 영내에 남아 있던 흑호단과 섞였다. 일견 떨어졌던 동료들이 다시 만나 반가워하는 것 같은 그 부대낌 속엔 다급하고 긴장된 전의가 흘렀다. 회군자들이 영내자들에게 은밀히 해약을 전달했다. 그 이전에 비격과 모금량이 조장들과 오장들에게 지급 명령을 내린 상태다.
지휘권과 명령권의 회복이다. 출정대는 다르지만 영내에 남아 있던 일천 흑호단은 비격과 모금량을 통해서 명세기의 명령을 받았다. 그런 상태에서 당문의 해약을 먹었다. 그게 해약인지 독약인지 모를 상태다. 당연히 명세기와 당문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 그런데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오독문이 만든 해약이다. 당문의 대부분 독과 무형지독에도 저항할 수 있는 해약이다. 그걸 지급 받아 복용했고 비격과 모금량은 지휘권을 확실히 했다. 명세기가 아닌 흑호단장 맹호 목계백의 명만이 절대권위란 것을.
해약을 복용한 일천 흑호단이 은밀히 뒤로 빠지는 동안 출정 나갔던 흑호단이 전면으로 나섰다. 등패와 요도를 잡은 그들의 위세는 일천 독귀자들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 기세에 장장 수룡들과 녹림대호들의 살기가 더해졌다. 남아있던 동료들을 잃은 걸 인지한 그들의 분노는 살벌했다.
무영사 진영은 반으로 세력이 나뉘었다. 우측엔 당문의 독귀자들이, 좌측엔 무림맹무사들이, 이제는 서로 죽고 죽여야 할 때라는 걸 인지하며 기다렸다. 맹주전에서 나올 결과다. 그때가 되면 어느 한 곳은 죽는다.
“저것들이 우릴 죽일 자신에 넘치나 본데?”
조승이 냉소 섞인 살기를 뱉어내자 하대구가 기다린 듯이 대꾸했다.
“저희 독이면 다 끝장나는 줄 아는 거지. 개자식들이.”
이어지는 조승과 하대구의 욕설을 들으며 비격은 태웅에게 물었다.
“의심하는 게 아니다만, 우리가 복용한 해약은 어느 정도나 효과가 있는 거냐?”
같은 뜻을 담은 모금량의 시선도 받으며 태웅은 대답했다.
“즉사를 면할 수준은 됩니다.”
비격과 모금량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가 수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기 때문이다. 당문의 무형지독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그 누구도 그 독에 당하면 해약없인 무사하지 못하다. 중독자의 죽음은 토혈하며 즉사하는 비교적 단순한 모습이지만, 중독되면 죽는다는 절대의 독인 것이다.
그 독에서 살아났다는 자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다. 절대극강의 내가고수가 애초에 독의 침범을 호신강기 같은 것으로 막거나 내력으로 태워버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러한 고수가 무형지독과 맞선 예가 없다. 그런 예상도 그저 짐작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당문의 독이니까.
그런데 오독문이 그 무시무시한 독에 대항할 수 있는 해약을 만들었다.
만독신약(萬毒神藥)이다.
이번 출정 도중에 만들어 냈다는 이 해약은 대부분의 독에 해독작용을 한다고 한다. 물론 당문의 독도 포함된 것이다.
실로 엄청난 일이다. 무형지독을 맞고도 즉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그 독에 대항할 수단이 또 있다.
만독신공이다.
그것을 지금 뒤로 빠진 흑호단이 구결과 운기경로를 전수받고 있다. 격전을 앞둔 마당에 황당한 짓이지만, 적과 싸움에 있어서 바늘 하나라도 더 가진다면 그만큼 유리한 것이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는 거다.
태웅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무당산 안에서 당문무리와 단장께서 격돌하셨습니다. 특별대만을 데리고 들어가셨었지요. 그들과 무당 무경진인이 이끄는 오백무사들과 격전을 치른 결과로 특별대는 절반이 희생됐습니다. 나머지 절반도 서른 명은 부상으로 운신하기 힘든 상태지만, 모두 당문의 독은 극복했습니다.”
태웅의 시선은 흑호단의 가장 전면에 선 스무 명을 응시했다. 무당산에서 목계백과 같이 살아 내려온 오십 명 중, 부상도 안 입은 스무 명이다.
“저들이 산 증거입니다. 가장 치열하게 당문의 독과 맞선 싸운 자들입니다. 오독문의 말의 의하면 무형지독에 대해선 내성이 생겼다 합니다. 그런 일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당문의 입장에선 황당하고 거짓 같은 일이겠지만, 만독신약과 만독신공의 뒷받침 덕분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비격과 모금량은 선두에 선 스무 명의 흑호단을 응시하며 눈빛을 번득였다. 자랑스럽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하며 묘한 흥분으로 설레었다.
“해볼만 하겠어.”
모금량의 작은 중얼거림 뒤로 비격은 단호한 결의를 뱉어냈다.
“저것들을 무영사에 묻어버리자.”
그 말이 흩어지던 때에 맹주전에서 폭음이 터졌다. 동시에 지붕을 부수며 그림자들이 튀어나왔다. 그걸 본 순간 태웅이 우렁찬 목소리로 명령했다.
“쳐라!”
지붕으로 솟구친 방학천은 내부에 쌓여있던 모든 것을 털어내듯 장소를 불었다. 무영사의 밤하늘을 흔드는 그 소리 아래로 그들이 솟구쳤다.
녹림신군 종패와 수룡왕 함윤이다.
그들의 검을 피해 바람처럼 흘러갔다. 휘도는 낙엽과 같이 휘돌아간 흐름은 담장 앞에 발을 디뎠다.
용화검을 뽑아든 방학천은 마주 서는 자리에 내려선 종패와 함윤을 말없이 바라봤다.
무영사 영내에선 어느새 격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무림맹무사들과 당문무사들의 함성과 살기 속에서 청광의 푸른 빛이 비상했다. 한쪽이 죽여야만 끝날 그 접전의 치열함을 옆으로 두고 말을 건넸다.
“녹림신군, 수룡왕, 너희는 선택을 잘못했다.”
다섯 자 대검을 가슴 앞에 세운 종패가 굵은 눈썹을 꿈틀했다. 왼팔이 없는 방학천처럼 자신도 왼팔을 사용할 수 없는 처지기에 묘한 기분으로 바라보던 차, 상대가 던진 한마디에 담긴 함의를 알 수가 없어서다.
“우리의 선택에 대해서 네가 말할 처지이더냐?”
반응한 종패를 고요한 시선으로, 그러나 자줏빛이 출렁이는 눈으로 응시하던 방학천은 다시 말했다.
“종패, 네가 날 버린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맞아. 나는 널 이용했지. 너와 내가 미래를 함께할 수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나는 부족한 인간이다. 지금의 날 보면 알 수 있겠지. 그러니 내게서 등 돌린 너의 선택은 잘한 거다. 하지만 맹호를 선택한 것은 어떠할까, 그것도 잘한 것일까? 지금 이런 현실을 맞은 너희의 선택, 그건 정말 현명했을까?”
종패는 강렬한 눈빛을 번득이며 대답했다.
“누구나 선택을 한다. 우리의 선택에 대한 결과는 우리의 몫, 네가 걱정할 것이 아니다.”
뒤이어 함윤이 입을 열었다. 차가운 냉소로서.
“흥. 마치 너희가 이길 것처럼 말하고 있구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우리가 무당산에서 돌아온 것은 요행이거나 패주가 아니다. 우리는 그곳에 있는 자들을 다 쳐부수고 돌아온 것이다. 너희도 마찬가지다. 우릴 기다려준 대가를 이제 처절하게 후회하도록 만들어주마.”
방학천은 엷은 미소를 입가에 물었다.
“자신감, 그것에는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부질없다. 너희가 아무리 대단한 것을 가졌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당문의 힘은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안타깝구나. 너희가 맹호를 선택한 순간 정해진 이 결과가 애석하다. 천하를 향한 너희의 웅심과 물러나 살아야 했던 시간들을 떨치고자 하는 마음,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잘못됐다. 당문은……”
“다를 것 없다.”
단호한 목소리로 방학천의 말을 자른 종패는 잠시 사이를 뒀다가 말을 이었다.
“네 말대로다. 우리는 산적 수적으로 손가락질받으며 살았다. 우리에게 모여 형제가 된 자들은 모두 세상으로부터 밀려난 자들이다. 애초부터 도적이었던 자는 하나도 없다. 세상이 그들을 도적으로 만들었다. 그냥 세끼 걱정 없이, 처자식 건사하며 사는 것만을 염원으로 삼고 살던 자들, 그런 이들을 품어내지 못하고 내친 것이 세상이다. 그 세상을 만들고 누리는 자들이 만든 신세다. 그들이 만든 세상에는 한번 내쳐지면 다시 들어갈 수가 없다. 그게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도적이 됐다.”
변화 없는 방학천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종패는 계속 이야기했다.
“우리를 도적이라고 멸시하고 천대하는 자들, 천하를 훔치는 저희의 도적질을 영웅시하며 사는 것들, 그런 것들을 깨부수고 우리의 삶을 살고자 검을 들었다. 그게 우리다. 그 결정에 힘을 주고 방향을 잡아준 것이 맹호다. 그를 선택한 것이 잘못이라고 했느냐? 그래, 잘못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걸 네가 말해서는 안 된다. 네 말대로 너는 자격이 없다.”
함윤은 바로 뜨거운 목소리를 던졌다.
“상대가 그 누구건 우리가 목숨을 건 이상 다를 게 없다!”
함윤의 외침에 호응하는 것처럼 영내의 접전 함성이 커다랗게 울려 펴졌다. 그곳으로 방학천은 시선을 돌렸다. 놀랍게도 무림맹 무사들은 당문 독귀자들의 독공에 대항하며 돌파하고 있었다. 과연 준비가 있었던 거다.
“오독문인가……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어……”
나직한 중얼거림을 흘려낸 방학천은 용화검을 앞으로 내밀어 겨눴다.
“이제 이유를 알려주마.”
용화화검으로부터 자줏빛 독강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종패와 함윤이 방학천에게 쇄도해 셋이 지붕을 뚫고 나가는 순간 목계백은 당대천을 향해 장도를 후렸다. 희뿌연 도강을 머금은 그 일도를 당대천은 놀랍게도 장력으로 받아쳤다. 자줏빛기운을 머금은 독장이 분명했다.
장도와 독장이 격돌하는 순간 장효가 달려들었다. 당대천의 측면에서 오독신장을 날렸다. 그야말로 절체절명, 피할 수 없는 공격이다. 하지만 당대천은 너무나 여유롭게 왼손으로 받아쳤다. 목계백의 공격을 받으면서다.
장효가 반탄력으로 휙 날아가듯 뒤로 밀려가고 목계백은 이격을 멈춘 채 섰다. 당대천 역시 반격을 하지 않고 자줏빛 기운만 뿌리며 서 있었다.
“천하가 당가주의 실력을 모르고 있었군.”
목계백의 차가운 시선과 음성을 마주한 당대천은 표정없는 얼굴로 대꾸했다.
“맹호란 자를 모르고 있었던 것과 다를 게 있겠나?”
자줏빛 기운을 뿌리는 당대천에게 장효가 물었다.
“네 힘의 근원은 무엇이냐?”
장효에게 시선을 돌린 당대천은 냉소를 섞어 대답했다.
“천강대류라 한다. 오독문과 같은 곳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본가의 비전이다.”
장효의 안면이 험악하게 뒤틀리는 순간 목계백이 말했다.
“본적이 있다.”
당대천의 시선은 다시 목계백에게 돌아갔고 목계백은 목소리를 이어냈다.
“무당산에서 봤지. 당대문이 그런 힘을 드러내더구나. 무경진인과 맞섰지.”
미간을 좁히는 당대천에게 목계백은 결말을 던졌다.
“내 칼로 두 동강을 내줬다.”
꿈틀, 눈썹을 뒤튼 당대천의 눈동자에 노기가 곤두서기 시작했다. 참았던 분노다. 억누르고 있던 살기와 격노가 봇물터지듯 넘쳐 나오기 시작했다.
“네놈이 본가의 이가주를, 내 사촌아우를…… 본가의 천강대류를 갈랐단 말이구나.”
목계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당대천은 자줏빛 독의 기운으로 물든 두 손을 내밀며 걸음을 내디뎠다.
“그 빚을 이제 갚겠다.”
목계백은 장도를 우하방으로 내려 두 손으로 움켜잡고 마주 걸음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걸 본 당대천이 미간을 다시 좁혔고, 장효가 냉소했다.
“흥, 시간을 끈 게 효과가 없어 당황했나?”
당대천은 미간을 더욱 좁히고 찌푸렸다. 예상한 장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첫 격돌 이후 반격을 하지 않고 말을 나눈 건 의도가 있어서다. 상대가 모르게 하독한 무형지독의 약효가 발동하기를 기다린 거다. 그 시간이 됐다. 그런데 목계백과 장효는 멀쩡하다. 오히려 의도를 간파하고 비웃는다.
찌푸렸던 미간을 펴며 당대천은 차가운 미소를 물었다.
“정말로 놀랐는걸? 오독문이 이 정도로 발전했는가?”
진실로 감탄을 드러내며 당대천은 목계백과 장효의 안색을 살폈다. 분명 무형지독으로 인한 중독증상이 없다. 완전무결하게 무형지독을 막아낸 것인지, 그러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중독을 늦추고 잊을 뿐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태만으로도 대단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무당산의 일이 거짓도 우연도 아니로구나. 본가의 무형지독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단을 강구했어. 대단하다. 과연 무엇으로 이러했는지 궁금하구나.”
장효가 대답했다.
“만독자어른의 만독비경을 찾았지.”
그 대답이 당대천의 눈을 커지게 만들었다.
“만독자……!”
기억에 각인된 이름이다. 오독문에서 배출한 불세출의 기재다. 유일하게 당문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독의 천재다. 그가 만일 무사했다면 오독문은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당문의 처지도 달라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사라졌다. 천운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모르지만, 강호행을 하던 도중 실종됐다. 그가 저술하고 있다던 만독비경은 당문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그의 실종과 같이 사라졌다. 그를 잊지 않고 있다.
“그랬군.”
놀람을 다시 다스린 당대천은 장효를 응시하며 말했다.
“만독자, 그의 실종은 오독문에겐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지. 그 일을 두고 본가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 독공이 지닌 한계지. 본가의 어른들은 예측하셨다. 만독자가 분명 대적하기 힘든 절대고수와 격돌했을 것이라고, 그 결과로 죽었을 것이라고 판단하셨지. 바로 그거다. 아무리 독을 잘 써도 절대적인 무공의 힘을 대적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이지.”
눈동자를 반짝이는 장효를 응시하며 당대천은 말을 이었다.
“필연 만독자는 누군가의 손에 패해 죽은 것이고, 그 죽음을 만든 고수는 조용히 그 일을 묻고 세상을 떠난 것이지. 그 정도의 경지에 든 존재라면 명리에 초월했을 터, 만독자의 죽음을 떠벌리고 다니진 않았겠지. 인과야 어찌 됐든, 본가는 그때부터 선조의 위업에 더욱 매진했다. 독공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작업이었지. 그 대업을 내 대에서 완성했다.”
장효가 안광을 번득이며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냐? 네가 지금 보이고 있는 천강대류이더냐?”
당대천은 엷은 미소를 입가에 물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것도 그 힘의 일부지만 진정한 결과는 저 밖에 있다.”
목계백이 당대천의 시선을 단번에 돌려세웠다.
“독인이로군.”
부릅뜬 당대천의 눈을 향해 차가운 미소를 던지며 목계백은 장도를 좌상방으로 세웠다.
“헛꿈을 깨부숴주는 게 내 장기다.”
목계백은 장도에 맺힌 힘을 당대천을 향해 뿌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