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00)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00화(100/273)
“그게 사실입니까?”
교황 오르반 4세.
그는 오랜만에 가식이 아닌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일선 사령관 브리안 발카츠에게서 온 연락 때문이었다.
“레이드런. 아벨슨 마리어트. 최현석을 한 번에 없앨 기회라니…”
마왕군 고위 간부 레이드런.
차기 성녀 아벨슨 마리어트.
용사 최현석.
셋 모두 교황에게 있어서 굉장히 골칫거리였다.
붉은 악몽 레이드런.
그의 악명은 마왕군을 통틀어 손꼽힐 정도였다.
사단장에 준하는 강자이면서 항상 일선에서 전투를 벌여왔기 때문이다.
전장에 붉은 악몽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정도.
거기에 레이드런은 헤미스의 심복이다.
이 기회에 레이드런을 죽인다면, 헤미스의 오른팔을 잘라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기 성녀 아벨슨 마리어트 또한 상당히 거슬리는 존재였다.
그녀는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만큼, 알려져선 안 되는 비밀을 많이 알고 있다.
그런 존재가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은 물론, 대중들에게 인망마저 높은 상황.
그녀가 입을 잘못 놀리면 제법 귀찮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에 빨리 처리하는 게 좋았다.
마지막으로 용사 최현석.
‘어쩌면 가장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존재…’
교황은 용사란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다.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끝없이 강해진다.
그렇기에 교황은 모든 용사를 통제하에 두기 위해 노력했다.
자칫하면 박현아 같은 케이스가 발생할 수도 있었으니까.
박현아가 제국에 끼친 피해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릴 정도다.
그런데 최현석은 그 박현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다.
그것도 마왕군에서.
이대로 몇 년만 흐르면 얼마나 큰 골칫거리로 성장할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신께서 아직 저를 저버리시지 않았나 봅니다. 하하하!”
교황이 재미있는 농담을 한 것처럼 웃었다.
“그 셋을 한 번에 처리한다면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할 겁니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듯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놈이 원하는 건 무엇입니까?”“한동안 마왕군 8사단 인근에서 병사를 물릴 것. 그리고 오천인대를 제물로 달랍니다.”“오천인대? 이유가 뭡니까?”“실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실적이라는 단어에 교황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 마족의 이름이 그라트라고 했나요? 이름을 듣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더 영악한 놈입니다.”“예. 마족치고는 머리가 비상한 놈입니다.”“일단 제안을 받아들이세요.”
교황 오르반은 흔쾌히 승낙했다.
추기경 엘론드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교황은 병사 오천 명의 목숨을 없애버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괜찮겠습니까?”
“물론, 우리 제국의 병사는 안 됩니다. 희생자는 다른 연합국의 병사로 채워두세요.”
“묘안입니다!”
“그리고 연합국의 병사가 죽고 나면 그라트라는 마족도 처리합니다. 감히 마족
따위가 거래를 제안하다니. 건방지지 않습니까?”“과연… 진짜 실적은 우리 제국에서 가져가겠군요. 하하하!”“그겁니다. 엘론드 경께서 무대를 잘 꾸며주시리라 믿습니다.”“맡겨만 주십시오!”
엘론드는 자신 있었다.
이런 무대를 꾸미는 것은 자신의 전문 분야였기에.
그 과정에서 수천에 달하는 죄 없는 병사들이 죽겠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의를 위한 작은 희생이지.’
추기경 엘론드의 얼굴에 교황을 닮은 인자한 미소가 떠올랐다.
***
이른 새벽.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스름이 깔려 있다.
미약한 빛 속에서 용사 최현석은 몸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본다면 이상한 춤을 추고 있다고 오해할 만한 모습.
잠시 후.
떠오르는 해와 함께 햇볕이 내리쬔다.
서서히 드러나는 최현석의 몸은 그가 추는 춤보다 더욱 기괴했다.
푸스스… 푸슉!
피부가 끓어오르는 것처럼 뒤틀린다.
칼날 같은 게 솟기도 하고, 갑자기 단단한 바위처럼 변한다.
간혹 전류가 흐르기도 했다.
마기로 신체를 자극해 강제로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
최현석은 그 속에서 일정한 규칙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후우… 여기까지만 할까.”
호흡을 가다듬는다.
온갖 형태로 변화하던 신체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용사님용사님!”
옆에서 쪼그려 앉아 훈련을 구경하던 라헬이 쪼르르 달려왔다.
“어때요?”
“아직은 딱히.”
“칫. 밤새도록 그렇게 흔들어 재껴놓고선 성과가 없어요?”“하루 만에 성과가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 그리고 흔들어 재낀다는 건 도대체 어디서 나온 말이야!?”“본 걸 그대로 말한 건데요?”
“진짜 죽일까…”
밤새도록 집중해서 훈련했음에도 별다른 성과가 없다.
사실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최현석의 성장과 습득력이 규격 외로 남달랐던 것뿐.
원래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남들은 투기 하나를 배우는 데만 해도 몇 개월에서 몇 년까지 투자한다.
투기를 만드는 것은 그보다 몇 배는 더 힘든 일.
투기뿐만 아니라 마력과 관련된 대부분의 일이 비슷하다.
지금 수준에서 뭐든지 뚝딱뚝딱 배우고 만들어내는 최현석이 이상한 것이었다.
“그래도 대충 가닥은 잡히는 것 같아.”
최현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방금 하루 만에 성과가 있겠냐고 발끈했으나, 실상은 벌써 어느 정도 성과가 보였다.
“가닥이라면 어떤 거요?”“그때 마셨던 마기 앰플이 총 다섯 개잖아.”
“네!”
라헬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로타크의 연구소에서 최현석이 마신 마기 앰플은 총 다섯 개.
헤미스가 관련 자료를 조사해서 직접 건네주기까지 했었다.
“몇 번 시도해보니 각 앰플 마다 하나씩 형태를 정해서 체계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해야 하나.”“오오! 일종에 변신 모드네요?”“그렇지. 나한테서 칼날이 자꾸 나오는 것도 분명 연관돼 있어.”
“칼날이 왜요?”
“내가 마신 마기 앰플 중 하나가 펄미니엄이라는 마수 건데. 그놈이 단단한 칼날에서 전류를 뿜어내는 게 특징이더라고. 아마 방법만 알며 전류를 사용하는 능력도 다룰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오호…”
“다른 마수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특징을 추려서 거기에 맞춰서 변화하는 방식을 적용해야겠지.”
최현석은 지금껏 생각해왔던 내용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라헬이 미심쩍은 눈초리를 했다.
“용사님. 오늘 좀 이상한데요?
“뭐가.”
라헬이 최현석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단 말이죠. 마기를 너무 많이 써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아니! 당신 우리 용사님이 맞는 거야!?”
“왜 이러는 건데?”
“갑자기 너무 똑똑해졌잖아! 당신 누구야! 우리 용사님을 어떻게 했어!?”“진짜 죽일까… 그리고 나 원래 똑똑했거든!?”“꺄아! 똑똑한 도플갱어가 용사님을 죽이고 탈을 뒤집어썼다!”
최현석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라헬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막사 한쪽으로 내달렸다.
쫓아가려던 최현석은 한숨과 함께 포기했다.
“됐다. 피곤해서 쫓아갈 힘도 없네…”
밤을 새워서 훈련했더니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사실 하루 이틀 정도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해서 육체적인 문제는 없었으나, 그냥 정신적으로 피로했다.
“그러게 왜 무리를 하셨어요.”“뭔가 가닥이 잡힐 것 같으니까 놓지를 못하겠더라고.”
최현석도 밤을 새울 생각은 없었다.
원래는 한두 시간만 훈련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언가에 홀린 듯 훈련을 이어가다 보니 밤을 새워버렸다.
“끄으으! 좋아. 조금 있으면 또 레이드런이랑 훈련해야 하니까. 밥이나 먹어둬야겠다.”
힘껏 기지개를 켜고 막사를 나섰다.
오늘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든든하게 식사를 해둘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아벨슨 씨도 만나고.’
아벨슨과 함께 고기를 먹을 생각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순간, 최현석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익숙한 소대가리가 앞을 지나갔던 것이다.
“레이드런 님?”
“아, 최현석. 잘 쉬었나.”
“예. 뭐… 하하!”
여기서 밤새도록 훈련을 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휴식도 훈련의 일종이라 여기는 레이드런의 잔소리가 이어질 게 뻔했으니까.
“그럭저럭 잘 쉬었습니다. 그나저나 레이드런 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최현석이 레이드런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다른 이들은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최현석은 알 수 있다.
아주 미묘하게 레이드런의 표정이 일그러져있다.
“최현석. 역시 너도 느낀 건가.”
“예?”
“성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아, 확실히 분주한 것 같긴 합니다.”
최현석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병사들이 바쁘게 이곳저곳을 오가고 있었다.
훈련 중인가? 싶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레이드런이 보기에는 아니었나 보다.
“꼭 전투를 준비하는 것 같군.”
“전투라…”
최현석의 어조가 무겁게 내려앉던 그때.
한 무리의 병사가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레이드런 님! 그라트 사단장님께서 찾으십니다.”
“무슨 일이지?”
“곧 전투가 시작될 예정이니 작전 회의에 참석하라 하십니다.”
***
회의실에는 이미 수많은 간부가 앉아있었다.
대대장급 이상의 간부는 모두 참여한 듯했다.
뒤늦게 입장하는 레이드런에게 시선이 몰렸다.
“늦군.”
“군단에서 왔다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건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라고 해도, 예민한 레이드런의 청력에는 또렷하게 들려왔다.
레이드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딱히 어울려줄 필요는 없겠지.’
연락을 듣자마자 달려왔음에도 가장 늦었다.
이건 그냥 연락을 늦게 받았다는 뜻이다.
아마 일부러 이런 상황을 의도하고 연출한 것이리라.
“앉아라. 바로 회의가 진행된다.”
그라트의 말에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그가 가장 앞에 서 있던 마족을 바라봤다.
“계속 진행해라.”
“예. 새로운 분이 있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회의실에는 마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지도가 있었다.
가드락 성 인근의 지형도였다.
마족은 지도를 가리키며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인간의 군대가 가드락 성을 포위하기 위해 몰려오고 있다는 급보입니다.”
지도에 가드락 성을 중심으로 붉은 점이 산개했다.
“총 규모는 대략 2만. 아마 이틀 내로 가드락 성에 모두 모이리라 예상됩니다.”
“2만이라…”
“문제는 2만이라는 숫자가 선발대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비슷한 규모의 본대가 오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지휘관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당장 보이는 적은 2만.
거기에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의 적이 오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적의 규모는 최소 4만이라고 봐야 했다.
“인간 놈들이 아주 작정했군.”
마왕군으로 치면 2개 사단 규모.
이 정도로 대규모 군대가 움직이는 것은 흔치 않았다.
그만큼 이번 전투에 적 또한 사활을 걸었다는 뜻이리라.
“현재 가드락 성에 있는 병사는 어느 정도지?”
“대략 1만입니다.”
“쉽지 않겠군.”
아무리 수성전이라고 해도 1만으로 4만을 막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
수성은 이점이 아니라 오히려 불리함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규모 마법 공습이 시작되면 성안에 모인 병사는 차려진 밥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성에서 지원을 요청할 수 있겠나?”“무리입니다. 혹여나 지원이 온다고 해도 각개격파 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가드락 성은 이곳에서 가장 많은 병사가 모여있는 곳이다.
다른 성에 있는 병사들은 많아야 삼천에서 오천.
그들은 이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인간에게 당하고 말 것이다.
“…”
회의실에 침묵이 맴돌았다.
절망적인 상황에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애초에 작전이라는 걸 떠올릴 수 있는 지능을 지닌 간부도 거의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쩔 수 없군.”
그라트가 침묵을 끊어냈다.
간부들을 한차례 둘러본 그가 선언하고, 동시에 경악이 찾아왔다.
“우리는 가드락 성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