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01)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01화(101/273)
“용사님! 깨작깨작 그게 뭐예요? 복 떨어져 나간다고요!”
라헬이 이쑤시개를 흔들며 소리쳤다.
최현석이 밥을 먹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팍팍! 팍팍 퍼서 드시라고요!”“오늘은 입맛이 없네.”
최현석이 시큰둥한 태도로 접시를 뒤적거렸다.
보다 못한 라헬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최현석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댔다.
“흐음, 딱히 배가 부푼 것 같지는 않은데…”
“뭐 하는 거야?”
“아기가 생겼나 해서요. 그게 아니면 용사님 입맛이 없을 리가 없잖아요?”“소름 끼치니까 이상한 농담 하지 마. 그리고 남자가 무슨 임신이야?”“제가 원래 편견이 없거든요.”“편견이 없는 게 아니라 상식이 없는 거겠지.”“그렇게 말할 수도 있죠.”“전혀 다른 거잖아!”
발끈하며 일어섰던 최현석이 한숨과 함께 주저앉았다.
“됐다. 딱히 농담할 기분 아니야.”“왜 그러세요? 용사님. 진짜 무슨 일 있어요?”
최현석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제야 라헬도 장난스러운 태도를 버리고 진지하게 물어왔다.
“라헬.”
“네.”
“명색이 용사인데 이래도 되는 거야?”
“뭐가요?”
“마왕군에 들어온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앞으로 인간이랑 전쟁을 벌이게 생겼잖아.”
사실 언젠가는 닥쳐올 문제였다.
같은 인간과의 싸움.
물론, 이전부터 이런 전투가 있긴 했으나,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적이 먼저 자신의 목숨을 노렸기에 정당방위였다.
살기 위해서 죽여야 했다.
그렇기에 고민도 후회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과는 무관한 다수의 인간.
그저 살기 위해서 마족과 싸우는 인간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으음~”
라헬이 이쑤시개로 과일을 찔러 입안에 집어넣었다.
오물오물 과일을 씹어 꿀꺽 삼킨 그녀가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상황이 상황이잖아요?”
전혀 문제 될 것 없다는 말투.
그러면서 이쑤시개로 새로운 과일을 찌른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하니 이쪽이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너 예전에 분명 용사의 본분이 어쩌고 떠들었던 것 같은데.”“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인생 참 편하게 사는구나.”
라헬의 인성이야 이제 와서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다만, 이전에는 최소한 인간을 보호하고 마왕을 처단한다는 목적은 확실했다.
그런데 이젠 정말 맛이 가버린 건지 환경에 적응을 한 건지.
“이건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같은 거죠!”
저런 말을 지껄이며 상황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뭐,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선악이나 정의의 개념이 흔들리는 건 사실이지.’
인간 = 선 = 정의
마족
= 악 = 불의
일종의 공식이나 다름없었다.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최현석의 생각은 글쎄올시다였다.
‘이것만은 확실하지. 용사의 본분이 단순히 마족을 처치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거.’
지금까지 나타난 용사 퀘스트를 보면 알 수 있다.
마족의 인정을 받으라고 한 내용부터 시작해서.
심지어는 같은 인간이나 용사를 죽이라는 퀘스트도 있었다.
퀘스트 내용만 보면 자신이 용사가 아니라 빌런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커.’
인간이 정의가 아니거나.
용사가 정의를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거나.
최현석은 이 두 가지 중 하나에 답이 있을 것이라 무게를 뒀다.
“최현석 씨.”
아벨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함께 식사 중이었는데, 말없이 최현석과 라헬의 대화를 듣다가 입을 연 것이다.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저도 딱히 고민하고 싶진 않은데, 마음처럼 잘 안 되네요.”
테포 학살극 사건 이후로 계속 기분이 찜찜했다.
아벨슨 또한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용사에 관해서 알려드릴 수 있어요.”“용사에 관해서요?”
“네. 정확히는 용사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해야 할까요.”
“오호.”
최현석이 관심을 보였다.
용사의 존재 의의라니.
솔직히 말하면 별다른 의문을 가지지 않았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정말 필요한 정보였다.
“용사는 마왕을 없애기 위해 있는 게 아닌가요?”“비슷하지만 틀려요. 마왕의 처단은 과정이라고 해야겠네요.”
마왕의 처단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렇다면 용사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용사란 모두의 염원이 모여 만들어진 존재예요.”
“모두의 염원…”
“네. 염원이란 간절히 바라는 것. 바로 행복이죠.”“즉, 용사가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겁니까?”“쉽게 설명하면 그래요. 절대다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게 바로 용사예요.”
절대다수의 행복.
인간이라 해도 다른 인간에게 행복만 주지는 않을 터다.
오히려 인간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같은 인간일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인간을 처단하라는 용사 퀘스트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의문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마족의 신임을 얻으라는 퀘스트는 왜 나온 걸까.
“혹시 그 절대다수에 마족도 포함됩니까?”“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허공을 응시하던 아벨슨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해요.”
그녀가 고개를 돌려 최현석을 바라봤다.
“지금 이 세상이 모두의 행복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
최현석은 아벨슨의 은색 눈동자 안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신비로운 눈이 모든 것을 파헤치듯 자신을 바라본다.
“그렇기에 최현석 씨 같은 존재가 필요한 거겠죠.”“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최현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라헬이 이쑤시개를 높게 쳐들었다.
“용사님! 용사님은 그냥 이 라헬만 믿고 따라오시면 돼요! 나쁜 머리로 고민해봤자 두통만 온다니까요?”
“이게 진짜!”
최현석이 이쑤시개를 빼앗아 앞에서 알짱거리는 라헬을 찔렀다.
“으악! 따가워요! 따갑다고요!”“절대다수의 행복을 위해 죽어라!”
“꺄악!”
최현석이 한창 용사의 본분을 다하고 있던 그때.
익숙한 소대가리가 다가왔다.
“최현석. 여기 있었군.”
“레이드런 님!”
최현석은 들고 있던 이쑤시개를 던져버리고는, 자리에 기립했다.
“회의는 잘 끝나셨습니까?”“그렇지 않아도 회의와 관련해서 해줄 말이 있다.”
***
레이드런은 회의실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최현석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적이 가드락 성을 포위하기 전에 선제공격을 한단 겁니까?”
“그래.”
그라트 사단장의 작전은 간단했다.
인간의 군대가 사방에서 몰려오는 상황이니, 놈들이 뭉치기 전에 각개격파하자! – 가 끝이다.
“허술해 보이지만, 괜찮은 작전이다. 원래 좋은 계획일수록 단순한 법이니까.”“그건 알겠습니다만…”
최현석도 작전 자체에는 불만이 없었다.
제8사단이 가드락 성을 벗어나 선제공격을 한다는 것은 적의 허를 찌르는 좋은 수가 될 것이다.
그가 의아한 것은 레이드런에 관한 것이었다.
“레이드런 님은 어째서 단독으로 움직이는 겁니까?”
이번 작전에서 레이드런은 혼자 움직인다.
8사단 병사와 간부 대부분이 전장으로 나서는데, 레이드런만 혼자서 움직인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했듯 내 임무는 적의 지휘관 암살 및 소규모 부대 격파다. 기동성과 은밀함을 요하는 작전이니 혼자서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렇긴 한데…”
“미안하군. 시간이 없으니 가보겠다. 최현석. 너는 성에서 대기하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최현석이 대답한 그 순간, 레이드런은 이미 달려가고 없었다.
이번 작전은 시간이 생명이다.
적이 실시간으로 모이고 있는 만큼,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한다.
레이드런뿐만이 아니다.
가드락 성에 있는 병사와 간부 대부분이 전장으로 떠나고 있었다.
멀어지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최현석이 턱을 쓰다듬었다.
“이상한데…”
“흐음~ 그러게요.”
라헬도 최현석을 따라 턱을 쓰다듬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 너무 공교롭게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아?”
최현석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가드락 성으로 모여드는 적.
그에 맞춰 지금껏 성에 틀어박혀 있던 그라트가 성 밖으로 나선다.
그저 우연일 가능성도 있으나, 무언가 석연찮은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 악어 대가리. 눈빛이 음흉했다니까요. 잔머리 대마왕처럼 보였어요.”“맞아. 그리고 나랑 아벨슨 씨를 움직이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아벨슨은 인간을 상대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 내버려 둘 수도 있다.
하지만 최현석은 다르다.
현재 그는 대대장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제법 귀한 전력이다.
손 하나가 아쉬운 제8사단에서 이런 전력을 내버려 둔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였으면 어떻게든 쥐어짜서 단물을 쪽쪽 빨아먹었을 거란 말이야.”“애초에 마음에 안 드는 놈이니 적진에 던져서 죽여버릴 수도 있겠죠!”
역시 최강 인성답게 악랄한 계획을 서슴없이 던지는 라헬이었다.
순간 최현석의 눈이 번뜩였다.
“그거다!”
“네? 뭐가요?”
“레이드런을 굳이 혼자 움직이게 만든 이유. 혹시 함정에 빠뜨리려는 거 아닐까?”“에이~ 그건 아니죠.”
“왜?”
“그렇게 해서 얻는 이득이 뭔데요? 소대가리가 죽으면 마왕군 전력 손실이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리고 함정에 빠뜨린다니 도대체 어떤 식으로요? 이 상황에 같은 마왕군끼리 피를 흘리는 건 좋지 않을 텐데. 설마 저 악어 대가리가 인간이랑 거래라도 했을까요? 너무 현실성 없는 망상 아니에요?”
“…”
“뭐, 진짜 악어 대가리가 함정을 준비했다고 쳐도 이상한 게 있어요. 함정이 있다면 우리는 왜 여기 내버려 둔 거죠? 저라면 이왕 함정을 준비한 김에 용사님까지 같이 세트로 묶어서 보내버릴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라헬의 날카로운 지적에 최현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반박할 말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야. 갑자기 왜 캐릭터 붕괴 일으키는 건데? 그냥 멍청한 라헬로 있어!”“라헬은 원래 똑똑했거든요!”“네가 원래 똑똑했다고? 차라리 헤미스가 알고 보니 입술 괴물이 아니라 절세 미녀였다는 게 더 현실성 있겠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이익! 말 다 했어요!?”
라헬이 최현석의 가슴에 연신 펀치를 날렸다.
그래봤자 가렵지도 않았지만.
그때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벨슨이 손을 들었다.
“잠시만요.”
라헬의 볼을 쥐어짜듯 누르던 최현석이 멈추며 돌아봤다.
“아까 이야기한 내용. 악어 대가리… 그러니까 그라트 사단장이 정말 인간이랑 거래를 했다면요?”“뭔가 아시는 게 있습니까?”“증거는 없어요. 하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죠.”“이해가 안 되네요. 마족이나 인간이나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데 거래를 한다고요?”“예전에 마왕과 교황이 밀약을 맺고 전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전쟁을 길게 끌어가기 위해서요. 대부분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치부하지만, 저는 사실이라고 믿어요.”“밀약이라…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최현석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곳은 최전방.
전선이 고착화된 지 무려 100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 이유가 단순히 대등한 전력 때문이 아니라, 마왕과 교황의 밀약 때문이라면?
인간과 마족, 일선 지휘관 사이에 연락망이나 거래가 없는 게 더 이상했다.
“레이드런이 위험해!”
헤미스가 없는 지금.
레이드런은 최현석을 지켜줄 유일한 방패다.
그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최현석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라헬. 짐 싸.”
“네!”
이 정도면 고민은 충분하다.
시간이 생명인 것은 최현석 또한 마찬가지.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