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02)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02화(102/273)
최현석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보보를 찾는 것이었다.
“보보!”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 있던 보보가 한쪽 눈만 슬며시 떴다.
눈동자에는 권태로움이 가득했다.
한창 좋은 때에 왜 부르냐고 나무라는 것 같기도 하다.
“크와앙…”
“지금 그렇게 한가하게 있을 때가 아니야! 얼른 가자!”
이 순간에도 레이드런은 작전 지역을 향해 전력으로 달리고 있을 것이다.
1분 1초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레이드런은 500km를 달리기로 주파하는 미친 소대가리였으니까.
최현석이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다.
거기에 아벨슨까지 함께한다면 절대 제시간에 맞추지 못한다.
그러니 보보가 필요하다.
전투력만 놓고 보면 레이드런에게도 꿀리지 않는 보보였으니,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
“크왕…”
문제는 보보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
아직 성장기라 잠이 많을 때였다.
보보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라!”
“크와앙…”
“우리 보보. 산책하러 갈까?”
산책이라는 말에 보보가 다시 눈을 뜬다.
구미가 당기기 시작하는 듯 눈동자에 흥미가 담기기 시작했다.
“맛있는 것도 잔뜩 먹여 줄게! 간식 먹고 싶지 않아?”
“크왕!”
보보가 벌떡 일어났다.
역시 산책과 간식의 조합은 진리다.
“아벨슨 씨! 바로 타세요!”
“네!”
이번 작전에 아벨슨은 딱히 필요 없었으나, 그녀의 안전을 위해서 함께 가기로 했다.
레이드런, 최현석도 없는 성에 아벨슨을 혼자 둘 수는 없었다.
‘여기는 흑색 거성이 아니야.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
가드락 성에 혼자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함께 움직이는 게 오히려 안전할 것이다.
아벨슨도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좋아! 출발!”
“꺅! 용사님! 피크닉 가는 것 같아서 너무 신나요!”
“닥쳐!”
보보와 함께 막사를 나서려던 그 순간.
한 무리의 병사가 달려왔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마족이 앞을 가로막았다.
“멈춰! 멈춰라! 나는 부사단장 큰라둑이다!”
부사단장이라는 말에 최현석은 일단 멈춰섰다.
“무슨 일입니까?”
“그건 내가 묻고 싶군. 지금 어딜 가는 거지?”“가만히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성 밖에 순찰이나 할 생각입니다.”
“안 된다.”
부사단장 큰라둑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여기 가드락 성에서 대기하라는 사단장님의 명령이다.”
“예?”
“꼼짝 말고 여기 있으란 말이다!”
“이유가 뭡니까?”
최현석이 물었다.
큰라둑은 고민하는 듯 눈깔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입을 열었다.
“안전을 위해서다.”
“안전? 제 안전 말입니까?”“그래! 최현석과 성녀는 안전을 위해 가드락 성에 있으라는 사단장님의 명령이다!”
최현석이 피식 웃었다.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놈이 갑자기 안전이라고?’
첫 만남에서 자신과 아벨슨을 보던 그라트의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못마땅하지만 하는 수 없이 받아들인다는 티를 팍팍 풍기더니.
인제 와서 안전?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 자식들. 나랑 아벨슨 씨를 넘기려는 건가?’
계속 의문이었다.
위험한 작전에서 왜 굳이 최현석과 아벨슨을 제외했을까?
레이드런과 같이 묶어서 함정에 빠뜨리는 게 가장 쉬운 방법 아닌가?
‘안심하고 성에 있으라 한 다음에 쓱싹하려 했던 거지.’
만약 처음부터 함께 움직이라 했으면 오히려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움직이지 말고 남으라는 말에 혼란이 가중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계략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꼼짝 말고 있어라! 저항한다면 명령 불복종으로… 혼내주겠다!”
부사단장 큰라둑이 다급히 소리쳤다.
최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부사단장님.”
가운뎃손가락이 천천히 올라간다.
“엿이나 까드십쇼.”
“응?”
“보보! 출발해!”
“크와앙!”
보보가 포효하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큰라둑은 허둥지둥하며 소리쳤다.
“막아라! 막으란 말이다!”“안 됩니다! 끄아악!”
현재 보보의 전투력은 15만이 넘는다.
이 정도면 연대장 중에서도 최상급.
거의 사단장에 맞먹는 수준이다.
실제로 부사단장인 큰라둑의 전투력이 13만이 조금 넘었다.
즉, 그라트가 없는 이 가드락 성에서 보보보다 더 전투력이 높은 존재는 없었다.
“요리스가 잡아먹혔어!”
“괴물이다아아!”
보보는 앞을 가로막는 병사를 짓이기며 달려갔다.
중간에 배를 채우는 건 덤이었다.
라헬은 잔뜩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좋았어! 그거야 똥개!”
“크와앙!”
“가자! 우리 레이드런을 구하러!”
쏜살같이 가드락 성을 빠져나가는 보보.
부사단장 큰라둑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멍하니 서 있던 큰라둑이 갑자기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현재 그라트는 작전 수행을 위해 가드락 성을 떠난 상황.
인간과의 거래는 그라트와 큰라둑 둘만 아는 일이기에 직접 보고해야 했다.
“사단장님께 알려야 한다! 통신구! 통신구는 어디 있나!?”
***
전장으로 향하는 길.
그라트는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모든 게 순조롭다.’
이번 일만 해결되면 그라트는 8사단의 지휘권을 완벽하게 거머쥘 것이다.
헤미스가 이끄는 제3군단 예하의 8사단이 아닌, 그라트만의 8사단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크큭! 레이드런이 죽었을 때 헤미스가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제 자식처럼 애지중지했는데 말이야.’
헤미스의 입술이 잔뜩 일그러질 것을 생각하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신을 반푼이 취급했던 그녀에게 좋은 충고가 될 것이다.
우웅…!
갑자기 통신구가 밝게 빛났다.
그라트는 인상을 찌푸리며 통신구를 들었다.
‘부사단장인가.’
가드락 성에 남아있는 부사단장 큰라둑에게서 온 통신이었다.
-그라트 사단장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냐.”
-최현석과 성녀가 도망쳤습니다!
“뭐라!?”
그라트가 눈을 부릅떴다.
최현석과 성녀가 도망치다니.
‘놈들이 도망칠 이유가 없다. 설마 정보가 새어 나갔나? 아니야. 이건 나와 부사단장밖에 모르는 계획이다. 절대로 새어 나갈 수 없어.’
최현석과 성녀는 가드락 성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들로서도 나쁠 게 없는 명령일 터였다.
굳이 전쟁터로 나가지 않고 안전한 성에 박혀 있으면 되니까.
“너는 도대체 뭘 한 거냐!? 그 연놈들이 절대 가드락 성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았어야지!”-그게… 군단장님의 애완견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군단장의 애완견.
아마 보보라는 이름이었을 거다.
그라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꼬이는군.’
놈의 목적이 뭔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무언가 눈치를 챘다는 것.
“놈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했나?”-레이드런의 작전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어떻게 합니까?
잠시 고민하던 그라트 입을 열었다.
“당장 신성 제국 쪽에 연락해. 최현석과 군단장의 애완견이 그리로 갔으니 같이 처리하라고.”-알겠습니다!
“제국에게 확답을 받아야 한다. 성 밖으로 나간 이상 놈들이 절대로 살아남아선 안 돼.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나?”-예!
“가보도록.”
통신이 종료되고.
그라트는 짜증스럽게 통신구를 집어던졌다.
쨍그랑!
통신구가 깨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튄다.
“젠장! 다 된 고기에 똥을 지리다니!”
이렇게 된 이상 인간 쪽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움직이는 게 영웅 둘이라고 했나? 아슬아슬하겠군.’
신성 제국은 레이드런을 죽이기 위해 영웅 둘을 파견했다.
그 정도라면 레이드런은 충분하겠으나, 보보가 합류한다면 아슬해진다.
‘일단은 이곳의 일을 처리한다. 만약 레이드런이 살아남는다면… 그때는 내가 직접 나서야겠지.’
그라트는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인간의 군대가 마왕군을 척살하기를.
***
찬란하고 신실한 자 워스턴 게스레드.
거구에 짙은 인상을 지는 그는 이번 작전의 총책임자였다.
“바이런 경. 준비는 끝났습니까?”
워스턴이 말했다.
옆에 있던 바이런 하네가 피식 웃었다.
그 또한 신성 제국의 영웅으로, 이번 작전에서 미끼를 맡았다.
명목상 레이드런은 제국의 젊은 영웅인 바이런 하네를 처치하기 위해 이 부대를 기습하게 된다.
“준비랄 게 있습니까? 워스턴 경. 무려 제국의 영웅이 둘입니다.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싸움이지요.”“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는 붉은 악몽 레이드런. 쉽지 않을 겁니다.”
바이런 하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워스턴 경께서는 걱정이 너무 많습니다. 영웅이 둘에 붉은 악몽을 포획하기 위한 특별 무기까지 준비했습니다. 게다가 놈은 혼자.”
바이런 하네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솔직히 과잉 전력입니다. 저 혼자서도 붉은 악몽쯤은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을 텐데. 쯧.”
혀를 차는 바이런 하네를 보며.
워스턴은 고개를 돌렸다.
‘젊은 영웅이라는 건가…’
바이런 하네는 이제 막 영웅의 칭호를 받았다.
그의 나이는 불과 25살.
어린 나이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니 저런 자신감을 가질 법도 했다.
‘붉은 악몽의 전력은 사단장 중에서 중하급으로 평가된다. 바이런 경의 말이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생포는 사살보다 훨씬 힘든 법. 준비를 철저히 해서 나쁠 건 없겠지.’
원래는 레이드런을 사살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도중에 작전이 변경됐다.
사살에서 생포로.
‘전례 없는 일이긴 하지.’
마족은 인간을 생포한다.
병사는 노예로, 귀족은 거래에 사용한다.
하지만 인간은 마족을 생포하지 않는다.
오직 처단할 뿐이다.
포로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마족을 노예로 쓰자니 통제되지 않아 사고만 터지고.
고위 지휘관을 사로잡아 거래에 사용하자니 마왕군에서 응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사로잡히는 병신 따위 필요 없다.”
마왕군은 인간에게 사로잡힌 마족을 돌려달라 하지 않았다.
“쓰레기를 그쪽에서 처리해준다니 고맙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간 측에서 마족
포로를 잡지 않는 건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러나 이번 작전은 다르다.
신성 제국 가트렌의 상부는 이례적으로 레이드런을 생포하기로 했다.
“레이드런은 괴식가 헤미스의 유일한 심복이다.”“잘만 하면 괴식가를 꾀어내어 함정에 빠뜨릴 수 있을 거다.”“조금 귀찮아지긴 하겠지만, 괴식가의 반응을 보고 그때 처리해도 괜찮겠군요.”
괴식가 헤미스가 아끼는 부하.
레이드런은 마왕군 내에서 헤미스의 총애를 받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가트렌은 한번 떠볼 생각이었다.
레이드런을 포로로 잡는다면 헤미스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조금이라도 반응이 온다면 이는 큰 기회였다.
잘만 하면 헤미스를 함정에 빠뜨려 처리할 수 있을 테니.
그녀가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때 가서 레이드런을 죽이면 그만이다.
“언제 놈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말도록.”
“예!”
워스턴의 말에 병사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워스턴과 천 명의 병사는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보통의 부대처럼 보여야 했기에.
미리 기습을 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쿠웅… 쿠웅…! 쿠웅!
멀리서 소음이 일기 시작했다.
소음이 점차 가까워짐과 동시에 땅이 울린다.
워스턴이 다급히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적입니다! 레이드런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동시에 워스턴의 눈에도 적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쿠웅!
붉은 피부에 근육질 거구가 초원을 가로지르고 있다.
땅을 박찰 때마다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인다.
‘기습… 인가?’
설마 이런 식으로 정면 돌파해올 줄이야.
어찌 보면 기습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돌격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레이드런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으니까.
순간 레이드런의 대퇴부가 부풀어 오르고, 힘껏 땅을 박찬다.
투웅!
순수한 각력으로 하늘을 난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레이드런을 보며 워스턴이 소리쳤다.
“막아…!”
붉은 악몽이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