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05)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05화(105/273)
보보는 워스턴을 씹어먹기 위해 입을 다물었고.
워스턴은 살기 위해 손을 들어 턱을 밀어내고 있었다.
싸움의 승자는 워스턴이었다.
점차 밀려나던 보보의 턱이 완전히 벌어진 것이다.
“깨갱…!”
강제로 턱이 벌어진 보보가 고통스러워하며 물러났다.
그 틈을 타 워스턴이 소리쳤다.
“모두 도망쳐라! 작전은 실패했다!”
워스턴은 빠르게 판단했다.
어차피 레이드런을 포박하는 건 실패했다.
그렇다면 놈을 죽여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일반 병사와 기사가 있어 봤자 희생만 늘어날 뿐이다.
“어서 가라! 흩어져서 도망치는 거다! 합류 지점에서 모여 복귀해라!”
다시 한번 명이 떨어지자 눈치를 보던 병사들이 우르르 물러났다.
병사와 기사는 훈련받은 대로 사방으로 흩어졌다.
“쫓지 않는 겁니까?”
최현석이 물었다.
레이드런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저 남자를 상대해야 한다.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는 없어.”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레이드런의 눈빛은 한없이 또렷했다.
그는 오직 워스턴 게스레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화답하듯 워스턴 철퇴를 들어 올렸다.
“나는 찬란하고 신실한 자 워스턴 게스레드.”화아아-!
워스턴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폭사됐다.
눈이 멀 것만 같은 강력한 빛 속에서 워스턴은 포효했다.
“지엄한 신과 제국의 뜻을 받들어 악을 처단하겠다!”
워스턴 게스레드는 결심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붉은 악몽과 함께 죽는다!’
이미 바이런 하네와 함께 수많은 기사가 죽은 상황이다.
여기서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내 목숨을 대가로 미래의 군단장이 될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나쁘지 않은 거래야.’
워스턴의 몸에서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일반 기사가 아닌 성기사.
성기사 최후의 비기 중 하나라 여겨지는 투기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강신(降神)
인간은 자신의 몸에 신이 깃든다고 생각하여 강신이라 이름을 붙였으나, 실상은 다르다.
신성력으로 신체를 극도로 활성화하는 일종의 투기.
플로모트와 비슷하지만, 사용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점이 달랐다.
“으아아아!”
워스턴의 몸에서 빛이 폭사됐다.
정신이 몽롱해짐과 동시에 무엇이든 부술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이 느껴진다.
“크큭, 너희는 절대 살아나가지 못할….”
워스턴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어느새 다가온 최현석과 레이드런이 주먹을 날린 것이다.
“변신 시간을 주는 건 병신이나 하는 짓이지!”
두 개의 주먹이 동시에 워스턴을 강타했다.
콰직!
복부에 주먹이 틀어박힌 워스턴이 허공을 날아 나무에 처박혔다.
“멈추지 마라!”
“예!”
“크와앙!”
최현석, 레이드런, 보보.
용사와 마족과 마수의 협공이 시작됐다.
***
아벨슨 마리어트.
신성 제국의 전(前) 차기 성녀.
지금은 마왕군에서 최현석 전담 힐러(?)를 담당하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벨슨은 마리어트 왕가의 공주로 자랐다.
그리고 15세가 됐을 때 신의 목소리를 듣게 돼 데우시스 교의 차기 성녀로 지목됐다.
그 후로는 차기 성녀로서 대륙을 돌며 어려운 이들을 도왔다.
제법 힘들긴 했지만, 보람 있는 일이었다.
그녀의 주위에는 항상 성기사들이 따랐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벨슨을 추앙했다.
21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그녀의 삶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으나, 적어도 거친 전투와는 거리가 멀었다.
“크와아앙!”
“죽여! 작살을 날리란 말이다!”
아벨슨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극에 정신이 없었다.
마수가 사람을 먹고.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익숙해지려야 익숙해질 수 없는 광경이다.
아벨슨이 할 수 있는 것은 넋 놓고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모두 도망쳐라! 작전은 실패했다!”
그때 적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워스턴이 내린 후퇴 명령에 병사와 기사가 사방으로 흩어진 것이다.
불행히도 후퇴 도중 몇몇 병사가 아벨슨을 발견했다.
“아벨슨 마리어트!”
“배신자 성녀야!”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아벨슨이 재빨리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 차려! 도와줄 사람은 없어!’
고개를 빠르게 흔든다.
지금은 전투 중이다.
그 누구도 자신을 도울 수는 없다.
어떤 난관이든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저년을 붙잡아서 돌아가자고!”“성녀에게 걸린 포상금이 얼마였지!?”
장정 세 명이 다가온다.
아벨슨은 선택해야 했다.
‘보호 마법을 펼쳐야 하나?’
그녀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신성 마법 따위를 배우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 할 수 있는 건 보호막으로 시간을 버는 것뿐.
하지만 이 선택지는 버릴 수밖에 없다.
‘이목이 끌릴 거야.’
지금 다가오는 병사는 셋뿐이다.
나머지는 아직 아벨슨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런 때에 마법을 쓰면 이목을 끌게 된다.
‘병사는 몰라도 기사가 오는 순간 버티기 힘들어져.’
최현석과 레이드런, 보보 모두 워스턴을 상대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때에 자신이 붙잡히면 이들에게 큰 폐를 끼치게 될 것이다.
‘어떡하지…?’
그때였다.
아벨슨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메이스(mace)…’
철퇴의 일종인 메이스.
전투 도중 날아왔는지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아벨슨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메이스를 집어 들었다.
“크큭. 저년이 뭐 하는 거야?”“마왕군에 들어가더니 머리가 어떻게 됐나 본데?”
병사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마른 체구의 아벨슨은 메이스를 드는 것조차 버거워 보인다.
가냘픈 팔은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울 정도.
성녀로 살며 싸움 한번 해보지 않은 그녀가 메이스를 드니 귀여울 지경이었다.
“이봐, 전 성녀 아가씨. 그거 위험한 물건이야. 좋게 말할 때 내려놓는데 어때?”“아벨슨이면 마리어트 왕국의 공주 출신이지 않나? 공주가 메이스라니 완전히 코미디군. 하하하!”“한슨. 우리가 성녀를 붙잡으면 특진은 확정이겠지?”“특진만 하겠냐. 3대가 배불리 먹을 포상금이 나올 거라고!”“크흐! 짜릿하구만. 후퇴 도중에 이런 기회가 찾아오다니. 신이 우리를 보살피는 거 아닐까?”“그렇지. 신도 배신자 성녀를 처단하고 싶었을 거야. 크흐흐흐!”
그때 대화를 듣던 한 병사가 입을 열었다.
“둘 다 닥쳐. 괜히 다른 놈한테 걸려서 공을 나누고 싶은 거야?”“아차차. 조심해야지. 포상금을 나눌 수는 없지.”“그래. 우리 셋이 나눠 먹을 것도 없다고.”
병사들은 이미 아벨슨을 사로잡은 것처럼 들떠 있었다.
배신자로 낙인찍힌 아벨슨에게는 엄청난 포상금이 걸려 있다.
평민에게는 상상도 못 할 금액.
이들의 머릿속에는 포상금을 독차지할 생각만이 가득했다.
“최악…”
하지만 이 병사 트리오가 알지 못하는 게 있다.
아벨슨이 신의 은총을 받고 있다는 것.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의 은총을 받은 이는 어지간한 기사급의 신체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말인즉슨.
“어어? 그거 휘두르려고? 위험할 텐데.”“귀한 몸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큭큭!”
아벨슨에게 일반 병사 셋을 처치하는 것쯤은 식후 요깃거리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콰직!
메이스에 맞은 병사의 머리가 반쯤 깨져나갔다.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튄다.
병사는 허물어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한슨! 이런 미친!”
“정신 차려! 당장 성녀를 공격해야….”콰직! 콰직!
그들은 아벨슨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보지 못했다.
메이스가 휘둘러진다 생각한 순간, 죽음은 확정이었다.
“하악… 하악…”
아벨슨이 호흡이 거칠어졌다.
볼은 발갛게 상기돼 있다.
힘들어서가 아니다.
고작 메이스 몇 번 휘둘렀다고 성녀의 육체는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긴장감.
생전 처음 경험하는 살인에 피가 미친 듯이 질주했다.
머리에 피가 쏠리고 현기증이 인다.
그녀가 자신의 메이스를 바라봤다.
뚜둑, 뚝…
메이스에 눌어붙은 살점과 피가 바닥에 떨어진다.
그 모습을 보며 아벨슨이 몽롱한 눈을 했다.
“짜릿해…”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아벨슨이 입을 턱 막았다.
혹시나 누가 봤을까 싶어 빠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
다행히 본 사람은 없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아벨슨이 조용히 몸을 숨겼다.
숲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피로 물든 메이스가 들려 있었다.
***
“허억, 헉…! 저놈 진짜 사람 맞습니까?”
최현석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앞에는 피투성이가 된 워스턴이 서 있었다.
‘박현아를 제외하면 지금껏 만난 인간 중에 가장 강하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워스턴은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싸움을 벌였다.
무려 레이드런, 최현석, 보보를 동시에 상대하면서 말이다.
원래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지만, 그가 사용한 강신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성기사가 성가신 이유지. 저 강신은 사용하는 순간 1.5배는 강해진다고 보면 된다.”“부작용은 없습니까?”
“없다.”
“진짜 개사기 기술이네…”
강신은 플로모트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플로모트가 그 강력함에도 사장된 대에는 이유가 있었다.
너무나 많은 부작용.
실패 확률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사용 도중에는 끔찍한 고통이 찾아온다.
판단이 흐려지고 갑작스럽게 강해진 육체를 제어하기 힘든 것은 덤이다.
거기에 플로모트 운용 도중에는 다른 투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도 있다.
끝나고 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탈력감이 찾아오고, 심하면 죽음에 이른다.
이러니 플로모트가 사장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강신은 달랐다.
플로모트의 장점만 가져오고, 단점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강신 도중에는 마약을 한 것처럼 집중력이 상승하고, 고통은 사라지기에 전투력은 더더욱 상승한다.
“강신의 대가는 오직 하나다. 목숨이지.”
이 모든 것을 위한 대가는 목숨 하나뿐이다.
강신은 사용하는 순간 확정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신성력이 다 떨어지는 순간 놈은 죽을 거다.”“앞으로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얼마 남지 않았다. 놈도 이제 한계야.”“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최현석은 흘깃 주변을 살폈다.
레이드런과 보보, 둘 다 상처가 심했다.
특히 레이드런의 상태는 심각한 걸 넘어 당장 죽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어떻게 멀쩡한 것처럼 서 있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나도 거의 한계인데…’
최현석도 상태가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워스턴과 싸우기 위해서는 마력과 마기를 무리하게 쓸 수밖에 없었다.
벌써 바닥을 드러낸 것은 물론이고, 반작용으로 신체 내부가 뒤틀리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워스턴을 바라봤다.
“작전 회의는 끝났나.”
워스턴이 철퇴를 들어 올렸다.
“더 시간 끌 것 없이 끝내도록 하지.”
다행이라면 워스턴의 상태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가 입고 있던 갑옷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고.
곳곳의 뼈가 부러져 피부가 부어올랐다.
다만, 강신의 힘으로 피로와 고통을 느끼지 않아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을 뿐.
“이 싸움은 내 승리다.”
그 순간.
최현석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아벨슨 씨…!?’
워스턴의 뒤쪽에서 살금살금 다가오고 있는 여성.
아벨슨 마리어트다.
그녀의 손에는 피에 찌든 메이스가 들려 있었다.
“으아아아! 죽어라!”
갑자기 최현석이 괴성과 함께 돌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워스턴은 피식 웃었다.
“네놈도 남자라는 건가.”
워스턴은 생각한다.
저 용사는 최후의 일격.
그것에 모든 것을 담을 생각이다.
배신자라고 하지만, 남자다운 모습에 만족했다.
워스턴 또한 그에 응답하기로 했다.
“와라!”
워스턴의 철퇴가 밝게 빛났다.
점차 가까워지는 최현석.
마침내 둘이 격돌하기 직전.
워스턴의 뒤통수에 묵직한 충격이 들어왔다.
콰직!
“꺼억…!”
워스턴은 비틀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메이스를 든 성녀가 있었다.
‘네가 왜…?’
어째서 성녀가 여기 있는 걸까.
아니, 왜 성녀가 메이스를 들고 있는 걸까.
여러 생각이 스쳐 가고, 그제야 최현석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아벨슨 씨! 나이스 샷!”
어느새 다가온 최현석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래에서 위로 쳐올리는 어퍼컷.
흔히 승룡권이라 부르는 기술이었다.
레이드런식 격투술
제4형 – 승진최고(昇進最高)
다가오는 주먹을 보며 워스턴은 생각했다.
‘벌을 받는 건가…’
마지막 순간 그의 눈이 비친 것은 화사한 미소를 짓는 성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