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10)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10화(110/273)
오늘의 메뉴는 이름 모를 마수 고기였다.
미리 소금으로 간을 해둔 고기를 긴 꼬챙이에 꽂아 불 위에 얹는다.
치이이이…!
뜨거운 불에 겉면이 노르스름하게 익었다.
최현석은 고기가 타지 않도록 재빨리 꼬챙이를 돌렸다.
“후욱! 후욱!”
“이상한 소리 좀 내지 마.”
“후우욱!”
하지 말라니 더 심해진다.
바로 옆에서 연신 콧김을 내뿜으니 묘하게 거슬렸다.
최현석은 라헬의 뒷덜미를 잡아 대충 집어 던졌다.
“꺄악! 왜 나만…!”
“뭐라는 거야.”
멀어지는 소음을 뒤로하고.
최현석은 다시 고기 굽기에 집중했다.
“후우욱… 후욱…!”
최현석의 미간이 잔뜩 좁혀진다.
분명 라헬은 멀리 던졌는데, 계속 콧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이 정도면 일부러 이러는 거라고 봐야 했다.
“야! 적당히 좀 해!”
최현석이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주먹을 쥐고 고기를 쳐다보고 있던 아벨슨이 깜짝 놀란다.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계속하십쇼.”
“뭐를 계속하죠?”
“어… 알겠습니다.”
“네?”
최현석은 입을 꾹 다물었다.
볼이 발갛게 상기된 상태로 주먹까지 꼭 쥐고 콧김을 내뿜는 아벨슨을 보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민하던 최현석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이 기회에 계속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는 게 좋을 듯했다.
“아벨슨 씨.”
“네.”
“그 메이스는 왜 계속 들고 다니시는 겁니까?”
최현석이 아벨슨의 손에 꼭 쥐어진 메이스를 보며 물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벨슨은 손에서 메이스를 놓지 않았는데, 딱히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끈적하게 말라붙은 피가 그대로 보였으니까.
“메, 메, 메이스요!?”
“네. 메이스요.”
질문에 대한 아벨슨의 반응이 영 이상하다.
그녀의 호흡이 점차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이, 이, 이, 이, 이건, 이건!”“침착하세요! 숨넘어가 가겠어요.”
눈을 부릅뜨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꼭 고장 난 로봇처럼 보였다.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있던 아벨슨이 이토록 당황한 건 처음이다.
“이, 이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건, 그…!”
아벨슨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최현석은 저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다.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은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벨슨은 필사적으로 변명거리를 찾고 있다.
최현석의 눈이 의심과 함께 가늘어지던 그때.
“이건! 호신용이에요!”
“아하.”
고심해서 나온 게 고작 호신용이라니.
최현석은 김샌다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고기로 시선을 돌렸다.
아벨슨이 한숨과 함께 이마의 땀을 훔쳤다.
고기를 계속 살펴보던 최현석이 툭 던지듯 말을 이었다.
“아벨슨 씨.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죠. 굳이 무거운 걸 들고 다니실 필요는 없으니까요.”
“네…”
“굳이 호신용 무기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검 같은 걸 배워보는 건 어떻습니까? 격투술 같은 거라면 제가 알려드릴 수도 있는데.”
“그건 싫어요!”
아벨슨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예상치 못한 격한 반응.
최현석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편하신 대로 하십쇼…”
앞으로 메이스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야겠다.
“좋아! 다 됐다.”
잠시 후.
맛스럽게 익은 고기가 큼지막하게 썰렸다.
아벨슨 앞에 한 덩어리.
라헬 앞에 한 점.
보보 앞에는 절반을 잘라 큼직하게 놔두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최현석이 고기를 입에 집어넣으려던 그때.
“최현석! 여기 있었군.”
익숙한 소대가리가 다가왔다.
최현석은 반갑게 웃으며 인사했다.
“레이드런 님도 와서 한 점 드시겠습니까?”“아니. 지금 한가하게 고기를 먹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예?”
“군단장님께서 찾으신다. 어서 가도록 하지.”
“…”
최현석의 얼굴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고기는 내가 다 구웠는데…!’
슬쩍 돌아보니 아무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지 않다.
다들 고기를 먹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라헬.”
“다녀오세요. 먹고 있을게요.”
라헬은 손을 휘저어 축객령을 내렸다.
심지어 고개조차 들지 않은 채로 말이다.
“우움, 역시 꿀맛!”
최현석은 라헬을 빤히 쳐다봤다.
우물우물 고기를 씹어먹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순간 잽싸게 라헬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꺄아악!”
“혼자는 못 가지!”
“왜!? 왜 나만!”
“그냥!”
라헬이 편하게 노는 꼴은 죽어도 볼 수 없었다.
***
그라트가 사용하던 제8사단장실.
이곳은 헤미스의 집무실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벽 한쪽에 큰 글씨로 쓰인 ‘제8사단장실’을 보고는 입술을 비틀었다.
“이걸 아직 놔뒀네.”
가볍게 손을 튕기자 글자가 지워지고 다시 쓰인다.
‘제3군단장실’이라 쓰인 것을 보며 헤미스가 돌아섰다.
그녀의 앞에는 세 남자가 있었다.
레이드런, 최현석, 로이거다.
“최현석. 그라트는 맛있었니?”
헤미스가 물었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최현석은 절대 그라트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운이 좋아 막타를 치는 것 정도가 원래 정해진 최고의 시나리오.
이런 상황에서 헤미스 덕분에 그라트를 잡고 무려 32레벨이나 올랐으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하…! 예.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감사는 무슨. 나도 재미있었어. 그리고 네가 강해지면 앞으로 더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길 테니까.”
헤미스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최현석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분명 도와준 건 고마운데 어딘가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아무튼, 오늘 내가 너희를 왜 불렀는지 아니?”
“…”
헤미스의 물음에 짧은 정적이 지나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레이드런이었다.
“부대 재편성 때문입니까?”
“정답!”
헤미스가 새하얀 손을 펼쳤다.
그러자 마법으로 만들어진 제3군단 조직표가 나타났다.
“우리 3군단 아래에는 총 5개의 사단이 있지. 차례대로 6사단, 7사단, 8사단, 9사단 10사단.”
가장 위쪽에 위치한 제3군단 아래로 5개의 가지가 뻗어 나왔다.
각각의 가지는 사단을 나타내는 문양으로 변해갔다.
“그중 8사단은 가장 전방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사단이었단 말이야.”
제8사단을 나타내는 악어 문양이 점차 일그러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중요한 사단장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는 없으니, 새로 임명할 거야.”
헤미스가 레이드런을 바라봤다.
“레이드런. 할 수 있겠지?”
“예.”
“부사단장은 로이거야.”
순간 로이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제가 부사단장을 맡아도 되겠습니까?”“물론이지. 실력은 충분해. 머리가 똘똘한 것도 마음에 들고.”
헤미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최현석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에 공감한 것이다.
‘로이거 정도면 훌륭하지.’
마지막으로 확인한 로이거의 전투력은 11만이 넘는다.
이 정도면 연대장 중에서도 상급이었다.
“똑똑한 부하는 언제나 환영이야.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지휘관을 바꾸는 김에 8사단을 완전히 개편해 볼까 생각 중이거든.”“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헤미스는 마지막으로 남은 최현석을 바라봤다.
“최현석.”
“예.”
“우리가 처음 한 약속 기억나니?”“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그녀가 물을만한 건 뻔하다.
최현석이 흑색 거성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녀는 거래를 제안했다.
“앞으로 내가 널 보호해줄게.”“한 달. 그 안에 내가 골라준 녀석과 싸워서 이겨.”“차근차근 윗놈들을 죽이면서 계급을 올리는 거지.”“대충 대대장만 달아 놓으면 너도 쓸만하지 않을까?”
헤미스는 최현석을 보호한다.
대신 최현석은 그녀가 지정한 상대와 싸운다.
최종 목표는 대대장.
‘그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서 달성해 버렸다.
“제가 대대장이 되는 겁니까?”“아니, 우리 군단 직할연대의 연대장으로 갈 거야.”
최현석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갑자기 대대장을 건너뛰고 연대장이 된 걸로도 모자라서 군단 직할이라니.
일반적으로 군단 직할은 다른 부대보다 수준이 더 높은 편이다.
“너 정도 수준을 대대장에 앉히는 건 전력 낭비지.”
“감사합니다.”
“솔직히 나도 예상하지 못했어. 네가 이렇게 살아남아 연대장이 되는 날이 올 줄이야.”
“…”
“만약 그런 날이 온다고 해도 이렇게 빠를 줄은 절대 몰랐지.”
헤미스가 다가왔다.
손을 뻗어 최현석의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동안 수고했어. 이걸로 계약은 종료네.”
무언가 기분이 이상했다.
헤미스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상했고.
너무 높이 있어 쳐다볼 수조차 없었던 이들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져서 어색했다.
“제가 앞으로 어떡하면 되겠습니까.”“어떡하긴. 하던 대로 하는 거지.”“예. 그렇긴 합니다… 하하!”“앞으로는 무대를 좀 넓혀봐. 연대장 정도 되면 굳이 내 그늘이 아니더라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
말을 하는 헤미스의 분위기가 뭔가 묘하다.
최현석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설마 자신을 내칠 생각인 걸까?
그것만은 안 된다.
아직은 헤미스의 그늘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소 사단장급이 되기 전까지는 빈대처럼 찰싹 들러붙어 있을 것이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군단장님의 그늘 아래가 아니면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오호호호!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최현석. 너는 네 수준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어.”“객관적으로 말입니까…?”“너 혹시 연대장이라는 게 어떤 자리인지 모르니?”
최현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연대장이라면 대대장 위, 사단장 아래다.
그것 말고 다른 게 있나?
“마왕군에서 직책이란 곧 무력을 나타낸다는 건 알고 있겠지?”
“예.”
“연대장보다 높은 직책은 사단장과 군단장뿐이라는 것도 알지?”“어… 그렇습니다.”
그제야 헤미스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짐작이 갔다.
“더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이 대륙의 모든 인간과 마족을 모아도 너보다 강한 존재는 천을 넘기지 않을 거라는 말이야.”“그렇게나 강한 겁니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륙 전체에 자신보다 강한 자가 천 명도 안 된다니.
이 땅의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그렇게 강할 거라는 생각은 못 해봤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믿기지 않는다.
이곳에서 최현석은 여전히 약자였으니.
평소 붙어 다니는 게 레이드런과 헤미스 같은 괴물 중의 괴물뿐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지. 너는 더 성장할 여지가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칭찬이 아니야. 객관적인 사실을 말한 것뿐.”
갑자기 왜 금칠을 해주는 건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헤미스가 새하얀 손을 내밀었다.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해. 최현석 연대장.”“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군단장님!”
맞잡은 손은 서늘했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시원함이었다.
“아차, 참고로 말해두는 건데. 앞으로 좀 바쁠 예정이야. 내가 없더라도 그러려니 하렴.”
바쁘다는 말에 세 남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헤미스가 바쁘다.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문장이다.
지난 백 년간 그녀의 스케줄이라고는 간혹 있는 군단장 회의뿐이었으니까.
최근에는 이런저런 사건이 있긴 했으나, 바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레이드런이 물었다.
“음, 혼자서 여기저기 다닐 예정이라 말이야. 그동안 부대는 이 친구가 맡아줄 거야.”
헤미스의 입술이 벌어진다.
쩌어어억!
무려 2m 가까이 벌어진 입술.
몇 번을 봤지만 익숙해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철그럭, 철그럭!
입술 안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검은 형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