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11)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11화(111/273)
검은 갑옷이 전신을 뒤덮고 있다.
등에는 거대한 대검이 매달려 있었는데, 서늘한 빛을 내는 것이 한눈에 봐도 명검임을 알 수 있었다.
“모템이라고 해. 최현석은 구면이지?”
검은 갑옷의 정체는 모템.
대대장 토너먼트 깃발 뺏기에서 활약한 자로, 최현석은 이미 한차례 부딪힌 전력이 있었다.
“앞으로 나 대신 군단장 대리를 맡을 거니까 인사해둬.”
레이드런은 모템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걱정이군…’
군단장 대리.
문자 그대로 헤미스가 없는 동안 군단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역할이다.
과연 저 모템이라는 자가 그런 막중한 자리를 맡을 만하나 자격이 있을까?
모템은 헤미스의 권속일 뿐, 마왕군 소속도 아니다.
“군단장님. 괜찮겠습니까?”
레이드런이 물었다.
자신은 상관없으나, 문제는 다른 사단장이다.
모템이 군단장 대리가 된다면 제3군단 예하의 사단장들이 반발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모템에게서 느껴지는 마기가 제법이긴 해도, 사단장급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마기의 총량만 놓고 보면 평균적인 수준.
마왕군은 무력이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집단이다.
낙하산이나 다름없는 그가 다른 사단장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상관없어. 적어도 우리 군단에서 나를 제외하면 모템을 이길 수 있는 놈은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레이드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의아했지만, 헤미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저 모템이라는 자가 무력으로 다른 사단장을 압도한다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모템이 군 업무에 관해서는 잘 모르니 레이드런 네가 잘 도와줘.”
“예.”
초고속 낙하산 인사를 끝낸 헤미스가 손을 휘저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그럼 다들 가봐. 아까 말했지만, 나는 자주 자리를 비울 예정이니 없어도 그러려니 하고.”
“예.”
모두가 고개를 숙인 뒤 집무실을 나섰다.
쿵…!
문이 닫히고, 기묘한 기류가 감돈다.
모템이 최현석 앞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이군. 최현석.”“예! 이것 참 이렇게 또 뵙네요. 하하하하…!”
최현석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레이드런과 로이거는 의아한 표정으로 둘을 지켜봤다.
“지난번에는 고마웠다. 덕분에 즐거웠지.”“하하하…! 제가 장난이 좀 과했는데,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대대장 토너먼트의 두 번째 경기 깃발 뺏기.
당시 최현석은 모템에게 크게 한 방 먹인 뒤 중지를 날린 전력이 있었다.
“만나서 개같았고… 다신 보지 맙시다.”
그때 저런 말을 지껄인 자신을 찾아가 입을 꿰매고 싶은 심정이다.
‘이 멍청이! 뭐하러 입을 놀려서!’
조금 전 헤미스가 말했다.
제3군단에서 헤미스 본인을 제외하면 모템을 이길 자는 없다고.
즉, 모템의 무력이 어지간한 사단장보다 윗줄이라는 뜻이다.
그런 괴물에게 빅엿을 선사했는데 갑자기 상관이 돼서 돌아왔다.
눈앞이 깜깜했다.
상황이 보통 난처한 게 아니었다.
“잠깐 사이 전보다 두 배는 넘게 강해졌군.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는데 말이야.”“아닙니다! 아직 미천한 실력입니다…”
다행히 모템은 그때의 일을 걸고넘어지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최현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동시에 최현석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꽈아아악…!
어깨가 통째로 뜯겨나갈 것 같은 악력이다.
“앞으로 기대하지.”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모템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느껴지는 것은 착각이 아니리라.
마왕군에서 구르기를 한참.
드디어 연대장이 돼서 좀 편해지나 싶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
며칠이 흘렀다.
최현석의 예상과는 다르게 지난 며칠간은 이례적으로 조용했다.
이세계에 온 후로 이렇게 조용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
헤미스는 그녀의 말대로 뭘 하는지 두문불출했고, 최전방임에도 인간은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모템이 유일한 걱정거리였으나, 그도 군단장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서 바빴던 터라 딱히 최현석을 터치하는 일은 없었다.
덕분에 최현석은 남은 시간을 온전히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좋아. 드디어 완성이다.”
그 결과, 마침내 최현석은 신체 변형을 활용한 투기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축하합니다! 새로운 형태의 투기를 완성했습니다!] [보상으로 마기에 의한 신체 변형이 안정됩니다] [투기의 이름을 정하세요. 정식 스킬로 등록됩니다] [용사 퀘스트 완료까지 남은 투기 1/2]시스템 알람을 보는 최현석의 얼굴에 환희가 가득했다.
“용사님 축하드려요! 드디어 성공하셨네요.”“그러게. 아직 용사 퀘스트를 완료하라면 하나 더 남았긴 하지만.”“에이~ 다음 투기는 더 빨리 완성하실 거예요.”
“그렇겠지?”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이번에 투기를 만들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았으니 다음에는 더욱 쉽게 할 수 있으리라.
“이거 투기 이름을 정하라는데 어떡할까?”
최현석이 물었다.
라헬은 팔짱을 낀 채로 그를 유심히 지켜봤다.
전반적으로 최현석의 외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팔뚝에서 기다란 칼날이 튀어나왔다는 것과 머리에 뿔이 자라난 것 정도.
뿔 끝에서는 파지직-! 하는 소음과 함께 간간이 전류가 흘러나왔는데, 최현석이 원할 경우 방출도 가능했다.
기존보다 신체 능력이 조금 더 상승했다는 것도 달리진 점이었다.
이 모든 것은 최현석이 마신 마기 앰플 중 하나인 ‘펄미니엄’이란 마수의 특성을 가져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좋은 이름이 생각났어요!”
“뭔데?”
“칼날 하면 울버린이죠! 이 투기의 이름은 울버린 모드예요!”“그 이름은 쓰면 안 될 것 같은데. 뭔가 이곳저곳에서 시비가 갈릴 것 같달까.”“왜요? 울버린! 북미에 서식하는 곰을 닮은 야생동물이라구요!”
라헬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아무튼 싫어. 그 이름은 안돼.”“그럼 뭘로 할 건데요?”“글쎄… 펄미니엄이라는 마수한테서 온 변형이니까 그냥 펄미니엄 모드라고 하지 뭐.”
최현석이 어깨를 으쓱였다.
라헬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입이 삐쭉 튀어나왔다.
“우우, 그게 뭐예요. 시시하다.”“몰라몰라. 원래 이름은 직관적인 게 중요하다고. 이렇게 정할 거야.”“칫. 어차피 마음대로 할 거면서 뭐하러 물어봤대.”
최현석은 딱히 할 말이 없었던지라 무시했다.
다음부턴 라헬에게 묻지 말고 그냥 정하자고 다짐하면서.
“그나저나 시스템도 이상하네요.”
라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갑자기 뭐가 이상한데?”“그렇잖아요. 분명 용사 시스템에 마기를 활용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구요. 예전에 투기 만들려다가 마기 때문에 용사 포인트 500 날려 먹은 거 기억나지 않으세요?”“아, 분명 그랬지.”
용사 상점에는 투기 생성과 마법 생성이라는 기능이 있다.
최현석은 무려 500 용사 포인트라는 거금을 들여 투기를 생성하려 했으나, 마기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실패한 전력이 있었다.
“용사를 위한 시스템이니 마기에 오류를 일으키는 건 당연하죠. 그런데 지금 용사님 상태창을 보세요.”
“상태창이 왜?”
“능력란에 마기 운용술, 마폭식. 스킬란에는 레이드런식 격투술, 격투술 변형, 플로모트, 노빌레이스까지 죄다 마기를 쓰는 것들이잖아요?”
“어… 그러네.”
“심지어 능력치에 ‘마기’라는 게 떡하니 수치까지 적혀 있다구요. 그러니까 이상한 거죠.”“흠, 확실히 이상하긴 해.”
용사 시스템.
문자 그대로 용사를 위한 시스템이다.
용사가 마기를 사용할 일은 없기에, 시스템에서 마기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최현석의 상태창을 보면 죄다 마기와 관련된 것들 뿐이다.
심지어 이번 용사 퀘스트는 무려 마기를 활용한 투기를 만들게 했으며, 그 보상으로 마기에 의한 신체 변형을 보조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용사 시스템이 아니라 ‘마족
시스템’이나, ‘마왕군 시스템’으로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어쩌면 말이야.”
고민하던 최현석이 입을 뗐다.
“시스템도 진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시스템이 진화요?”
“그래. 네가 말한 적 있잖아. 예전이랑 지금이랑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다고.”
“그랬었죠.”
“그러니까 시스템도 변화한다는 뜻이잖아. 그러면 마기에 맞춰서 진화할 수도 있는 거지.”“으음, 일리가 있어요.”“처음 마기 능력치가 생겨났을 때도 상태창에 물음표(?)로 표시됐다가 한참 뒤에 마기로 바뀌었지. 그것도 아마 진화 과정에서 생긴 일이 아닐까 싶네.”
그럴듯한 설명이었다.
라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가능성은 있어요. 특히나 용사님은 SSS급 잠재력을 지닌 최고의 예비 용사니까요! 신께서 배려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그건 아닐 거야. 신이 진짜 나를 배려했으면 네 목을 먼저 쳤겠지.”
“뭐라고요!?”
“크흠, 농담이지. 농담.”
최현석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상태창 보면서 든 생각인데.”
그의 시선은 상태창 위쪽 칭호에 고정돼 있었다.
▫칭호 : 예비 용사
처음 이세계에 떨어질 때 받은 칭호.
제법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지금껏 신경 쓰지 않았는데, 한번 눈에 들어오고 나니 괜히 심히 거슬렸다.
“이놈의 예비 딱지는 도대체 언제 떼는 거야?”
“예비 딱지요?”
“그래. 칭호가 아직도 예비 용사잖아. 나처럼 훌륭하게 성장하는 용사가 어디 있다고!”“이상하긴 하네요. 원래는 이것보다 훨씬 이전에 예비 딱지를 떼거든요.”
“그래?”
최현석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생각 없이 던져본 말인데, 정말 예비 딱지를 떼다니.
“마왕군 기준으로 치면 대충 대대장? 그 정도 무력이면 보통 예비 딱지는 다 떼죠. 정규 용사가 되면 이런저런 혜택도 주어지거든요.”“잠깐만, 그럼 나는 왜 아직도 예비인데?”
현재 최현석의 레벨은 671.
전투력은 무려 92,870이다.
대대장은 진작 넘어섰고, 연대장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갈 만한 수준.
그런데도 여전히 ‘예비 용사’라는 칭호는 그대로였다.
“너무 손해잖아. 혜택이 있으면 빨리빨리 승급을 시켜줘야지!”“보통은 승급 퀘스트가 떨어져요. 그걸 완수하면 예비 용사에서 정규 용사가 되는 거죠.”
“승급 퀘스트?”
“네. 그냥 용사 퀘스트라 보시면 돼요. 대신 보상이 칭호인 거죠.”
“아하.”
용사 퀘스트로 승급전을 한다.
생각보다 간단한 형식이었다.
“내용은 대충 위험에 처한 마을을 구한다거나. 마족을 처치한다거나 하는 지극히 용사다운 걸로 이뤄지죠.”“그럼 왜 나한테는 그 승급 퀘스트가 안 떨어지는 거야?”“글쎄요. 용사님은 용사답지 않은 행동만 해와서 그런 게 아닐까요?”
“으음…”
부정하고 싶은데 부정할 수가 없다.
지금껏 그의 손에 죽어간 마족보다 인간이 더 많았으니까.
심지어 마왕군의 고위 간부, 연대장까지 된 상황이다.
겉으로만 보면 용사가 아니라 마왕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잠깐만.”
무언가를 고민하던 최현석이 돌연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생각할수록 열 받네?”
“뭐가요?”
“그렇잖아. 누구는 이렇게 살고 싶었어? 나도 싫어!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짓거리를 하는데!?”
그의 언성이 점차 높아진다.
“멋대로 마왕군에 보내고. 용사 퀘스트로 마족
비위나 살살 맞추라고 한 게 누구냐고? 그런데 이제 와서 용사답지 않다고 예비 딱지를 안 떼줘? 뭐 이딴 거지 같은 시스템이 다 있어!?”“요, 용사님, 진정하세요.”
라헬이 만류했으나, 이미 급발진한 최현석은 멈출 줄 몰랐다.
그의 눈깔이 희번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내가 용사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냐? 어!?”“그러니까 잠시…”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시팔!”
최현석이 소리치던 그 순간.
띠링! 하는 익숙한 알람이 울렸다.
★☆★☆ 용사 퀘스트! ★☆★☆
아직도 예비~ 딱지를 떼지 못해 화가 난 당신!
아직 예비~이긴 하지만 누가 뭐래도 당신은 진정한 용사입니다!
그런 당신에게 예비~ 용사가 아닌 정규 용사가 될 기회를 드립니다!
막중한 시련을 돌파하고 예비~ 딱지를 벗어던지세요!
· 목표 : 전투력 92,880 달성· 보상 : 정규 용사 칭호
최현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용사 퀘스트를 살펴봤다.
“이거 아무리 봐도 멕이는 것 같은데.”“갑자기 무슨 말이에요.”“승급 퀘스트가 나왔거든.”
“예? 정말요!?”
“이거 진작 줘야 하는 데 까먹고 있다가 내가 욕하니까 부랴부랴 주는 거 아니야?”“에이~ 용사 퀘스트는 시스템에서 주는 거라구요. 기계나 다름없는 시스템에 그런 기능이 있을 리가 없죠.”“그럼 내 눈앞에 이건 뭔데.”
최현석은 다시 한번 용사 퀘스트를 살펴봤다.
예비~ 용사, 예비~ 딱지, 등등.
예비를 무려 네 번이나 강조하고 심지어 물결무늬까지 있다.
“꼭 에비~ 하면서 놀리는 것 같잖아!”“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피해망상 아닐까요?”“피해망상? 피해망상!? 전투력 고작 10 올리는 걸 목표로 줘놓고 막중한 시련이라 말장난을 하는데, 이게 피해망상처럼 보여!?”
최현석은 다시 한번 퀘스트 목표를 확인했다.
전투력 92,880 달성.
최현석의 현재 전투력이 92,870이니 고작 10만 올리면 된다.
승급 퀘스트라기엔 지나치게 수준이 낮았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나한테 용사 퀘스트를 가지고 장난치는 놈이 있어.”
이 순간, 최현석은 주먹을 꽉 쥐며 다짐했다.
언젠가 모든 게 끝나고 이 용사 시스템 운영자를 만난다면.
“진짜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패고 만다.”
오늘도 신성모독을 일삼는 신의 사도, 용사 최현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