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24)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24화(124/273)
“이번에 한몫 두둑이 챙기죠.”
“네?”
“이런 해충 같은 범죄자들 그대로 두면 안 되지 않습니까? 청소도 할 겸, 여행 자금도 모을 겸. 싹 쓸어버리는 거죠.”
최현석의 제안에 아벨슨은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이내 수긍했다.
“알겠어요…”
최현석의 말대로 이들은 사회를 좀먹는 기생충 같은 존재다.
어쩌면 마족보다 더욱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
세상 모든 범죄자를 잡을 죽일 생각은 아니지만, 눈앞에 보이는 범죄자를 무시하는 것도 그녀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대신 너무 요란해선 안 돼요. 우리는 어디까지나 도망자니까요.”
“물론이죠.”
그렇게 말했던 아벨슨은 지금 서슬 퍼런 기세를 뿜으며 레노프를 노려보고 있었다.
“말하세요.”
“…”
레노프가 떨리는 눈동자를 굴렸다.
자신의 바로 옆에 처박힌 메이스는 벽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
안쪽에 오래된 피와 살점이 끈적하게 말라붙어있는 게 보였다.
“아무리 협박해도 절대…”
아벨슨이 메이스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눈이 살벌하게 빛나는 순간.
“말하겠습니다!”
레노프가 다급히 소리쳤다.
‘진짜 머리통을 깨부술 생각이야!’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저 여자는 진심으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칠 생각이다.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년이야!?’
외모만 보면 예쁘장하게 생긴, 여리여리한 귀족
영애다.
평생 날붙이라고는 구경도 못 했을 것 같은데 메이스에 실린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인간 병기라 불리는 기사와 비견될 만한 완력이었다.
“쳇…”
그때 아벨슨이 작게 혀를 차며 돌아섰다.
‘방금 아쉬워했어!? 내가 봤어! 아쉬워하는 걸 봤다고!’
레노프는 아무나 붙잡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 귀족
영애는 사실 사이코패스라고!
제발 믿어달라고!
그때 치켜보고 있던 최현석이 다가왔다.
“아… 아니. 알리엔 님. 여기부턴 제가 하겠습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벨슨이라고 부를 뻔했다.
그만큼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아벨슨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뜻대로 하세요.”
조금 전까지 메이스로 벽을 부수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차분한 목소리였다.
최현석은 정신을 추스르고 레노프 앞에 섰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협상에 들어갈 때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순순히 불면 너한테도 이득이 있을 거니까.”
“저, 정말입니까?”
“물론이지!”
“저한테는 어떤…?”
레노프의 얼굴에 약간의 기대가 떠올랐다.
최현석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살려는 드릴게.”
레노프는 직감했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들한테 걸려버렸다고.
***
레노프는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이들이 어수룩한 귀족
나부랭이가 아니란 걸 안 이상, 살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쓸모를 어필해야 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최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하자면 이런 거네. 여기 키톤의 영주라는 작자가 범죄조직 뒤를 봐주고. 대신 상납을 받는다.”
“예!”
“네가 속한 조직은 그중에서도 가장 큰 조직이고. 너희를 건들면 돈줄이 끊긴 영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맞습니다!”
레노프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최현석이 아벨슨을 돌아봤다.
“알리엔 님. 이런 영지에 군사력은 어느 정도입니까?”“병사 규모는 영지마다 차이가 심해요. 그래도 예상해 보자면 병사는 수백에서, 많으면 천 이상. 기사는 스물에서 서른 안팎일 거예요.”
최현석이 다시 레노프에게 시선을 돌렸다.
“맞아?”
“맞습니다! 병사는 대략 팔백이고 영지 기사단에 기사가 스물다섯 있습니다!”“그 기사라는 놈들은 얼마나 강한데?”“기사마다 수준이 워낙 천차만별인지라…”
최현석의 눈이 가늘어졌다.
상황이 좋지 않음을 직감한 레노프가 재빨리 다른 정보를 풀었다.
“대신 기사단장 홀크만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습니다!”
“기사단장?”
“예! 영주가 거금을 주고 데려온 늙은이인데, 젊었을 적에는 전장에서 꽤나 이름을 날렸다고 합니다. 소문으로는 마왕군 대대장도 벤 적이 있다고…”“흐음, 그렇단 말이지.”“지금은 늙어서 예전만 못하다지만, 그래도 영지의 기사들 중에는 가장 강합니다!”
최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대충 견적이 나왔다.
‘딱히 어려울 건 없겠네.’
영지에서 가장 강한 인물인 기사단장이 대대장보다 더 강하다.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지만, 말하는 걸로 봐서 영웅급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늙어서 노쇠했다고 하니 지금의 자신이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헤미스가 그런 말을 했었지.’
헤미스는 말했다.
지금 이 대륙의 모든 인간과 마족을 통틀어서 최현석보다 강한 존재는 천 명이 넘지 않을 것이라고.
언뜻 듣기에는 많은 게 아닌가 싶지만, 전체 인구를 생각하면 극소수였다.
수치로 따지면 0.0001% 미만.
그마저도 대부분 전투가 벌어지는 마의 경계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정도면 최현석이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억지로 마주치고 싶어도 마주치기 힘든 수준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일을 조용히 처리하냐는 건데…’
최현석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 그가 하려는 일은 영지를 뒤집어엎는 것에 가깝다.
소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분이 탄로 나지 않게 조심하겠지만, 사건이 커지면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알리엔 님. 잠시…”
최현석은 아벨슨을 데리고 구석으로 이동했다.
“어떻게 할까요? 일이 커질 것 같은데…”
아벨슨이 반대하면 최현석도 무리하게 나설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돈만 챙기고 빠르게 키톤을 벗어나는 정도에서 그칠 것이다.
하지만, 아벨슨의 반응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모조리 죽이죠.”
순간 최현석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예…?”
“흐흠, 흠! 이런 패악질을 일삼는 무리를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응당 벌을 받아야겠죠.”
“그렇죠…”
뭔가 아벨슨의 성격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머리에서 밀어냈다.
일단 결정이 났다면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없다.
망설이지 말고 곧장 움직여야 한다.
“좋아. 일단 돈부터 찾으러 가볼까!”
***
레노프는 한 선술집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가 맞아?”
최현석은 의아한 얼굴로 레노프를 바라봤다.
조직의 근거지로 안내하라 했더니 번듯한 술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여기가 맞습니다!”
“그냥 술집 같은데?”“안에 지하로 내려가는 비밀 통로가 있습니다. 거기가 저희 조직의 본부입니다.”
“아하.”
고개를 끄덕인 최현석이 레노프를 빤히 바라봤다.
“…”
레노프도 가만히 최현석을 응시했다.
10초 정도 시선 교환이 이뤄지고.
최현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하냐.”
“예?”
“앞장서야지?”
“아, 알겠습니다!”
레노프는 울상을 지으며 선술집의 문을 열었다.
‘두고 보자…’
지금은 하는 수 없이 따르지만, 조만간 상황이 바뀌리라.
키톤은 용병의 도시다.
키톤 최대의 범죄조직에도 자연스럽게 용병 길드가 관여돼 있을 수밖에 없다.
‘본부에는 높은 등급의 용병이 상주하고 있다. 이 기사 놈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절대 혼자서 이길 수 없어.’
조직의 규모가 큰 만큼, 본부에 상주하는 인원만 해도 엄청났다.
그중에는 무려 골드 등급에 달하는 용병도 있었다.
뒤에 서 있는 기사가 강하다고 해도 절대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어서 옵쇼.”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바텐더로 보이는 남자가 인사를 건네왔다.
대머리에 근육질인 남성은 레노프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었다.
“오, 레노프 아닌가.”“하하… 오랜만입니다.”“뒤에 계신 분들은 누구지? 손님인가?”
대머리의 물음에 레노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옙. 아주 귀한 분들입니다요.”“귀한 분들이라….”
순간 대머리의 눈이 가늘어진다.
동시에 선술집이 조용해지며 안에 있던 사람들이 시선이 최현석과 아벨슨에게 모였다.
“그렇다면 귀한 손님 대접을 해줘야겠지.”스르릉-!
선술집 곳곳에서 날카로운 날붙이 소리가 들려왔다.
최현석은 피식 웃었다.
“여기는 손님 대접을 칼빵으로 하나?”
“죽여!”
“뭐, 제대로 찾아온 것 같으니 다행이네.”
사방에서 날붙이가 날아들었다.
최현석은 적당히 스텝을 밟으며 공격을 피했다.
솔직히 그냥 맞아도 문제없겠지만, 기분이 나쁠 것 같았다.
후웅!
거대한 도끼를 피함과 동시에 놈의 뒷덜미를 잡아 던진다.
콰앙!
날아간 조직원은 테이블과 의자를 박살 내며 그대로 실신했다.
후웅! 쿠웅!
최현석은 닥치는 대로 조직원을 집어던졌다.
평소처럼 주먹으로 때려눕혀도 괜찮았겠지만, 이렇게 던지는 것도 나름 손맛이 좋았다.
“사, 살려…!”
콰직!
뒤쪽에서 들려오는 살벌한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최현석은 계속해서 조직원을 집어던졌다.
가볍게 던져진 것이라 해도 워낙 압도적인 완력이었기에 중상을 면치 못하리라.
어쩌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고.
최현석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살인을 밥 먹듯이 하는 범죄자들의 인권을 하나하나 챙겨줄 만큼 그의 마음은 너그럽지 않았다.
쿠당탕! 콰앙!
계속해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마침내 홀 안에는 대머리 근육과 레노프만 남게 됐다.
대머리가 뒷걸음질 치며 검을 들이밀었다.
검 끝이 사시나무 떨듯 잘게 떨리고 있었다.
“너 정체가 뭐야!? 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우리가 누군 줄 알고!?”“누구긴 누구야. 범죄자 새끼들이지.”
최현석은 터벅터벅 걸어 대머리에게 다가갔다.
“여기 무슨 지하로 가는 통로가 있다면서? 어디야?”
“그걸 어떻게…?”
순간 대머리가 레노프를 노려봤다.
레노프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레노프! 배신하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나!?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마라! 사지를 뜯어 버릴 거다!”
대머리가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최현석은 가만히 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네가 지금 남 걱정할 때야?”
“…”
“그냥 안내할래? 맞고 안내할래?”“조, 조직을 배신할 수는 없다!”
대머리 근육이 발악하듯 외쳤다.
그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콰직-!
어느새 다가온 아벨슨이 메이스로 대머리의 머리를 부숴버린 것이다.
“알리엔 님…?”
“시간이 없어요. 소란을 길게 끌어서 좋을 건 없죠.”“예… 그게 맞죠…”
아벨슨은 시선을 돌려 레노프를 바라봤다.
“안내하세요.”
“예! 지금 바로 갑니다!”
레노프는 필사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지하 통로로 향해 달려갔다.
***
“발렌. 오늘따라 좀 소란스러운 것 같지 않아?”“내버려 둬. 또 술 처먹고 싸움질이나 하는 거겠지.”
“그런가.”
“도르프. 너는 걱정이 너무 많아. 키톤에서 이곳에 쳐들어올 미친놈이 어디 있겠어?”
“하긴. 그렇지.”
발렌과 도르프는 길드 소속의 용병이었다.
용병에는 총 6개의 등급이 있는데 차례대로 ‘오리하리콘 – 미스릴 – 골드 – 실버 – 아이언 – 코퍼’ 순이다.
발렌과 도르프는 그중에서도 골드 등급으로 전체 용병의 5% 안에 드는 실력자였다.
골드부터는 어지간한 기사와 견줄 만한 실력을 지녔기에 대우 또한 남달랐다.
그런 이들이 어째서 고작 범죄조직 따위의 경비를 서는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수지타산이 맞기 때문이다.
단순히 앉아서 통로를 지키는 것만으로 일반적인 의뢰를 완수하는 것과 같은 돈이 들어오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이 범죄조직은 영주가 뒤를 봐주는 곳이기에 뒤탈도 없었다.
영주 – 범죄조직 – 용병 길드.
모두가 한통속이 돼서 키톤이라는 도시의 고혈을 빨아먹는 것이다.
“발렌 형님. 도르프 형님. 아무래도 나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용병과 범죄자는 의외로 죽이 잘 맞았다.
많은 용병들이 돈만 되면 합법이든 불법이든 일을 가리지 않았던 터라, 세간에서 그들이 인식은 신분이 번듯한 범죄자나 다름없었다.
“무슨 일인데?”
“아까 애들이 단체로 깨졌지 않습니까?”“오! 그 새끼 잡은 거야?”“그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뭐…?”
발렌이 눈을 끔뻑이던 그때.
콰앙-!
문이 박살 나며 조직원이 날아왔다.
뒤이어 등장한 이는 검붉은 계열의 갑옷을 입은 거구의 남자.
최현석이 소리쳤다.
“돈 받으러 왔다!”
수금 전문 용사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