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26)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26화(126/273)
“용사님! 우리 이제 부자예요! 부자!”“아이고! 이게 다 얼마냐!”
라헬이 신이 나서는 방방 뛰어다녔다.
최현석 또한 신이 나기는 마찬가지인지라, 입이 귀에 걸려있다.
그들의 발치에는 수백 개의 은화와 제법 많은 양의 금화가 쌓여 있었다.
“용사님용사님용사님! 저 마카롱
하나만 사주세요!”“마카롱? 아주 그냥 박스로 사다 줄게!”“꺄하! 너무 좋아!”
오랜만에 친밀해 보이는 용사와 전담 요정이다.
둘을 지켜보던 아벨슨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가 아닌 것 같은데…’
현재 일행은 범죄조직 아르켄에서 필요한 것을 모두 챙기고 여관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굳이 여관으로 돌아온 이유는,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놈들의 장부를 상세히 살펴보고, 털어온 돈을 쌓아두려면 거처가 필요했다.
“끄, 끄으…”
그때 옆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여관 주인의 딸로 위장한 여성, 벨이었다.
힘겹게 눈을 뜬 그녀가 부들부들 떨며 팔을 뻗었다.
“나, 나도 마카롱…”
“안돼!”
라헬이 마법으로 벨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커헉!”
신음과 함께 기절한 벨이 바닥에 엎어진다.
“범죄자 따위와 나눌 마카롱은 없다구요!”
“잘했어! 라헬.”
“헤헤!”
최현석이 라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을 때였다.
똑똑-
“레노프. 안에 있나?”
문밖에서 노크와 함께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이봐, 해가 이미 중천이라네. 어서 문을 열지 않고 뭐 하는 건가?”
최현석과 라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둥지둥 뛰어다녔다.
“요, 용사님! 레노프라면 여관 주인 이름이잖아요!?”“일단 여기 기절한 여자를 치우자! 아니, 갑옷부터 갈아입어야 하나? 피가 묻어서…!”“용사님! 도, 돈부터!”“그래! 돈만 챙겨서 튀는 거야!”
최현석과 라헬이 정신없이 돈을 쓸어 담았다.
지켜보는 아벨슨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저들을 용사와 요정이라 할까.
차라리 여관을 털다가 걸린 좀도둑이라는 게 더 설득력 있었다.
“됐으니까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요. 여긴 제가 처리할게요.”
“예?”
“어서요!”
말을 한 아벨슨은 재빨리 문 쪽으로 달려갔다.
‘여기선 내가 나서야 해.’
최현석은 덩치가 크고 갑옷을 입은 터라 눈에 띈다.
그에 반해 아벨슨은 드레스에 피가 많이 튀어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상황.
상대가 일반인이라면 딱히 거리낄 게 없었다.
“들어가겠네.”
때마침 문이 열리고, 중년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집이 붙은 몸에 푸근한 인상을 가진 남자였다.
아벨슨은 그가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막아섰다.
“용사님…! 빨리요…!”“알겠으니까 너도 서둘러…!”
뒤쪽에서는 라헬과 최현석이 부산스럽게 돈을 챙기고, 바닥에 쓰러진 벨을 안쪽으로 옮기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기에 아벨슨은 필사적으로 남자의 시야를 가렸다.
“영업이 끝났다는 팻말을 걸어뒀을 텐데요.”“아아, 보긴 했는데 보통 이 시간에는 문을 열어서 말이야.”
남자가 고개를 내밀어 안쪽을 보려 하자, 아벨슨이 재빨리 차단했다.
“흠흠! 무슨 일이시죠?”“레노프를 만나러 왔는데.”
“없어요.”
“벨은?”
“레노프의 딸을 말하는 거라면, 그녀도 없어요.”
“어디 갔지?”
“여행이요. 어제 떠났어요.”
“아하! 그렇군.”
순간 안쪽에서 기괴한 소음이 들려왔다.
“사, 사알려…!”
퍽!
소리가 나기 무섭게 금방 사라졌으나, 남자는 무안가 이상함을 눈치챈 듯했다.
남자가 눈을 찌푸렸다.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글쎄요.”
“아니, 들었어. 꼭 살려달라 한 것 같은데…”“고양이 소리를 착각하신 거겠죠.”
안쪽에서 타이밍 좋게 고양이 소리가 들려왔다.
“냐, 냐아아앙~ 냐아옹…!”“으음, 고양이였구먼.”
고양이 울음소리라기엔 어색했지만, 남자는 손쉽게 납득했다.
하나, 그게 포기를 뜻하는 건 아니었다.
남자는 상당히 끈질겼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나?”“영업 종료라고 했을 텐데요.”
남자가 문을 강하게 밀었다.
아벨슨 또한 지지 않고 문을 막았다.
애초에 어지간한 기사 수준의 신체 능력을 갖춘 그녀였기에, 완력으로 밀릴 일은 없었다.
“크흠, 차를 마시고 싶어서 말이야. 원래 아침마다 레노프와 차를 마시는 게 습관이거든.”“저는 레노프가 아니라서요. 나중에 그가 돌아오면 부탁하세요.”
“아, 알겠네…”
아벨슨의 냉대에 남자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자네는 누구인가? 이 동네에서 못 보던 친구인데. 새로 왔나?”“레노프의 고향에서 왔어요.”“아하! 그럼 앞으로 자네가 여관을 운영하는 건가?”
남자의 질문 세례는 도저히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벨슨이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지만 이만 가주시겠어요? 새벽 막 도착한 터라 피곤해서요.”“아아, 그렇구먼. 미안하네.”
남자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돌아섰다.
아벨슨이 묻을 닫으려던 그때.
남자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아, 그런데 말이야.”
“…”
“레노프의 고향이 어디였지? 그 친구가 고향 이야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아벨슨이 등 뒤에 숨겨두었던 메이스를 꽉 쥐었다.
“지금은. 좀. 쉬고. 싶네요.”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남자를 노려본다.
당장 떠나지 않으면 곧장 메이스로 머리를 후려칠 기세였다.
남자는 눈치가 없는 건지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레노프의 고향이라. 그와 알게 된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고향에 대해 듣지 못했군. 아, 내 고향으로 말하자면 여기 키톤에서 멀지 않은 레이오른이란 곳인데 다른 왕국과는….”
“알겠어요. 그만!”
“응?”
“제가 레노프를 만나게 해 드리죠.”“레노프는 여행을 떠났다고 하지 않았나?”“사실 레노프는…”
저승으로 여행을 떠났다는 뒷말을 삼키고, 아벨슨이 메이스를 휘두르기 직전!
“아하하하! 여기서 뭐 하십니까?”
최현석이 나타나 아벨슨의 손을 붙잡았다.
그는 잠깐 사이 갑옷을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응? 자네는 누군가?”
남자는 방금 자신이 레노프를 따라 저승 여행을 떠날 뻔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최현석을 바라봤다.
“레노프의 고향 친구입니다.”
“아하! 자네도?”
“예. 죄송하지만 다음에 다시 와주시겠습니까? 저희가 키톤에 이제 막 와서 정신이 없거든요.”
“어어, 잠시만…”
“다음에 와주십쇼! 다음에!”
최현석이 덩치로 밀어붙이자 남자도 결국 밀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알겠네! 그럼 다음에 또 보세!”콰앙-!
최현석은 거칠게 문을 닫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가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 뭔 놈에 수다를 저렇게 떨어?”“진짜 입이 잠시도 쉬지 않네요.”
라헬도 모습을 드러내며 고개를 저었다.
수다 떠는 것이라면 라헬도 제법 일가견 있었으나, 저 남자를 상대로는 힘들 것 같았다.
“슬슬 갔으려나?”
최현석이 살짝 문을 열어 밖을 확인했다.
‘아직도 보고 있어?’
남자는 무언가 미련이 남은 눈으로 여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 메튜! 이게 얼마 만인가! 잘 지냈나!?”
그러다 행인에게 아는 체를 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나는 잘 지냈지! 그나저나 요즘 어떻게 장사는 잘되나? 우리 가게에는 요새 사람이 없어서….”
최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저 수다쟁이가 무언가 냄새를 맡고 온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냥 대화 상대가 필요해서 찾아온 듯했다.
‘저건 또 뭐야?’
그때 최현석의 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병사… 그리고 기사인가?’
갑옷으로 무장한 십여 명의 사람들이 대로를 걷고 있었다.
가장 앞에는 유독 화려한 갑옷을 입은 자가 있었는데, 아마 기사인 듯했다.
‘실력이 제법인데…’
정제된 걸음걸이와 마력만 봐도 그가 상당한 실력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며 걸었는데, 마치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최현석은 본능적으로 저들에게 들켜서 좋을 게 없음을 직감했다.
그 순간.
“오! 홀크만 님 아니십니까!”
아까 수다쟁이 남성이 기사에게 아는 체를 했다.
최현석의 미간이 좁혀졌다.
‘홀크만, 홀크만이면 그 기사단장 이름이었나?’
키톤의 영주가 거금을 두고 데려온 실력자.
그의 이름이 홀크만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많이 늙었네. 분위기 때문에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자세히 보니 남자는 60대는 될 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당한 걸음걸이와 풍채 덕분에 눈치채지 못했었다.
“홀크만 님께서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사건 용의자를 수색 중이네.”“이런!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겁니까? 그렇지 않아도 제가 오늘 마을 분위기기 흉흉하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미안하지만, 공무 중이라 사담은 다음에 나누도록 하지.”“예. 그렇죠. 하하!”
홀크만은 이미 몇 번 당한 전력이 있는지 남자의 수다를 칼같이 끊어냈다.
“자네. 혹시 타지에서 온 이를 본 적이 있나? 금발의 여자라든가. 덩치가 큰 남자라든가….”“아! 레노프의 친구들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레노프의 친구?”
“예! 제가 또 잘 알고 있습죠! 레노프로 말할 것 같으면 5년 전부터 저기 용사의 쉼터라는 여관을 운영하는 친구인데, 아침마다 저랑 차 한 찬 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그런 사이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최현석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하아…”
아까 아벨슨이 머리를 후려치려 했을 때 말리지 말 걸 그랬다.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늦었지만.
‘빨리 여기를 떠야겠어.’
지금은 저 수다쟁이가 홀크만을 붙잡아두고 있지만, 얼마나 갈지 모른다.
벌써 얼굴에 짜증이 올라오는 걸 보니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하리라.
“아벨슨 씨. 바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최현석이 돌아보며 말하던 그때.
“잠깐 기다리게!”
문이 거칠게 열리며 홀크만이 들이닥쳤다.
“이런…!”
최현석은 팔을 들어 올려 자세를 잡고 아벨슨 또한 메이스를 꽉 쥐었다.
당장이라도 전투가 벌어질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 홀크만이 팔을 들어 올리며 싸울 의사가 없음을 표현했다.
“잠깐! 나는 싸우러 여길 온 게 아니야. 자네들에게 대화를 나누고 싶네.”
“대화?”
“정확히는 부탁이라 해야겠군.”
최현석과 아벨슨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홀크만을 바라봤다.
이제 처음 만나는 사이에 부탁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그때 홀크만이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영주를 처리해주게.”
***
최현석이 연신 눈을 끔뻑거렸다.
“방금 뭐라 했습니까?”“키톤의 영주. 페로스 겔리온을 처리해달라 했네.”
최현석은 홀크만을 빤히 바라봤다.
홀크만 또한 지지 않고 진지한 눈빛으로 마주 응시했다.
“진심이십니까?”
“진심이네. 그러니 일단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겠나?”
최현석과 아벨슨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고맙네.”
홀크만 또한 자리에 앉고, 이야기가 시작됐다.
“자네들도 알겠지만, 이 도시는 썩었네. 너무 썩어서 구린내가 도시 전체에 진동할 정도지…”
뒤이어 시작된 이야기는 별다를 게 없었다.
키톤에서 암약하는 범죄조직.
그들의 뒤를 봐주는 영주.
알게 모르게 범죄를 돕는 길드까지.
이미 레노프에게 들었던 것이라 딱히 새로울 건 없었다.
“이런 영주라고 해도, 나의 주군이네. 나는 충성 서약을 한 기사. 모시는 주군을 배신하는 짓을 할 수는 없어.”
홀크만이 비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도시의 시민들이 비탄에 잠겨있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그 또한 기사의 도리가 아니니까.”“그래서 저희가 대신 영주를 처리해 달라는 겁니까?”
“정확하네.”
최현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결과적으로 주군을 배신하는 일 아닙니까?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기사의 서약이라던가 본분을 중요시 여기는 것 같던데.”“밖에서 봤을 때는 배신이 아니니 괜찮네.”
“예?”
“나는 무능하게 주군을 지키지 못했을지언정 배신한 건 아니지 않은가? 이 대화는 우리만 알고 있을 테니. 하하하!”
홀크만은 걱정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최현석은 묘한 기시감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노인네… 나사가 좀 풀린 것 같은데.’
어쨌거나 지금 최현석에게는 나쁠 게 없는 제안이었다.
고민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처리하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죽이는 겁니까?”“그렇다네. 방법은 상관없이 최대한 빠르게 영주를 죽이기만 하면 되네. 그렇다면 이 도시에서 자네들이 한 일도 조용히 덮어주지.”
“으음…”
최현석과 아벨슨이 서로를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는 모습.
“부탁이네. 키톤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가고 있어! 오직 자네들만이 키톤을 구할 수 있네!”
홀크만의 재차 부탁하던 그때.
띠링!
시스템 알람이 들려왔다.
★☆★☆ 용사 퀘스트! ★☆★☆
드디어 당신에게도 용사다운 일을 할 때가 왔군요!
악덕 영주를 처치하고 비탄에 잠긴 키톤을 구하세요!
다만, 이건 명심하셔야 합니다.
악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 목표 : 영주 페로스 겔리온 처치· 추가 목표 : 키톤에서 암약하는 악의 축을 제거· 보상 : 대량의 경험치 및 용사 포인트 1,000
용사 퀘스트를 확인한 최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받아들이죠.”
생각해보면 어차피 하려던 일이었다.
지금까지 조금 더 부드러운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으나,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매듭짓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어디 영주라는 놈의 상판을 보러 가봅시다.”
하루 정도는 이세계의 협객이 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진짜 용사답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