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27)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27화(127/273)
페로스 겔리온.
키톤의 영주인 그는 오늘도 진수성찬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실오라기만 걸친 미모의 여성들이 그의 곁에서 술을 따랐다.
“영주님~ 여기 한 잔 받으세요.”
“크흠!”
페로스가 떨떠름한 얼굴로 잔을 들었다.
평소라면 호탕하게 웃으며 연신 술을 들이켰겠으나,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목에 가시라도 걸린 것처럼 찝찝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음식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군! 여봐라!”
“예. 영주님.”
“이딴 쓰레기들은 치워버리고 다른 것을 내와라. 어서!”
“알겠습니다.”
영주 페로스가 신경질적으로 음식을 패대기쳤다.
원래 남은 음식은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페로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순전히 화풀이였다.
다만, 그가 모르는 것은 이렇게 바닥에 떨어진 음식이라도 하인들은 허겁지겁 달려들어 먹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종장! 깁슨 시종장은 어디 있나!?”
“부르셨습니까.”
페로스의 부름에 대기하고 있던 시종장, 깁슨이 달려왔다.
“홀크만 경에게서 연락은 없었는가?”“아직 놈들을 수색하는 중입니다.”
“아직도?”
“예. 홀크만 경이 복귀하는 대로 곧장 보고드리겠습니다.”
“에잉… 쯧쯧.”
페로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혀를 찼다.
“홀크만 경이 직접 나선다고 해서 기대했거늘, 아직까지도 성과가 없다니.”“조금만 기다리시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영주님.”“좋은 소식? 그 아르켄 새끼가 여기저기 찌르는 뇌물이 얼마나 되는지 아나? 관리하고 있는 자산은!?”
“…”
“내가 중앙으로 돌아가려면 꼭 필요한 놈이었다. 그런 놈이 하루아침에 대가리가 터져 뒤졌다고!”
페로스가 잔뜩 흥분한 채로 볼살을 푸들거렸다.
그가 이토록 화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르켄이 단순한 수금원이 아닌, 자금세탁과 로비의 일도 함께했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까지 이딴 변방에 머물러야 하냔 말일세!”
비교적 마의 경계와 가까이 있는 키톤은 변방이라고는 해도 제법 큰 도시였다.
용병의 도시라 불리는 만큼 자금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부릴 수 있는 병력의 수준도 높다.
일종의 변경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페로스는 만족하지 않았다.
원래 수도에서 생활했던 그는 이런 변방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후우… 아버지도 무심하시지! 가문의 장남인 나를 이딴 냄새 나는 곳에 처박아 두다니!”
페로스 겔리온.
도미스 왕국에서 제법 이름 높은 ‘겔리온 가문’의 장남인 그가 키톤의 영주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무능한 쓰레기 같은 놈.”
그는 겔리온의 가주에 의해 좌천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페로스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중앙으로 복귀하기 위해 아르켄 조직을 이용해 여기저기 뇌물을 찌르는 중이었다.
“적어도 놈들이 지니고 있던 자금과 장부만큼은 회수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페로스가 소리치던 그때.
기다리던 보고가 들려왔다.
“홀크만 경이 복귀했습니다!”“오오! 어서 들라 하라!”
이미 야심한 밤이었으나, 페로스에게는 기다릴 만한 인내심이 없었다.
잠시 후, 홀크만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흘깃 식당을 둘러본 그가 눈살을 찌푸렸으나, 아주 찰나였기에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영주님을 뵙습니다.”“그깟 예법은 됐소! 홀크만 경. 나섰던 일은 어떻게 됐나!?”“아직 수색 중입니다.”
“뭐라?”
페로스의 얼굴이 구겨지자, 홀크만이 다급히 말을 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놈들이 키톤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고, 영지 수색도 대부분 끝나 남은 곳은 몇 군데뿐입니다. 포위망을 점차 좁혀가고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이보게 홀크만 경.”
페로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경이 한 달에 받는 돈이 얼마인지는 아시오?”
“….”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는 아시오?”
“….”
“왜 대답이 없소?”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 이리 행동한단 말인가!”
페로스가 벌떡 일어났다.
붉게 물든 얼굴로 발악하듯 소치는 그 모습은 당장 혈압으로 뒷목을 부여잡아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당장! 당장 놈들을 찾아 내 앞으로 끌고 오란 말입니다!”
“예!”
홀크만은 고개를 숙이고는 재빨리 식당을 떠나갔다.
페로스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으…! 평민 출신의 늙은이를 기사단장에 앉히다니. 나도 미쳤지 미쳤어! 이래서 천하고 늙은것들이랑은 상종을 하면 안 돼! 책임감도! 품위도! 능력도! 아무것도 없어! 그렇지 않은가!? 시종장!”“맞습니다. 영주님.”
시종장 깁슨은 연신 손바닥을 비비며 고개를 숙였다.
그게 시종장으로서 그가 하는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
같은 시각.
최현석과 아벨슨은 한 민가에서 작전회의를 하고 있었다.
여관에 계속 있기에는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였기에, 홀크만이 마련해준 안전가옥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었다.
“영주를 죽이는 게 맞겠죠?”
최현석이 운을 뗐다.
듣고 있던 라헬과 아벨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죠. 그런 자는 갱생이 불가능해요.”“용사님! 아까 목록 못 보셨어요? 그런 파렴치한을 살려두면 신께서도 노하실 거라구요!”
홀크만은 그동안 영주 페로스가 저지른 패악질을 정리한 서류를 건네주었다.
그곳에는 한 사람이 이만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건가 의심이 될 정도 많은 쓰레기 짓들이 정리돼 있었다.
“아니, 그 영주가 죽을 놈인 건 당연하지. 내가 걱정하는 건 다른 부분이야.”
“어떤 거요?”
“영주가 죽으면 여기는 누가 관리하는데?”
최현석의 물음에 답한 건 아벨슨이었다.
“보통은 영주의 자식이 뒤를 잊지만, 이곳 영주에게 자식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요.”“예. 마찬가지입니다.”“그렇다면 둘 중 하나죠.”“겔리온 가문에서 다른 사람을 보내 관리하거나, 아니면 도미스 왕국 왕실에서 새로운 영주를 임명하거나. 저는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아무튼, 다른 높으신 양반이 내려와서 대장 행세를 한다는 거군요.”
아벨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현석의 묻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만한 도시에 귀족
관리자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됐으니까.
“흐음….”
최현석은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턱을 잡고 생각에 빠졌다.
“용사님. 무슨 문제 있어요?”“내가 말해준 용사 퀘스트 내용 기억나지?”
“물론이죠.”
“거기에 추가 목표가 있었잖아.”
최현석은 다시 한번 용사 퀘스트를 확인했다.
악덕 영주를 처치하고 비탄에 잠긴 키톤을 구하세요!
다만, 이건 명심하셔야 합니다.
악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 목표 : 영주 페로스 겔리온 처치· 추가 목표 : 키톤에서 암약하는 악의 축을 제거
“악은 어디에나 있다. 키톤에서 암약하는 악의 축을 제거하라.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아?”“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영주 페로스 겔리온을 처치하는 게 핵심 목표인 건 맞았다.
그러나 추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뭔가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최현석은 결정을 내렸다.
“내일 홀크만이라는 노인네를 다시 만나봐야겠어.”
***
다음날.
최현석은 굳이 홀크만을 찾으러 갈 필요가 없었다.
홀크만이 먼저 꼭두새벽에 찾아온 것이다.
최현석은 보보를 껴안은 채로 태평하게 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홀크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뭣들 하는 건가!?”
“으음, 무슨 일입니까?”“어서 영주 놈의 목을 잘라야지! 여기서 평생 눌러앉을 생각인가?”
최현석이 하품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하암~ 저도 계획이라는 걸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계획은 무슨 계획!? 내가 말하지 않았나! 저택에서 기사들을 빼내 줄 테니 자네는 그냥 빈집에 들어가서 영주의 멱을 따기만 하면 돼! 자네 실력이라면 누워서 죽 먹기란 말일세!”“에이~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기사는 없지만, 병사가 제법 많고. 정체도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 하고. 아무튼, 신경 쓸 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최현석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홀크만은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눈앞에 있는 남자의 머리통을 부숴버릴 것 같았으니까.
겨우 화를 가라앉힌 그가 물었다.
“그럼 언제 일을 치를 생각인가.”“늦어도 이틀 내로 처리할 예정이니 걱정하지 마십쇼. 예.”
“그래… 알겠다.”
홀크만이 집을 나가려 하자, 최현석이 다시 불렀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가.”
“이 도시에서 제일 잘 나가는 사람이 영주가 맞습니까?”“당연한 걸 묻는군.”“그럼 두 번째는 누굽니까?”
“두 번째?”
“예. 영주 다음으로 잘나가는 놈이요.”
홀크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흠, 아마 용병 길드의 길드장이겠군.”
“세 번째는요?”
계속되는 물음에 홀크만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언제까지 물을 생각인가?”“세 번째가 마지막이에요.”“후우, 아마 자네가 죽인 아르켄 조직의 두목, 아르켄이겠지.”“이미 죽은 놈은 제외해야죠. 그놈 다음은 누구예요?”“다음은 딱히 없네. 다 고만고만하거든. 그 셋이 키톤을 지배하는 실질적인 권력자들이었지.”“흐음, 알겠습니다.”
최현석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홀크만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 설마 용병 길드장까지 처리할 생각인가?”“안될 거 있습니까?”“괜히 일을 키우지 말게. 용병 길드장을 건드는 건 가문에서 버려진 머저리 귀족을 치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 자칫 잘못하면 용병 길드 전체가 일어날 수 있어.”“기사의 본분이 어쩌고 하시던 분치고는 현실적인 답변이네요.”“나는 낭만주의자가 아닐세. 현실성 없는 계획은 그저 헛된 이상일 뿐이야.”“예예. 알겠습니다.”
홀크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지금 아쉬운 건 그였다.
하는 수 없이 집을 나서며 홀크만이 말했다.
“최대한 빨리 일을 치르게. 너무 늦어져 영주가 의심하기 전에.”
그 말을 끝으로 홀크만이 떠나고.
최현석은 턱을 괸 채로 그가 나간 문을 바라봤다.
“저 노인네. 아무리 봐도 수상하단 말이지.”
“뭐가요?”
“딱 집어서 설명하진 못하겠는데, 묘하게 불쾌하달까.”“그것참 용사다운 발언이네요.”“아무튼, 마음에 안 들어. 내 감이 말하고 있다니까. 저 노인네도 뒤가 구리다고.”“감이 안 좋다고 사람을 죽일 수는 없잖아요?”“당연하지. 내가 무슨 싸이코패스냐. 아무나 죽이고 다니게.”
라헬이 최현석을 지그시 바라봤다.
“뭔데. 그 불경한 눈빛은?”“아무것도 아니에요.”“아무튼, 정보가 더 필요해. 단순히 영주 목만 따는 걸로는 성에 안 찬단 말이지.”
영주 페로스 겔리온을 처치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홀크만이 돕지 않더라도 충분히 가능했다.
뒷수습이 조금 귀찮아지긴 하겠지만, 어쨌든 영주 멱을 따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현석은 그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 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미 타락한 도시에서 영주가 바뀐다고 한들 뭐가 달라질까.
짐작건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자리잡힌 체계는 설사 새로운 영주가 괜찮은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 또한 타락시킬 게 뻔했으니까.
“이왕 하는 거 아주 뿌리를 뽑아야겠지.”
최현석은 제대로 한번 엎어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