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28)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28화(128/273)
쨍그랑-!
유리잔이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음이 일었다.
하인은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파편이 튄 것인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모두 고개를 숙인 채 눈치를 보기 바빴다.
유리잔을 던진 이가 바로 키톤의 영주, 페로스 겔리온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뭐가 어떻게 되고 있냔 말이다!”
페로스가 이토록 날뛰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영지에서 일어난 믿지 못할 사건.
분노하다 못해 황당함을 느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일 때문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자금원 절반이 날아가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냐!?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란 말이다!”
‘자금원’이란 ‘범죄조직’을 돌려 말하는 것이다.
페로스의 말대로 키톤은 때아닌 범죄와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고작 하루.
하룻밤 사이에 키톤의 범죄조직 3분의 1이 날아갔다.
그것도 단순 범죄조직이 아닌, 영주와 직간접적으로 끈을 가지고 있던 일종의 자금줄.
그렇지 않아도 최대 조직인 아르켄이 무너지며 예민해져 있던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 페로스는 미칠 지경이었다.
“이게 고작 두 놈이서 한 일이라고? 말이 된다 생각하나!?”“… 아무래도 놈들을 지원하는 세력이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시종장 깁슨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어디냐! 도대체 어디 놈들이 움직이고 있는 거야! 노폴트? 블로어? 아데나타? 아니면 타국의 침략이냐!?”“다른 영지나 타국은 아닐 겁니다. 그들이 범죄조직을 소탕해서 얻을 이득이 없습니다.”“그렇다면 뭐냐? 남은 건 마족뿐인데, 어느 할 일 없는 마족이 영웅 행세라도 한다는 말이냐!?”
“…”
“입이 있으면 말을 해!”
시종장 깁슨은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시종장을 노려보던 페로스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홀크만! 기사단장 홀크만 경은 어디 있나?”
“대기 중입니다.”
“대기? 대기이!? 이 시국에 처박혀서 뭘 하는 거야! 당장 들라 해라!”
페로스의 명이 떨어지고 몇 분 지나지 않아 홀크만이 들어왔다.
“홀크만 경.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오!? 다 잡았다던 놈들이 어째서 이렇게 설치고 다니냔 말이오!”“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시간? 놈들이 밤새도록 자금원을 털러 다니는 동안 뭘 하셨소? 그 귀중한 시간을 도대체 어디 썼냔 말이오!”
페로스의 목에 핏대가 서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러다 정말 최현석이 나서기 전에 혈압으로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그렇게 닥치고 있으면 일이 해결됩니까? 말을 하세요! 말을!”
“죄송합니다…”
홀크만이 할 수 있는 건 고개를 숙이는 것뿐이었다.
사실 이곳에서 제일 당황한 건 홀크만 본인이다.
‘영주 멱을 따라 했더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자고 일어났더니 영지의 범죄조직 3분의 1이 날아가다니.
홀크만이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범죄조직 소탕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아니, 오히려 범죄조직을 살리고 싶어 한다.
‘나중에 허수아비 영주를 앉히고 돈을 벌려면 음지의 조직은 필수다. 그런 놈들을 뿌리 뽑아서 어쩌겠다는 거야!’
차후 자신의 배를 채워줄 귀중한 돈줄이 죽어 나가고 있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당장… 당장 나가서 놈들을 잡아들이세요.”
“예.”
“경이 말한 그 시간. 딱 하루 더 주겠소.”“명심하겠습니다.”
서둘러 달려가는 홀크만의 뒷모습을 보며 페로스가 이를 꽉 깨물었다.
“내가 들인 돈이 얼마인데. 무능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페로스는 이번 일이 끝나면 홀크만을 끝장내리라 다짐했다.
더 젊고 유능한 자를 데려와 기사단장에 앉힐 것이다.
“후우, 이럴 때가 아니지.”
호흡을 가다듬은 페로스가 시종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깁슨. 지금 당장 용병 길드에 연락을 넣어라.”“용병 길드에 말입니까?”“그래. 길드장을 만나야겠다.”
무능한 홀크만만 믿고 가만히 기다릴 수는 없다.
무언가 다른 수를 강구해야겠다.
‘돈이 들겠지만… 용병들이 나선다면 확실하겠지.’
키톤 영지의 최대 전력인 용병 길드.
그들이 나선다면 홀크만 같은 늙은이보다 훨씬 빠르게 놈들을 잡을 것이다.
그런 만큼 비용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돈은 언제든지 모을 수 있다.
이번 일만 정리되면 세금을 올리고 다시 범죄조직을 키울 것이다.
전보다 더 큰 규모로!
그러면 돈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벌 수 있다.
“당장은 놈들을 잡는 게 우선이다.”
페로스가 번뜩이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곱게 죽을 거라 생각지 마라…”
독이 잔뜩 오른 페로스의 얼굴은 꼭 독두꺼비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
“이야~ 이놈들 많이도 꿍쳐뒀네.”
최현석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하룻밤 사이 범죄조직을 쓸어버리며 모은 돈이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용사님! 우리 이러다 진짜 떼부자 되겠어요!”“크흐흐! 부자다 부자!”“용사님용사님! 마카롱은 언제 사주실 거예요!?”“조금만 기다려! 마카롱으로 만들어진 집을 사줄 테니까!”“끼핫! 용사님 최고!”
최현석과 라헬은 유례없이 신나 있었다.
마왕군을 벗어난 후, 직업 만족도가 정점을 찍는 용사와 전담 요정이었다.
“크화아악! 콰학!”
“보보야. 천천히 먹어. 그러다 탈 난다.”
“크왕!”
신이 난 건 보보도 마찬가지였다.
범죄조직을 털며 원 없이 배를 채운 덕에 하루 만에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꺼억!”
트림을 하자 새하얀 두개골이 튕겨 나갔다.
도르르르르…
바닥을 굴러가는 두개골이 한 여성의 발치에서 멈췄다.
두개골을 내려다보는 여성의 눈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이건 아니야…”
그녀의 정체는 벨.
처음 용사의 쉼터 여관에서 주인의 딸로 위장했던 여성이다.
최현석에게 맞아 빈사 상태로 쓰러졌던 그녀는 아벨슨의 치유로 다시 멀쩡해진 상태였다.
물론, 완치된 것은 겉모습일 뿐.
벨의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도 피폐해져 있었다.
“미, 미친놈들… 이놈들은 미쳤어… 미쳤다고…”
벨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만큼 지난밤 동안 그녀가 본 광경은 충격적인 것들이었다.
“제, 제발… 살려줘!”“너는 살려달라 비는 사람을 살려줬나?”
“그건…”
“원망하지 마. 원래 세상이 그런 거야 인마.”
콰직!
또 한 명이 죽어 나간다.
고작 주먹질에 머리가 으깨지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적응하기 힘든 것이었다.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 꿈인가? – 하는 착각이 일 정도로 말이다.
“여기도 슬슬 정리가 끝나는 것 같은데 이동할까.”
이 모든 사건을 일으키는 주범, 용사 최현석은 아무렇지 않았다.
단련된 그의 멘탈과 비위는 내장이 흘러나오는 고어 영화를 시청하며 맛있게 곱창 먹방을 할 수 있을 정도.
고작 범죄조직에서 좀 구른 것 정도로는 절대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른 멘탈이었다.
애초에 동료가 죽으면 그날 저녁 식사로 만드는 집단에서 있었는데, 뭘 더 말할 게 있을까.
“용사님. 이제 놈들이 따라붙지 않겠어요?”“으음, 그러려나. 아직 아침이니까 한탕 정도는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데.”“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라구요.”“하긴, 이제 아벨슨 씨도 피곤할 때가 되긴 했으니…”
최현석의 말에 아벨슨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예? 괜찮으십니까? 그래도 밤새도록 뛰어다녔는데…”“컨디션은 최고예요.”
아벨슨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메이스를 들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짓는 미소라기엔 너무 눈부신 미소였다.
“으음, 일단 돈부터 챙기자. 나가면서 한탕 더 뛸지 말지 정하자고.”
“네!”
최현석과 라헬이 여기저기 흩어진 돈을 챙겼다.
“벨!”
“네, 네!?”
“용병 길드 쪽에 사람 넣어두란 건 어떻게 됐어?”
돌연 최현석이 벨을 불렀다.
벨은 어릴 때부터 범죄조직에 몸담은 여성이었다.
덕분에 이 도시의 음지가 어떻게 돌아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최현석이 단기간에 영주와 끈이 있는 조직만 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벨의 도움 덕분.
그런 벨에게 최현석은 새로운 주문을 하나 했다.
용병 길드에 정보원을 심으라는 것이다.
“성공했어요…”
“오, 그 짧은 시간에? 능력자였네.”“워낙 액수가 컸으니까요…”
벨은 솔직하게 답했다.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최현석이 건네준 돈이 너무 많았다.
고작 용병 길드의 동향을 알아보는 데 금화 스무 개를 뿌리니 어찌 실패할 수 있을까.
“역시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 최고야!”
최현석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동안 이세계를 겪으며 최현석은 몇 가지 깨달은 바가 있었다.
마왕군에서는 주먹이면 안 되는 게 없고.
인간 사회에서는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
어디든 사람 사는 세상 다 똑같다는 건지.
‘돈이면 다 된다!’ – 라는 진리가 지구나 이세계나 마찬가지라는 게 우스우면서도 씁쓸했다.
“다 챙겼으면 얼른 뜨자.”
마침내 돈을 다 챙긴 일행이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그 순간, 한 무리의 경비병이 일행과 마주쳤다.
“저놈들이다! 잡아라!”
최현석은 냅다 돌아서 달렸다.
“튀어! 경비는 죽이면 안 돼!”“에잇! 이거나 먹어라!”
라헬이 바닥에 얼음을 뿌렸다.
“어어? 이게 왜 이래!?”
“아이쿠!”
다급히 쫓아오던 경비들이 미끄러져 넘어진다.
그 모습을 보며 라헬이 방방 뛰어다녔다.
“끼힛! 용사님! 너무 재미있어요!”“됐으니까 빨리 오기나 해!”
겉으로는 다그치는 듯하지만. 용사의 얼굴에는 전담 요정과 같은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거리는 스산했다.
대로 곳곳에 무장한 병사가 눈에 불을 켠 채로 주변을 감시한다.
주민들은 혹시나 불똥이 튈까 싶어 잔뜩 몸을 움츠렸다.
심지어 늘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니는 용병들조차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 정도.
그 덕에 거리는 고요했지만, 그것은 마치 폭풍전야와도 같은 고요함이다.
팽팽한 긴장감이 키톤을 뒤덮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군…”
용병 길드의 길드장, 몰드베는 미간을 잔뜩 좁힌 채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벌인 거지?”
몰드베 또한 키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음지에서 일하는 범죄자라고는 하나, 하루 만에 수백이 넘게 죽거나 다쳤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피해자(?) 중에는 길드 소속 용병도 다수 존재했다.
“길드원들이 몇이나 당했나.”“총 스물여덟입니다. 골드가 셋. 실버가 일곱. 아이언이 열여덟입니다.”
“후우…”
몰드베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언이야 얼마나 죽든 상관없지만, 골드와 실버가 죽은 건 굉장히 뼈아픈 손실이다.
실버가 되는 기준 중 하나는 마력을 다룰 줄 아는가.
즉, 기사가 되는 조건과 같았다.
실버가 기사의 문턱을 넘는 것이라면, 골드는 완전히 기사나 다름없는 무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 귀중한 자원이 무려 열 명이나 죽었다.
“영주…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몰드베는 이번 사건을 영주 페로스가 벌인 것이라 생각했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당연한 추리였다.
이 영지에서 그 말고는 이만한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도시의 경비는 멀쩡하다지?”“예. 몇몇이 다친 것 같기는 한데, 죽은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이 난리 통에 도시의 경비병이 단 하나도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혹을 증가시켰다.
‘영주가 외부의 세력을 이용해 키톤을 정리하고 있다.’
키톤과 한 몸이나 다름없이 자란 범죄조직을, 이제 와서 썩은 부위라며 도려내는 짓거리를 한다.
그것도 외부의 칼잡이를 고용해서 말이다.
이건 제 목에 목줄을 차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솔직히 몰드베야 영주가 어찌 되든 신경 쓰지 않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영주가 도려내려 하는 썩은 부위 안에는 용병 길드 또한 포함된 것 같았으니까.
“영주가 정녕 미친 건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것일까.
감히 용병 길드를 건드리다니.
어지간한 거대 귀족
가문, 대영지의 영주도 용병 길드는 건드리지 않는다.
각 도시의 용병 길드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고 거대한 연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규모는 범국가적인 것을 넘어 타국까지 뻗어나가기에, 용병 길드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건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고작 키톤의 영주 따위가 그 룰을 부수려 하고 있었다.
“길드장님. 영주가 사람을 보냈습니다.”
“뭐?”
“길드장님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답니다.”
몰드베가 피식 웃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니면 이제 와서 사죄를 구하려 하거나.
어쨌든 간에 몰드베는 다짐했다.
이번 기회에 영주 페로스에게서 한몫 단단히 챙기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