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ll Heroes From Earth Are Bad RAW novel - Chapter (13)
세상에 나쁜 용사는 없다-13화(13/273)
최현석은 조리병들과 함께 성을 빠져나왔다.
목적지는 제3군단 본부 뒤쪽에 위치한 거대한 숲이었다.
“보보는 괜찮으려나…”
현재 보보는 조리장에 남겨져 있었다.
조리장 쿨칸이 보보와 함께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보보 님은 함께할 수 없다.”“예? 이유가 뭡니까?”“보보 님이 가면 마수들이 도망쳐서 사냥을 할 수가 없거든.”
최현석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까라면 깔 수밖에.
‘보보야. 사고 치지 말고 있어 줘. 제발…!’
혹시라도 보보가 다치거나 하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미 보보와 최현석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황에서 보보를 건들 미친놈은 없다.
다만 보보가 어디 가서 마왕군 간부를 잡아먹지 않을는지…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그나저나 어디까지 가는 거지?’
최현석이 주위를 살펴봤다.
제법 우거진 숲이다.
성을 나오고 삼십 분은 걸은 것 같은데 여전히 목적지는 아직인 것 같았다.
그 순간 최현석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잠깐만… 이거 잘하면 도망칠 수 있는 거 아니야?’
상황이 그렇다.
몸을 숨기기 좋은 숲속.
이곳에는 방해꾼이 없다.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입술 괴물도.
기사를 주먹 한 방에 피떡으로 만드는 소대가리도.
우락부락한 마왕군을 간식 취급하는 초대형견도 없는 것이다.
덩치가 크고 조금 멍청해 보이는 조리병들이 있긴 하지만.
지금껏 맞서 왔던 위협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마왕군을 탈출할 절호의 기회! 역시 하늘은 날 버리지 않았어!’
일단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만 생각한다.
그런 뒤에 라헬에게 조언을 구해 인간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분명 그 길은 험난하겠지만, 상관없다.
이딴 정신 나간 마왕군에 처박혀 있는 것에 비하면 그게 100배는 더 안전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바로 움직이자.
최현석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때 한 조리병이 소리쳤다.
“전방에 보일더입니다!”‘보일더? 그게 뭐야?’
최현석의 의문은 금세 해결됐다.
“퀴에에에엑!”
멧돼지와 비슷한 외형.
다른 점이 있다면 덩치가 어지간한 코끼리만큼 크다는 점이다.
‘미친… 지금 저걸 잡겠다고?’
일반 멧돼지도 제대로 들이받으면 사망에 이를 만큼 강력하다.
그런데 저 보일더라는 마수는 무려 코끼리만 한 덩치를 지녔다.
‘부딪치는 순간 뼈도 못 추린다.’
정확히는 피곤죽이 될 것이다.
저런 놈이 들이받으면 몸이 납작만두로 변해버릴 게 뻔했으니까.
하지만 조리병들은 용감했다.
“오늘 저녁 식사다!”
“썰어버려!”
“와아아아아!”
거대한 식칼을 든 조리병들이 함성과 함께 보일더에게 달려들었다.
“쿠르륵, 푸흐응!”
보일더가 크게 콧김을 내뿜더니 조리병들을 향해 마주 달려온다.
쿠궁! 쿠궁! 쿠궁!
보일더가 땅을 디딜 때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멈춰라!”
그때 한 조리병이 용맹하게 보일더의 앞을 막아섰다.
‘오호… 뭔가 보여주는 건가.’
최현석은 눈을 빛냈다.
집채만 한 멧돼지를 단신으로 막아서다니.
미친 게 아니고서야 그럴 수는 없다.
최현석은 용맹한 조리병이 레이드런처럼 무언가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쿠웅!
“끄아아아악!”
조리병이 하늘을 날았다.
짧은 단말마를 끝으로 생을 마감한 듯 보였다.
“저놈이 모르곤을 죽였다!”“모르곤의 복수를 하자!”
“우아아아아!”
조리병들이 함성과 함께 보일더를 향해 달려든다.
모습은 마치 불구덩이를 향해 뛰어드는 나방처럼 보였다.
최현석이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었다.
“하아…”
그의 기대처럼 조리병들은 무언가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대책 없이 멍청할 뿐.
쿠웅!
“끄억!”
보일더의 앞발에 머리통이 짓이겨지고.
쿠웅!
“껙!”
뒷발차기에 피곤죽이 되어 하늘을 난다.
‘이게 무슨 지랄이야…’
최현석의 눈알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자신은 그저 조리장에 식재료를 구하러 온 것뿐이다.
절대 자살 특공대에 입단하러 온 게 아니란 말이다.
조리장이 이딴 또라이 집합소인 줄 알았으면 근처에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 뭘 하고 있나?”
그때 처음 만났던 조리장 쿨칸이 다가왔다.
“예?”
“구경만 하다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갈 거다. 봐라. 벌써 첫 사냥이 끝났군.”
쿨칸의 말처럼 어느새 보일더는 쓰러져 있었다.
‘뭐야…? 그새 잡았어…?’
처음 봤을 때는 사냥에 실패하고 전멸할 줄 알았다.
그런데 조리병들은 빠르게 보일더를 사냥했다.
생각보다 그들의 능력이 제법인 듯했다.
“쿨칸 조리장님! 사냥이 끝났습니다!”
“피해는?”
“사망 열둘입니다.”
부상자는 없었다.
공격에 받는 순간 즉사였으니까.
“좋아. 훌륭하군!”
제법 많은 병사가 죽었으나, 쿨칸은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사체를 잘 수습해라. 동료의 죽음을 헛되이 만들어서는 안 되지.”
“예.”
조리병이 뒷정리를 위해 떠나고.
쿨칸이 최현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인간. 고기를 가져가고 싶다면 좀 더 노력하는 게 좋을 거다.”
“예…”
앞으로의 여정이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다.
***
전투 후 잠깐의 정비 시간.
최현석은 볼일을 본다 말하고는 으슥한 곳으로 이동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라헬이 허공에서 뿅! 하고 나타났다.
“용사님용사님용사님!”
등장하자마자 정신없이 짖어대는 라헬이었다.
“왜 또 호들갑이야.”“호들갑 안 떨게 생겼어요!? 이제 어떡할 거예요?”“어떡하긴… 사냥해야지.”
최현석의 말에 라헬이 기겁했다.
“미쳤어요!? 저 무지막지한 마수를 잡겠다고요? 절대절대절대 무리예요!”“그럼 뭐 도망이라도 칠까? 장담하는데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육회 맛집으로 소문날걸.”
탈출 생각은 깔끔히 접었다.
혼자서 이 숲을 빠져나가려면 목숨이 10개라도 모자랄 테니까.
“차라리 잘됐어.”
“잘됐다니요?”
“어차피 한 달 뒤에 결투를 하려면 지금 상태로는 무리야. 그전에 실력과 레벨을 올려둘 필요가 있단 말이지. 겸사겸사 식재료도 구하고.”“하지만 레벨이 올라가는 것보다 육회 맛집이 되는 게 먼저일 것 같은데요.”“그건 생각해둔 방법이 있지.”
최현석이 그답지 않게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라헬. 지난번에 그랬지? 레벨을 올리려면 마족이나 마수를 죽이는 게 제일 빠르다고.”
“그랬죠…?”
라헬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 혹시 막타만 쳐도 경험치 들어오냐?”
“…”
“싸움은 저 멍청이들보고 하라 하고 나는 막타만 쳐서 경험치를 날름날름하는 거지!”
“하아…”
라헬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용사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쓰레…. 아니, 영악했다.
“아마 용사님 말씀처럼 막타만 쳐도 레벨업이 가능할 거예요.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제?”
“혼란한 전투 상황에서 마수의 숨통을 정확히 끊는 게 쉬울까요? 게다가 용사님은 초짜잖아요.”
“맞는 말이야.”
라헬의 말에 최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지금까지 내가 널 오해했네.”
“네? 오해라니요?”
“그냥. 너도 생각이란 걸 할 줄 아는구나 싶어서.”“하, 용사님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배로 나쁘네요.”
“뭐야!?”
최현석과 라헬이 둘 다 표정을 구겼다.
아무래도 이번 디스전은 무승부로 끝나는 듯했다.
“아무튼, 네 말대로 막타를 치는 게 쉬울 거란 생각은 안 해. 아니, 분명 어렵겠지.”“그럼 따로 생각해둔 방법이 있어요?”
“아니.”
최현석이 당당하게 말했다.
“죽자 살자 덤벼봐야지. 뭐 별수 있나.”“그것참 용사님답네요…”
라헬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면 생각해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 최현석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두었다.
그것은 바로 용사 상점을 이용하는 것.
하지만 이 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았다.
정보 또한 너무 부족한 상황.
계획을 실행하려면 용사 포인트가 제법 많이 들기에 일단은 보류하기로 했다.
“그럼 돌아가자. 너무 늦어도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
“네.”
라헬이 다시 사라지고.
최현석은 조리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
돌아오는 최현석을 보며 쿨칸이 말했다.
“볼일은 잘 봤나?”
“예!”
“혹시 멍청하게 도망치려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이군.”“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내심 찔렸던 최현석이 과장되게 웃었다.
“쿨칸 님. 그래서 다음 사냥은 언제입니까?”“호오? 이번엔 남자답게 전투에 뛰어들 생각인가?”“물론입니다! 이래 봬도 저 또한 마왕군의 일원! 피가 끓는 전투를 지켜보기만 하니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입니다. 하하하!”
아부와 거짓말을 할 때면 혓바닥에 기름칠이라도 한 듯 청산유수로 말을 뱉어내는 최현석이었다.
실은 격투기 챔피언이 아니라 사기꾼이 아니었나 의심이 될 정도.
아마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였기에 빠르게 숨겨진 재능이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네놈…!”
그때였다.
최현석의 말을 들은 쿨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냉담한 반응이었다.
‘혹시 실수라도 했나? 아니면 아부를 좋아하지 않는다던가…’
최현석이 잔뜩 긴장하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인간 주제에 제법 마음에 드는 소리를 지껄이는군! 크하하하!”
쿨칸이 환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아닙니다. 훌륭하신 조리장님에 비하면 아직 햇병아리일 뿐입니다!”“아니다. 너는 훌륭한 마왕군이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이것 참… 감사합니다!”
최현석이 쑥스러운 얼굴을 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러니 다음 사냥에서 선두를 너에게 맡기도록 하지!”
“예…?”
“선두는 가장 명예로운 자리다. 원래라면 절대 신참에게 내주지 않지만… 이번만은 예외다.”
쿨칸의 말에 최현석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선두라면 설마…’
처음 보일더를 마주했을 때 가장 앞서 있던 병사가 떠올랐다.
아마 모르곤이라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멈춰라!”
홀로 용맹스럽게 보일더의 앞을 막아섰던 모르곤.
“끄아아아악!”
그 결과는 살아있을 때의 흔적을 찾기도 힘들 정도로 야무진 피떡이 되는 것이었다.
‘시발! 절대 안 돼!’
최현석이 재빨리 손을 저었다.
“쿨칸 조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만, 저는 그런 영광스러운 자리를 받을 수 없습니다!”
“어째서냐.”
“인간인 제가 무슨 염치로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선두를 맡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저따위 인간이 선두가 되면 다른 조리병들의 불만이 생길 겁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혓바닥이 모터라도 단 듯 돌아간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던가.
살기 위해서라면 그깟 자존심 따위 똥통에 버려도 좋았다.
‘나는 자살 희망자가 아니라고!’
최현석은 필사적으로 쿨칸을 설득했다.
“흐음… 이건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
쿨칸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필요 없다고! 미친놈아!’
최현석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두는 저에게 과분합니다. 그런 영광스러운 자리는 다른 조리병분들께 양보하는 것이….”
최현석이 말을 하던 그때.
“조리장님! 마수의 습격입니다!”
“뭐야!?”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늑대의 하울링과도 비슷한 소리였다.
“아우우!”
“아우우우우!”
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쿨칸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필이면 우룬 무리인가. 벌써 주위를 포위했군.”
갑자기 포위됐다니.
최현석의 표정 또한 덩달아 심각해졌다.
“위험한 상황입니까!?”
최현석의 물음에 쿨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위험한 건 아니다.”“예? 그러면 왜…?”
“우룬 고기는 맛이 별로거든.”
“아…”
참으로 조리병다운 걱정이었다.
“어쩔 수 없지. 빠르게 해치운다!”
쿨칸과 조리병들을 향해 소리쳤다.
“오늘 저녁 메뉴에 우룬 스튜를 추가하도록 한다!”
“예에에!”
“모두 연장 들어!”
조리병들이 피로 흥건한 식칼을 들어 올렸다.
“돌겨역-!”
“와아아아!”
조리병들이 힘찬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간다.
그 사이 최현석도 바닥에 떨어져 있던 식칼 하나를 집어 들었다.
‘드디어 시작인가.’
비록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행히 계획대로 일이 흘러갔다.
‘후우… 할 수 있어.’
최현석이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몹몰이는 이미 충분하고.
어그로를 끌어주는 탱커도 충분한 상황.
받아먹지 못하면 그게 멍청이다.
‘완전히 쩔이나 다름없지!’
최현석이 식칼을 꽉 쥐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며 전력으로 달려 나갔다.
“우아아아! 막타는 내 거다!”
폭렙이 시간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